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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의 상상력 영웅과 우상의 시대를 넘어서 본문

4차산업혁명 관련/책소개

리더의 상상력 영웅과 우상의 시대를 넘어서

천아1234 2021. 12. 22. 08:03

예약판매 : 2022년 1월 3일 출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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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도서는 2022년 1월 3일 출고 예정인 출간예정도서 입니다. 단, 출판사의 사정으로 출간이 지연될 수 있으니,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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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역사의 상상력으로 현재를 바라보는
심용환의 ‘역사 상상력 아카이브’ 시리즈 제2권
『리더의 상상력: 영웅과 우상의 시대를 넘어서』 출간
개혁의 리더는 과거를 무너뜨리고성찰의 리더는 미래를 앞당긴다
김영삼·김대중 시대의 변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전작 『헌법의 상상력: 어느 민주공화국의 역사』에서 1948년 헌법 제정부터 1987년 현행 헌법에 이르는 헌정사를 한국 현대사의 진행 과정 속으로 옮겨놓았던 심용환이, 이번에는 1980년대 후반부터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기를 거쳐 21세기 초반에 이르는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 경제와 생활의 질적 발전을 탐구했다.
인간은 지금 자신에게 부재하는 것을, 미래에 도래할 일을 상상하는 존재이다. 그리고 그 상상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을 만들고 바꾸어나간다. 또한 인간은 개인의 꿈(욕망)과 사회의 이상(도덕과 정의) 사이를 오가며 양자를 조정하는 존재이다. 상상 속 사회와 정치가 현실의 사회와 정치를 만나면, 둘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해 변화가 시작된다. 만약 상상이 멈춘다면 그 사회와 정치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며 생활하는 세계의 대부분은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한민국 14대, 15대 대통령을 역임한 10년간 조정되고 만들어졌다. 김영삼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개혁의 가치를 다시 쓴 리더였다. 1993년 그는 독립운동사에서 민주화운동사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역사 발전을 재정립했다. 또한 그는 현직 대통령 최초로 임시정부를 성역화했고 4·19를 혁명으로 승격시켰으며 5·18을 비롯해 국가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사를 청산하려 했다.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정치개혁법과 전면적 지방자치제 등 그가 이룩한 여러 개혁은 물론이고 그가 제창한 세계화와 OECD 가입 같은 국가 발전 의제들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사회적 지표로 기능하고 있다. 이 지점에서 김영삼은 국가가 해야 할 일의 선례를 만든 리더였다.
김대중은 정부의 무능으로 초래된 경제 문제를 해결하며 동시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단순히 외환 위기에서 벗어나는 문제를 넘어서서 산업 합리화와 재벌 개혁, 벤처 산업 육성 등 1980년대부터 외쳤던 한국 경제의 구조 조정과 질적 변화를 실현했다. 또한 김대중은 햇볕정책을 통해 남한과 북한이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고, 일본 총리와 함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동시에 아세안플러스3 회의를 통해 동아시아 협력 체계의 모델을 제시했다. 이 지점에서 김대중은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리더였다.
따라서 두 사람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새로운 영웅 만들기나 우상화 작업이 아니다. 이것은 헌법에 따라 유한한 권력을 손에 쥔 리더가 무엇을 바꾸고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는지 정확하게 관찰하려는 시도이다. 또한 정치가 세상에 희망을 주던 과거에 관한 기록이며, 오늘과 내일을 위한 역사 설계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저자소개

저자 : 심용환

성균관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대학원 사학과에서 「5·18광주민주화운동 국회청문회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심용환역사N교육연구소 소장 및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로 일하고 있다.
강연과 출판, 방송을 종횡하며 역사의 상상력으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가 알아야 할 역사를 소개하는 유튜브 〈현재사는 심용환〉 채널을 진행하며, 역사 이야기와 문화 공연을 접목한 ‘인문학 콘서트’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헌법의 상상력』, 『1페이지 한국사 365』, 『1페이지 세계사 365』, 『단박에 한국사』 시리즈(전 3권), 『우리는 누구도 처벌하지 않았다』, 『심용환의 역사 토크』, 『역사 전쟁』 등이 있다.
 

