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과 나토정상회의
윤석열 대통령 생각과는 다른 나토 정상회의 의미
언제나처럼 잡담 와중이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중,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방문(!?)에 대한 기사를 써달라는 죽지않는돌고래 편집장의 요청을 받고 눈만 껌벅였다. 잡담할 때야 이 얘기, 저 얘기 다 나오지만 막상 글로 정리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시대가 변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시대는 변하고 있다. 그 한 가운데를 지나가고 있다. 끓는 물 속의 개구리라고 해야 할까.
윤석열 대통령의 말처럼,
"얼굴 익히는 자리"
는 절대로 아니다. 그의 말처럼 39개 국가의 정상들을 모두 만나야 하는 다자외교의 한복판이었기에 얼굴 익히기에도 빠듯했을 수 있다. 만약 그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나토에 갔다면, 우리는 정말 심각한 위협에 직면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레토릭 또는 수사가 아니다. 실제 위협이다).
그 '위협'에 대해 몇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설명을 하려고 한다. 그 전에 전제 2개만 걸어놓고 시작하겠다.
첫째, 윤석열 대통령과 그 부인을 둘러싼 의전 문제나 기타 소소한 에피소드는 무시하겠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가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버거웠으리라 본다. 다자외교는 외교의 꽃이자, 한 국가의 외교 역량을 가늠할 수 있는 잣대다. 일대일로 만나는 양자 외교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런 전쟁터의 한복판에 당사자도 아니고, 초청받아 간 상황.
더구나 당사자는 외교 경험이 전무하다. 그의 입에서 '얼굴 익히는 자리'라는 발언이 나오는 게 무리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소한 에피소드들은 이 회의의 '역사적 무게'를 생각한다면 가볍게 웃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김건희 여사가 팔을 앞뒤로 흔들든, 윤석열 대통령이 눈을 감고 사진을 찍든, 노룩 악수의 굴욕을 받든 말든 그건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국격의 문제는 잠시 잊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문제다.
진짜는 따로 있다. 우리는 본제(本題)에 집중해야 한다. 언론에서는 노룩이니, 눈을 감았네, 무시 당했네, 라며 호들갑을 떨지만, 더 중요한 건 2022년 6월 28일 열린 역사적인 나토 정상회의가 한국에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둘째, 이번 나토 정상회의 주인공은 '에르도안'이었다.
튀르키예는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도 여지없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회담 내내 나토 정상들은 에르도안에게 끌려다녀야 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나토가입이 가장 첨예한 쟁점 사안이었던 이번 정상회의에서 에르도안을 설득(?!)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에르도안과 튀르키예에 대해 더 알고싶은 분들은 이전 연재를 참고하시라. 전쟁, 나토, 튀르키예 1-6편(링크))
나토 사무총장과의 면담이라든가, 한국-핀란드 정상회담이 취소된다거나 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넘어가자. 이 모든 게 에르도안 때문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윤석열 대통령을 탓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이건 대한민국 국격의 문제가 아니다. 튀르키예와 에르도안의 외교력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윤석열 대통령까지 영향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왼쪽부터 옌스 스톨텐베르그 NATO 사무총장,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사울리 니니스퇴 핀란드 대통령,
막달레나 안데르손 스웨덴 총리.
사진 출처-<로이터>
그럼 본제(本題)에 집중해, 하나씩 나토 정상회의의 의미를 짚어보자.
2022년 6월 28일 있었던 나토 정상회의를 말하기 전에 2022년 6월에 있었던 국제 사회의 숨 가쁜 움직임들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나토 정상회의에 대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중요한 사건 몇 개를 말해야겠다.
① 브릭스 또 하나의 축으로
- 6월 22일부터 24일 브릭스 정상회의
2022년 6월 22일부터 24일까지 중국 외교부 주관으로 브릭스(BRICS :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가 있었다. 이 회의의 핵심 주제는 23일 회담을 마치고 나온 '베이징 선언'이었다.
"우리는 토론을 통해 브릭스 회원 확대를 추진하는 것을 지지한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이 모여 노는 곳에 다른 나라가 기웃거린 거다.
