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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능력주의와 공정성

능력주의는 공정한가?

천아1234 2021. 8. 12. 08:26

에디터의 노트

능력주의는 공정에 대한 시대적 요청으로 화두가 됐습니다. 우리나라가 능력주의 아래 움직인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간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와 공정성을 돌아보는 흐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공정한 사회를 위해 더 엄밀히 능력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하는데요. 능력주의와 공정성을 두고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를 모아봤습니다.

배경

능력주의와 공정성의 소환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2014년 정유라 페이스북 글 일부

오늘날 능력주의를 두고 공정이 소환되는 데는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먼저 정당한 자신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특권에 기대 저지른 부정에 대한 비판입니다. 정유라 사건, 숙명여고 쌍둥이 사건, 조국 사태, 나경원 자식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하죠. 일부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기득권을 이용해 사회적 지위 획득에 개입했다는 논란은 현 사회 능력주의의 공정성에 물음을 던졌습니다.

능력주의를 근거로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 일명 '인국공' 사태인데요. 지난해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비정규직 일부에 대해 정규직 고용 전환 의사를 밝혔다가 정규직 노조 및 취준생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산 사건입니다.

반발의 요점은 시험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아야 정규직이라는 안정적 노동 조건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겁니다. 애써 시험 치르고 들어오는 정규직에겐 불공정한 처사라는 거죠. 그러나 그간 현장에서 일한 경험 역시 마땅히 인정받을 노력이고 능력이라는 의견이 맞섰습니다. 지금도 갈등은 완전히 봉합되지 못한 상태인데요. 이처럼 능력을 둘러싼 공정성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 중요히 떠오르는 동시에 합의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대상

능력주의가 공정하려면

능력주의는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 중 하나입니다. 재화가 한정적인 사회적 가치를 두루 배분하는 일이기에 능력주의는 공정성을 전제로 합니다.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의 추천 글을 쓴 문용린 서울대 명예교수는 능력주의 신화가 다음 세 가지 명제로 이뤄진다고 말합니다.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고,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며, 능력에 따라 성과를 배분한다.

<능력주의는 허구다>의 저자인 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는 능력주의의 논리에 대해 이렇게 정리합니다.

누구에게도 차별적 특혜를 주지 않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며, 타고난 계층 배경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결국 능력주의가 공정하게 작동하기 위한 핵심은 기회의 공평한 제공과 '능력'에 따른 보상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렇담 과연 기회는 공평히 제공되는지, 능력에 따른 보상의 형평성은 어떤지 살펴볼까요.

내용

능력이라는 필터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지나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건 같은 조건에서 경쟁함을 의미합니다. '스타트 라인'이 같냐는 거죠.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본은 각자 축적한 부에 따라 다릅니다. 가정환경이나 재정에 따라 좋은 학군에서 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 살 수도 있습니다. 공부에 전념할 수도 있고 일과 병행해야 할 수도 있죠. 결국 같은 능력(노력)을 기울여도 성취는 차이를 보입니다.

과거 신분제 사회와 달리 계층 이동성은 열려 있지만, 부모의 사회경제적 계층과 지위가 세습되는 점은 유사합니다. 인생의 출발점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그만큼 개인의 능력이 이를 상회하기란 쉽지 않죠. 실제로 지난해 서울대 입학 신입생의 62.9%는 소득분위 9분위 이상 고소득 가정이 차지한 바 있습니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환경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죠.

성공은 (개인) 능력만으로 이뤄지나

명문대에 입학할 정도로 뛰어난 학업 성취를 이루려면 분명 본인의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사례처럼 사교육의 기회나 물질적 뒷받침 등 역시 큰 영향을 미칩니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지능도 다릅니다. 그러므로 명문대에 입학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그 결과를 오롯이 개인의 노력 결과로 환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꼭 학업뿐만은 아닙니다.

