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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란?-위안부 바로알기

천아1234 2021. 4. 30. 20:30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나온 날

慰安斑の問題が世界に出た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12년 12월 8~10일까지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로,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의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대협 등 세계 여성단체들은 2013년부터 매년 8월 14일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다양한 캠페인과 연대집회를 열고, 또한 유엔 등 국제기구를 설득하기 위한 연대 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우리도 이 날, 세계 위안부의 날 만큼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스스로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었던 정신적 피해와 육체적 고통, 잃어버린 청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아야 한다. 할머니들을 기리는 일은 그렇게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변 사람들한테 한번 씩 말도 해주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해 검색해보며 더욱 더 알아가고,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는 것. 이러한 것 들이 일상 속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韓国挺身対問題対策協議会’は2012年12月8から10日までタイワンのタイペイで開かれた第11回日本軍慰安斑問題解決のためのアジア連帯会議で毎年8月14日を「世界慰安斑称える日」と決めた。

8月14日は慰安斑被害者のキ厶·ハクスン(1924~1997)さんが始めて日本軍慰安斑被害の事実を証言した日として、1991年8月14日、記者会見を通じて慰安斑生存者の中で最初に被害事実を公開証言した。キ厶さんの証言の以降、全国の生存者が相次いで被害の事実を伝え始め、これによって日本軍慰安斑の実情が国際的に知らせられるようになった。‘韓国挺身対問題対策協議会’などの世界の女性団体は2013年から毎年8月14日、慰安斑の問題解決を促す様々なキャンペーンを開き、またUNなどの国際機構を説得するための連帯活動も強めている。

私たちもこの日、「世界慰安斑の日」だけでも私たちの平凡な日常生活の中で自分で慰安斑被害者のお祖母さんが経験した精神的な被害と肉体的な苦痛、なくしてしまった青春についてもう一度考えてみなければならない。お祖母さんを称えることはそんなに複雑で難しいことではない。回りの人々に慰安斑のお祖母さんについて一度でも話してあげ、またそのことを検索してみながらもっと深く知り、忘れずに、ずっと記憶すること。こんなことが日常生活の中で慰安斑のお祖母さんを称える方法ではないだろうか?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와 한국의 대응

問題についての日本の態度と韓国の対

위안부 문제가 거론 된지는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부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일본 정부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대해 일본정부는 ‘일본군은 군위안부 문제와 관련이 없다.’라는 주장을 하였다. 이후 1991년에 김학순 할머니께서 최초로 위안부 피해자로서 피해 사실을 증언을 하셨고, 이에 힘입어 첫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992년 1월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게 되었다. 또한 같은 해 서울에서 ‘정신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가 개최되어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과 세계 활동가들이 모여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을 위해 전략과 결의를 만들었다.

더 이상 일본군위안부에 대해 부인할 수 없게 된 일본 정부는 이듬해인 1993년 8월 당시 관방장관이었던 고노 요헤이가 일본군위안부에 대한 일본군과 정부의 관여와 강제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을 포함한 ‘고노 담화’를 발표하였다. 하지만 이 고노 담화 속에도 정확한 법적 책임은 밝혀져 있지 않았으며, 이후에 일본 정부가 민간기금을 설립해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명목으로 ‘아시아 평화국민기금’이 설립하였으나 이는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이 아닌 인도적 차원에서의 위로였기 때문에 많은 일본군위안부 할머니들은 위로금을 거부하였다.

게다가 아베총리와 그 정부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인신매매 피해자’라고 칭하며 고노 담화에서 인정한 군과 정부의 강제성을 부인하고 고노 담화 또한 제대로 검증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5년 12월 28일에는 박근혜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과 협상하여 최종적 종결을 약속한 ‘2015년 한·일 일본군위안부 협상 타결’을 발표하였다. 여기에서 아베총리가 10억엔의 치유금과 고노 담화와 동일한 내용과 서면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반성을 표한다고 하였지만, 실제 내용에선 교묘하고 애매한 표현 등을 사용하여서 명확하나 잘못 인정과 사과, 법정 배상을 거부하였다. 또한, 협상 타결안 내용 해석을 두고 한국정부와 일본정부의 입장이 달라 일본정부는 소녀상 철거를 주장하며 더 이상의 사죄가 없다고 할 정도에 이르렀다. 이에 대해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억울함과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며 이 협상에 대한 부인과 정확한 사과를 요구하는 입장을 나타냈습니다.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현 일본 정부의 태도는 피해자 할머니들과 대한민국 국민들의 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아직까지도 일본정부는 정확한 사과와 법적 배상을 이루지 않았으며 얼마 남지 않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생존자들은 지금까지 이를 위해 싸우고 있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의 역할이 중요하고 절실하다. 우리들은 일본이 정확한 진상규명과 사죄를 이룰 때 까지 끝까지 싸워나가야 한다.

慰安斑の問題が取り上げられたのはそんなに昔のことではない。1980年代の後半から慰安斑の問題について日本の政府に真相究明を要求する声が出始め、これに対して日本の政府は「日本軍は軍慰安斑問題とは関係ない。」と唱えた。以後、1991年にキ厶·ハクスンさんが最初に慰安斑の被害者として被害事実を証言し、これをきっかけに、始めての「日本軍慰安斑の問題の解決のための定期水曜示威」が1992年1月、日本の大使館の前で開かれるようになった。また、同じ年、ソウルで「挺身対問題の解決のためのアジア連帯会議」が開催され、日本軍慰安斑の被害者と世界の活動家が集まって日本軍慰安斑の問題について一緒に悩み、解決するための戦略と決議をした。

これ以上日本軍慰安斑について否定できなくなった日本の政府は翌年の1993年8月当時、官房長官の河野洋平が日本軍慰安斑についての日本軍と政府の関与と強制性があったことを認め謝罪する内容を含めた「河野談話」を発表した。しかし、この「河野談話」の中でも正確な法的な責任はあきらかになっておらず、以後、日本の政府が民間基金を設立して被害者に慰労金を支給する名目で「アジア平和国民基金」を設立したが、これは公式謝罪と法的賠償ではなく、人道的な次元での慰労だったので多くの日本軍慰安斑被害者さんはこの慰労金を拒否した。

また、安部首相とその政府は日本軍慰安斑の被害者を「人身売買の被害者」と呼び、河野談話で認めた軍と政府の強制性を否定して、河野談話もはっきり検証しなければいけないと唱えている。

2015年12月28日にはパク·グネ政府が日本軍慰安斑の問題を日本と協商し最終的な終結を約束した「2015年韓·日日本軍慰安斑協商妥結」を発表した。ここで安部首相が10億円の慰労金と河野談話と同じ内容を書面で慰安斑の被害者に謝罪と反省を表現すると述べたが、実際の内容では巧妙で、曖昧な表現などを使って明確な謝罪や認定、法的な賠償などを拒否した。また、協商妥結案の内容の解釈に対して韓国の政府と日本の政府の立場が違うので日本の政府は少女像の撤去を唱え、これ以上は謝罪しないと述べた。これについて日本軍慰安斑の被害者は悔しさを表しお金が必要で証言したわけではないと述べ、この協商についての否認と正確な謝罪を要求する立場を表した。

慰安斑の問題に関する今の日本の政府の態度は被害者のお祖母さんと韓国の国民を怒らせている。今でも日本の政府は正確な謝罪と法的な賠償をしていないし、多少なくなった日本軍慰安斑の被害者の生存者は今もこのために戦っている。日本軍慰安斑の問題を解決するためには何より韓国の政府と国民の役割が大事だ。これは切実な問題だ。私たちは日本が正確な真相究明と謝罪をするまで戦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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