"야, 우리 여기 붙어도 돼?"
"어? 진짜? 우리랑 같이 놀고 싶은 거야?"
"응, 저것들이 자기들끼리 다 헤쳐 먹겠다고 우리를 무슨 찐따 꼬붕 취급하잖아."
"진짜? 너희 고생 많았겠다. 우리는 언제나 환영이지!"
이렇게 튀르키예·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가 브릭스의 문을 두드린다. 이 움직임은 눈여겨봐야 한다. 처음 브릭스(BRICs)란 용어가 만들어진 게 2003년이었다. 당시 골드만삭스는
"러시아·브라질·인도·중국 이 네 나라가 새로운 경제 대국이 될 거다. 2039년이 되면 지금 시장의 맹주인 G6를 모두 추월할 것이다."
라고 예상하며 신흥시장에 투자하라고 말했다. 이제 이 브릭스는 경제적인 목소리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블록화 되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기에 튀르키예와 사우디가 붙겠다고 나섰다. 튀르키예는 지난 기사에서도 언급했지만, 언제나 자신들의 이익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이 아니던가?
"지금 다른 쪽에 한 발 걸쳐 둬야 해! 나토에도 한 발 걸쳐서 미국이랑 유럽 쪽에 선을 닿아놓고, 브릭스에 들어가 러시아 중국하고도 한발 걸치는 거야! 지금 다져놓지 않으면, 나중에 우왕좌왕할 거야! 얼른 브릭스 들어가자!"
라는 발 빠른 계산으로 브릭스에 다가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지금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의 관계는 최악이다.
"아니, 지가 뭐라고 날 욕해? 살다 보면, 말 안 듣는 놈 죽일 수도 있는 거 아냐?"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자말 카슈끄지를 암살한 게 문제였다. 바이든은 이 사건에 대해 '너무' 나갔다.
반왕실 인사이자 언론인이던 카슈끄지(오른쪽 인물)는
지난 2018년 이스탄불의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됐다.
카슈끄지는 미국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왕세자를 비판했던 인물이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왕따 시켜야 해! 저것들 저거 사람 새끼들 아냐! 어떻게 사람을 토막 내 죽여? 사우디에는 무기도 안 팔 거야!"
이렇게 설레발친 게 바이든이었다. 그와 정반대로 자국 내에서 살인 사건을 목도한 에르도안은 뭔가 조처할 듯하다가,
"아니 뭐 살다 보면 사람 죽일 수도 있지 뭐. 음... 그래, 카슈끄지 살해사건에 연루된 사우디 용의자 26명은... 이거 사우디아라비아 문제잖아? 이것들 다 사우디 법원으로 이첩해!"
2018년 10월 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있었던 카슈끄지 살해 사건은 2022년 4월 양국의 극적인 화해로 종결짓게 됐다. 그도 그럴 게 튀르키예는 지금 인플레이션 때문에 나라가 난리 난 상황이다. 사우디도 언제까지 이 문제를 질질 끌고 갈 수는 없었다. 게다가 양국은 자기의 이웃에 있는 이란이 미국과의 핵 합의(JCPOA : 포괄적 공동 행동계획) 복원 협상 타결을 앞두고 있어서 서로 파트너가 필요했다.
"씨바,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다시 국제사회에 복귀하면 지역 안보가 흔들려! 지금 수니파들끼리 뭉쳐야 해. 우리도 친구들끼리 뭉쳐야 해!"
이런 상황에서 수니파 국가들의 맹주 격이며, 나름 힘 좀 쓴다고 하는 사우디와 튀르키예가 손을 잡은 터다. 바이든은 이미 대통령 되기 전부터,
"빈 살만 저거 사람 새끼 아냐!"