능력 외 요인들, 타고나거나 우연적이거나

성공은 능력만이 아니라 우연한 요소, '운'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최종적으로 무얼 갖느냐의 문제에서 능력은 수많은 영향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능력과는 상관없는 '비능력적' 요인들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능력적 요인(merit factor): 타고난 재능, 성실함, 올바른 태도, 자질 등

비능력적 요인(nonmerit factor): 부모의 재화,사회·문화적 배경 및 자본, 우수한 교육의 제공 여부, 갖가지 운, 사회적 제도, 태어난 시기 등

개인이 어찌할 수 없거나

이들은 능력과 공존하면서 능력이 미치는 영향력을 약화시키거나 아예 억압하기도 합니다. 부모로부터 지원받는 부나 교육, 문화적 환경 등이 개인 능력의 영향력을 줄인다면, 당대 사회가 지닌 구조나 특징에 따라 능력의 평가나 발휘도 달라지죠. 능력 역시 사회적 뒷받침 아래 발현되고 인정받기 때문입니다. 마치 비인기 종목 선수가 인기 종목 선수 이상으로 노력해도 사회적 보상이 적은 것처럼요. 또한 대기업 중심 경제 시스템에서 자영업자가 자수성가하기 힘든 것처럼 개인을 압도하는 비능력적 요인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능력에서 배제되거나

차별의 문제도 있습니다. 차별은 위에서 언급한 비능력적 요인, 대개 태생적으로 주어지는 속성을 근거로 교육이나 일자리와 같은 사회적 기회에 접근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별, 계급, 인종, 국적, 나이, 장애, 질병 등에 따라 '능력 있음'과 '능력 없음'을 규정하고 개인의 권리와 실존을 제약하기도 하죠.

무서운 것은 차별의 반복이 가져오는 효과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차별이 고착화될수록 그 정도는 심해지고 불평등은 심해집니다. 차별 때문에 능력을 발현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이들은 결국 정말로 능력이 저해되고 사회적 보상에서 멀어지기에 이릅니다.

똑똑! 비능력적 요인이 개인에 미치는 영향과 사회 속 모습에 관해 쉬운 이해를 돕는 이 만화를 추천해요.

예시

빈곤가정 아동일수록 인지 손상 나타난다

도서 <불평등 트라우마>(2019)에는 빈곤가정 아동들의 낮은 능력 수준이 가정환경의 영향임을 드러낸 연구가 소개됩니다. 생후 5개월부터 4살까지 고소득, 중간소득, 저소득 가정 아동들의 뇌를 MRI 스캐너를 이용해 일곱 차례에 걸쳐 촬영한 것인데요. 처음 생후 5개월에는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4살에 이르자 인지 및 정보 처리 및 행동 조절에 관여하는 회백질의 부피가 빈곤가정 아동에게서 약 10% 줄어들었음이 발견됩니다. 스트레스와 정신적 자극의 결여가 인지발달에 악영향을 준 것이죠.

키워드

매슬로의 욕구 이론

그런가 하면 도서 <능력주의는 허구다>에선 환경과 태도 간의 상관성을 상황 중심적으로 바라본 시각이 눈에 띕니다. 성공에는 흔히 지능과 같은 인지적 요인 외에도 개인의 태도나 행동 특성 역시 관련 깊다고 여겨지는데요. 이 때문에 과거 태도와 성취 가능성을 엮어 빈곤 문화(culture of poverty)가 연구되기도 했습니다. 요점은 '빈곤이 문제적 태도를 만드는가, 문제적 태도가 빈곤을 만드는가'인데요.

오늘날에는 그들이 처한 비능력적 요인이 능력을 구현하는 태도를 가로막는 것으로 보고 빈곤 문화 이론은 맹비난을 받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야망을 갖지 못하는 것은 동기가 없어서라기보다 제한적인 기회 안에서 삶을 현실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사고는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빈곤의 결과라는 겁니다.

이는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그 유명한 욕구 이론과도 일치합니다. 그의 이론은 인간의 욕구가 단계별로 발전함을 나타내는데요. 음식, 옷, 주거 등 기본적 욕구에서 시작해 점점 상위 단계로 발전합니다. 즉 하위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자아실현과 같은 상위 단계에 대한 욕망은 갖기 힘들다는 거죠. 능력이 발현되는 상황도 조건별로 차등이 있을 수 있음을 인간의 본성과 함께 파악한 시도입니다.

💡 다음은 교육 문제를 중심으로 능력주의의 제도적 현주소를 짚은 '능력주의는 올바른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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