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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 톺아보기

천아1234 2021. 4. 11. 16:25

코로나, 어디에서 찾아와 어디로 가고 있나

에디터의 노트

2019년 12월31일. 우리 삶이 바뀐 날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라는 생소한 바이러스는 1년 남짓한 시간 우리를 힘껏 흔들었다.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지만 바이러스라는 파도는 우리가 쌓은 방파제를 계속 위협한다.

잠시라고 생각한 파도가 해일로

 

 

'열, 권태감, 기침, 호흡곤란 및 폐렴 등 경증에서 중증까지 다양한 호흡기 감염증, 그 외 가래, 인후통, 두통, 객혈과 오심, 설사 등도 나타남.'

정부가 설명하는 코로나19 감염 증상이다. 비말, 즉 '침방울'에 의해 감염되는 이 바이러스는 1년 남짓 동안 말 그대로 대유행했다. 평소 같으면 신경 쓰지도 않을 두통이나 기침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는 '큰일'이 됐다.

코로나19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건 지난 2019년 12월31일. 중국은 후베이성 우한 지역에서 정체불명의 폐렴 환자 27명이 발생했다고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했다. 우리나라에는 이듬해 1월20일 첫 확진자가 나왔다. 1월21일에는 미국까지 마수가 뻗쳤다. 미국은 중국 전역에 북한과 동일한 수준의 경보인 여행금지령을 발령했다.

WHO가 이 생소한 바이러스에 'COVID-19'라는 명칭을 붙인 건 2020년 2월11일이었다. 첫 확진자가 나온 뒤 약 한 달 반만이었다. 'CO'는 코로나, 'VI'는 바이러스, 'D'는 질병을 뜻한다. '19'는 발생연도인 2019년을 말한다.

WHO는 중국의 최초 보고 후 2달이 조금 넘은 3월11일, 대유행을 뜻하는 '팬데믹'을 선언했다. 이전까지 WHO가 팬데믹을 선언한 건 1968년 홍콩 독감과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사례 등 두 번뿐이다. 코로나19는 공포로 휩싸인 바이러스의 또 다른 대명사가 됐다.

1월까지만 해도 중국발 해외유입 확진자가 주를 이뤘던 우리나라는 2~3월 대구 신천지 교회 신도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쏟아져 1차 유행이 발생했다. 이때 처음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작됐다. 그 효과였을까. 4월에는 확진자가 한 자릿 수로 줄어들며 사태는 가까스로 봉합되는 듯했다. 서울시는 "통제 범위 안에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사태를 낙관했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야기하는 국제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정부도 확산세를 잡아내고 있다며 'K-방역'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때 이른 축포였다. 서울 이태원 클럽, 부천 택배 물류센터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났다. 8월부터 11월까지는 일부 교회 신도와 광복절 집회 참가자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속히 늘었다. 교회와 집회 관련 확진자가 늘어난 이 8월을 2차 대유행 시기로 본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며 안심하고 풀었던 고삐가 다시 조여졌다. 사람들은 잠잠해졌다가 다시 찾아온 대유행을 겪으며 장기화를 직감했다. 여기서 3개월 후인 11월 중순부터는 '3차 대유행'이 시작됐다가 현재는 다소 잠잠한 상황. 하지만 정부는 4차 대유행 가능성을 언급해 언제 다시 감염의 해일이 올지 모르는 상태다.

2021년 2월24일 기준 우리나라의 확진자 수는 8만8120명. 우리나라 인구는 내외국인을 모두 합쳐 5178만명이다. 600명에 한 명꼴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쉽게 감이 오지 않는다면 이렇게 보면 쉽다. 지하철 1량의 정원은 160명 안팎. 10량짜리 지하철 1대에는 1600명이 탄다. 오늘 아침 이용한 지하철에 2명은 확진자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TV를 틀어보자. 내가 좋아한, 혹은 내가 알고 있는 연예인이 확진자가 됐다는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들린다.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1억1225만명이다. 지구인 70명 중 1명이 감염됐다. 지난해 4월3일 100만명을 넘은 뒤 달력이 채 한 바퀴가 돌지 않은 지금 100배가 됐다. 미국은 51만명이 코로나19로 숨을 거뒀다. 전 지구가 코로나에 휩싸였다.

청정국가는 푸른 산림이나 맑은 공기가 아닌 코로나 확진자가 없는 나라를 뜻하게 됐고, 당연했던 일들이 이제는 이례적인 일이 됐다. 직장인이 맘 편히 회사에 가고, 학교에서 옹기종기 친구들을 만나는 일상은 이상(理想)으로 바뀌었다. 밀물과 썰물을 오가는 파도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도 확산세가 오락가락했지만, 파고는 확실히 높아졌다.

확진의 공포는 현재진행형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전 지구를 휩쓴 팬데믹 속에서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는 현실로 옮겨왔다. 전 세계가 각자의 방법으로 코로나 정복을 위한 해답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주인공이 영화 속에서 새까만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듯 낯선 질병 앞에서는 막막함이 주는 공포가 먼저다. 코에 들어온 면봉이 뇌까지 찌르는 것 같았다는 말, 감염의 공포 속에서 눈물지었다는 간호사의 증언, 혹시나 확진자가 될까 검사를 피하는 이들까지...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 속에서 두려움이 엄습했다.

정복해야 할 적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타인의 시선이 공포를 키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민의 10명 중 7명은 확진 자체보다 확진자가 됐다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단다. 설문조사를 해보니 '확진이란 이유로 비난받고 피해 입을 것이 두렵다'는 응답이 67.8%에 달했다.

어떤 이는 "나 자신이 바이러스로 여겨질까 두려운 심정"이라고 했다. 자기관리를 하지 못했다는 주위의 손가락질, 직장에서 받는 눈초리. 가족의 걱정스러운 표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확진됐을 때 가족, 친구, 회사 동료에까지 미칠 나비효과를 상상하게 된다. 검사에서 결과가 나올 때까지의 하루라는 시간이 1년처럼 느껴진다. 식당이나 편의점은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사실만으로 '위험한 가게'로 찍힌다. 내 잘못도 아닌데 당장 먹고살 문제가 막막해진다. 확진은 이렇게 당사자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여기서 나왔다. 낙인을 두려워해 검사 자체를 피하는 이들이 생겼다. 가장 정확도가 높은 비인두도말 유전자증폭(PCR) 검사법은 면봉으로 콧속에서 검체를 채취한다. 깊숙이 들어온 면봉이 뇌에 닿는 것 같다는 검사에 아이들은 울먹였고 노인들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확진의 공포뿐 아니라 검사 과정이 주는 공포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자 터부시했던 '침'이 구세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우리나라는 타액을 활용한 검사법을 도입했다. 뱉은 침에서 검체를 채취한다. 결과가 빨리 나오는 신속항원검사라는 이름의 검사법도 도입됐다.

다채로워진 검사 방식만큼이나 검사를 받는 장소도 진화했다. 검사자와 의료진이 벽을 사이에 두고 만나는 워크 스루, 기차역 앞이나 운동장에 세워진 임시선별검사소는 이미 익숙한 광경이 됐다. 좀 더 많은 이가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조처다. 잽싸게 전파되는 바이러스만큼이나 우리는 새롭고 다양한 방법으로 방파제를 쌓았다.

그러나 방파제가 있다고 파도가 멈추지는 않는다. 더 촘촘해진 그물망에 잡힌 확진자들은 여전히 자책한다. 무증상이란 그림자는 모두를 잠재적 확진자로 만든다. 그 사이 코로나19는 계속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발전한 방역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확진의 공포를 한 발 더 가까이 가져다 놓았다. 가벼운 기침 소리도 저승사자의 속삭임처럼 들린다.

꿈틀대는 바이러스

 

 

자연에 도전하는 우리를 꼭 이기고 싶은 걸까. 공포 속에서도 열심히 답을 찾는 사이 코로나19라는 녀석은 가만있지 않았다.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났다. 2020년 9월 영국에 이어 그다음 달 남아공에서 변이된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1월에는 브라질에서 바뀐 바이러스가 나왔다. 백신 개발로 잡힐 듯했던 코로나19의 꼬리는 빠른 발걸음으로 사람들을 약 올렸다. 잘 쌓은 줄 알았던 방파제가 새로운 파도의 도전을 맞닥뜨렸다.

바이러스도 생물이다. 생물이 변이하는 건 진화를 위해서다. 근데 그 진화가 인간에게는 치명타로 다가온다. 변이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훨씬 강한 데다 예방 효과가 미지수다. 영국발 변이 바이러스는 전파력이 1.7배 이상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 확진자가 3000만명을 넘는데는 9개월이 걸렸지만, 영국발 변이가 처음 나온 지난해 9월 이후 넉 달 무렵만에 전세계 확진자가 1억명을 넘어섰다. 우리나라 정부는 2월 초 변이 바이러스에 의한 4차 대유행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변이 바이러스는 세계 90개 이상 나라에 퍼졌다. 열리는 듯했던 세계의 빗장은 다시 잠기고 있다. 프랑스는 EU 회원국을 뺀 다른 나라에 국경을 닫았다. 독일도 변이 바이러스가 퍼진 영국과 남아공, 브라질에서의 입국을 금지했다.

희망으로 꼽혔던 백신도 변이 바이러스 앞에서 만능열쇠는 되지 못한다. 백신 개발사들은 예상치 못한 변화구를 던지는 바이러스가 당혹스럽다. 원형에 맞춰 개발된 백신은 더 진화한 상대가 돼버린 바이러스를 상대하기 버겁다. '변이 바이러스'를 검색창에 쳐볼까. 어떤 백신은 50%, 또 다른 백신은 60%. 또 어떤 백신은 80%. 예방효과를 나타내는 숫자가 널뛴다. 그물망을 쏙쏙 빠져나가는 바이러스에 개발사들은 임상실험 계획을 바꾸는 등 혼란을 맞았다.

우리나라도 백신 접종이 시작됐다. 팔을 내미는 이들의 표정에는 걱정보다 희망이 먼저 비친다. 하지만 꺼질 듯했던 불씨가 늘 다시 피어올랐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팬데믹 이후에는 여러차례의 대유행이 찾아왔고, 대유행이 잠잠해지는 듯 하자 바이러스가 모습을 바꿨다. 백신 개발 소식이 알려지며 긴 터널에 서광이 비친 것 같았지만 자연은 승리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 마치 우리의 행보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언제' 끝나냐는 푸념은 사치다.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태 초반에는 오해와 오판이 발목을 잡았다. 가짜 뉴스가 판쳤고, 유언비어가 쏟아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무지하지 않았다. 삶의 그림을 바꿔 이겨내고 있다. 거리를 둔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공습을 합심해 막아내고 있다.

💡다음은 사태 초반의 혼란과 이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삶의 그림이 바뀐 사회, 일상이 됐다'로 이어집니다.

오판과 가짜의 홍수, 바뀐 삶의 그림

에디터의 노트

현재는 낯설지 않은 코로나19이지만 사태 초반에는 발생 근원과 명칭, 각국 정부의 자만심(?) 섞인 오판 등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지금 우리 머릿속에 박힌 개념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사람들은 가짜 뉴스를 구별하는 지혜를 발휘했고 삶의 그림을 바꿔 대응했다.

흔들리는 세계

 

 

마스크와 거리두기로 제방을 쌓으려던 우리나라. 하지만 이 결정은 백신 확보를 늦추는 오판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19는 맨 처음 '우한 폐렴'으로 불렸다. 중국 우한에서 처음 발견돼 폐렴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WHO권고에 따라 'COVID19'라는 새 이름이 생겼지만 사람들의 입에는 한동안 우한이 계속 오르내렸다. 일부 보수 언론은 이 같은 개명(?)이 사태를 일으킨 중국에 대한 눈치보기라는 프레임을 씌워 '우한 코로나'라고 불렀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반중의식이 싹텄다.

이름을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사이 세계는 오판을 거듭했다. 우리나라는 중국인 입국 금지를 망설이다 중국발 확진자가 대거 늘어났다. 지난해 2월에는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마스크 대란이 벌어졌다. 비말을 통한 바이러스 전파가 감염 경로로 알려지자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다. 국내 수요를 감당하기도 힘든데 정부는 해외 수출을 허용하는 실책을 저질렀다. 결국 국민 스스로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정부는 나라가 판매하는 '공적 마스크' 제도를 도입했다.

8월 2차 대유행을 지나 확진자가 조금 줄어드는 듯 하자 10월 정부는 판매를 중단했던 공연·영화·체육 분야 소비쿠폰 발행을 재개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잘못된 판단이었다. 줄어든 소비를 진작하자는 의도였지만 이후 확진자는 급속히 늘어났다. 백신 확보도 마찬가지였다. 사태가 1년을 향해가던 지난해 12월 백신 접종을 시작한 나라가 30개국이 넘었지만 우리나라는 간신히 지난 2월부터 순차적 접종을 시작했다. 마스크와 거리두기에 의존해 빚어진 실기(失機)였다. 국무총리는 "다른 나라에 비해 확진자가 적어 백신 의존도를 높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말로 오판을 사실상 시인했다. K-방역을 맹신한 나머지 다른 나라보다 백신 확보에 늦게 뛰어든 셈이다.

우리나라만 잘못된 판단을 내린 건 아니었다. 중국에서는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중대하고 전략적인 성과를 거뒀다"며 방역에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미국 또한 사안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독감의 일종이라고 평가절하하거나 "곧 사라질 것"이라며 사안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데 급급했다. 마스크 쓰기 의무화는 지난 1월 새롭게 취임한 조 바이든 정부에 와서야 현실화됐다. 마음을 놓은 사이 미국은 확진자 2900만명가량이 발생한 나라가 돼 버렸다.

판단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오판은 책임지지 못할 수준의 상황을 낳고 말았다. 아니 오판의 주체는 뒤로 빠지고 국민들만 볼모로 잡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가 원수 자리에서 내려왔고, 중국에서는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오며 시진핑의 자신감은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생채기만 남은 자리에는 공포가 씨앗을 뿌렸다.

가짜는 공포를 먹고 자랐다

 

 

정부의 오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잘못된 판단은 주체가 있어 책임을 물을 수라도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가짜 뉴스들은 계속되는 오판 속에서 빠르게 번식했다. 손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가짜 뉴스가 공포심을 먹고 가지를 쳤다. 사태 초반에는 코로나19가 우한의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유출됐다는 음모론이 돌았다. 우리나라에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졌을 때는 '중국에 다 줘버려서 부족하다'는 주장이 퍼졌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었다. 2차 대유행의 원인으로 꼽힌 사랑제일교회 신도들과 광복절 집회 참가자들은 '정부가 괘씸죄로 가짜 확진 판정을 내렸다'는 조작설을 내놨다. 백신 접종을 앞두고는 '백신을 맞으면 유전자가 변형된다'는 괴담이 나돌았다.

가짜 뉴스는 오판이 낳은 변이 바이러스와 같았다. 외국인 입국을 두고 보여준 부처 간 엇박자, 사태 초반 증상이 있는 이들만 받을 수 있었던 무료 검사 체계(현재는 모든 사람이 무료 검사를 받을 수 있다), 집단감염이 일어날 수 있는 요양병원이나 교도소 감염을 막지 못하는 등 정부의 많은 실책이 맞물려 국가에 대한 불신을 키웠다. 연이은 불신은 믿을 곳이 필요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고, 가짜 뉴스의 숙주가 되기 충분했다.

가짜 뉴스는 잘못된 정보 자체만으로 악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진짜 뉴스를 가짜로 혼동케 할 수도 있다. 위로가 필요해 자신의 성향에 맞는 커뮤니티를  찾고, 성향이 비슷한 이들의 이야기만 골라 듣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현상이 자연스러워진 게 우연은 아닐 테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와 정보를 접하는 시대. 에코 체임버 현상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더 도드라졌다. 또 정보 제공자가 선별된 정보만 전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도 위기 속에서는 악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는 사실 전문가의 입과 머리를 빌리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질병이다. 정부는 매일 국민 앞에 나서 하루 동안 파악한 정보들을 전한다. 그러나 포털 댓글은 무릇 자극적이다. '확진자 규모를 축소한다' '국내 백신회사와 모종의 거래를 했다' 같은 추측과 낭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추측과 낭설도 에코 체임버와 필터버블의 산물일지 모른다. 더 자극적인 소식을 갈구하며 듣고 싶은 뉴스를 찾는 이들에게 이 둘만큼 달콤한 미끼가 있을까.