를 외쳤던 상황이다. 빈 살만(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다. 현재는 국방장관과 제2부총리를 역임하고 있다.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의 아들이며 왕위 계승 서열 1위이자 사우디의 실세다. 자산규모는 만수르의 수십 배로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이끌고 있다)이 미국과 함께하기는 어렵다. 바이든은 사우디가 왕조 국가임을 간과했다. 더 큰 문제는 사우디가 석유 증산에 미온적이란 거다. 전 지구적인 인플레이션 위기 속에 석유라도 증산해서 물가를 잡아야 하는데, 사우디가 협조적이지 않다. 무슨 문제 터질 때마다 사우디에 다가가 석유 증산을 하라고 말하는 미국이 눈꼴시린 거다(실제로 사우디는 미국 말 듣고 증산했다가 피 본 경우가 있었다).
빈 살만
출처-<위키피디아>
"아니, 씨바 무슨 문제 있을 때마다 우리보고 증산하라고 해! 너희는 증산 안 하고 우리만 해서 피 보게 만드는데, 우리가 너희 꼬붕이냐?"
결국 OPEC+는 오는 7~8월 원유 생산 규모를 하루 64만 8,000배럴로 기존보다 50% 늘리기로 6월 2일 합의는 봤다. 문제는 사우디가 이래 놓고 원유가격은 올리기 시작한 거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유의 60% 이상을 한국·중국·일본 등 아시아 시장에 수출한다. 사우디가 미국 시장에 수출하는 아랍 경질유는 기존 가격을 유지했는데, 아시아 국가와 유럽에 보내는 물량의 가격은 대폭 올린 거다.
더불어 사우디도 이제 슬슬 다른 '구멍'을 파기 시작한다. 여기에 브릭스 가입 이야기가 나온 거다.
"미국 놈들 언제 뒤통수칠지 몰라! 우리도 친구들 만들어 놓자. 우리 혼자선 버겁지만, 떼거리로 덤비면 미국도 함부로 하지 못할 거야!"
브릭스의 핵심이 중국·러시아·인도다. 국제정치학자들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보는 것 중 하나가 중국·러시아·인도가 손을 잡는 경우다. 중국과 인도는 국경분쟁 등등으로(심지어 전쟁까지 한 나라가 아닌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고 있지만, 만약 이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뭉칠 수만 있다면...
"유럽 vs 유라시아 전선 형성"
이라는 최악의 형세가 된다. 여기에 사우디와 터키가 붙고, 한반도의 9배에 달하는 땅덩이에 2억 4,0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인도네시아까지 붙는다면?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슬슬 보이지 않는가? 세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② 6월 26일 G7 정상회의
나토 정상회의 직전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캐나다의 G7 정상회의가 독일에서 있었다. 이때 주요 회의 의제가 우-러 전쟁 때문에 폭등한 곡물 가격 안정이나, 우-러 전쟁에 대한 대책 등등(러시아 금을 어떻게 할 것이냐 등등)이 있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 정상회의에 인도·인도네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세네갈이 초청됐다는 거다. 특히 주목해 봐야 하는 건 인도다.
2022년 G7 정상회의에서 모디·바이든·트뤼도.
화기애애하다.
출처-<인도 총리실 트위터>
인도를 왜 초청했던 걸까? 간단하다.
"인도야 너희 왜 그래? 응? 러시아 저거 사람 새끼 아니다. 가만히 있는 우크라이나 막 패고 다니잖아. 사람이라면, 우크라이나 편을 들어줘야 하지 않냐?"
"야, 우크라이나 애들 살리자고 우리 애들 죽여야 하냐?"
툭 까놓고 말하자. 지금 러시아 석유가 어디로 팔려나가고 있을까? (한국도 러시아 석유 산다. 물론 대놓고 사는 게 아니라 건너건너 쿠션 먹여 들여오지만) 바로 아시아다. 지금 러시아를 살려주는 건 중국과 인도다. 원래 중국의 최대 석유 수입처는 사우디였는데, 지금은 러시아가 이를 빼앗았다. 여기에 인도... 인도는 우-러 전쟁 전보다 무려 25배나 많이 러시아 기름을 사들이고 있다.
"야, 북해 브렌트유보다 배럴당 37달러나 싼데 이걸 왜 안 사? 가뜩이나 경제위기다, 인플레이션이다 난리 났는데... 정의는 너희들끼리 지키고, 우리는 우리 국민들 삶의 질이나 지킬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G7 정상들이 부랴부랴 인도를 찾은 거다.