목차

들어가며 5
1장. 숙명의 리더와 성찰의 리더: 대통령이 되기까지 13
민주주의를 갈구한 신념의 투사
시작은 패배였지만-40대 기수론, 그 찬란한 실패 15
선명한 의회주의자의 정치 투쟁 20
김대중이라는 딜레마를 넘어서 29
성찰의 길을 걸은 숙련된 현실주의자
역경이 만든 지식인형 정치인 34
비판적 현실주의자의 대안 모색 41
세 번의 패배와 한 번의 승리 48
2장. 눈앞의 지형도: 권력이 현실화되는 자리 51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3당 합당-기묘하고 위험한 선택 53
내각제의 덫에 빠지다 57
완벽한 복종을 얻어내기까지 64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지역주의로부터 지역주의 밖으로 71
준비된 지도자 혹은 대통령병 환자 78
동료의 손을 함부로 뿌리치지 마라 84
3장. 혁명보다 어려운 게 개혁이다: 집권 초기의 개혁 89
단호하게 결심하고 철벽같이 밀어붙이는 속도전의 대가
“위로부터의 개혁이 시작됩니다” 91
조선총독부 해체-민주공화국의 정통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95
공직자 재산 등록-역사를 바꾸는 명예혁명 103
하나회 해체 I-별들의 이전투구 108
하나회 해체 II-단칼에 베다 120
텅 빈 국고의 열쇠를 받은 후 새로운 질서를 만들다
문민정부, 환란의 전주곡을 틀다 127
한보 사태-1997년 1월의 삭풍을 누구도 제대로 해석하지 못했다 131
삼성 보고서가 불러온 파란 137
얼어붙은 아시아 금융 시장 143
재벌 중심의 성장과 독점의 결말 148
문민정부, IMF에 구제 금융을 요청하다 152
김대중이 이끈 변화,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변화 155
4장. 무엇을 무너뜨리고 무엇을 세울 것인가: 다음 시대를 위한 대통령의 정치술 167
과거의 비극에 정치권력이 응답하는 방법
노태우,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거부하다 169
반발-여소야대 국회와 두 번의 청문회 175
성공한 쿠데타도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191
국가가 잘못을 사과하고 피해를 보상하는 시대를 열다 199
거절과 반대를 설득과 동의로 넘어선 햇볕정책
현실과 공상 사이에서 방향을 가리키다 208
노태우의 북방정책과 평화 공세 216
김영삼 정권기의 혼란-꺼져버린 통일의 불씨 223
베를린 선언과 남북 정상 회담-경쟁 아닌 공존의 틀을 만들다 228
5장. 세기를 넘어서 237
김영삼과 김대중의 마지막 도전 I-재벌 개혁과 노동 문제
금융실명제와 정치 개혁 239
금융실명제와 재벌 개혁 245
시드니 구상과 OECD 가입 247
정리해고제 도입 259
경제-개방과 희생 앞에서 261
김영삼과 김대중의 마지막 도전 II-한일 관계와 관료 문제
협력 외교의 전범을 쓰다 270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분명히 나아지고 있는 관료제 276
마치며 283
주 285
참고문헌 297