한번 시작한 공포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손가락질을 할 대상이 필요한 사람, 혼란을 틈타 호주머니를 채우려는 이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막연함이 가짜 뉴스를 코로나 시대의 자화상으로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가짜 뉴스는 사람들의 취약점을 노려 급속도로 퍼진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와 같았다. 어쩌면 사태를 키운 제1원인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가짜 뉴스였을지도 모른다. 가짜가 낳은 혼란에 얽매이는 사이, 사태를 해결할 골든 타임은 헛되이 흘러가고 말았다.

똑똑! 에코 체임버 현상은 똑똑에서 자세히 다룬 적 있어요.

사고의 전환

 

 

혼란 속에서도 중심을 잡은 사람들. 가짜 뉴스에 휘둘리던 이들은 진짜 정보를 찾기 위해 정면 돌파에 나섰다.

다행히 사람들은 가짜에 완전히 매몰될 정도로 무지하지 않았다. 혼란 속에서도 각자의 방법으로 정면 돌파에 나섰다. 믿음을 갉아먹는 가짜 뉴스를 검증했다. 믿을만한 언론사의 팩트체크 기사를 보거나 잘 쓰인 전문가의 보고서를 읽었다. 이를 통해 인위로 만들어진 '허위 정보'와 자료가 부족해 나온 '잘못된 정보'를 구별하기 시작했다.

반려동물이 코로나19에 감염되자 사람이 재감염될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가 퍼졌을 때를 살펴보자. 언론은 적극적으로 팩트체크 기사를 내며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는 데 집중했다. 정부도 "반려동물에서 인간으로 감염된 사례는 확인된 바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뿐만 아니다. 사람들은 주도적으로 삶의 그림을 바꿔 코로나 시대에 적응해 나갔다. 바탕색은 ‘언택트’(Untact)로 칠했다. 거리두기가 일상화된 생활 속에서 '비대면'은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소재로 자리 잡았다.

여행이 불편해지자 직접 여행지를 찾는 대신 유튜브 영상으로 명소를 둘러보는 '랜선 여행'이 인기를 끌었다. 처음엔 이게 뭐냐던 사람들도 금세 랜선 여행에 빠져들었다. 2020년 유튜브 내 랜선 여행 등과 관련한 영상 수와 평균 '좋아요' 수는 2019년보다 각각 21%, 57% 늘었다.

대학이 원격수업으로 전환하자 남학생들은 빠른 군입대로 돌파구를 찾았다. 학업이나 동아리 활동에 제약이 생긴 코로나 사태 속에서 청춘을 보낼 바에야 의무를 빨리 해결하기로 했다. 입대 경쟁률이 높아지며 면접의 중요성도 덩달아 커졌다. 현재 육군과 공군 면접 전형은 비대면 화상면접으로 치러진다. 코로나19를 피해 선택한 대안이 또 다른 서비스를 자리 잡게 했다. 회사들도 재택근무나 화상회의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줌(Zoom)으로 대표되는 원격 솔루션은 빛을 발한다. 지금 "줌에서 보자"는 말이 무슨 뜻인지 되묻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언택트가 자리 잡으니 시선은 '효율'로 옮겨왔다. 낭비됐던 출퇴근 시간, 사람 사이의 만남에서 비롯되던 스트레스 등 그동안 생각지 못했던 비효율의 그림자가 코로나 덕에 지워졌다. 비대면이라는 우산 속에서 에너지 소모를 줄인 사람들은 삶의 여백이 생각보다 많았다는 걸 실감했다.

그러나 효율에 대한 생각은 둘로 쪼개진다. 분명 비대면은 삶에 새 패러다임을 가져다줬다. 그러나 효율의 이면에 있는 외로움, 당연했던 일을 하지 못하는 속상함은 마음을 갉아먹는다. 모두에게 효율의 열매가 돌아가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비대면이 불가능한 이들이 있었고, 무리한 거리두기로 생존이 위협받는 이들도 있었다.

정말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세상은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일까. 정답으로 믿는 것들이 혹시 틀리진 않았을까.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이 만난 시험대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그래도 영웅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스스로도 영웅이 돼 이겨내고 있다.

💡다음은 거리두기 속 멀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거리 둔 사회적 동물, 영웅은 가까이에'가 이어집니다.

거리 둔 사회적 동물, 영웅은 가까이에

에디터의 노트

가까운 거리에서 비말에 의해 감염되는 질병. 세계는 거리두기에 집중했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에게 격리라는 조치가 내려지는 세상이 됐고 거리를 두지 않는 이에겐 철퇴를 내렸다.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은 거리두기 속에서 인간은 '영웅'을 찾기 시작했다.

금세 멀어진 사람들

 

우리나라는 코로나19가 발발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지난해 3월22일 사회적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이전까지는 '사람들끼리 거리를 두는 운동' 정도로만 통용되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고강도'라는 단어를 앞에 붙이며 정부의 공식적인 방역정책으로 자리 잡았다. 정부는 외출 자제 권고를 비롯해 종교·체육·유흥시설 등의 영업 중단을 강력 권고했고, 거리유지나 마스크 착용 등 지침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하기로 했다.

본래 2주로 예정됐던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은 세계에서 확진자가 속출하고 국내에서도 집단감염 사례가 나오자 2주 더 연장됐다. 이에 바이러스 확산세는 다소 누그러졌지만 국민들의 피로는 이와 반비례해 커졌다.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는 몇 차례의 단계 조정을 거친 뒤 현재 오후 10시 이후 식당 같은 다중이용시설에서의 모임은 금지된 상황. 10시 전이라도 함께 모일 수 있는 인원은 한 손가락 숫자도 넘지 못하는 불과 4명이다.

4월1일부터는 모든 입국자에게 자가격리 조치가 시행됐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2주간 자가격리 조치다. 공항에 내린 사람들은 다른 이와 만나지 못하고 외딴 섬처럼 떨어져 있어야 했다. 해외여행은 리프레쉬가 아닌 14일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모험이 됐다. 여행사는 매출 감소라는 암초를 만나 대거 쓰러져 나갔고 무역도 위축됐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우리보다 더 강력한 봉쇄 조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도는 3월24일 나라 전역에 봉쇄령을 내렸다. 식료품점이나 은행, 주유소 같은 필수 시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상점이 셔터를 내렸다. 모든 항공편과 철도도 걸음을 멈췄다. 사람들의 접촉을 줄여 감염률을 낮추겠다는 의도였지만 갑작스러운 조치는 풍선효과를 낳고 말았다. 인도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액수는 2100달러 정도로 세계 100위권 밖이다. 빈국에 속하는 인도는 대다수 국민이 노점이나 가사 도우미, 운전기사 같은 일용직으로 일한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살기 위해 고향이나 돈벌이가 있는 곳으로 몰려갔다. 바이러스의 위협은 이와 함께 국토 전역으로 퍼졌다. 지금 인도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1100만여명. 봉쇄령으로 틀어막은 풍선이 민족 대이주라는 바늘에 터져버렸다.

강대국들은 자국민 지키기에 초점을 맞췄다. 변이 바이러스도 이 같은 흐름에 불을 붙였다. 프랑스는 지난 달부터 유럽연합(EU) 회원국 외의 다른 나라들에 국경을 닫았다. 미국은 새로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해 미국행 비행기 탑승 전 음성 증명서를 내도록 하고 미국에 온 뒤에도 격리조치를 시행하기로 했다.

세계는 바깥과 안쪽 모두에 거리두기의 장벽을 쳤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은 이어지고 싶은 갈증을 해소하지 못한다. 방역이라는 대의 아래에서 모두 거리두기에는 동참하면서도 만남을 쉽게 끊어버리긴 힘들었다. 우리나라 국민의 10명 중 8명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지쳤다고 한다. 정부 설문조사에서 국민 81.2%가 '거리두기로 인해 피로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만나지 못하는 피로감은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갉아먹고 있다.

멀어진 거리, 서로 다른 입장

 

 

거리두기로 인한 피로감은 '코로나 블루'라는 우울함으로 이어졌다. 피로감과 우울함에 지쳐 거리두기를 거부하는 사람들과 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 '나만은 예외' '어쩔 수 없는 만남이었다' 등 각자의 논리가 충돌했고 이는 반목을 낳았다. 결혼이나 장례, 스포츠 관람 등 사회 거의 모든 분야의 대면 활동이 쪼그라들자 공허함이 커졌다. 지역마다 다른 거리두기 단계, 타인에 의한 확진으로 받게 되는 불이익, 거리두기를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해 생긴 집단감염. 만나지 못하는 아쉬움에서 나온 우울함. 이 모든 게 뒤섞여 반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거리두기에도 형평성이라는 화두가 던져졌다. 인생을 좌우한다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시험의 무게감 때문이었을까. 정부는 지난해 확진자의 수능 응시를 허용했다. 하지만 이 결정을 내린 정부에서 일하려는 이들의 사정은 달랐다. 지난해 치러진 모든 공무원시험은 확진자의 응시가 불가능했다. 변호사시험도 확진자가 응시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변호사시험 수험생들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수험생들의 손을 들어주며 비로소 확진자들에게도 변호사시험의 문이 열렸다. 공무원시험도 확진자들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거리를 두고 싶어도 못 두는 사람들은 어떤가. 동부구치소 사태는 거리두기의 역설을 보여줬다. 이제까지 재소자와 간수 등 총 1276명의 확진자(2월7일 기준)가 나와 대표적인 집단감염 사태로 기록됐다. 구치소의 특성상 따닥따닥 붙어있는 환경. 거리두기는 사실상 불가능했고 바이러스는 갇혀있는 이들을 휘감았다. 뒤늦게 격리조치가 이뤄졌지만 한 방에 확진자를 채우고, 다른 방에는 비확진자를 모이게 했다. 이도 저도 아닌 이 방식은 사회에서 하는 격리조치와는 확실히 달랐다. 밖에서는 거리두기가 답답해서 난리였지만 갇힌 이들에게 거리두기는 생존과 직결된 필수 과제였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블루의 직격탄을 맞은 이는 '사장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인식조사를 돌린 결과 코로나 사태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은 직군은 자영업(79.4%)이었다. 그다음이 무직·퇴직·기타(74.6%), 주부(74.4%)순이라고 한다. 운영시간 제한과 거리두기로 매출은 토막났고, 손님보다 재난안내문자가 더 많이 온다는 푸념까지 나왔다.

거리두기를 바라보는 시선은 이같이 서 있는 자리에 따라 상반된다. 형평성과 합리적 차등, 방역과 권리 간의 충돌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 유독 도드라졌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이야기한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와 지금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오버랩 되는 건 우연일까. 코로나 종식이라는 다수의 행복에는 한 명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내가 희생자가 돼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영웅에서 희망 찾는 사람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사태 초반 브리핑에 나선 모습으로, 이후 염색을 하지 못해 백발이 드러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가 어려움 속에서도 보여준 차분한 태도는 우울함을 겪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출처:보건복지부)

지친 사람들은 그럼 어디서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누군가 우리를 이 지긋지긋한 굴레에서 꺼내줄까. 자연스레 사람들은 영웅을 찾기 시작했다. 아니 찾아야 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노란 점퍼의 이 여성은 일부에게만 이름이 알려진 의사 출신 공무원이었다. 코로나 사태 초반부터 정부 브리핑에 나선 그는 꼬리를 무는 기자들의 질문에 끝까지 답하고,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점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투명하게 밝혔다. 차분한 태도와 예방의학 박사 경력에서 나오는 전문성은 코로나 블루에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미국 타임(TIME)지가 선정한 2020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우리나라 질병 예방과 관리를 총괄하는 수장이 된 것도 그가 보인 헌신에 비하면 약소하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사람들은 그에게 '코로나 영웅'이라는 헌사를 바쳤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가 전하는 코로나 상황 이상으로 화제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다음으로 유명한 공무원일지도 모른다. 영웅은 난세에서 탄생한다는 말은 이번에도 예외가 없었다. 바쁜 일정으로 염색할 시간이 없어 백발을 내보인 여성의 목소리에 전 국민이 귀를 기울였다. 어쩌면 '나만 고군분투하지 않는다'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을지 모른다. 지금은 모습을 드러내는 빈도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 코로나 사태에서 그가 갖는 상징성과 지분은 압도적이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대만에도 영웅이 탄생했다. 대만은 코로나19 방역에 가장 성공한 나라 중 하나다. 현재 확진자 960명으로 인구 100만명당 확진자 수가 40명에 불과하다. 같은 기준으로 1700여명인 우리나라, 8만8000여명인 미국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다. 대만의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은 여성 수장으로서 'T-방역'을 이끌었다. 중국 우한에서 바이러스 발생이 보고되자 바로 그날 우한을 오가는 항공편 운항을 멈췄고, 지난해 2월6일에는 모든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그 사이 1월에는 마스크 수출을 차단해 내국인들이 사용할 물량을 확보했다. 자가격리 조치를 위반하면 최대 100만 대만 달러(한화 약 4000만원)의 벌금을 물게 하는 등 강력한 리더십으로 방역 정책을 펼쳤다. 코로나의 그늘을 지우자 경제도 성장했다. 대만은 지난해 2.9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며 방역과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사태를 낙관했던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30년 만에 제쳤다. 또 뉴질랜드의 저신다 아던(Jacinda Arden) 총리는 어떤가. 뉴질랜드는 확진자가 나온 지역에 록다운을 걸고, 총선도 연기하는 등 대부분의 행정을 코로나19 대응에 맞췄다. 아던 총리가 이끈 강력한 봉쇄조치로 뉴질랜드는 현재 누적 확진자 2300여명, 누적 사망자 26명으로 방역에 성공한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영웅은 가까운 곳에도 있다. 저금통을 털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써달라던 초등학생, 쪽방촌 무료급식소 운영이 멈추자 청소하며 모은 동전을 기부한 환경미화원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두꺼운 방역복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는 의료인들. 수많은 영웅이 한마음으로 사태 종식을 기원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웅신화는 코로나19가 종식됐을 때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 마스크와 백신 등 보건이 사태 종식의 열쇠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그런데 정말 보건은 제대로 된 목적지를 향해가고 있는 걸까. 놓친 부분은 없을까.

💡다음은 코로나 팬데믹 속 보건 비하인드를 다룬 2장 '살아남느라 지나친 코로나19 비하인드'로 이어집니다.

똑똑! 📽️추천해요

 

영화 <컨테이젼> 스티븐 소더버그, 워너브라더스코리아, 2011</컨테이젼>

10년 전 개봉한 영화 <컨테이젼>은 마치 현재를 예견한 것 같다. 원인 불명 바이러스의 전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감염자와 이를 막기 위한 의료진의 사투가 지금 상황을 쏙 빼닮았다. 마스크를 끼고 악수를 피하고 될수록 집에 머물라는 영화 속 조언은 지금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컨테이젼>

마스크 뒤에 가려진 것들

에디터의 노트

사랑하는 연인보다 더 많은 시간 우리와 얼굴을 부대끼는 마스크. 우리는 마스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정확히 언제부터 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는지, 그럼에도 저기 저 아저씨는 왜 꿋꿋하게 마스크를 안 쓰는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마스크 착용을 과연 모두가 누려왔는지 궁금했던 적 없으신가요? 마스크 쓰느라 급급해 지나친 진실들, 지금부터 톺아봅니다.

똑똑퀴즈: 2020년 10월 코로나 음성 판정 후 '활력이 넘친다, 이 기운을 나눠주고 싶다'라며 노마스크 유세를 재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 심지어 '키스' 언급까지 했던 그는 왜 오랫동안 마스크를 쓰지 않았을까?

'코시국'의 동반자 마스크, 어떻게 왜 쓰게 됐을까?

오늘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꼭 착용해야 하는 마스크. 그러나 마스크가 일상의 필수품이자 의무사항이 된 지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서울시가 실내·외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게 지난해 8월이며, 이후 고위험 시설 확진자 증가와 마스크 착용 거부자로 인한 다툼을 막고자 나라 전체로 '마스크 착용 의무화'를 확대한 것은 불과 10월13일의 일이다. 코로나는 물론 마스크와 기나긴 세월을 보낸 듯 체감 피로도가 높지만, 마스크와 동고동락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이야 중요 방역 수단이라는 데 이견이 없지만, 초기에는 마스크 사용을 강제하지 않는 것은 물론 오히려 너무 많이 쓸 경우를 우려하는 시각도 존재했다.