"인도야, 러시아 저러는 거 이번 참에 버릇을 고쳐야 해 응? 인도야 뭐가 필요해 응?"
인도는 모르쇠로 귀를 닫고 있다. 당장 싼 기름값도 기름값이지만, 인도 군사 장비의 상당 부분이 러시아에서 넘어온 거라(물론, 러시아에 사기도 많이 당했지만) 관계가 틀어지면 그 이후를 보장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었다.
전 세계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거다. 러시아가 당긴 방아쇠가 전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인도가 중국 러시아에 붙어서 유럽 對 유라시아 구도가 완성되면 미국의 구상은 완전히 박살 난다. 지금 인도는 쿼드에 한 발을 들이민 상태지만, 만약 인도가 중국과 러시아에 붙고, 튀르키예가 브릭스를 통해 중국 러시아와 가까워지면 어떻게 될까? 당장 인도양이 중국에 넘어간다. 그러면 미국의 對 중국 포위망은 무너진다. 중국의 일대일로가 힘을 받게 된다.
튀르키예가 러시아에 붙으면, 흑해가 열리는 건 둘째 문제고, 중동이 위협받는다. '기름'이 위협받게 되는 거다. 그러한 터에 지금 인도가 러시아 기름이 싸다고 잔뜩 사들이는 것도 모자라 러시아와 짝짜꿍하고 있다.
"외교 이렇게 하는 거예요, 여러분"
미국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이어지는 터다.
G7은 부랴부랴 정상회의를 마치자마자 스페인으로 건너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당연히 한가하게 얼굴 익히러 나토 정상회의에 간 정상들은 없다.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시대의 흐름을 감지하고, 이 안에서 어떻게 하면 국익을 하나라도 더 챙길까 덤벼들었던 게 이번 나토 정상회의다.
1. 시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시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와 같은 세상이 아니라 완전 다른 세상으로 접어든 거다. 빈말이 아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NATO, 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이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 대해 말할 때 ‘전환기적 정상회의(transformative summit)’가 될 거라고 말한 걸 주의 깊게 바라봐야 한다. 회의 전부터 나토 정상회의 관계자나 참석한 이들은,
"이번 회의 때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움직일지 결정된다."
라는 각오로 모인 거였다. 다시 말하지만, 얼굴 익히러 간 사람 없다.
나토의 전략개념(Strategic Concept)은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나토 회원국들 간의 의견충돌을 봉합하는 수습책이기도 하다.
계 모임을 하나 해봐도 서로 지지고 볶고 하는 게 인간 사이다. 그 많은 나라들이 뭉쳐 있는데 말들이 왜 안 나왔겠는가. 프랑스 같은 경우는 나토를 탈퇴하면서 독자노선을 걷기도 하지 않았는가. 이게 비단 프랑스뿐만 이겠는가.
2022년 나토 정상 회의
출처-<NATO 홈페이지>
1949년 4월 창설 이후 나토 안에선 수없는 반목과 부침이 있었다. 그런데도 나토는 북대서양조약 체결 이후, 단 한 번의 수정도 없이 조약을 잘 지켜왔다. 그 핵심에는 바로 전략개념(Strategic Concept)이 있었다. 이 전략개념이 뭐냐면, 처음엔 군사적 전략이었다(물론, 정치적 의미도 포함돼 있지만).
1952년 12월에 나온 '전진 방위전략', 1957년 5월 '대량보복전략', 1968년 1월 '유연반응전략'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전략개념은
"소련 놈들이 내려오면 어떻게 대응할지 정리하자!"
라는 거였다. 이름만 들어봐도 딱 느낌이 올 거다. 대량보복전략이니 유연반응전략이란 걸 보면 냉전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자, 문제는 1991년 전략 개념(1991년과 1999년의 전략개념은 묶어서 말하는 게 맞을 거 같다)부터 문제가 터졌다.
"어... 소련이 무너졌네?"
