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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서툰 듯, 그러나 사실은 최고의 경지" 본문

기자 김대중에 관하여

"겉으로는 서툰 듯, 그러나 사실은 최고의 경지"

천아1234 2021. 4. 11. 12:13

언론인 50년을 맞는 김대중 고문님.
정말 '멋진 삶'이었습니다. 달리 표현할 말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찬사로 담아내기에는 김 고문님의 인생 족적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 언론계를 대표하는 김대중 고문님의 글을 제가 어떤 식으로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과분한 듯합니다.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늘 질타를 받는 정치인으로서 큰 언론인을 보고 느낀 소감을 글로 표현하는 게 저에게는 크나큰 정신적 고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영광으로 알고, 정치인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함께해온 독자로서 느낀 점을 감히 5가지 정도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김 고문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첫 느낌은 참으로 쉽고 평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군더더기가 거의 없어 때로는 ‘별로 재미없는데…’라는 생각도 했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나서 신문의 글은 중졸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서야 ‘쉽고 상식적인 글이 진짜 잘 쓴 글이구나’라면서 김 고문님의 글이 가진 묘미를 어느 정도 느끼게 됐습니다.
탁월한 의제설정 능력 보여준 '중국의 고르바초프적 전환' 칼럼 기억에 남아
선현들의 지혜로운 말 가운데 대교약졸(大巧若拙)이란 게 있는데 ‘큰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겉으로는 서툰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기교의 최고 경지에 있다는 것이지요. 화려한 문장을 늘어놓거나 케케묵은 내용을 모아 편집하는 일은 ’문장의 기술‘일 뿐 진정한 글이 아닙니다. 김 고문님의 글이 왜 대한민국 최고의 글로 평가받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순수한 눈과 글에 대한 절제된 아름다움이 어울러져 상승효과를 낸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고문님에 대한 두 번째 느낌으로 ‘탁월한 의제 설정’을 꼽고 싶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사회에서 새로운 문제, 해결해야 할 과제는 쉴새 없이 밀려옵니다. 어떤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순서를 정하고 논의하는 게 참으로 중요한 데, 김 고문님은 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사례를 찾아보니 2010년 5월31일자 ‘중국의 고르바초프적 전환’이란 칼럼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그 시점은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례가 발생하지 두 달쯤 지난 시점이었고, 중국이 결국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일 때였습니다. 김 고문께서는 중국 정부가 취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 짚으면서, 우리 정부와 국민들에게 그 실상을 잘 알려 주셨습니다. 17대 대선을 앞둔 2007년 12월3일 ‘우파냐 좌파냐의 선택이다’라는 칼럼에서는 대선의 성격이 인물 대결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대결이라고 규정짓고, 선거는 궁극적으로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하는 제도’라고 일갈하는 모습에 많이 놀랐습니다. 좋은 글의 조건 속에 일반인이 보지 못한 다른 측면을 보는 능력, 혼돈스러운 상황에서 깔끔하게 정리하는 능력 등이 있는 데 김 고문께서는 그러한 부문에서 늘 선구자적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저의 세 번째 느낌으로 김 고문님의 칼럼은 늘 기운이 넘쳤습니다. 대부분의 칼럼이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모두 틀렸다'는 식의 양비론으로 흘러갈 때, 김 고문께서는 아예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예컨대 2009년 9월28일자 칼럼 '잘 나간다고 너무 나간다'의 칼럼은 지금도 생명력이 팔팔하게 살아있는 글입니다. 칼럼은 이명박 정부가 경제 호전과 인기 회복에 힘입어 4대강 정비사업, 개헌, 선거구제와 행정구역 개편 등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든 논쟁적인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서두른다며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김 고문께서는 이념적 대립과 좌우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슈를 한꺼번에 추진하는 것은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정치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속도를 조절하고 내용들을 조정해서 자칫 국민과 나라를 대립과 싸움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조언했습니다. 지난해 10월 이후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당시 칼럼을 되새겨보니 마치 오늘의 상황을 예견하는 듯 해 크게 공감했습니다.
김 고문님은 사실을 지적함에 있어 비판은 수용하되 비이성적인 비난과는 전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당장 싫어하더라도 장기적인 측면에서 옳다고 생각하면 신념을 굽히지 않는 모습으로 인해 소위 ‘안티 세력’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늘 나라와 국민의 미래를 생각하며 필봉을 휘둘렀기에 언론인으로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장수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언론인 가운데 오랫동안 자신이 믿는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데, 김 고문님께서는 그런 면에서 참으로 달랐습니다.
나라와 국민만을 생각하는 글로 안티세력 이겨내고 장수해
마지막 다섯 번째로 제가 김 고문님께 감동하는 것은 좌고우면하지 않고 오로지 언론인의 삶을 천직으로 아는 자세입니다. 김 고문께서는 오랫동안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으로 사랑을 받아왔습니다. 많은 언론인이 자신의 명성을 자산으로 삼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데, 김 고문님께서는 한 번도 곁눈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유혹을 뿌리치고 정도(正道)를 걷는 게 얼마나 힘든 과정인지, 권력의 부침 속에서 수많은 명사들이 스러져갈 때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를 겪지 않는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김 고문님의 우직스러움은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글은 글쓴이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깨달은 내용의 깊고 얕음과 행동한 일의 선악은 반드시 글에 나타난다고 합니다.
한 차례의 칼럼은 잔재주를 부려 잘 쓸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수많은 세월을 지내오면서 늘 마음을 움직이고 세상을 밝히는 글을 꾸준히 생산해내는 것은 범인들로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치에 입문한 뒤 김 고문님을 여러 차례 만나 뵌 후 그 인상을 굳이 말하라면 '참으로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성품이구나'라는 느낌이었는데 글을 읽을 때마다 새삼스럽게 다시 느끼곤 합니다.
기교를 부린 문장일수록 경박스럽다고 합니다. 김 고문님은 지혜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평범하고 상식적인 어휘를 통해 나라와 국민이 나아갈 바를 날카롭게 지적해 오셨습니다. 늘 국민의 눈높이에서 세상을 해석하고 나아갈 길을 보여 주셨기에, 항상 국민과 함께 호흡해야 하는 저희 정치인에게는 스스로의 좌표를 설정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언론인은 글을 쓸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들었습니다. 김 고문님께서 앞으로도 오래도록 큰 언론인으로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날카로운 필봉을 휘둘러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김무성은?
1985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추협을 통해 정계에 입문했다.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15대 총선부터 부산에서 5선(選).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당시 '친박 좌장'으로 불렸으며, 이명박 정부때는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다. 18대 대선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 선대위 총괄본부장을 지냈다. 화통하고 리더십이 강해 무대('무성 대장'의 준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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