 

 

2020년 3월 신천지발 대유행으로 마스크 대란이 일어나자 1인당 공적 마스크 구매 수량을 제한하는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됐다. 그러나 이는 국민들의 자발적 구매 물량이 폭증한 데 따른 정부 개입이었다. (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특히 세계보건기구(WHO)와 같은 국제기구,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영국 보건당국 등 서구권에서 그랬다. 손씻기에 비해 전염을 막는 근거가 부족하고, 제대로 착용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를 맹신해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으며, 일반인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정작 의료진의 마스크가 부족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주된 논거였다. 마스크를 적극적으로 착용한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라고 해서 다른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던 것은 아니다.

마스크 쓰기는 전적으로 개인적이었다. 공기의 질이라는 공공재를 관리하는 공적인 해결책은 논의가 잘 진척되지 않은 대신,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KF80 이상의 '보건용(방역용) 마스크'를 사용해야 하는 것이 한국사회의 규범이 되었다. ―'불확실성 시대의 마스크 시민권' 김재형, 도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위 인용에서 저자의 언급은 그간 공기의 질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개인이 자구책 성격으로 마스크 쓰기를 선택했음을 가리킨다. 대기오염과 미세먼지 문제로 마스크가 이미 대중적인 자기방어 수단으로 자리 잡았고, 이전 사스(SARS)나 메르스(MERS) 사태의 방역 경험을 떠올려 코로나 팬데믹에도 마스크 쓰기를 적용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자발성'으로 출발한 마스크 쓰기를 적극적으로 유도한 것은 '공공성'이라는 점도 재밌다. 코로나 시국을 거쳐가며 지하철이나 공공장소 등에서 마스크 쓰기의 '이타성'을 강조한 공익광고를 본 기억은 누구든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마스크 쓰기에 자신뿐 아니라 가족과 이웃, 나아가 사회를 보호하는 사회적 의미가 깃든 것이다. 강한 어조로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거나 미착용 시 벌어질 일의 끔찍함을 예고하는 메시지는 거부감을 유발한 경우가 있던 반면, 이타성에 대한 호소는 공동체주의가 친숙한 한국에서 큰 효과를 발휘했다.

 

 

마스크 쓰기의 이타성을 드러내는 권고는 미착용에 대한 강한 어조의 제재보다 적은 반발을 부른다. (출처: 질병관리청)저 아저씨는 왜 마스크 안 써?

이러한 물음에 '귀찮아서' '깜빡해서' 같은 뻔한 대답 말고 그럴 듯한 이유를 내어놓고 싶다면, 아니 실은 '내 말이 그 말이야!'를 격하게 외치고 싶은 당신이라면 다음의 이야기들이 답이 될 수 있다.

비교적 마스크 착용에 소극적인 서구권에서 '마스크 안 쓰는 사람의 심리'에 대한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CNN은 2020년 5월 임상 심리학자를 취재한 분석 기사를 실었다. 분석의 포인트는 주로 서구권 문화가 마스크에 부정적 이미지가 있다고 본다는 것이다. 이 부정적 이미지는 다시 크게 2가지 맥락으로 나뉜다.

'네가 뭔데?' 마스크 착용은 개인의 자유를 박탈한다

정확히 말하면 마스크 착용 '요구'가 자신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CNN이 취재한 임상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은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기에 그 조치가 자신을 보호한다고 해도 자연스럽게 저항하게 된다"고 설명하며 "강력한 반대파에겐 일시적 지침도 너무 큰 양보"라고 덧붙인다. 상점 경비원이 고객에게 마스크 착용을 요청했다가 총에 맞아 숨진 미국 미시간주 사례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며 벌이는 실랑이의 단골멘트가 "네가 뭔데 쓰라 마라야"인 걸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스크 쓰면 '문제 있는 사람'

여기서 말하는 '문제'에는 꽤 다양한 상태가 포함된다. 우리만큼 마스크 착용이 익숙지 않은 서양에서 마스크는 전문 의료진이 아니면 이미 병에 걸린 환자가 쓰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강도나 총기사건 등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 얼굴을 가렸다는 의심도 많다. 뭔가 떳떳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이 서양에서 눈총을 받았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데이비드 에이브럼스 뉴욕대 교수는 마스크가 일부 사람들에게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처럼 여겨진다고도 분석한다. "마스크를 쓰는 게 남들에게 '겁을 먹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강함을 보여주려고 거부하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똑똑퀴즈 답: 평소 자유를 강조하고 강한 미국의 이미지를 어필한 트럼프에게 노마스크는 정치적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입… 입을 보자…

 

 

ⓒPhoto by Filip Bunkens on Unsplash

추가로 서양인이 마스크 착용을 꺼려 하는 이유가 문화 차이라는 분석도 있다. 동양인이 주로 눈으로 감정을 교류하는 것과 달리 서양에서는 주로 입을 보고 표정을 읽는다는 것. 그러므로 입을 볼 수 없는 마스크 쓴 상대를 불편하게 여긴다고. 이모티콘 사용에 있어서도 우리는 주로 눈을 강조하는 ^^ ㅠㅠ 등을 쓰는 데 비해 서양에서는 :-) :-( 와 같이 입으로 감정 상태를 표현한다.

쓰느라 지쳐 지나친 것들

범국민적인 마스크 쓰기를 통해 K-방역을 지키고 있는 우리나라. '언제쯤 마스크 그만 쓸 수 있을까' '오늘따라 유난히 공기가 상쾌해서 왜 그런가 했더니 마스크를 깜빡했네'와 같이 마스크에 대한 피로감을 호소하는 데도 익숙해졌지만, 반대로 마스크를 쓰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이도 여전히 많다. 보호가 필요한 어린이와 노인, 저소득 장애인 등의 취약계층이 대표적이다. 오늘날 마스크는 방역을 위한 필수품의 성격을 지녔지만 돈을 주고 사야 하기에 누구나 쓸 순 없다. 공적 마스크 배포 규정에도 사각지대는 있었다. 특히 기초생활수급자나 저소득 장애인에게는 마스크 구입 비용 역시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마스크 기부와 후원의 손길이 그들에게 절실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전국이주인권단체는 3월 7일 공동성명을 통해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6개월 미만 체류 이주민, 유학생, 사업자등록 없이 농어촌지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미등록 체류자 등 수십만 명이 배제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난민들 역시 마스크 분배에서 배제되었다. ―'불확실성 시대의 마스크 시민권' 김재형, 도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사각지대에 놓인 것은 비단 취약계층뿐만이 아니다. 잠시 시곗바늘을 돌려 2020년 3월 마스크5부제 시행 당시로 돌아가보자. 마스크 물량 부족으로 대란을 겪자 국민들은 이에 대한 분배 책임을 정부에 물었다. 국민으로서 마스크를 받을 권리를 내세웠고, 정부는 건강보험 가입을 기준으로 '공적 마스크'를 공급했다. 눈여겨볼 것은 공급 기준이다. 자국민을 대상으로 할 때 건강보험 가입 여부는 합리적인 기준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배제 대상이 있다. 외국인 유학생, 건강보험 미 가입 이주노동자, 난민과 같은 외국인이다. 이후 한 달여가 지난 4월 말이 되어서야 이들 역시 공적 마스크 구입이 가능해지지만, 전체를 아울러야 하는 팬데믹 방역과 의료 자원 분배에 있어서도 사실상 타자화가 작용했음을 보여준다.

이제는 방역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돼버린 마스크. 그럼에도 그간 의견 불일치는 물론 크고 작은 혼란을 빚어온 것은 이러한 마스크 쓰기가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선택 위에 있는 보건 행위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코로나19에 면역을 부여할 백신을 둘러싼 문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 다음은 백신 및 의료 자원 분배에 관한 사회적 논의를 다룬 '백신을 손에 쥔 사회의 과제'로 이어집니다.

 

백신을 손에 쥔 사회의 과제

에디터의 노트

밤이 깊어도 새벽은 오나 봅니다. 끝을 알 수 없던 코로나 팬데믹에도 백신 접종이 시작된 걸 보면요. 하지만 '이제 다 끝났다'라는 안도는 조금 이릅니다. 여전히 접종을 기다리는 사람이 훨씬 많으니까요. 시간 문제 아니냐고요? 글쎄요. 과학에게서 백신이라는 바통을 이어받은 사회의 과제는 이제 막 걸음을 뗐을 뿐입니다.

팬데믹을 끝내는 것은 백신이 아니다

 

 

코로나19를 종식시키는 것은 백신 자체가 아니다. 사회 전반에 면역 체계를 형성할 대규모 예방접종, '백시네이션'(Vaccination)이다. 백신이 나와도 이를 충분한 인구에게 접종하지 않으면 종식을 기대하긴 힘들다. 올바른 접종을 통해 집단면역 형성에 성공한 이후라야 포스트코로나의 문고리를 제대로 잡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엄밀히 말해 현재 코로나 팬데믹에서 과학의 몫은 끝이 보이는 듯도 하다. 이제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른 것은 사회의 역량이다. 그렇다면 백신 접종을 위해 사회에 필요한 고민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똑똑! 코로나19 백신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과학이 기울인 노력의 여정을 한눈에 보고 싶다면 BBC 비주얼 저널리즘 팀이 제작한 이 콘텐츠를 추천해요.

누가 먼저 맞아야 할까?

 

우리나라 백신접종 계획 및 순서. CDC 및 주요 선진국 백신 배포 권고사항처럼 감염취약시설 및 고령층, 의료기관 종사자가 우선 접종 대상이다. (자료: 질병관리청)

백신을 손에 넣은 뒤 가장 먼저 들 고민은 단연 '이걸 누구 먼저 맞히지?'일 테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사망률을 낮추고 감염병 전파 방지 및 사회 유지에 크게 기여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춰 접종할 것을 권고한다. 이에 따라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고위험 의료기관 환자나 고령층을 함께 고려한다. 코로나 바이러스와와 직접 맞닥뜨려 감염 노출 위험이 높은 의료진에 면역을 부여해 사회 기능 및 안정을 유지하고,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고령층을 접종해 사망률을 낮추기 위함이다. 요양병원·노인의료복지시설과 같은 고위험의료기관에 대한 접종 역시 중증환자의 이용이 많은 점을 고려해 피해 확산 및 사망 예방을 고려한 우선순위다.

똑똑! 언제, 어디서, 누구부터 맞는지 궁금하다면 여기로👉질병관리청 코로나19 백신 및 예방접종

똑똑!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백신에 대한 상세 비교는 시사IN 김연희 기자의 백신가이드 Ep.2 영상을 추천해요!

만약 우리가 다 맞을 수 없다면

현재 접종을 시행하거나 앞둔 국가 다수가 따르고 있는 이 방침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는 다행인 경우다. 접종에 대해 이 방침을 따를 수 있다면 안정된 사회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백신 물량이 충분히 확보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순차적으로 다 맞긴 할 것이므로, 위험군과 의료·방역 인력에 먼저 순서가 돌아가는 데 큰 위험부담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서둘러 백신을 다 맞히는 것만큼 접종 기간 내 벌어질 수 있는 감염 확산이나 사회적 혼란을 방지하는 데도 신경 쓴 계획이다.

그러나 백신 물량이 부족하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만약 서사물이라면 장르가 변한다. 전자가 바이러스를 이겨내는 휴먼 다큐멘터리였다면, 이제는 백신을 두고 온갖 이해관계와 감정이 충돌하는 서스펜스 스릴러가 된다.

 

1994년 미국 보건학 교수 윌리엄 키식이 도서 <의료의 딜레마: 무한한 요구 대 유한한 자원>에서 소개한 개념인 '보건의료의 철의 삼각'. 유한한 의료 자원 속에서 세 가치의 우선순위는 동일하기에 적정 수준의 선택이 필요하다.

의료 서비스는 자원이 한정돼 있다. 어느 선진국이라고 해서 모든 환자를 제때 치료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 어떤 환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할 때, 반대편에선 어떤 선택받지 못한 환자가 생긴다. 그러므로 누구에게 얼마큼 어느 수준으로 제공할지 따져서 원칙을 세워야 한다. 백신도 마찬가지다. 백신을 다 놓을 수 없다면 선택은 불가피하다. 선택이 불가피하다면 합리적이어야 하고, 최소한 정의로워야 한다. 그래야만 백신 접종을 위해 팔을 걷는 이도 바늘을 들이미는 이도 떳떳할 수 있다. 지금 이 접종으로 인해 맞지 못 하게 될 다른 누군갈 떠올리더라도 말이다. 그렇기에 논의와 원칙이 필요해진다. 그렇다면 어떤 원칙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까. 문제가 이토록 골이 아파져서일까, 생존을 가르는 영역임에도 실마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의 영역에서 찾을 수 있다.

백신 접종이 어떤 대상이 입는 선택적 수혜의 의미를 지니는 상황이라면, 그 효용을 두고 가장 대표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공리주의와 <정의론>이다. 제레미 벤담이 주창한 공리주의의 목표는 익히 알고 있듯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이를 백신 접종 문제에 적용하면 두 가지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먼저 한정된 백신 수량 안에서 최대한 많은 이를 접종할 수 있도록 양과 질을 조정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백신 접종으로써 얻는 기대 수명을 효용으로 보고 이를 기준으로 잡는 것이다. 이 경우 백신은 상대적으로 살날이 적은 노인보다 어린이에게 우선적으로 접종된다. 같은 한 사람이라도 백신 접종으로 효용을 얻는 세월이 많기 때문이다.

<정의론>의 저자 존 롤스의 견해를 따르면 이와 거의 정반대의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그는 사상적으로도 공리주의의 이익추구 방식이 편향됐으며 공평하지 않다고 비판했던 철학자다. 롤스의 분배적 정의 사상을 핵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은 '무지의 베일'이다. 무지의 베일은 사회 구성원이 분배 방식을 논의함에 있어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선택을 내릴 거로 생각하는 일종의 상태를 가리킨다. 분배를 논의하거나 주장할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자신의 상태나 위치, 배경 등을 생각하게 되는데, 롤스는 이것이 분배의 형평성과 공정함을 해친다고 보았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자신이 어떤 상황과 조건에 처해 있는지 알 수 없는 '무지의 베일'에 싸여 있는 상태라면 어떤 이에게 특별히 유리하거나 불리하지 않도록 조화로운 분배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누구든 장애인이나 노인,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기에 최소수혜자에게 최대혜택이 돌아가는 원칙을 내세우게 된다. 이에 따라 백신을 접종할 경우 감염에 취약한 노인 또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회적 취약계층이 우선 대상이 된다. 범주를 세계로 확장할 경우, 의료 시설이나 보건 체계 등이 열악해 코로나 팬데믹에 취약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분배와 원조의 논리로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의 자유주의 사회철학자 로버트 노직의 '운 평등주의'는 이 안에서도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롤스처럼 최소수혜자에 대한 고려는 필요하다고 여기지만 그 최소수혜자가 된 상황, 즉 '운'은 평등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태어나면서부터 취약계층에 놓이거나 개발도상국으로서 어쩔 수 없이 열악한 상황을 맞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맹목적 운'이지만, 경우에 따라 차등을 고려할 만한 '선택적 운'도 있다고 본 것이다. 이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나 치료 상황에 적용해 보면 같은 환자라 할지라도 정말 불가피하게 감염된 경우와 방역 수칙을 따르지 않고 사회에 혼란을 초래한 경우를 동일선상에 두는 게 평등하냐는 물음으로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방역에 협조하고 수칙을 준수했는지 여부도 접종의 순서를 정하거나 형평성을 이야기하는 데 원칙이 될 수 있다.