나토가 싸울 적이 사라진 거다. 싸울 적이 사라졌으니 나토도 붕 뜨게 됐다(러시아가 나토에 들어오면 안 되냐고 할 정도로 ‘요상한 상황’이 연출되던 시기다). 이 시기 나토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그 결과...
"우선 군사비 지출을 좀 줄여도 될 거 같고..."
"우리가 원래는 서유럽의 안정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었는데, 이제 중부 유럽과 동부 유럽 쪽에도 신경을 쓰자."
"그래. 하는 김에 민주주의도 전파해서 좀 사람답게 살게 해보자."
"테러리즘도 문제니까 잘 살펴보고..."
이런 상황에서 1999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코소보 사태가 터졌다.
"아니, 저것들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인종청소를 해?"
"이거 나토인 우리가 그냥 지켜봐야 해?"
"아니!"
나토가 자기 방위 영역을 넘어서 지역에 나아간 거다. 이렇게 나토는 하나의 지역 중추로 뻗어나가게 된 거다. 그리고 대망의 2010년 제7차 전략개념(Strategic Concept)이 등장하게 된다. 이때쯤 되면 회원국이 28개국이나 돼서 뭔가 통일된 목소리를 내기 어려워졌다. 그리고 안보 위협의 성격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그렇다. 911 테러가 터진 거다. 이제 새로운 형태의 안보 위협에 대응해야 했다. 문제는 2008년 불어닥친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때문에 다들 호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다.
이때부터 유럽 국가들은 미국에 은근슬쩍 안보를 기대기 시작했다.
NATO 유럽 회원국과 러시아.
스웨덴과 핀란드가 가입함으로써
2022년 7월 현재, 총 32개국이 되었다
2. 최근 10년, 나토의 분위기
격세지감이라는 게 2010년 나토의 전략개념 모태가 돼 주는 게 올브라이트 보고서(Madeleine Albright Report : 국제정치의 대모 故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만든 거다)인데, 여기에 보면
"러시아랑 협력을 해야 해. 일종의 전략적 파트너쉽을 맺고, 잘 지내보자고."
이런 내용과,
"집단방위를 위해선 미사일 방어를 해야 해."
대목이 나온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러시아랑 잘 지내보자는 말이 나왔는데... 정말 세상사 모를 일이다(2010년 나토 전략개념에도 러시아는 ‘전략적 파트너’로 나오게 된다). 이걸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나토의 시작은 지역 내 안보 방위 동맹이었다. 그러나 2010년이 되면서 전 지구적인 안보 동맹의 형태로 변한 거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인 기능이 확대"
됐다는 거다.
이 당시 나토 구성국들 사이에서 첨예한 갈등이 본격화되기도 했다.
"아니 나토란 게 유럽 내에서 서로 품앗이해서 공동 방위를 하자는 거 아니었어? 우리가 언제부터 지구방위군 역할을 했다고 그래?"
"유럽 안만 지키면 되는데, 왜 나토 국가 아닌 나라 분쟁에 개입해야 하고... 그리고 중동은 왜 가는 건데?"
재스민 혁명 당시, 나토군이 리비아 사태에 개입할 때 말들이 많았다. 고려해야 하는 게 있다. 초창기 나토와 달리 당시만 해도 나토 가입국 숫자가 28개국으로 훌쩍 늘어난 상황이 된 것이다. 나토를 주도하는 국가의 ‘생각’과 그렇지 않은 가입국 간의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때쯤이면 ‘브릭스’에 대한 눈치를 슬슬 보게 됐다는 거다.
"이렇게 계속 유럽 밖으로 돌면 브릭스 애들도 슬슬 짜증 내 할 거 같은데?"
"그러게, 브릭스 애들도 지들끼리 뭉치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이렇게 치고 나가다간 충돌 일으킬 거 같은데..."
"다른 건 모르겠고, 유럽 지키는 것도 아니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는 거 반대! 유럽 지키는 것도 아닌데 분담금을 왜 내야 하는데? 내가 지구 방위군 하겠다고 나토 가입한 줄 알아?"
슬슬 이렇게 분위기가 갈라졌던 게 이 시점이었다.