책 속으로

여야 갈등, 부정 선거, 4·19혁명 그리고 혁명의 열기 가운데 쏟아져 나온 급진적 주장과 행동들. 야당 의원 김영삼은 정권의 부정부패에 저항했고, 혁명의 열기를 의회 안으로 옮겨와서 정치적 변화를 만들어내려 했다. 의회주의자 김영삼의 정체성이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곧 그는 민주공화국의 발전을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과 마주친다. 그의 나이 34살이던 1961년 5·16군사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 김영삼이 이해한 민주주의는 박정희의 정반대편에 있었다. 자유라는 가치의 절대성과 자유민주주의라는 제도적 기초. 박정희는 이 둘을 부정했다. 김영삼이 보기에 박정희의 통치는 실패했다. 자유를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짓밟은 박정희의 원칙 없는 통치는 ‘부의 불평등’, ‘황금만능주의’, ‘정경 유착’, ‘인권 유린’ 등을 초래해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_16~17쪽, 「민주주의를 갈구한 신념의 투사」 중에서
단식 23일째인 1983년 6월 9일에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나라와 우리 국민의 부활은 바로 민주주의 실현을 통해서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며, 민주주의 없이는 우리 모두는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라고 선언했다. (…) 단식 투쟁의 결과 민주화추진협의회(이하 민추협)가 결성된 것이다. 여러 야당 인사들은 물론이고 박찬종, 김창근 등 구 여권 인사까지 함께 모여 ‘정당형 반체제 단체’인 민추협을 만들었고, 이 단체는 반독재 투쟁의 중요한 구심점이 된다. (…) 애초에 김영삼은 의회주의자. 그는 초선 이후 대통령이 될 때까지 국회를 벗어난 적이 없고, 유신 체제하의 불합리한 선거 구조에서도 국회 안에서 싸움을 이어왔다. 아무리 불합리하더라도 결국 선거에서, 국회에서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이다. 국회를 벗어나 어디에서 국민을 설득하겠으며 국민은 국회 말고 무엇에 의지하여 변화를 요구하겠는가. 재야와 운동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영삼과 민추협은 총선 참여를 결정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_26~27쪽, 「민주주의를 갈구한 신념의 투사」 중에서
1970년 10월 16일 대통령 후보 김대중은 기자 회견을 열고 ‘4대국 안전보장론’, ‘남북 교류와 평화통일론’, ‘대중 경제 노선’을 주장했다. 이 밖에도 향토예비군 폐지,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 및 교역 추진, 초중등학교의 육성회비 폐지, 사치세 신설, 학벌주의 타파, 이중곡가제 실시 등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김대중은 박정희가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비전을 제시했다. 자유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은 채 6·25전쟁에서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대립과 반목을 낳는 반공주의는 결코 해답이 될 수 없다. (…) ‘문제 해결을 위한 대범한 노력이 필요하다.’ 김대중은 주변 열강을 끌어들여 다자 대화 구도를 만들고, 동시에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도하며 긴장 상태를 주체적으로 완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심지어 공산권과도 대화하고 교역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당시 야권의 입장에서도 매우 파격적인 사고였으리라. _45쪽, 「성찰의 길을 걸은 숙련된 현실주의자」 중에서
하지만 김영삼은 다른 길을 선택했다. 측근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홀로 결단을 내렸다. 평생을 싸워온 사람들과의 동거. 반민주 세력, 장기 독재 정권의 하수인들과 한 식구가 되기로 결심했다. 노무현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야합’이라고 규정했던 도무지 이해 못 할 행동. 변절자 김영삼! (…) 그렇게 민주자유당(이하 민자당)이 탄생했다. 5공 세력과 박정희 세력과 김영삼 세력이 결탁한 거대 여당의 등장. 지역적으로는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충청도가 전라도를 포위하는 정치 블록이 만들어졌다. 제2야당 대표였던 김영삼은 일거에 집권 여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자신의 지역 기반인 경상남도를 고스란히 유지한 채 경상북도와 충청도까지 손에 넣었다.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바야흐로 지역주의의 시대 아니던가. 이제 김영삼은 대권으로 다가가는 가장 빠른 길에 올라탔다. _56~57쪽,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중에서
정치적 경쟁 구도에서 누군가를 상대로 승리하고 차기 주자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상대에게 강렬한 허탈감,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패배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오직 김영삼밖에 없다.’ 상대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때, 자신의 패배를 처절한 심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 김영삼은 진짜 대안이 될 수 있다. 인정은 한 번의 승리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승리에는 그 크기만큼의 반감이 쌓이기 마련이다. 계속해서 시기와 질투라는 방해물이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더구나 이곳은 정치판 아닌가. 없던 대항마를 만들어서라도 싸움을 붙이는 곳. 완벽한 승리를 반복해서 그 어떤 저항과 도전도 소용없음을 상대방에게 처절히 각인시켰을 때, 마침내 ‘자발적 복종’을 얻게 된다. _65쪽,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 중에서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인권 유린, 그로 인한 광주와 전라도 지역의 적극적인 정치 의지 분출, 그리고 오랜 연금과 교도소 생활 이후 내란 음모 사건에 엮여 사형 선고를 받고 망명 생활까지 한 김대중의 고난. 지역과 인물이 결합되고 출신 지역과 정치적 역량이 결착되면서 새 구조가 만들어졌다. 무엇보다 이제 야당은 하나. 평민당만 남아 있으며 김영삼이 사라진 자리에서 김대중을 상대할 만한 야권 주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역주의가 한국 사회에서 전라도의 지위를 특별하게 만들었다면, 김영삼의 부재는 김대중의 위상을 더욱 높이는 기묘한 정치적 결과를 낳았다. _73쪽, 「위기를 기회로 바꾸다」 중에서