'원칙'으로 어찌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들

 

이러한 사상들이 백신 접종에 있어 중요한 원칙이 되어주긴 하지만, 각 국가나 사회가 겪고 있는 이해관계에 앞서 존재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백신을 손에 쥐기 이전에도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둘러싼 지식재산권 문제다. 현재 백신에 대한 권리는 이를 개발하는 다국적 제약사 또는 바이오 기업이 지식재산권 형태로 소유하고 있다. 이는 특히 개발도상국의 접종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일종의 공공재 역할을 해야 할 백신이 사유재산 형태로 거래되고 보장받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저소득 국가에서 백신을 손에 넣기 어려운 것은 물론, 생산 능력을 갖춘 개발도상국이라 할지라도 신속하게 지식을 공유받아 생산에 나서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에 제약사 측은 지식재산권 보장이 신속한 백신 개발의 핵심임을 지적한다. 이에 2020년 5월 WHO 회원국의 의사결정 기구 세계보건총회(WHA)는 코로나19 대응에 지식재산권 장벽을 없애자는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지만, 제약업계 측의 반발로 합의는 이루지 못한 바 있다.

백신을 확보하더라도 이를 둘러싼 이해관계는 사회마다 다르다. 세계 각국의 접종 기준은 대체로 위에서 밝힌 미국 CDC 권고와 비슷하지만 나라마다 질병 확산 정도, 사망률, 인구 구성, 사회·경제적 영향 등을 고려해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한 예로 인도네시아는 청장년층에게 먼저 백신을 접종한다. 이는 코로나19 확진자의 80%가 노동자 계층에서 발생한 이유도 있지만, 노동 인력에 먼저 백신을 접종해 경제 전선에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노동자 대부분이 재택근무하기 어렵다는 점도 사회문화적 배경으로 꼽힌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는 백신 접종 논의조차 사치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겪고 있다. 그간 잦은 전염성 발생에 따른 대처 노하우와 신속한 국경 봉쇄 등으로 선방해왔던 아프리카는 신종 변이 바이러스 감염으로 현재 어찌할 수 없는 보건 인프라 문제가 불거졌다. 앞서 언급한 백신 지재권 문제에 더불어 부족한 국가 예산 때문에 백신 공급에 기약이 없는 상태다. 인도네시아가 백신 접종에 나름대로 전략을 발휘한 경우라면 아프리카는 백신이 있어도 접종이 어렵다. 유통을 위한 콜드체인(저온유통체계) 구축이 전무하다시피 하고 보건 시스템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아프리카의 코로나 팬데믹을 가중하고 있는 것은 부족한 의료 시설과 의료진 등의 공공의료 문제다.

💡 다음은 팬데믹이 인류 역사에서 바꾼 것과 코로나19가 일깨운 공공의료의 현주소를 다룬 '팬데믹의 교훈'으로 이어집니다.

팬데믹의 교훈

에디터의 노트

팬데믹은 변화를 남긴다. 비록 막심한 피해와 고통을 감내한 뒤의 이야기지만, 유례 없는 규모와 밀도로 경험한 아픔의 시간은 반대로 문제 개선과 반등의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인류가 겪어 온 팬데믹은 상실 뒤에 어떤 변화를 남겼을까. 그리고 코로나19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일깨운 큰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인류 역사에서 팬데믹이 바꾼 것

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가리키는 '팬데믹'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등장했다. 세균이 인간에게 전염되기 시작한 것은 인류가 농경생활을 통해 정착해 마을을 이루고 가축을 기르면서부터다. 그러다 점차 생활반경을 넓혀 멀리 교역에 나서고, 밀집된 인구가 도시를 생성함에 따라 전염병 역시 팬데믹이라는 대유행 상태로 몸집을 키워 인류 앞에 출현했다. 그 치명성과 영향의 규모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은 곧 삶을 대거 바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간 역사와 문화, 양식 등에서 나타난 몇 가지 변곡점들은 팬데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인류의 저항 흔적으로도 볼 수 있다.

르네상스를 연 흑사병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있었던 흑사병의 영향을 그린 그림.(1348) ⓒWellcome Images via Wikimedia Commons

인류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전염병은 단연 흑사병이다. 1347년에서 1351년까지 유럽에서 약 5년 동안에만 2000만명 이상 사망자를 낸 이 전염병의 어마어마한 충격은 사람들의 의식과 태도를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흑사병을 겪기 전 중세에는 신(神) 중심 세계관을 토대로 교회와 성직자의 권위가 높았다. 그러나 흑사병 앞에 응답 없는 신과 무력한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주체성을 강하게 일깨우게 했다. 물론 시기상으로 신흥 부르주아 세력의 대두, 대학 교육의 시작 등 르네상스는 이미 시작(13세기 말~14세기 초)되고 있었지만, 이러한 각성은 기존 봉건사회를 무너뜨리고 새 시대를 여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또한 이때 발생한 수많은 노동자의 죽음은 임금 상승을 일으켜 근대 자본주의가 일어나는 요인 중 하나로 이어진다. 1348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흑사병 유행 지역에서 배가 들어오면 40일 동안 정박하게 했는데, 이는 오늘날 방역 조치의 뿌리기도 하다. 검역(quarantine)이라는 말 역시 이탈리아어 '40일'(quaranta giorni)에서 유래했다.

전쟁을 멈춘 스페인 독감

 

1918년 미국 캔자스주 펀스턴 캠프 응급병원에서 스페인 독감을 앓고 있던 군인들의 모습 ⓒNational Museum of Health and Medicine via Wikimedia Commons

흑사병이 역사상 최대 사망자를 낸 감염병이라면, 가장 짧은 기간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은 스페인 독감이다. 1차 세계대전 중 군인에게서 발병해 퍼지기 시작한 스페인 독감은 전체 사망자의 3분의 2가 젊은 층일 정도로 20~45세 사이 사망률이 높았다. 유명 예술가 에곤 쉴레나 구스타프 클림트의 사인으로도 유명하다. 불과 몇 달 만에 수천만명에 이른 스페인 독감 사망자는 비슷한 기간 1차 세계대전 전사자의 숫자인 1500만명보다 많다. 팬데믹의 이러한 전방위 공격에 급기야 인류는 자기들끼리 싸움을 멈춰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평화조약까지 맺기에 이른다. 오늘날 우리에게 친숙한 독감예방 접종이 생긴 것 역시 스페인 독감 때문이다.

도시 위생을 자리 잡게 한 콜레라

 

1853년 콜레라로 사망한 사례를 보여주는 런던 골든 스퀘어 주변 소호 거리 지도 ⓒWelcome Images via Wikimedia Commons

위생과 수도관리에 있어 현대 도시 구조의 틀을 만들게 한 것은 어느 혁신적인 정치가도 건축가도 아니요, 바로 콜레라였다. 1817년 콜레라가 처음 발생한 곳은 당시 수많은 사람이 밀집해 살아가던 인도 캘커타(현재 지명 콜카타)였다. 주요 도로와 항로들이 거쳐가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던 이곳에서 발생한 콜레라는 단숨에 세계로 뻗어나간다.

콜레라는 물을 통해 인간의 체내에 들어가고 감염자를 설사, 구토, 발열, 탈수에 시달리게 한 끝에 죽음에 이르게 한다. 숙주가 사망한 후 몸 밖으로 나온 콜레라 균은 강이나 수도를 통해 다시 이 물을 마신 사람에게 전염을 확산한다. 1830년까지 십수년 동안 콜레라의 맹위가 뻗쳐나간 곳은 유럽은 물론 멕시코와 이슬람 지역, 심지어 우리나라에까지 이를 정도로 전염성이 강했다. 1821년 순조 때 "평양성 안에서 괴질로 하루 사이에 300명이 사망했다"라는 소문이 돌며 나타난 콜레라는 이후 조선 한양에서만 13만명의 사망자를 낸다.

이처럼 콜레라가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세계적으로 물에 대한 공공관리 체계는 물론 위생관념 역시 전무했기 때문이다. 도시 환경 관리 수준이 극도로 열악해 위생, 상하수도 체계랄 것이 없었다. 각종 오염물질이 거리에 흘러넘쳐 강으로 흘러 들어가기 일쑤였고 이는 특별한 여과 없이 다시 생활용수나 심지어 식수가 되기도 했다. 콜레라를 겪은 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영국 런던을 시작으로 진보한 위생시설과 상하수도를 갖추게 됐고, 이는 현대 도시의 위생시설과 상하수도의 틀로 평가받는다.

코로나19가 일깨운 공공의료의 현주소

 

그렇다면 코로나19가 일깨운 현시대의 취약성은 무엇이었을까. 치명적인 문제점을 드러내 보인 부문 중 하나는 바로 공공의료였다. 코로나19 발발 1년이 넘고 백신 접종이 시작된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현 공공의료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모든 개인이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한 허들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것은 물론, '공공의료 붕괴'를 언급할 만큼 상황이 참담한 곳도 많다. 근래 브라질 북부 지역 아마조나스주에서 급증세를 보였던 코로나19 환자 사망 사태가 바로 그런 예다. 급증세를 보인 게 고위험군인 환자였던 것도 아니다. 변이 바이러스의 유행으로 혼선이 가중된 측면도 있지만, 주된 요인은 병상 부족이었다. 이 때문에 상당수 환자가 입원을 기다리는 것은 물론 환자를 머나먼 타 지역으로 이송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병상을 확보한 환자라고 안심할 수 없었다. 의료진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공공의료의 취약성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해 사망한 아마조나스주의 코로나19 환자는 한 달도 되지 않는 기간에 수백명에 달했다.

마냥 먼나라 일처럼만 느껴지진 않는다. 우리나라 역시 병상 부족과 환자 대기 문제가 심각할 수준으로 치닫다가 병상 수의 1% 이상을 확보하라는 정부 행정명령으로 가까스로 진화한 바 있다. K-방역이라는 찬란한 휘장 아래 몸과 마음을 '갈아넣은' 의료계의 극심한 피로도 문제다. 지난해 7월6일에는 "영웅, 천사라는 수식어까지 필요없습니다. 사람으로 대우해 주세요"라고 호소하는 간호사들의 시위까지 있었다. 문제는 환자 수용능력이 턱없이 부족한 공공의료 체계였다. 전체 병상의 10% 수준에 불과한 공공병원이 환자의 80%를 떠맡았다. 코로나 팬데믹을 통해 한국 사회 공공의료의 열악한 민낯이 낱낱이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전문가들은 이를 교훈으로 "우리나라의 의료 체질을 바꿀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2020년 국립중앙의료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공공의료기관 수는 221개이다. 이는 전체 의료기관의 5.5%, 병상으로는 9.6%밖에 차지하지 않는 숫자다. OECD 평균 의료기관 대비 공공의료기관과 공공병상 비율은 각각 53.7%, 71.9%다. 미국, 독일, 프랑스의 공공병상 비율 역시 각각 21.5%, 40.7%, 61.6%로 우리나라보다 훨씬 높다. 사회보험 형태에서 한국과 유사한 일본의 경우도 27.2% 수준이다. 의료 공급의 주체가 민간이다 보니 의료기관이 수요를 따라 대도시에 집중된 것도 문제다. 이로 인해 지방에서는 제대로 치료받기 위해 대도시 의료기관을 방문하기 일쑤다. 현재 우리나라가 대도시와 지방 사이에 의료격차가 큰 이유기도 하다.

문제의 쇄신을 위해서는 공공병원 설립 및 민간병원에 대한 투자도 늘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대로 된 수준을 갖춘 공공병원을 늘리는 일뿐 아니라 민간병원이 필요에 따라 공공의료를 제공하는 데 부담이 없도록 선제적 보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정부와 의료계가 갈등을 빚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일부 국민들은 의료계에 대한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지만, 사실 위기상황에서도 서로 공방이 오갈 만큼 한계에 다다른 의료계의 상황을 보여준 방증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의료 대처는 정부의 강경 명령으로 급한 불을 꺼 온 모양새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위기를 넘기는 임시방편이었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2월23일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겸직을 허용하는 대통령령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음을 밝혔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비상사태에서 본인과 수련병원장 동의를 전제로 하지만, 과거 홍역을 빚은 바 있는 전공의 동원에 대해 법적 근거를 마련한 셈이다. 현재로서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임시방편의 연장선이라는 인상은 남는다. 올바른 공공의료 확립의 길은 명령하고 동원하는 차원 너머에 있을 것이다. 민간의료기관 스스로가 의료의 본질과 공공성에 충실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과 지원을 마련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포스트 팬데믹의 길에 가깝지 않을까.

💡 다음은 코로나19가 끼친 경제적 영향과 정부 대응 이야기를 담은 3장 '아파도 먹고는 살아야지: 코로나와 경제'가 이어집니다.

똑똑! 📕 추천해요

 

도서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 공성식 외 9명, 돌베개, 2020

코로나19를 다루는 거대 담론 뒤에 간과하기 쉬웠던 문제들을 10명의 사회학자 및 활동가가 모여 끄집어 올렸다. 비추는 것은 비대면, 재택근무, 동선 공개, 마스크 등 일상으로부터 출발하는 이야기지만, 포착한 것은 그 안에 숨은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한 고찰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행동이 된 마스크 쓰기에 관해 궁금하다면 책의 3번째 장 '마스크 불확실성 시대의 마스크 시민권'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가깝지만 먼 당신, 멀지만 가까웠던 당신

에디터의 노트

코로나19는 이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세계 무역에 '막타'를 날린 것으로 보인다. 세계 무역의 혜택을 받으며 유례없는 발전을 이룩한 세계가 다시 한번 뒤돌아볼 계기가 된것같다. 현세대의 발전을 이끌었던 세계 무역이 미래에도 지속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새로운 경제 체제로 편입이 될까?'

 

예상치 못한 큰 충격은 우리를 현시대의 '노멀'(Normal)에서 벗어나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로 인도한다. 코로나19라는 충격은 우리에게 마스크 착용의 의무화, 공공장소에서의 거리두기 그리고 줌(Zoom)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장치를 통한 의사소통과 같은 뉴노멀의 세계로 우리를 이끌었다. 코로나19 뉴노멀의 기운은 우리의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국제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공산주의의 마지막 보루이자 큰 형님이었던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가입 이후 자유무역은 세계 경제 발전의 화두이자 노멀이었다. 각국은 사상 그리고 발전 정도와 관계없이, 자유무역의 아버지 데이비드 리카르도의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비교우위를 살리기 위해 앞다퉈 자유무역 협정을 맺기 시작했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시작해 WTO가 창설되었고, NAFTA, 한미무역협정 등 많은 국가간 자유무역 협정도 만들어졌다. 자유무역이 우리를 번영과 꿀이 떨어지는 '약속의 땅'으로 데려가지는 못했지만, 그 어떤 경제 시스템보다 자유의 땅으로 더욱 더 가깝게 우리를 인도했다.

개발도상국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자본을 끌어들여 경제발전을 도모했고,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이 내려준 낮은 물가와 풍족한 소비생활이라는 꿀물을 쭉쭉 빨아댔다. 물론 선진국에서의 실업 문제, 다국적 기업의 착취, 그리고 지구온난화 악화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없진 않았지만, 자유무역이 세계 경제의 노멀이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보호무역주의와 단절이라는 뉴노멀의 한 예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와 자유무역

 

<브레이브 하트=""> 윌리엄 월레스의 "프리덤":</브레이브> 물자와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과 거리에 상관없이 생산수단을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유무역의 효과가 극대화된다. 현시대는 자유무역 협정과 통신 이동수단의 발달을 통해 자유무역의 효과를 이뤄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러한 믿음에 의심을 가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의 전염성 때문에 많은 나라는 타국으로부터 들어오는 인력과 물자 이동을 차단했다. 뉴질랜드와 싱가포르는 코로나의 발생지인 중국인의 유입을 막았고, 효과를 목격한 조지아 같은 나라들이 이를 뒤따랐다.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코로나19가 만연한 국가에서 생산된 물건이나 그 국가 국민의 국내 유입을 허락하는 것은 정치적 자살에 가깝기 때문에 많은 국가에서 국경을 막았다. 그뿐만 아니라, 코로나19의 발생은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할 수 없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터졌을 때, 중국의 봉쇄 정책으로 인해 공장은 멈춰서게 됐고 이는 '어느 나라에 있는 생산수단도 통제할 수 있다'라는 다국적기업의 자만심을 산산조각 냈다.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공급망은 톱니바퀴 같이 돌아갈 때 효율적이다. 한 단계라도 어긋나게 된다면 생산수단이 누리던 비용 절감은 사라질 수 있다. 이에 많은 기업이 코로나와 같은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 생산수단을 간결화하고 가까운 거리로 가져올 수 있는 리쇼어링(reshoring)을 화두로 삼고 있다.