3. 이번 나토는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었다
2022년 6월 나토는 또 하나의 전략 개념을 내놓았다. 이번 전략 개념의 핵심은,
"러시아는 나토에 가장 큰 안보 위협이다... 한 마디로 나쁜 놈이다!"
"중국은 체제에 대한 도전(systemic challenge)을 하는... 애들이야."
라는 것. 이걸 종합해 보면,
"당장 발등에 불 떨어진 건 러시아고, 중국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손 봐야 할 놈들이야."
란 말이 된다. 이제 중국도 나토의 ‘적’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터다. 이걸 말하는 자리에 윤석열 대통령이 자리한 거다.
출처-<NATO 홈페이지>
윤석열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 전후, 중국의 관영 언론과 중국 외교부는 한국에 대해 어마어마한 경고를 날렸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나토의 지리적 범주가 아니지 않은가?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와 국민은 군사 집단을 끌어들여 분열과 대항을 선동하는 어떤 언행에도 결연히 반대한다!"
- 중국 외교부 대변인 왕원빈의 6월 23일 자 발언 中 발췌
"윤석열 정부가 미국에 의존해 점차 외교적 독립성을 상실하면 중국과의 관계는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 6월 28일 자 中 발췌
중국의 날 선 반응들이 하나둘씩 쌓여나가고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미국에 치중한 외교정책을 말해왔다. 이건 잘 생각해 봐야 하는 게, 어차피 한국은 조만간 미국과 중국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 시기를 앞당긴 건지, 아니면 이참에 확실히 노선을 정해 놓은 건지 그 사정이 애매하다는 거다. 윤석열 대통령의 머리 속에 들어가지 않은 이상,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정보로는 어떤 ‘인센티브’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철학도 없이, 무턱대고 미국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향후 한국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결정 중 하나인데 말이다.
늘 말하지만, 국내 정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정치를 끌어들이는 것처럼 최악의 지도자는 없다.
중국에 있어서 한국은 상당히 독특한 지위의 국가이다. 당장 원유나 원자재를 제외하고, 중국과의 무역에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국가가 많지 않다. 그중에서 한국은 상당히 독보적인 존재이다. 이런 나라의 수장이 대통령 당선 전부터 미국과의 관계 복원하겠다고 선언했던 거다.
이건 단순히 감정적인 문제가 아니다. 지면을 통해 자주 언급한 <거대한 체스판>... 이미 사반세기 전에 브레진스키 교수는 한국의 선택에 대해 말해왔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지금 ‘선택’을 한 거라면, 최소한 에르도안이나 인도 모디 총리처럼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한 후에 선택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현재로서 한국은 그 모든 카드를 날려 버린 듯하다.
왼쪽부터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바이든,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출처-<NATO 홈페이지>
이 중차대한 시기에 한국은 외교적 퇴로를 차단해 버리고, 미국에 모든 걸 걸어버린 거다. 물론, 어느 순간에는 선택해야 했고 그게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될 확률은 높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섣불리 내놔야 했을까? 내가 충격을 받았던 건 윤석열 대통령이 나토 정상회의 회담 성과에 대해 말한 대목에서였다.
"한미일 3자 정상회담이 이번 순방에서 가장 의미가 있는 일정이었다."
- 윤석열 대통령이 귀국길에서 했던 발언
이 말을 들었을 때 눈만 껌벅였다.
"... 이건 아니잖아"
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퍼즐이 맞춰졌다.
4. 모든 판돈이 사라졌다
2022년 5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과 일본을 찾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취임 이후 최단 기간에 한미 정상회담을 했다며 자화자찬하는 분위기였다. 이 당시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들어보자.
"안보는 결코 타협할 수 없다는 공통의 인식 아래 강력한 대북 억지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동맹 강화와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참여하겠다고 밝히게 된다. 그리고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 : Indo-Pacific Economic Framework)’ 참여가 공식화됐다.
IPEF는 간단히 말해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출범시킨 경제협의체다. 중국은 IPEF를 두고는,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려는 시도다!"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인다... 이게 뭔지 대충 느낌이 올 거다.
