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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친일청산을 가로막고 있는가?

천아1234 2021. 7. 2. 16:15

-자유한국당 그리고 한미동맹

▲ sbs뉴스 캡쳐



2019년 3월 14일,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나경원이 “해방 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로 인해 국민이 분열했다”는 말을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화들짝 놀랬다. 귀를 의심하는 사람도 적잖았다.

반민특위는 1948년 8월 헌법에 따라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된 특별위원회였다. 일제의 국권 강탈에 적극 협력했거나 일제 치하의 독립운동가 등을 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반민특위는 단 1명도 처벌하지 못했다. 반민특위를 설치한 이승만 정부가 오히려 방해를 했기 때문이었다. 반민특위는 친일 세력의 특위 위원 암살 음모, 친일 경찰의 특위 습격사건 등 이승만 정부의 탄압을 견디지 못하고 급기야 설치 1년여 만에 해체되고 말았다.

그때 친일세력들은 반민특위를 공격하면서 반민특위가 국민을, 민족을 분열시킨다는 주장을 했었다. ‘국민 분열시키는 반민특위 해체하라’라고 했던 것이다. 어처구니 없고 황당한 주장이었다. 역대급 막말이었고 그 이후 정치적 막말 즉, 막말정치의 원조였다.

사람들이 나경원에게서 놀랐던 것은 친일파들의 그 막말을 7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곁가지 하나 손상 없이 살아있는 채로 꺼내들었다는 것 때문이었다.

“저 여자가 일본 것이여?”

간혹 해방정국 때를 이야기해주곤 했던 할아버지가 뉴스를 보면서 그렇게 혀를 끌끌 찼다. 사람들은 나경원이 속해있는 자유한국당에 ‘토착왜구당’이라는 별칭을 달아주었다. 할아버지는 나경원의 막말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저런 짓거리는 다 양코쟁이들이 만들어 낸 거여!”. 할아버지는 또 해방정국 때를 꺼냈다. 항상 그렇듯 그 주변을 몇 바퀴 돌고는 이승만 자유당 시절을 거쳐 촛불항쟁 때까지 훑을 태세였다.

미국은 해방 후 한반도 이남에 들어와 군정통치를 하면서 친일세력들을 통치 지반으로 삼았다. 친일세력에 대한 유지 그리고 강화로 나타났다. 계산된 것이었다. 북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것에 대한 전략적 태세였던 것이다. 그러한 미국에 국민들의 친일청산 요구는 달가울 리가 없었다. 친일청산 요구가 민족이냐 반민족이냐는 정치구도에서 나오는 것이라 오히려 극히 해롭거나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미국 자신 또한 외세였기 때문이었다. 미국이 친일세력을 강화해야할 이유는 이 말고도 차고 넘쳤다.

'어떤 정부 형태를 원하는가?'

미군정이 1946년 7월 서울지역 1만 여명에게 여론조사를 한다. 결과는 77%의 사람들이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압도적이었다. 미국에게는 민족이냐 반민족이냐의 정치구도를 깨는 것과 더불어 새로운 정치구도로 좌우대립 구도를 조작해야하는 결정적 이유였다. 한국에 좌우대립구도를 심는 건 ‘분할하여 통치하라’라는 피압박민족에 대한 미국의 교리를 실현하는 데에 특히 더 필요했다.

남한 만의 단독선거로 분단을 획책하려는 미국의 분할통치전략에 맞서 제주 4.3항쟁과 여순항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마침내, 이승만과 함께 국민들의 통일 염원을 왜곡해 좌우대결로 조작하는 데에 사활을 걸었다. 제주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여수 시내가 불바다가 되어야했던 배경이었다.

친일세력을 민족세력의 민족정기 바로 세우기 사업에서 피해나갈 길을 터주고 강화시킬 수 있는 정치구도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미국이 기획.주도해 만들어내는 그 정치지형에서 친일세력들은 정체성을 신속하게 변화시켰다. 친일에서 친미로였다. 일본 육사 출신 박정희가 가장 빨랐다. 백선엽 백인엽 등도 여순항쟁을 진압하는 것으로 그 뒤를 이었다.

친일세력들은 그렇듯, 미국이 분할통치전략과 전쟁을 통해 정립시킨 분단체제 하에서 청산되기는 커녕 오히려 더 강화되는 길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수 십 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나경원을 비롯해 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 등에게서 오랜 세월 유지온존되고 강화돼 온 친일의 적나라한 실체를 확인하고 있는 셈이다.

▲ ytn뉴스 캡쳐



"한미동맹 공고화를 위해 한국당과 긴밀한 소통이 이뤄지길 바랍니다"

지난 4월 22일 황교안이 자신의 대표 선출을 축하하기 위해 국회를 찾은 해리 해리스 주한미대사를 접견하면서 한 말이다. 해리스 대사는 "안심 드리고 싶은 것은 한미동맹은 여전히 매우 강력하다 것"이라는 말을 덕담처럼 건넸다.

황교안 자유한국당이 반문재인 투쟁에 보다 집중하게 된 것은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김병준 비대위원장 때와는 양상을 완전히 달리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와의 투쟁구도를 좌우대결구도로 몰아가는 데에 총집중을 했다. ‘좌파독재정권’이니 ‘좌파세력의 헌정파괴’니 하는 막말들을 모든 말의 앞에 세웠으며 쉴 새 없이 반복을 해댄 것이다.