 

생필품은 우리 집 마당에서: 코로나 초기에 한국은 마스크 부족 현상에 떨어야만 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모든 나라가 마찬가지였다. 마스크는 물론 여러 가지 산소호흡기와 같은 필수 의약용품과 외품 또한 충분치 않았다. 이상한 현상이었다. '이렇게 풍족한 시기에, 필수 의약용품과 외품이 모자라다니?' 원인은 자유무역에 있었다. 자유무역이 주장하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나라가 필수 의약용품과 외품을 노동력이 저렴한 중국 등의 나라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에서 많은 나라가 위급상황에 필수용품의 수출을 금지했다. "역시 사람은 상황이 안 좋을 때 알 수 있다고 했던가?" 필수 의약품 수출금지 조치는 많은 국가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들은 타국은 역시 믿을 것이 못 되며, 이러한 용품의 생산은 자국에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영국은 필수용품의 중국 의존을 줄이는 프로젝트 디펜드 정책을 발표했다. 의약용품이 필수라면, 식량 또한 필수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그 누구도 어디까지 필수품으로 규정할지 확신할 수 없다.

어김없이 따라오는 자국 우선주의의 그림자: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 의존도를 줄이는 자국 우선주의는 자유무역의 적이다. 자유무역은 국내에서 경제력을 잃은 직업을 박살 낸다. 성난 민중은 자신의 분노를 거리에서 혹은 투표용지로 정치인을 압박한다. 민중의 분노는 정치인들에게는 기회이다. 자신의 이득에 부합할 만한 분노가 쌓이면 정치인들은 행동한다. 경기가 좋을 때, 자유무역 피해자의 목소리는 크지 않다. 하지만, 경기가 불황이 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불경기는 수요에 심각한 타격을 입힌다. 수요의 급격한 하락은 전체적인 직업 안정성을 파괴한다. 예전이라면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는 불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우리를 봐줘' '우리도 중요해'와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들의 목소리는 성난 파도처럼 정치권을 집어삼킨다. 정치인들은 이때, 자국 우선주의의 기조 아래 많은 정책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이는 자유무역을 공동의 적으로 삼고 파괴한다. 세계화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가 1차 세계대전, 스페인 독감 그리고 1930년 대공황의 영향으로 무너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코로나는 비슷한 현상을 만들어낸다. 코로나 봉쇄정책과 그에 따르는 그에 따르는 수요에 대한 심각한 타격은 불경기를 양산했다. 새로운 불경기의 개운찮은 기운은 '자유무역'이라는 새로운 희생양을 타깃으로 삼았다.

자유무역은 우리의 구세주인가?

코로나가 우리를 이끌어 갈 뉴노멀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노멀에 관해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

똑똑! 자유무역의 장단점에 대해서는 다룬 적 있어요.

백신 생산의 문제점, 위협은 개발도상국, 혜택은 선진국: 현재 전 세계는 백신 개발이 한창이다. 완벽한 백신이 개발된다면,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상에서 완전히 탈피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한 백신의 개발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똑똑! 백신의 개발과정에 대해서는 다룬 적 있어요.

백신은 사람의 몸에 균을 넣고, 우리 몸이 미래에 똑같은 균이 침범했을 때 싸워 이길 힘을 주는 일종의 면역력 훈련 장치다. 따라서, 백신 개발은 매우 어렵다. 균이 너무 강하다면 트레이닝 되기 전에 병에 걸릴 것이고 균이 너무 약하면 트레이닝 자체가 되지 않는다. 근육을 단련하는 데 있어서 점진적 과부하의 원리를 이용해야 하지만, 과부하가 너무 강하거나 과부하가 되지 않는 정도의 무게를 사용한다면 부상 혹은 멸치로 남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에 백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임상실험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임상실험은 위험을 동반한다. 따라서, 선진국에서 임상실험의 대상을 찾기는 쉽지 않다. 당장 병에 걸려 죽기 직전의 환자가 아니라면 임상실험에 임할 사람은 많이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제약사의 실수가 발견된다면 제약사는 소송에 시달릴 것이고 이는 큰 손해가 될 것이다. 이에 많은 코로나 제약사들이 선진국에서 위험상의 이유로 허락되지 않거나 문제가 될 만한 임상실험은 해외에서 진행한다. 존슨 앤드 존슨의 백신 실험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개발된 백신은 미국, 영국, 한국과 같은 선진국에 판매될 것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사는 시민들은 마치 실험실의 쥐처럼 쓰이고 버려질 위기에 처해있다. 개발도상국에도 백신을 공급하기 위해 세계 보건기구는 코백스(Covax)라는 백신 나눔 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이 기구가 제대로 제대로 작동할지는 미지수다. 공급받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백신 실험 참가자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것으로 밝혀져 현재 투약이 중단되었다.

선진국 시민을 위해 희생되는 개발도상국 시민들: 이는 자유무역의 전형적인 공식이다. 다국적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바닥 경쟁(Race to the bottom)은 개발도상국의 환경을 파괴하고 노동권을 착취한다. 이는 선진국에 값싼 물건을 제공하기 위한 희생이다. 우리는 쓰레기 숲에서 쓰레기를 줍는 소년부터 방글라데시 자라공장 사태로부터 이를 목격했다. 이는 분명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만, 쉽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세계 무역의 운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자유무역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됐다. 줄어들었던 세계 무역의 총량과 해외투자는 다시 늘어나는 추세이고, 정부의 정책과는 별개로 많은 사기업들은 온쇼어링을 멈추고, 다시 공급망을 확대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세계 무역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반감을 어떻게 줄이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코로나19가 국내 경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다룬 '코로나가 일으킨 국내 경제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코로나가 일으킨 국내 경제의 변화
에디터의 노트

'경기 침체에서 모든 시민의 삶은 힘들다. 하지만, 가난한 시민의 삶은 특히 더 힘들다'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경기침체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19가 어떻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리포트에서는 코로나가 국내 경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그에 따르는 양극화에 대해서 알아보겠다.

코로나와 국내 경제

코로나19라는 거대한 폭풍우를 맞이해 많은 사람이 돌파구를 찾기 위해 변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비즈니스와 사무실은 떼려야 뗄 수 없다'라는 인식이 매우 강했지만, 코로나19는 사무실이라는 강박관념에 줌과 구글 행아웃과 같은 무기를 가지고 큰 생채기를 냈다. 사실 코로나19 전에도 우리는 사무실과 비즈니스를 결별하게 해줄 기술과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빠른 인터넷망을 갖췄고, 비즈니스가 밀집한 도시는 그 어느 때보다 비싼 땅값을 자랑하고 있었다. 치솟는 사무실 임대료는 사업 운용 비용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회사들은 더욱더 밀집했다. 샌프란시스코, 도쿄 그리고 한국의 서울로 회사들은 전진했고, 그들의 철옹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가 일으킨 인식의 변화

세상의 패러다임을 바꿀 만한 변화는 항상 큰 위기 뒤에 온다. 기업은 창의적이고 유연해 보이지만 가장 보수적인 집단 중 하나다. 이는 회사 구조와 맞닿아 있다. 회사는 최고경영자, 주주, 이사회 등 여러 이익집단이 모여서 의사결정을 내린다. 다른 이익집단이 반대할 수 있는 결정을 앞장서서 내리면, 뒤따르는 손해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패러다임의 변화를 힘들게 한다. 높은 임대료와 빠른 인터넷망이 준비됐 있지만 어떤 회사도 쉽게 인터넷 세상으로의 이동이라는 큰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는 회사들에 피할 수 없는 선택을 강요했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책으로 국가는 봉쇄정책을 펼쳤고, 이는 비즈니스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회사들은 바이러스가 크게 기승을 부리던 코로나 초창기에 직원들의 출근을 최대한 제한하고 재택근무를 장려했다. 애플의 CEO 팀 쿡은 모든 직원에게 "가능하면 재택근무를 해라"라고 권고한 바 있다. 대한민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20년 10월16일 청와대의 자료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중 48.8%가 재택근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재택근무의 효율성에 대한 의심도 같이 사라졌다. 재택근무 또한 현장 근무와 비슷한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는 믿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해결된 이후에도 재택근무의 비율은 코로나19 발생 전 평균 5%에서 22%로 늘어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코로나로 희생되는 직업과 코로나로부터 보호받는 직업

코로나19가 처음 세상에 출현했을 때 사회계층과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영향을 미치는 듯했다. 면역체계의 부족으로 부자든 가난하든 바이러스의 위협은 평등했고, 모두가 똑같이 간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사회는 코로나19에 적응하기 시작했고 평등했던 코로나19의 영향도 사회계층에 따라 다른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위에 언급한 대로 많은 비즈니스가 사무실 없는 재택근무를 허용하면서, 줌과 인터넷으로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코로나19와 관계없이 수익을 유지할 수 있었다. 화이트칼라(White Collar)로 불리는 이러한 직업은 상대적으로 높은 연봉을 받았었고, 이들의 지위는 코로나19에도 흔들리지 않아 보였다. 반면에 레스토랑, 편의점 등에서 대면 서비스 직종은 코로나19라는 파도에 휩쓸려 버렸다. 소비자가 코로나19의 위협에 소비와 외출을 꺼리면서 이들의 필요 또한 사라져 갔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연봉이 6만달러(약 6690만원) 이상인 직업은 코로나 이전보다 2% 정도가 사라졌지만, 연봉이 2만7000달러(약 3009만원) 이하인 직업은 17%가 사라졌다. 통상적으로 화이트칼라 계열의 직업이 서비스 계열의 직업보다 연봉이 높다.
실업은 실직 노동자들에게 금전적인 피해만 끼치는 데 그치지 않았다. 해결하기 어렵고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신적 문제였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10~15%의 사람들은 코로나19 문제가 해결된 후에도 그 이전과 같은 삶을 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나타났다. '이들은 장기적인 불안감에 휩싸일 것이고, 이러한 정신적 문제는 육체적인 고통보다 오래 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코로나19 이전에 진행된 많은 연구에서 실업 혹은 수입의 감소는 우울증과 자살의 시도와 연관성을 보여줬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업을 하거나 심각한 수준으로 수입이 줄어든 시민들의 반 이상이 부정적인 정신적 건강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으며, 이는 급여 수준이 낮은 사람에게서 더욱더 높게 나타났다.

직업은 보존했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

물론 이들의 직업이 온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여행업이나 레스토랑 종업원처럼 대면이 필수적인 직업은 사라졌지만, 소비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고 직접 쇼핑보다는 온라인 쇼핑몰을 애용하면서 특정 서비스 직업군의 수요는 늘었다. 하지만 코로나19와 불평등의 악령은 간신히 살아남은 서비스 직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직업은 보존하여 수입은 유지됐지만, 코로나의 위협 속에서 노동을 유지해야 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들 노동자는 사회 유지를 위해 노동을 멈출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덜하지만, 미국과 같이 인종적 차이가 확고한 국가에서는 인종에 따른 코로나19의 피해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예상했던 것처럼 미국은 백인보다는 흑인과 히스패닉에 불공평한 코로나19의 영향이 크게 발생하고 있다.
똑똑! 코로나19가 미국의 유색인종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다룬 적 있어요.

치솟는 자산 가격, 양극화 양극화 양극화

코로나19가 일으킨 경기침체에 국가는 예산을 추가로 늘리거나 금리를 올리지 않는 등 현금 흐름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확장했다. 한국은 4차례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2020년 코로나19 관련 약 66조원의 재정을 썼다. 이는 국내 총생산의 3.4%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한국은 G20에서 15번째 규모였다. G20 중 미국이 16.7%로 가장 높았고 영국(16.3%), 호주(16.2%), 일본(15.6%)으로 뒤를 이었다. 이처럼 각국은 긴급자금을 수혈하고, 중앙은행은 낮은 이자율 기조를 유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2020년까지 기준금리를 0%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자산가격의 상승을 불러왔다.
이자 혜택의 감소: 은행 예금은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이 낮고 자산 투자는 기대 수익이 높을 수 있지만, 손해를 볼 확률도 높다. 시장참여자는 자신의 능력과 상황에 따라 은행 예금 또는 자산 투자를 선택할 수 있다. 시장참여자의 선택은 이자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자율이 너무 낮다면 이자 혜택 또한 감소하기에 위험을 감안하고 자산투자를 선택할 확률이 높다. 2억원의 은퇴자금을 가진 은퇴자가 연 1%의 이자를 받는다면 200만원을 받게 되는데 이는 풍족한 은퇴자의 삶을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자 비용의 감소: 낮은 이자율은 은행예금의 이자 혜택을 낮추고 대출의 비용도 낮춘다. 자산 투자자는 은행 대출로 투자금을 마련한다. 은행 대출에 대한 이자가 높다면, 투자를 망설이는 원인이 된다. 자산은 현금 흐름을 만들어 주는 월세 투자도 있지만, 아파트 같이 현금흐름은 없고 자산차익을 노리는 자산도 있다. 전자의 경우 높은 이자 비용이 어느 정도 상쇄될 수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 높은 투자 비용은 감당하기 힘들다. 따라서 금리가 낮으면 돈을 빌려서 투자가 쉬워진다. 자산 투자로 몰리는 시장 자금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자산가격의 상승을 불러일으킨다.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한 경기침체에 대한 대응으로 선진국 중앙은행은 낮은 이자를 유지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자가 높다면,  투자와 소비 또한 하락하기 때문에 합리적 대응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선진국의 자산 가격은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이는 양극화를 더 심각한 문제로 만들고 있다. 코로나로 촉발된 불평등은 직업뿐만 아니라, 자산을 소유한 자와 자산을 소유하지 못한 자 사이의 불평등 또한 최고조로 만들고 있다. 이는 코로나19와 함께 씻지 못할 상처로 우리 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

💡다음은 코로나가 일으킨 위기를 국가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코로나 위기 극복과 정부의 역할'로 이어집니다.
코로나 위기 극복과 정부의 역할

에디터의 노트

유례 없는 바이러스와 함께 유례없는 정부의 개입이 코로나19의 해결책으로 떠올랐다. 정부의 개입을 반대하던 각국의 보수당마저도 두 팔 걷고 찬성하고 있지만, 잠깐 숨을 고르고 정부 개입의 장단점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대응방안
코로나19의 피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정부는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내놓았다. 이번 코로나19에 정부는 시장의 자정작용에 의지하지 않고 적극적 개입을 통한 해결이라는 뚜렷한 추세를 양산했다.

첫 번째: 사생활, 그거 먹는 건가요?