출처-<바이든 대통령 인스타그램 캡처>
너무 쉽게 움직이는 느낌이 든다(반도체나 그런 건 다 빼고 이야기해보자). 이후 바이든은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회담한다. 이때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들어보자.
"일본의 방위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바탕이 되는 상당한 방위비의 증액 결의를 표명했고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강한 지지를 얻었다. ··· (중략) ··· 적 기지 공격 능력을 포함해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겠다."
기시다 총리의 발언에 대해 바이든은 쌍수 들어 환영했다.
그럼 기시다 총리는? 나토 정상회의 내내,
"대북 억지력 강화를 위해 한미일 공조 강화가 필수 불가결한 문제이다."
"(북한) 핵실험이 이뤄진 경우, 공동 훈련을 포함해 한미일이 함께 대응하고자 한다."
아주 노골적으로 한미일 동맹을 깔아놓고 이야기 했다. 한미일 공조가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이 정도로, 그것도 일본이, ‘대놓고’ 말한다는 건, 그동안 국제정치와 전략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알 테다.
"일본의 이익에 완벽히 부합하는군!"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총리
그렇다면, 한국 측 입장은 뭘까? 윤석열 대통령의 워딩 그대로를 들어보자.
"한미일 간 북핵 위기 관련 안보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위험한 발언이 나오기 시작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어떤 생각으로 이 말을 했던 걸까? 기다 아니다 떠나서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뭘 가져갔던 걸까? 당장 바이든은,
"대서양과 태평양의 민주주의 동맹과 파트너들이 한데 모여 우리 미래의 도전에 집중했습니다. 중국 등의 도전들에 대응해 규범에 입각한 질서로 수호했습니다."
-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연설 中 발췌
이 연설을 잘 살펴보면,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가 나토의 태평양 파트너국이 된 이유가 나온다. 이들은 이제 중국과 대놓고 적대시하겠다는 거다. 호주와 일본은 원래부터 그런 나라니까(오커스에, 쿼드에, 파이브 아이즈... 등등) 그러려니 하자. 한국이 여기에 들어선 거다. 대놓고 중국에 칼을 들이민 터다. 그렇다면, 그에 상응할 만한 대가가 돌아온 게 있을까? 대표적인 예가 나토 사무총장과의 회담이었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 핵... 이거 진짜 위험하다. 한국 정부가 내놓는 대북정책... 이거 너희도 잘 알지? 이거 관심 좀 가져주고, 그래 협력 좀 해 주라."
라고 말하니까 사무총장은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는 언제나 한국 정부 입장을 변함없이 지지한다. 앞으로도 쭉 계속 공조하자. 오케이?"
이런 반응이 돌아왔다. 정말 쌀로 밥 짓는 이야기가 계속 돌아왔다.
윤석열 대통령과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한테도 북한 핵 문제를 이야기했다. 돌아온 대답은,
"그럼 그럼, 우리는 너희 편이야. 언제나 너희 입장 지지할게."
라는 원론적인, 정말 또다시 쌀로 밥 짓는 소리가 돌아왔다.
뭘 한 걸까. 시대가 움직이는 한가운데 들어가 제대로 ‘병풍’ 노릇 해주고 온 거다. 만약 병풍 노릇을 하기로 했다면 제대로 대가를 받고 움직여야 했는데, 쌀로 밥 짓는 소리를 듣고자 너무도 쉽게 중국을 버렸다.
계속 강조했지만, 한국은 이 판에서 언젠가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미국을 택할 확률이 높다. 다만 막판 택일의 순간은 '올인'의 판이다. 그 결정까지 상당한 시간을 들일 수 있다는 게 한국의 독특한 지위를 상징하며 동시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가장 큰 판이다.
중국을 버리기로 했다 하더라도 최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가지고 우리 이득을 챙기든가, 아니라면 추후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놔야 하는데, 한국은 ‘태평양의 민주주의 동맹’에 이름을 올린다. 가장 크게 먹기 위해 차곡차곡 쌓아온 판돈을 이번에 써버렸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은 얼굴을 익히고 돌아왔다. 나토 회의에서 거둔 성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