대부분의 개혁은 물거품이 된다. 이유를 찾자면 한도 끝도 없다. 역사에는 ‘개혁’이라는 이름이 붙은 수많은 시도가 보잘것없는 실패의 변명과 함께 너저분하게 늘어서 있다. 하지만 1993년 김영삼의 개혁은 달랐다. 하나회 해체, 기무사와 안기부 개혁, 공직자 재산 공개, 조선총독부 건물 해체 등으로 이어지는 그의 행보는 짧은 시간에 획기적 변화에 성공하며 대한민국 행정 권력이 할 수 있는 일의 ‘선례’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개혁의 메커니즘’이 이후에도 계속 작동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누가 개혁을 주도했는지가 아니라 개혁 과정에서 만들어진 ‘방법’이 지속적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개혁은 단순한 선례여서는 안 된다. 하나의 개혁은 연속적 인과 구조로 바뀌어서, 집권자가 물러난 후에도 후임자에 의해 이어져야만 한다. 대통령 김영삼이 보여준 개혁은 당시의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연속성의 선례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의의를 지닌다. _108쪽, 「단호하게 결심하고 철벽같이 밀어붙이는 속도전의 대가」 중에서
김대중 정부가 주도한 변화, 금융 개혁과 재벌 개혁의 방향은 매우 명확하다. 외환 위기의 근본 원인은 박정희 정권 이래 쌓여온 정경 유착, 관치 경영에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정부는 정부의 역할을 하고 기업은 기업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은 국민을 보호하며 건전한 시장 경제의 발달을 촉진하는 데 있다. 기업은 시장에서의 성공, 책임감 있는 기업 윤리의 확보를 목표로 하면 그만이다. 이것이 정상화의 시작이다.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주도한다. 시장 경제는 국민 경제의 성장을 전제로 하며, 정부는 국민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기업의 독단적 성장을 제어한다.’ 김대중의 개혁에는 금융 기관은 물론이고 미국과 IMF까지 동원되었다. _160쪽, 「텅 빈 국고의 열쇠를 받은 후 새로운 질서를 만들다」 중에서
김영삼은 왜 두 전직 대통령 사법 처벌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을까. 이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다. (…) 김영삼의 지지율은 집권 3년 차에 가파르게 하락했고, 여러 방면에서 의욕적으로 추진한 개혁은 피로감을 일으키거나 민심의 호응을 얻지 못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또한 그는 정통성에 집착하며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갔다는 자신의 말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싶어 했는데, 5·18 문제야말로 그가 표방한 대의의 결정체 아니던가. 이로 인해 한국의 과거사 청산은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의지, 한국형 대통령중심제가 지니고 있는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특징을 지닌다.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정치 투사의 강력한 의지와 오랜 기간 공무원의 철저한 복종을 기반으로 길러낸 대통령 중심의 극단적 행정 효율성이 기묘하게 결합하여 이룬 성과라고 할 수 있다. _199~200쪽, 「과거의 비극에 정치권력이 응답하는 방법」 중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은 북미 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00년 10월 23일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의 평양 방문은 북미의 관계 개선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 협상의 결과가 남북 관계의 구체적인 현실을 변화시키고, 남한이 주도한 한반도 평화 정책에 미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가 보조를 맞추고, 그 결과 냉전 시대의 반공주의에 비견할 만한 외교 유형을 만들어냈다는 측면에서 햇볕정책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대중 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1971년 대선 때 주창한 ‘새로운 외교’의 구체적 결과물이다. 남북 관계의 평화적 개선뿐 아니라 주변 열강을 끌어들여 평화 체제를 구축하자는 구상이 햇볕정책과 함께 추진되었다. 일본과 중국의 참여를 이끌어 아세안플러스3 등 동북아 관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으니, 대한민국의 외교력이 두드러졌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_235쪽, 「거절과 반대를 설득과 동의로 넘어선 햇볕정책」 중에서
참으로 복잡한 현실. 오랜 기간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독재자와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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