코로나19는 엄청난 전파력을 가진 바이러스다. 초창기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은 '어떻게 하면 전파자를 빠르게 찾고 동선을 파악하여 전파를 막을 수 있을까?'였다. K-방역으로 유명한 한국은 적극적인 정부의 개입을 해결책으로 삼았다.한국 방역 당국은 사회 곳곳에 설치된 CCTV,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 혹은 통화 등을 사용한 핸드폰 위치 추적 그리고 카드 사용 명세서와 같은 개인정보를 이용해 전파자의 동선을 파악했다. 코로나19는 확진자와의 접촉을 바탕으로 전염되기 때문에, 개인의 이동 경로, 방문 장소, 접촉자를 파악하는 역학조사는 질병 확산 방지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국의 성공적인 방역정책의 핵심으로 평가받고 있다.
개인정보를 이용한 역학조사는 중국, 싱가포르는 물론 자유의 나라로 불려왔던 미국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미국의 최근 부양책 패키지는 질병통제센터 통해 '공공 보건 데이터 감시 및 분석 인프라'를 개발하기 위한 자금을 지원한다.세계 대부분의 스마트폰 운영 체제를 제어하는 애플과 구글은 미 연방정부와 협력하여 모바일 장치 감시 기술을 개발하는 중이기도 하다. 중국은 대중교통과 쇼핑몰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들어가기 위해 의무적으로 바이러스 노출 가능성을 측정하는 개인 QR코드를 발급받도록 했다.
물론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감염된 개인의 위치추적정보를 지역 주민에게 문자로 전송하고 웹사이트를 통해 확진 환자의 이동 경로를 상세하게 볼 수 있다. 물론 이름이 공개되지는 않지만, 개인의 성별, 나이, 방문 장소, 심지어 직장 위치와 직종을 공개하기 때문에 자세한 분석을 통해 신상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제기됐다. 심지어 확진자 동선 파악에는 질병관리본부뿐만 아니라 경찰청, 카드사, 통신사도 관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개발한 코로나19 역학조사 지원시스템은 정부 기관과 사기업 사이에 실시간으로 정보가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든 플랫폼이다. 질병관리본부가 확진자 정보를 수집하고, 경찰청에서 ‘동의’ 버튼을 누르면 즉각 통신사와 카드사가 위치정보를 입력, 지도에 확진자 경로가 표시되도록 설계됐다.
사람들은 '과연 사회 보호를 위해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늘어나는 사상자로 사생활은 마치 당장은 희생돼도 되는 가치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사생활과 사회 안전 사이의 균형은 사회적 합의에 따라 결정될 수 있지만, 사생활 정보의 공개로 인한 2차 피해는 정부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실제로 이태원 발 감염사례들이 클럽에서 발생했다는 보도로 인해 아우팅*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는 아우팅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확진자와 접촉한 이들을 위축시키고 방역망 밖으로 숨어들게 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심지어 공개된 개인정보로 인해 특정 개인들은 '불륜을 저질렀다' '성형을 했다' '보험사기를 쳤다' '성매매에 참여했다'는 등 수많은 의혹과 사생활 노출에 시달리기도 했다.
코로나19는 기술이 사회를 재구성하는 방식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이미 높아진 시기에 왔다. 그리고 이 팬데믹은 디지털 장치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사용해 국가가 질병과 건강을 관찰하기 위한 영구적인 장치를 만들수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산업 시대의 프라이버시는 디지털 네트워크에 의해 생성되고 수집된 데이터에 의해 사라지는 시점까지 침식된 지 오래다. 그러나 지나치게 광범위한 개인 정보 보호 규정은 혁신을 저해할 수 있으며, 미국의 경우와 같은 개인 정보의 끊임없는 상용화는 캠브릿지 아날리티카(Cambridge Analytica)가 페이스북으로 수집된 개인정보를 정치 캠페인에 판매한 것처럼 시민들이 착취와 조작에 취약하게 만든다. 개인 정보 및 데이터 보호에 대한 새로운 규칙 기반 접근 방식은 미국의 상업 미니멀리즘과 유럽의 규제 범위 사이에 있을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앞둔 우리는 개인 정보 보호와 상업적 관행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아우팅(Outing)은 성 소수자의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히는 행위를 말한다.

두 번째: 쏟아지는 돈다발

정부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를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했다. 이에 의회는 이념 차이와 관계없이 매우 빠른 속도로 경기부양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2020년 5월 기준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의 경기부양책은 위의 5국 국내총생산의 23%인 7조4000억달러(한화 약 8191조원)에 달한다. 정부가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경험: 미국 부동산 거품으로 시작된 2008년 경기침체 당시 전 세계는 확고하고 빠른 정부의 개입 정당성을 경험했다. 특히 독일의 요구로 시작돼 그리스를 포함한 몇몇 국가에 적용됐던 긴축정책은 명백한 실책임이 드러났다. 이는 그리스에 실업률 25%, GDP 22% 감소, GDP 대비 정부 부채 35% 증가라는 악조건을 선사했고 국민들 또한 고통의 시간으로 인도했다. 이에 국가 재정 상태에는 보수적 입장을 고수했던 국제통화기금(IMF)조차도 연례 보고서에서 자신들이 주장했던 '긴축정책'(Austerity policy)은 실패했음을 인정했다.
국민의 요구: 국가 재정의 패러다임 전환뿐만 아니라 반 체제기조(anti establishment)로 대변되는 국민들의 국가 및 경제기관에 대한 불신 또한 크게 작용했다. 국민들의 불신은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문재인 대통령에게로의 권력 이양 그리고 브렉시트 같은 굵직한 변화로 나타났다. 이에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따라야 할 필요성을 느낀 우파정치인들 또한 국가의 개입을 어느 정도 찬성하게 됐다. 만약, 실물경제가 침체한 상황에서 우파정치인들이 전통적 입장 즉 국가 개입에 대한 무조건적인 반대를 고수하면 선거에서 패배는 불을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시작된 경기침체에 대항하는 정부의 정책은 간단했다. 추경을 통한 정부의 지출을 늘리고, 기준금리 하락을 통해 금융비용을 하락시키는 것이다.
똑똑!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다룬 적 있어요.
정부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의 요구에 알맞은 정책 또한 펼쳤다.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을 완화하고 소상공인들이 고용을 유지할 수 있도록 고용유지에 대한 보상금을 뿌렸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기본소득의 한 형태로 해석되는 현금 지급 서비스 또한 실행했다. 1차 국가부양책이 발표된 후에도 대부분의 나라는 국가부양책의 규모를 확대했다. 실제로 미국은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된 후, 1조9000억(약 2100조원) 달러 규모의 유례없는 정부지출 계획을 발표했다. 공화당의 반발로 총액수가 통과될지는 미지수지만 미국 정부의 정부 지출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정책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대규모 지출에 대한 우려와 환영

대부분의 나라에서 큰 반대 없이 유례없는 정부지출을 단행했지만, 대규모 정부 지출은 큰 우려를 자아내기도 한다.
정부 지출은 공짜가 아니다. 불어난 정부의 지출은 국가 부채로 남고 국가 부채는 국가 신용도 하락과 이자 비용의 상승을 발생시킨다. 이자가 국가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면 미래에 연구·개발이나 국가기반 시설에 투자할 자본이 부족해지고 따라서 미래 성장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정부 지출은 투자 비용을 웃도는 수익을 보장해야 하는데 현재 국가지출은 선별의 과정이 없기에 부실기업에도 국가 자본이 투입된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사라지는 직업과 산업의 추세 변화 때문에 사라지는 직업을 구분하지 못하고 사라졌어야 할 직업 또한 보존한다. 이는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국가 재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과도한 인플레이션: 앞서 8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의 무분별한 지출은 자산의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킨다. 과도한 자산 인플레이션은 빈부격차를 확대하고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노동자의 근로 의욕을 꺾는다. 자산의 인플레이션은 특히 안전자본 혹은 현금흐름을 만들 곳이 모자란 지금 부동산과 주식으로 몰리게 되고 이는 거품을 발생시킨다. 이는 미래에 또 다른 경제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정부지출이 갖는 장점은 명확하다.
첫째, 시민들을 경기침체의 고통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발생하는 실직은 사회 취약층에서 나타나는 경향이 크다. 코로나19에 실직의 고통까지 더해진다면 국민의 삶을 코로나 블루나 소득 감소로 인한 생활고 등으로 고통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직장 보호와 현금 지급정책은 직업상실의 고통에서 시민들을 구제할 수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시기에 취약층 인구의 실업 비율은 훨씬 높았지만, 정부의 현금 지급 정책으로 빈곤층의 비율은 되레 줄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4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위 20%의 수입은 전년 대비 1.7% 상승했다고 한다. 이는 현금 지급정책의 효과성을 입증한 통계다. 문제는 현금 지급 정책을 무한정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금 지급정책 이후에 빈곤층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둘째,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는 급격한 수요의 하락을 동반한다. 코로나19의 전파를 막기 위한 봉쇄정책으로 인한 미래 경제의 불확실성은 수요의 불씨를 꺼뜨린다. 미래가 불확실하다면 투자는 위축된다. 일반 소비자 또한 언제 올지 모르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소비를 꺼린다. 하지만 정부는 다르다. 정부는 손해를 보더라도 경기 활성화를 위해 지출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개입이라는 인위적인 불쏘시개는 경기침체에 효과적인 해결책이다.

정부의 대규모 경제개입은 코로나 19라는 위기를 탈출하는 데 필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이번 사태에서 정부의 적절한 대처가 위기를 탈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명확해진다면, 미래의 위기에도 정부의 개입은 사회의 새로운 규범이 될 가능성이 크다.

💡 다음 리포트는 코로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노동자에 다룬 '필수노동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으로 이어집니다.
필수노동자에게 정말 필요한 것

에디터의 노트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노동, 상실, 그리고 연대의 경험을 차례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번 콘텐츠에서는 팬데믹으로 인해 생겨난 '필수노동자'라는 새로운 범주에 집중해요. 특히 업무가 대면 만남을 요구하는 탓에 팬데믹 내내 고생한 배송·돌봄 노동자들의 삶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우리 사회가 얼마나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지도 살펴볼 거예요. 일의 존엄을 회복하고 노동자들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을까요?

노동자가 필요하시다고요

코로나19로 모두의 삶과 의료, 경제가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사회 전체가 거리두기와 비대면으로 전환을 시도하면서 대면 현장에서 노동을 계속해야 하는 사람들의 중요성과 취약성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누군가는 타인을 간호하고 치유해줘야 하고, 음식이나 생활물자를 집 앞으로 배송해줘야 하며, 아동, 청소년, 노인 등 감염에 취약한 사람들을 돌보고 신경 써야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체 노동시장은 큰 타격을 입었다. 소위 '일자리 충격'은 비정규직에 집중됐고 일자리 감소 폭은 IMF 외환위기 때보다 컸다. 지난해 총 4차례에 걸쳐 한 시민단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정규직 실직률은 1차 3.5%에서 4차 4.2%로 소폭 증가했지만 비정규직은 1차 8.5%에서 4차 36.8%로 크게 늘어났다.
경제 전체의 노동 공급도 줄고 임금도 감소했다. 특히 남성, 임시·일용직, 저학력·저소득층에 피해가 집중됐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잠재 임금 손실률은 7.4%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정부의 재정 지원 등의 효과로 실제 손실된 임금은 이보다 조금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이 늘어나 부담을 받는 노동자와, 일이 없어 생계에 타격을 받은 노동자가 갈렸다. 전체 345만명에 달하는 간접고용 노동자 중 많은 이들에게는 '해고의 물결'이, 사회가 기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된 의료·배송·돌봄 노동자에게는 '일폭탄'이 던져진 것이다.
노동자에게는 일복이 터졌다며 마냥 웃을 일도 아니다. 감염의 공포, 고된 업무 강도, 낮은 업무 안정성, 그리고 낮은 사회적 평판은 이들의 삶을 '위태한' 것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힘이 다해 스러지면 삶의 기반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 앞에서 노동자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코로나19의 여파로 선진국들은 노동의 가치라는 교훈을 얻었다. 사회가 재난상황에서도 정상적인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일선에서 아픈 자를 치료하고, 필수 물자를 전달하며, 취약한 이들을 보듬는 사람이 없다면, 사회가 마비될지도 모른다. 미국에서는 '필수노동자(Essential worker)', 영국에서는 '핵심노동자(Key worker)'라는 새로운 명칭을 만들어 처우개선에 나섰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9월부터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필수노동자 지원 조례가 만들어지고 있다. 의료·배송·돌봄을 포함했던 필수노동자 범주에 택시기사나 경찰관 등이 추가로 들어가 더 포괄적인 개념이 됐다.


필수노동자의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임금 근로자 형태로 고용된 기간산업의 노동자와는 다르게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고용이나 산업재해 보험 적용 대상도 아니며, 통계에 잘 잡히지 않아 이들이 경제적 타격을 입더라도 정책적인 대응이 힘들다. 둘째, 고용 안정성이 낮다. 임금이 낮고 근무 여건이 취약한 편이다. 셋째, 노동 강도가 높아 산업재해 위험이 있고, 주로 대면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필수노동자에게 생계지원금을 제공한다는 내용이 담긴 보호·지원대책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지난해 11월 필수노동자 지원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지원 대상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제한됐기 때문에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노동자는 혜택을 받기 힘들다. 그 외에도 성동구는 지역 필수노동자에게 마스크 및 손소독제를 지원했다. 서울시는 노동정책 5개년 계획(필수노동자 전담조직 신설 등)을 내놨고 광명시는 필수노동자에게 무료로 독감 백신을 놔주는 정책을 내놨고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는 중이다.
필수노동자 담론에는 역설적인 부분이 있다.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현장에서 의료·배송·돌봄을 이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감염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필수'라는 용어에 걸맞은 처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또 특히 배송이나 돌봄의 경우 상대적으로 비숙련인 특징 탓에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정성도 내포하고 있는 직종이다. '필수'노동자는 결국 사회에서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지만 '꼭 내가 아니어도' 되는 노동자가 아닐까.
필수노동자 담론에서 당사자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찾기는 힘들다. 사회 지도자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는 감사 캠페인에 사용되는 피켓이나 관련 기사에서 노동자의 얼굴이나 이름이 나오진 않는다. 시위 관련 기사를 제외하면 시민들이 필수노동자의 고충을 파악하기는 어렵다. 시민의 일상에서 필수노동자는 얼굴이 보이고, 눈을 마주치며, 이름을 부르며 존중하는 상대일까.

배송의 기쁨과 슬픔


감염병과 추운 날씨를 뚫고 집 앞에 도착하는 물건. 물건이나 음식을 배송받는 사람들은 기뻐한다. 손가락 놀림 몇 번으로 주문해 고대하던 물건이 도착하는 광경은 감격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기뻐하는 소비자의 시야 바깥에는 마스크와 헬멧에 가려 보이지 않는 배송노동자의 얼굴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택배업계는 팬데믹의 대표적인 수혜업종으로 손꼽힌다. 지금만큼 온라인 쇼핑과 배송이 발달하지 않았다면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컸을 수도 있다. 미국의 온라인 쇼핑업체 아마존(Amazon)은 코로나 특수 및 연말 쇼핑 시즌이 겹쳐 4분기 매출이 처음으로 1000억달러를 넘긴 1255억달러(한화 135조4288억원)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간 대비 44% 오른 수치다. 코로나 기간 오히려 직원을 50만명 이상 늘리고 물류 설비 면적도 50% 증대하는 등 확장을 꾀했다. 미국 내 코로나19 사망자가 50만명 이상, 확진자가 3000만명에 가까워지고 있는데 반해 온라인 쇼핑업계는 호재를 누린 것이다.
한국도 전체 노동시장은 침체지만 유통업에 인력이 몰렸다. 고용통계를 보면 500대 기업의 국민연금 가입자를 기준으로 전년 대비 순고용인원은 6000여명 감소한 반면 유통업의 경우 3000명 이상 늘었다. 개별 기업으로는 쿠팡이 1년 새 1만명 넘게 새로 채용했다. 비숙련 직종인 배송업에 코로나19로 인해 직업이나 수입을 잃은 이들이 몰린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일 것이다. 배달의 경우 40·50대 남성과 여성이 라이더로 일을 얻어 2020년 12월 기준으로 전년 대비 두 배로 증가했다. 문화·예술 전시나 공연에 심각한 제동이 걸려 택배나 배달에 나선 배우들도 있다.
코로나 특수를 누리는 배송업, 다른 직종에서 생계를 위해 뛰어든 사람들 덕에 더 늘어난 고용인원. 배송업 노동자들은 안녕할까. 택배의 경우, 2020년에만 16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일명 '까대기'라 불리는 분류작업이 기본적으로 무급인 데다가 고강도 노동이라 과로나 심지어 사망과도 연관된 것. 이에 분노해 노동자들은 파업을 선언했고 택배업체가 추가인원을 고용해 분류작업을 처리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택배노동자는 기본적으로 자영업자다.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기본급도 없다. 주 52시간 근무제 적용도 되지 않으며, 개선된 주 60시간 근무 방침이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한편 배달노동자는 플랫폼 노동자다. 일거리가 있을 때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긱 워커'라고 불리기도 한다. 고용노동부가 추산한 플랫폼 노동자는 179만명, 이중 배달 기사는 약 20만명이다.
배달노동자는 개인사업자 신분이기 때문에 낮은 고용안정성과 4대 보험 미가입 등의 문제가 있다. 배달을 전업으로 하는 이들도 있지만, 자영업과 같은 본업이 코로나로 인해 타격을 입어 부업으로 배달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위 'N잡러'라 불리는 이들은 하루에만 두세가지 다른 일을 하러 바삐 시간을 보내야 하는 파편화된 삶을 살고 있다. 낮에는 음식 배달을 다니고 저녁에는 맥줏집을 운영하는 식이다.
한편 갑질이나 눈길 주행 등 배달로 인해 겪는 슬픔도 있다. '단지 내 이륜차 운행 금지' '엘리베이터 사용 금지', 신원 확인을 위해 추운 날씨와 코로나에도 옷이나 헬멧, 마스크를 벗도록 요구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갑질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린다.
똑똑! 택배노동자 과로사 방지 대책 마련 현황을 뉴스에서 다룬 적 있어요!