황교안은 4월 20일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찍어서는 "경제 살릴 외교는 전혀 하지 않고 김정은 대변인 역할만 하고 있다"면서 "대북제재를 풀어달라고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구걸하고 다니는데, 대한민국 자존심을 어디다 팔아놓았나"라고 비난한 뒤 "김정은을 대변하는 일을 중단하고 무너진 한미동맹을 즉각 복원하라"고 했다.

나경원에 이은 황교안의 막말정치는 그렇게 본격화되었다. 이승만 정부 등 친일세력이 민족이냐 반민족냐의 정치구도를 좌냐 우냐의 정치구도로 바꿔 색깔론을 앞세웠던 것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싱크로율 100%라고 해도 지나칠 게 없었다.

“징하게 해쳐 먹구먼”

급기야 할아버지는 화를 냈다. 많은 사람들이 황교안답다며 그리고 감탄스럽다고 비아냥댔다. 황교안은 2009년 쓴 집회시위법 해설서에서 4·19 혁명을 ‘혼란’으로, 5·16 군사쿠데타를 ‘혁명’으로 표현했었다. 특히 분단체제 하에서 통일운동을 탄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인 국가보안법에 대한 해설서를 내 공안 수사의 교과서로 등극시키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황교안이 법무부 장관 시절 이석기 내란 선동 사건 수사와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것을 자랑스러운 치적으로 꼽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은 패스트 트랙 법안 통과 과정에서 국회를 국민들의 표현을 빌면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렸다. 광장 역시도 자유한국당 앞에서 난장판으로 되어야했다. 황교안이 ‘문재인은 빨갱이’라며 지속적으로 반정부활동을 벌여온 성조기태극기부대와도 반갑게 조우한 곳도 광장이었다. 광화문의 수난인 셈이었다.

‘광장에서 망한 자들이 또 광장을 능욕하고 없애겠다는 거여’

할아버지는 또 그렇게 분노했다. 정확했다. 지난 역사의 큰 줄기들이 보여준다. 광장은 세계 민주주의 투쟁 역사가 보여주듯 민주주의와 이음동의어다. 4.19는 광장의 승리였다. 그러나 미국은 박정희의 5.16쿠데타를 통해 4.19 광장을 제압해버렸다. 그때 박정희는 자신이 총을 들었던 여의도 광장을 5.16광장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광장은 그렇게 처참하게 능욕당했다. 부마항쟁도 유신의 심장을 쐈고 전두환을 응징하려했던 광주항쟁도 운명은 같았다. 이 역시도 미국은 전두환의 12.12쿠데타 및 광주학살로 광장을 제압해버린 것이다. 6월항쟁 또한 마찬가지였다. 노태우의 6.29선언과 3당야합을 통해 미국은 광장을 더럽히고 또한 제압했던 것이다. 미국이 광장을 제압해 이뤄낸 건 분단체제 위기 관리이자 재편이었다. 사람들은 촛불항쟁 과정에서 ‘계엄령’을 검토했다는 소문을 사실로 확인하고 난 몇 달 뒤 세월호 참사 때도 계엄령이 제기됐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치를 떨었다.

사람들이 광장이 능욕당하고 제압당하는 과정에서 또렷이 경험한 것은 미국의 실체였다. 북을 적대하는 미국이 매 역사의 구비마다 한국을 어떻게 장악해 어떻게 지휘하는 지를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국민이 아니라 미국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할아버지는 주한 미대사 해리스가 황교안을 만났을 때 차기 대선 때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장엔 한미동맹에 바탕한 친일친미세력들을 다 끌어모아서는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되 주요하게는 특히 문재인 정부가 민족공조에 올라타는 걸 막으라는 암시를 주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누구에게나 동의받을 만한 추측이고 전망이었다. 상식인 것이다.

사람들이 나경원과 황교안 등 자유한국당에게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10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살아있는 친일이며 그를 가능케 하는 원천인 친미이다. 자유한국당의 정치적 실체는 이렇듯 친일 더 하기 친미다.

자유한국당은 이후에도 문재인 정부가 벌이는 최소한의 적폐청산 활동을 가로막고자 ‘좌파 프레임’을 씌워 집요하게 공격을 해댈 것이다. 자유한국당의 막말정치가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더 확장될지 예상해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컨대, 머지 않아 자주통일시대가 본격화되는 즈음 남북이 지난 6.15공동선언에서 합의한 연합연방제가 통일방안으로 부각되게 되면 자유한국당은 어김없이 북의 적화통일전략이라며 악다구니를 써 댈 것이다.

국민들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학생들이 나경원 의원사무실을 점거하고 청년들은 곳곳에서 자유당 해체 투쟁을 다양하게 벌이고 있으며 자유한국당 해산 국민청원은 183만을 찍었다. 이제 더 이상은 자유한국당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국민들의 태세다. 국민들은 국민주권시대답게 자유한국당 해체 투쟁을 완강히 벌여나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년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에 궤멸적 참패를 안겨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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