돌봄은 당연하지 않다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사회적 변화에 모두가 손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었다. 손씻기, 마스크 착용, 사회적 거리두기를 어려워한 사람들도 있었다.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 학생, 노인들을 다독이고 도와주었던 사람은 누구였을까? 손소독제를 집에서 직접 만들어 가족들에게 나눠 주거나 체온계를 주문한 이는? 학교에 못 가거나 일자리를 잃고 집안에 남겨진 아이들과 식구들의 식사를 챙겨야 하는 '세끼 지옥'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이도 있다. 원격으로 전환한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워하는 아이를 위해 줌(Zoom) 조작법을 직접 배워 가르치고 불안감과 칭얼댐을 다 받아줬던 사람도 있었다.
코로나19는 돌봄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드러내 보였다. 돌봄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라 인간의 삶 어디에나 녹아 있고 필수적인 역할을 하지만 막상 부족해지기 전까지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배송업과는 달리 돌봄 노동에는 계약서나 보수가 없는 경우도 많고, 너무나 당연하게 해왔던 것들이라 일하는 사람 본인부터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돌봄은 여성화돼 사적 영역에 있는 것으로, '진짜 일'이 아닌 '집안일' 정도로 여겨왔던 사회적 관행 및 인식과 연관이 깊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6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 여성의 가사 및 돌봄 시간은 전체 생활시간 중 17%가 넘는 약 29시간이었다. 한국 남성의 4%(약 6시간30분)에 비교하면 4배가 넘는다.*
돌봄은 공장에서 찍어낼 수 없다.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누군가를 돌볼 수는 없다. 돌봄은 상대방의 상황과 감정을 면밀하게 파악하면서 배려하는 감정 노동이며, 수치심을 느끼거나 걱정, 우울, 스트레스와 같은 부정적 감정이 더 커지지 않도록 대하는 정서적 기술이 요구되는 일이다. '좋은 돌봄'을 받은 사람은 수많은 심리적·사회적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페미니즘 사상가 낸시 프레이저를 인용해 '보편적 돌봄 제공자 모델'을 제안하는 이도 있다.** 즉 '기울어진 운동장'인 돌봄 노동의 장을 보다 공평하게 개선해 모두가 생계 부양과 돌봄을 위한 노동을 평등하게 수행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특히 비혼과 1인 가구가 늘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곱씹어봐야 할 주장일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분석하며 그 대안으로 '일의 존엄성'을 언급했다. 일의 존엄성은 단순히 노동자들에게 더 형평성 있는 보수를 제공하는 경제적인 정책으로 회복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다. 존엄성의 회복은 시민들이 지나다니는 길을 청소하는 일, 누군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물건을 가져다주는 일, 아이, 청소년, 노인을 위해 몸과 마음으로 돌보는 일이 반도체나 IT, 디지털 산업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일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공기처럼 보이지 않았던 이들을 보고, 눈길을 마주치고, 이름을 기억하고, 그들의 공로를 인정하는 것이다. 인간의 노동이 기계의 자동화로 대체되는 위협에 놓인 이 시대에 일의 존엄성은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가치가 아닐까.

💡 다음은 코로나로 우리 사회가 잃은 것들을 다룬 콘텐츠 '코로나로 놓친 기회, 마른 의욕, 잃은 사람'으로 이어집니다.
코로나로 놓친 기회, 마른 의욕, 잃은 사람

에디터의 노트

우리 사회는 코로나19로 무엇을 잃었을까요? 본격적인 백신 접종계획이 공표되고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담론이 쏟아지는 지금 던져봐야 할 질문입니다. 기록 없이 잃어버린 것들에는 애도의 기회조차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하면서 버리거나 남겨둘 짐을 정리하며 마음 한켠에 얽히고 쌓인 감정을 정리할 수 있는 것처럼, 코로나 시국 타개의 계획을 세우면서 잊혀가는 것들에 대한 성찰 또한 필요합니다. 코로나로 상실한 집중력, 학교생활, 활기, 그리고 의지를 조명합니다.

상실의 시대

코로나19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 셀 수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사망한 이들은 국내에만 1700명이 넘는다. 어떤 노동자들에겐 일자리와 임금이 줄었고, 다른 이들은 쏟아지는 일감 탓에 일상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특히 많은 청년이 일자리를 잃었고 구직을 단념한 이들은 300만명에 달했다. 코로나로 인한 상실은 많은 면에서 사회 구조의 불평등을 반영했다. 해외에선 코로나로 인해 아시아인들이 차별당하는 사례가 있었고, 서비스직이나 필수노동자로 일하는 비중이 큰 유색인종 저소득층의 감염률이 더 높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무엇을 잃었는지 알아야 반성하고 애도하며 새로운 삶의 방식을 조직할 수 있다. 묘비도 없이 어두운 곳에서 사라져간 많은 것들은 기억할 수도, 슬퍼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상징적인 예는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해 사망한 이들이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정책에 따라 사망 24시간 이내에 화장됐다. 빈소도 차리지 못하고 통상적인 애도 절차를 밟지 못한 유가족에게는 비통함이 남겨졌다.
잃어버린 것과 보낸 이들을 반추하고 기록하며 애도하는 일은 다른 무엇보다도 미래를 준비하는 데 중요하다. 작게는 우리 사회가 일상에서 잃어버린 대면 교육의 기회에서부터, 크게는 활력과 삶의 의지까지 그 '상실의 역사'를 되돌아보려 한다.

집중력: '줌비'의 탄생


재택근무와 원격교육이 늘고 화상회의나 수업이 보편화되며 많은 직장인과 학생들은 집중력을 잃었다. 왠지 모르게 화상회의 애플리케이션 줌(Zoom)이 피로하다고 호소하는 이가 늘었다. 장난스레 좀비에 빗댄 말 '줌비'(Zoombie)를 제안해본다. 컴퓨터 화면에 비친 자신과 수많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생기 없는 눈으로 노려보며 게걸스럽게 카카오톡이나 구글캘린더를 확인하다가 커피를 들이켜는 모습이 마치 좀비와 같지 않은가.
줌 회의가 피로한 이유는 크게 1️⃣비언어적 단서 부족, 2️⃣주시하는 카메라, 그리고 3️⃣집에서 회의를 진행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로 나눠서 볼 수 있다. 첫째, 화상회의나 수업에서는 비언어적 소통 요소를 인식하기 힘들다. 표정, 목소리의 톤, 그리고 손짓과 같은 단서가 부족하기 때문에 소리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게다가 간헐적인 인터넷 연결상태 문제 등으로 화면이 지직거릴 수 있고 잡음이 심하거나 소통에 약간의 지연이 있는 점도 불편하다. 전화나 화상회의에서 단 1~2초의 지연으로도 참가자가 상대를 덜 친근하거나 충분히 집중하지 않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둘째, 상대방의 눈을 응시하는 대면 대화와 달리 화상 대화에서는 눈을 둘 곳이 마땅치 않다. 자신은 카메라에 감시당하는 것처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마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시받는다고 느끼게 하는 건축 구조의 감옥 '파놉티콘'처럼 누가 자신의 화면을 응시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복 바지를 입고 수면 양말을 신었더라도 한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카메라나 마이크가 켜진 것을 잊은 사람들의 다양한 해프닝에 대한 얘기도 들린다.
셋째, 맥락과 환경도 중요하다. 재택근무자의 경우 회의를 잡기가 더 편해 회의가 잦아지는 경우도 많고, 출장이나 약속 등을 이유로 빠지거나 미룰 수도 없다. 또 화상회의는 자연스레 길어지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집에서 근무하는 동안 생산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업무 공간과 개인의 공간, 그리고 가족의 공간을 완전히 구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다양한 방해요소가 발생한다.
한편 줌의 높은 피로도 때문인지 아날로그 라디오에 대한 추억 때문인지 해외에서는 클럽하우스라는 오디오 SNS 애플리케이션이 주목받고 있다. 누구나 방을 만들어 지인을 초대해 단체 통화를 할 수 있는 앱으로, 사실 이 기능은 카카오톡이나 줌에도 구현돼 있다. 그러나 클럽하우스에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이들과 대화해보고 싶은 사람들의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똑똑! 클럽하우스의 강점과 약점, 그리고 오디오 콘텐츠의 미래에 대해 자세히 다룬 적 있어요!
똑똑! 줌 회의, 힘드시죠? 피로를 최소화하는 방법에는  1️⃣ 멀티태스킹을 최소화하거나, 2️⃣ 쉬는 시간을 최대한 자주 가지는 것, 그리고 3️⃣ 회의시간을 미리 정해놓고 맞추기 위해 노력하며 가능하면 서면으로 소통하는 것 등이 있어요.

학교 생활: 학습 격차를 넘어


재택근무와 원격회의로 인한 줌 사용이 집중력 감소의 원인이었다면, 더욱더 심각한 문제는 원격교육으로 인해 학생들의 학습 성과에 격차가 생겼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학생에게 사실상 등교일이 평소의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원격교육이 늘어난 교육 현실로 다양한 형태의 학습 격차가 나타났다.
먼저 학생들 간의 학습 격차가 코로나19로 인해 더 커졌다는 인식은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 상당히 공유되고 있었다. 서울시 초중고등학교의 경우 설문에 답한 교사 중 84%는 학습격차가 더 커졌다고 응답했다. 전국 규모로 실시된 다른 설문에서는 비대면 원격 수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학습격차 심화가 집계된 것은 물론 그 원인 1위가 가정환경 차이(72.3%)로 꼽혔다.
구체적으로는 학생이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을 할 수 있는지 여부, 학부모가 얼마만큼 학습을 도와줄 수 있는 환경인지 여부, 학생이 사교육을 받는지 여부 등의 요소가 학습 결과의 차이가 벌어지는 데 작용했으며 이 요소들은 가정 소득과도 연관이 깊다.
가정환경의 차이는 일반학교와 비일반학교(자율형사립고 등)의 차이와도 관련이 있다. 전체 원격 수업 중 쌍방향 수업이 5.8%에 불과했던 일반 초중고등학교보다 자율형사립고·특수목적고 및 영재학교의 경우는 22.7%로 거의 4배에 달했다. 수업 중 학생의 집중도를 장담하기 어려우며 학습 성과도 떨어지기 쉬운 강의식 수업과 달리 쌍방향 수업은 준비하고 실시하는 교사의 디지털 역량과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다. 학비가 상대적으로 더 비싼 자율형사립고나 특목고 등에서는 쌍방향 수업 전환이 가능했지만, 일반학교의 경우 여의치 않았던 것이다.

공립고등학교에선 학교가 단순히 교육받는 장소이기 이전에 일종의 도피처인 아이들이 있어요. 집에서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거길 탈출해서 잠시 학교라는 공간에 몸을 맡기고 다른 친구들처럼 보통의 삶을 지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는 거죠. — 서울 한 고등학교의 교사

그러나 코로나19로 잃은 학교생활의 영향이 단순히 학습 성과의 차이로만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가정환경이 어렵거나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에게 학교는 생활, 건강, 관계, 정서 등 종합적인 교육기관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 등교해서 일정에 맞춰 생활하고 친구 및 선생님과 교류할 수 있었던 환경이 급작스럽게 변화하면서 늦잠을 자거나 식사를 거르기 쉽고 사람도 만나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학생이 원격수업이 길어지면서 "나는 대인관계에 실패한 사람"이라며 우울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장애 학생들에게는 온라인 수업이 어렵고 불편하다. 친구를 만날 수 없어 사회성이 떨어지게 되는 측면도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교육에 복지라는 질문이 던져진 셈이다. 일각에서 단순히 교육을 위한 학습체계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서 학생이 학교에 오지 않더라도 생활, 건강, 관계, 정서 등의 폭넓은 복지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많은 교사들과 학생들에게 더욱더 익숙해진 원격교육이 어떤 형태로든 남는다면, 복지라는 질문을 공동체가 완전히 외면하기는 어려워졌다.

활기: '코로나 청·적·흑'


교육 영역에서 상실한 것이 학습의 기회, 그리고 학교가 제공하는 다면적인 돌봄 및 사회적인 복지 기능이었다면, 많은 일반 시민들의 마음에 코로나는 우울증을 안겼다. 코로나19로 장기화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우울증을 뜻하는 '코로나 블루'는 이제 생활 속에서 쉽게 접하는 단어가 됐다. 전국의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응답자의 40%가 넘는 이들이 "코로나 블루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특히 여성 응답자의 50% 이상이, 그리고 남성의 34% 이상이 우울감을 겪었다고 답했다.
'코로나 블루'가 우울감에 해당한다면, '코로나 레드'는 분노에, 그리고 '코로나 블랙'은 암담함과 답답함에 해당한다. 취약계층의 경우 코로나19로 가정불화가 심화되고 10대 청소년 관련 사고는 높게는 10배까지 증가했다. 돌봄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 장애인과 노인도 있다.

경제적 어려움이 장기간 이어질수록 분노가 파도처럼 밀려왔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도 스스로를 짓눌렀다. —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디자이너 박씨

우울, 분노, 그리고 절망의 이유 중 가장 큰 요소는 경제적 타격이다. 특히 소상공인들의 월평균 매출액은 25% 이상 줄었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78.5%가 "만성피로·피곤함·우울감이 늘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외부활동이나 운동, 취미 등을 추천한다. 정부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정신건강을 돌보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5년간 2조원을 쓰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단순히 마음을 잘 다스리라는 조언이나 장기적인 심리 상담 서비스 제공만으로는 목전에 닥친 위기를 해결하기는 어렵다. 돌봄의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고 구성원 누구나 돌봄 제공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의 인식과 규범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똑똑! 혹시나 마음이 울적하고 힘드시다면 중앙일보에서 제공하는 우울증 테스트를 해보셔도 좋아요. 꼭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 놓아 보아요. 명상을 강력히 추천해요! 똑똑이 응원할게요!

의지: '조용한 학살'


"침묵의 함성을 들어라."* 고전을 읽을 때 행간을 잘 살펴 읽어야 한다는 취지의 말이지만, 코로나19로 많은 이들이 상실한 삶의 의지와 그 배경을 살피기 위해서는, 정말 침묵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중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목숨을 끊은 이가 늘었다. 그런데 이 중에 특히 젊은 여성의 비중이 높았다. 2020년 1월부터 8월까지 자살을 시도한 사람 중 20대 여성이 32.1%로 전 세대와 성별을 통틀어 가장 많았다. 2019년 상반기와 2020년 상반기 연령대 여성의 자살자 수를 비교했을 때 20대 여성의 수는 43% 늘었다. 거의 동일했던 30, 40, 50대 여성과는 대조적인 수치다. 20대 남성과 자살률을 비교해도 2016년 19.9%에서 21.6%로 소폭 증가한 20대 남성과는 달리 20대 여성의 경우 같은 기간 12.5%에서 16.6%로 증가 폭이 두 배가 넘었다. 분석에 따르면 20대 여성은 "우울, 강박,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 경험 비율이 굉장히" 높으며 현재 사회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한) 공부를 미루게 되고, 일을 하다 보면 공부를 놓게 되고, 그럼 안정적 일자리를 위한 공부는 못하게 되고..., 그럼 또 아무 일이나 하게 되고, 그럼 몸이 상하고, 그럼 병원에 가고, 병원에 가려면 일을 해서 생활비(병원비)를 벌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이 되고 있어요. — 91년생 A씨

경제적 기회를 이들에게 줬으면 달랐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해요. 지금은 몇 안되는 불안정한 일자리를 놓고 같은 20대 여성들끼리 경쟁하고 있거든요. — 97년생 B씨

이 의제를 공론장으로 끌어올린 이들은 '조용한 학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왜 '조용한 학살'이었을까. 특정 집단이 우울과 심리적 어려움을 호소한다면 그것은 개인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조용하게 떠나는 이들을 방치하는 사회라면, 이들을 어둠 속으로 몰아넣은 구조의 불평등이라는 책임에서 자유롭진 못하다.
특히 젠더는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의 성역할에 대한 기대치와 연관이 깊다. 많은 2030 여성들이 감정노동의 특징을 띠는 서비스 직군에서 일하고 있다.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고 배려해야 하는 업종이 남성성보다는 여성성과 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회적 인식과 무관하지 않은 경향이다. 대면 업무가 많은 서비스업종이 코로나19의 타격을 맞아 직업 안정성을 잃은 많은 여성이 우울을 호소하는 한편 그중 일부는 목숨을 끊는 선택을 했다. 저임금이며 불안정한 일자리에 의존해 "한 달 벌어서 한 달 사는 20대가 많기 때문에", 그리고 앞으로 나아지기 힘든 고용 상황을 유리천장과 차별로 느끼기 때문에 비관하는 여성이 많다는 분석이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11월 국무총리 주재로 자살예방정책위원회를 열고 2030 여성의 자살 대책 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20·30대 위기 여성 종합 지원 프로그램'을 꾸려 이미 존재하는 청년 여성들을 위한 취업 지원, 1인 가구를 위한 사회관계 지원 프로그램 등을 통합해 운영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특히 여성들이 비관하는 이유 중 하나인 우리 사회의 구조적 차별과 여성혐오를 개선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똑똑! 밀레니얼 젠더 미디어 슬랩의 영상 <'조용한 학살'이 다시 시작됐다>를 추천해요.

나가며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사회가 잃은 것을 모두 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집중력, 학교생활, 활기, 그리고 삶의 의지를 살펴보면 모두 불평등의 구조 문제와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줌 피로의 경우 개인 차원에서 대응이 가능하며 앞으로 기술개선도 기대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디지털 격차로 인한 원격 교육 참여 불균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또 학습 격차를 넘어선 교육 복지의 문제, 우울증뿐만 아니라 분노와 절망의 심리 상태, 그리고 특정 사회 구성원들의 의지 상실은 모두 공동체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 다음은 팬데믹의 극한 상황에서도 이어지고자 하는 마음으로 연대한 시민들의 이야기 '만질 수 없지만 닿아있는'으로 이어집니다.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김영민, 사회평론, 2019.
만질 수 없지만 닿아있는

에디터의 노트

말과 현실에는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언어는 따라잡으려 애써 속도를 올려보지만, 인간은 어떻게든 말보다 빠르게 현실을 바꿔나가죠. 언택트, 비대면, 거리두기 같은 단어가 현상을 설명하는 용어로 등극하는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연결되고 만나서 마음을 나눴습니다. 길이 없으면 가상 공간에 만들었고, 거리에서, 동네에서, 그리고 화상 채팅으로도 이어져 연대했어요. 다 끝날 때까진 손을 뻗어 만질 순 없더라도, 마음만은 계속 닿아있었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평범한 연대, 위대한 일상

지난해 출간된 팬데믹 SF 소설 <벌레 폭풍>에서는 '말벌모기'로 불리는 벌레들이 떼로 나타나 인간들을 물기 시작한다. 벌레에 물린 인간은 발열 증상을 일으키고 독감에 걸려 심하면 죽기도 한다. 빙하가 녹아 고대의 박테리아들이 살아 나오는 탓에 세상은 더욱 위험한 곳이 됐다. 인간은 거의 완전한 비대면 형태의 사회를 만들어내고, 타인과의 접촉을 이어가기 위해 '스크린 윈도우'를 발명한다. 줌 기능이 있는 이동형 스크린이라고 생각하면 되지만 VR 정도의 몰입감을 지니고 있다. 이 스크린 윈도우를 사용해서 멀리 다른 건물, 다른 방에 있는 가족과 함께 가상 산책도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 포포는 언제든지 벌레에 물릴 수 있는 위험을 뚫고 오랫동안 스크린으로만 만남을 이어왔던 연인 무이의 집으로 이동해 결혼하기로 마음먹는다. 팬데믹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은 마음, 더 나아가 이어진 사람과 삶을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라는 이종산 작가의 노트가 와 닿는 결말이다.


말벌 대신 코로나19가 날뛰는 현실 세계에서 포포처럼 타인과 이어지고 싶다면, 역설적이게도 상대와 거리를 두는 형식이 요구된다. 다른 사람과 이어지고 싶은 마음을 넓게 보아 연대라고 한다면, 코로나 시대의 연대는 적어도 손을 맞잡고 나란히 서서 걷는 형태를 띨 수는 없게 됐다.

역설적이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연대하는 방법은 모두가 흩어져, 거리를 두는 것입니다. — 2020년 8월30일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브리핑

악수 대신 눈을 마주치며, 함께 웃어도 마스크에 가려진 미소는 보이지 않고, 상대방을 배려한다면 1m 이상의 거리를 둬야 한다. '아낄수록 만져서는 안 된다. 사랑할수록 멀리 있어야 한다'는 역설은 그러나 시민들의 연대를 막지는 못했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돼


매년 여름이면 성소수자들이 모여 세계 각국의 대도시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벌인다. '프라이드 퍼레이드'라고 불리는 이 축제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와 얼라이(ally)들이 피켓을 들고 도시를 행진하는 행사다. 공연이 개최되는가 하면 관련 기관이나 단체에서 부스를 설치해 굿즈를 팔거나 나눠주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대규모 행사가 모두 취소된 상황에서 지난해 6월에는 닷페이스가 주도한 온라인 캠페인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가 열렸다.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코스튬과 머리 모양, 소품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경험을 재현하기 위한 '겟 레디 위드 미(Get Ready With Me)' 컨셉으로 UX(User Experience)를 기획한 것이다. 참가자는 이름을 적어 넣고, 머리스타일을 꾸미고, 옷을 고르고, 소품도 선택한 후에 이미지를 출력해 #우리는없던길도만들지라는 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에 올려 행진에 참여하게 된다.
캠페인 시작 13일 만에 8만6225명이 참여했다. 재미있고 다채로운 디자인과 창의적인 UX 설계 덕에 '정치적으로 올바른', 그렇지만 자칫하면 지루해지거나 교조적으로 될 수 있는 캠페인이 수많은 사람의 반응을 끌어낸 것이다. 온라인 퀴퍼 프로젝트 리더 김헵시바는 캠페인 전략이나 UX 기획보다도 "'우리가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모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퀴어 퍼레이드에서 가장 즐거운 경험이 어떤 것인지'"에 집중했다고 한다. 마치 UX에서 U(User)를 빼고 C(Common)를 넣어야 한다는 주장처럼 들린다. 헤쳐 갈린 이들을 어떻게 호명해 불러 모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도 읽힌다.
사실 행사를 기획하는 이에게 전략과 기획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조직과 기획자는 진정성을 담아 행사를 준비하더라도, 참여하는 이에게 얼마만큼 마음이 가 닿을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전략보다 본질에,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고, 구성원들의 지지와 합의도 중요하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행사의 '문법'을 재해석해야 하는 기획자에게 새로운 시도는 광활하고 차가운 사이버 공간에서 하염없이 간절한 마음을 적은 편지를 빈 병에 담아 흘려보내는 일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을 위한 연대인지 고민해 어떻게 진심을 담을지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다.


눈오리에 숨겨진 의리


코로나19와 갑작스런 한파 및 폭설로 모두가 떨던 2020년 겨울, 오리 떼가 한국의 거리를 습격했다. 눈뭉치 제조기 매출은 2020년 12월24일부터 올해 1월6일까지 2주간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거의 20배로 늘었다.
눈사람은 보편적이다. 문화를 막론하고 눈이 내리는 곳이라면 눈사람을 만드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저 머나먼 겨울왕국에서도 공주님이 눈사람을 만들자며 방문을 두드리기도 한다. 눈으로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데 왜 오리였을까? 오리는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만들기가 쉽다. 지금까지 대표적인 '눈 피조물'이 크고 작은 눈덩이 두 개를 붙인 눈사람이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된다.
'사회적 자본'이란 말이 있다. 사회적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시민들 사이의 연결고리라 말할 수 있는데, 자발적인 모임의 수를 측정하는 방식으로 정량화되는 경우도 있다. 단순하게 보면 신뢰에 가깝다. 돈이나 권력이 정치와 권력의 통화라면, 신뢰는 사회의 통화다. 학자들은 시민들 간의 사교 모임이나 각종 단체가 많은 사회는 그렇지 않은 곳보다 더 자발적인 협력이 많고 갈등을 예방하거나 해결하기 수월할 거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자발적인 눈오리 만들기 열풍을 사회적 신뢰로 해석할 수 있을까? 내가 만든 눈사람과 눈오리를 뒤이은 사람이 부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보면 어떨까. 저녁에 일을 끝내고 돌아오면 종일 귀여움을 뿜뿜대며 기다려준 오리가 나를 반겨줄 것이라는 기대심. 길가에서 누군가 만들었을 눈오리를 마주쳐 그 귀여움을 음미하노라면 하루 내내 웃을 힘을 받은 기분이다.
눈오리는 코로나19로 도래한 비대면 사회에서도 만들어 함께 즐기기 좋은 조각물이다. 잠시 마스크를 쓰고 나가서 만들어놓기만 하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이들이 함께 보며 즐길 수 있다. 코로나19와 한파가 지배한 지난 겨울, 여느 해보다도 눈오리가 뉴스를 장식한 것은 사람들의 '이어지고 싶은 마음'의 방증은 아니었을까.

만남의 기쁨과 나눔의 희열


"혹시... 당근이세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만남이 제한된 지난해, 많은 이들은 중고거래라는 이름으로 인연을 맺고 친절한 마음을 나눴다. 친절한 이웃과 정중한 인사를 나눈 것이 언제였던가. 코로나로 인해 더욱 고립된 사람들이 사회적 거리를 잠시나마 좁혀 만나고, 웃고, 마음을 나눌 방법은 집 어딘가에는 남아 있는 중고물품을 파는 것이었다. 지난해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을 살펴본다.
사실 당근은 '당신의 근처'라는 뜻이다. 거래 가능한 이용자 반경은 6km 이내로 제한된다. 창업자들은 차로 10분 내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여야만 했다고 설명한다. 전국을 6500개의 구역으로 쪼개 나눴고, 사용자는 거주지 인증을 해야만 해당 지역 플랫폼에서 물건을 팔 수 있다.
중고거래는 코로나 '특수'를 누렸다. 지난해 당근마켓의 거래액은 1조원가량이었다. 월간 활성 이용자(MAU)는 2018년 100만명, 2019년 300만명, 2020년 1300만명을 기록했다. 3년 사이 활성 이용자가 13배 늘어난 것이다. 2019년에 비해 지난해에 사용자 수 3배가 넘는 증가폭을 기록한 이유는 경기 침체와 수익 감소로 인해 소소한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한 시민들의 중고 거래 활성화로 볼 수 있다. 또 집안의 잡동사니를 처리하는 '정리 문화'의 확산도 당근마켓의 약진에 일조한 요소다.
그러나 이런 증가 폭을 단순히 '용돈벌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도 있다. 당근마켓 플랫폼 내의 무료나눔은 2018년에 14만, 2019년에 41만여회이던 것이 2020년에는 215만회가 넘었다. 단순히 계산해도 이용자 수의 증가폭보다 더 빠르게 증가했다는 것이다. 단지 사용자가 늘었기 때문에 무료나눔도 덩달아 늘었다고 보긴 어렵다. 게다가 2020년의 대부분은 코로나19로 인한 거리두기 기간이었다. 어떻게 비대면 세태를 거스르며 '역주행'한 무료 나눔의 큰 증가 폭을 설명할 수 있을까.
당근마켓은 판매보다 연결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첫째로 당근마켓에 올라와 있는 중고품들은 가격이 5만원 이하인 경우가 많다. 옷가지, 신발, 아이들을 위한 책이나 장난감, 컵이나 액자와 같은 생활용품 등 직접 사람의 손때를 탄 물건들이 주로 눈에 띈다. 비싼 전자기기, 고가의 의류, 가죽제품은 드물다. 둘째, 당근마켓은 간편하게 디지털화돼 캐시나 코인으로 거래하고 배송을 붙이는 서비스가 아니다. 6km 내이지만 걷거나 운전해서 직접 사람을 만나 거래한다. 효율보다는 연결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셋째,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깨끗한 돈과 봉투를 준비하고 정성스레 편지까지 써서 물건을 판매하는 이들도 있다. 빠른 응답이나 존댓말 사용, 거래지 선택에 대한 상대방 배려, 간식이나 덤으로 안 쓰는 물건을 주는 '럭키백'까지 고려하면, 정말 이 모든 일을 '용돈벌이'로 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시급으로 계산해도 남는 장사가 아니다.
사용자들은 동네 사람과 친절하게 웃으며 연결된다. 코로나19로 마스크와 거리두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이웃의 정이 그리웠던 것은 아닐까. 만나고 나누는 경험을 통해 얻는 뿌듯함과 삶의 변화를 위해 그다지 현금 가치가 높지 않아도 자신이 필요하지 않은 물건을 타인에게 건네주는 게 아닐까. 말하자면 판매 그 자체보다는 교류 경험 및 감정의 가치를 중시하는 것이다. 누군가와 마음이 닿아 감염병의 시대를 돌파할 힘을 얻는다.

코로나 시대의 사랑


한편 비대면 시대의 솔로들은 어떨까? 사랑은 하고 있을까?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 4~6월 혼인 건수가 전년 대비 16.4% 줄었다. 방역지침으로 결혼식에 많은 제약이 뒤따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국내에선 줌을 통한 소개팅 '줌개팅'이 늘었다. 업체가 미리 신청자들의 가치관, 성격, 취향 등의 정보를 파악해 적절한 상대와 짝지어주는 방식이다. 대화할 주제나 질문을 사전에 정하는 경우도 있다고. 대체로 "어색하지만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카메라와 모니터 화면을 계속 응시해야 하는 점, 표정이나 손짓과 같은 비언어적 요소로 소통하기 어려운 점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많은 이들이 이미 줌으로 회의를 하거나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등 연애 바깥의 인연을 만들고 이끌어가는 방식에는 익숙하지만, 화상으로 호감을 발전시키는 과정이 순탄할지는 의문이다.
업체가 아닌 앱을 통해 만나는 방법은 더 가볍고 선택폭이 넓어서 인기다. 소개팅 앱 '틴더'는 지난해 4분기 590만명에서 올해 2분기 620만명으로 유료가입자 수가 증가했다. 익명으로 만나 호감을 쌓아가며 자신에 대한 정보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얼마간 봉쇄령이 내려졌던 미국의 경우 화상 채팅앱을 통한 만남이 늘었다. 아직 어색한 사이에 불편할 수 있는 '누가 돈을 낼 것인가'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스킨십을 못 하므로 때문에 자연히 진도도 천천히 나갈 수밖에 없다. 감정 소모가 줄어들고 관계의 만족도가 오르게 된다. 봉쇄로 출퇴근 시간이 줄어 대화할 시간도 늘었다. 팬데믹으로 겪고 있는 걱정이나 고민과 같은 다양한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스치는 인연들과의 연대

소셜 네트워크가 확산되며 느슨한 연결(Weak ties)이라는 말은 경제 트렌드 분석 용어가 됐다. 가족, 친구, 학연, 지연 등과 같은 전통적인 연결방식에서 만족감보다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는 이가 늘어나면서 가볍고 일회적인 관계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를 중심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 앱이나 가벼운 만남 등을 통한 '쿨한 만남'을 추구하는 경향과도 연관이 깊다. 자만추(자연스러운 만남 추구)라는 키워드는 느슨한 관계에 대한 선호뿐만 아니라, 만나고 연결되는 방식까지 포괄하는 중요 키워드가 됐다.
비대면 사회, 뉴노멀, 포스트 코로나 등 언론과 학계가 거대한 담론과 추측을 쏟아내는 중에도 사람들은 길이 없으면 만들어 사이버 공간에서 축제를 벌였다. 길을 걷는 이들을 위해 귀여운 오리를 만들어 전시했다. 정성을 다해 물건을 준비하고 무료로 나눔 할 소소한 것들을 준비해 중고물품을 거래한 이들도 있다. 방 속에 갇혀서도 화면으로 만나고 인연을 쌓아 사랑을 싹틔웠다. 소설 속 주인공 포포처럼, 인간은 이어지고 싶어 하는 존재다. 감염병도, 마스크도, 사회적 거리두기도 마음만은 막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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