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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불평등

코로나 불평등

천아1234 2021. 3. 5. 21:02

코로나19가 드러낸 ‘불평등 사회’

“역경은 사람을 강하게도, 약하게도 만들지 않는다. 단지 그의 본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몇해 전 어느 송년모임에서 누군가가 건배사를 하면서 인용했던 명언이다. 건배사에도, 명언에도,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나이지만 이 말만큼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경험해본 적 없는 ‘역경’을 맞이한 지금, 그 말의 의미를 더욱 깊이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정유진 정책사회부장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강하게 만들었는가? 메르스 때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은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상승하고, K방역을 성공케 한 자발적 시민의식을 재확인했다고는 하나, 코로나19로 가장 큰 직격탄을 맞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할 만큼 강해지지 못했다.

그렇다면 코로나19는 우리 사회를 약하게 만들었는가? 다시 말해, 국내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곳이 하필 정신병동이었고, 하필 콜센터와 물류센터에서 악조건을 견뎌가며 일하던 사람들이 집단감염되고, 정규직의 4%가 실직을 경험하는 동안 비정규직은 넷 중 한 명이 실직한 것은 코로나19라는 역경 때문에 벌어진 비극인가?

그렇게 보기도 어렵다. 그 모든 문제들은 이전부터 계속 그 자리에 있어왔던 것들이다. 비정규직은 늘 쉬운 해고의 대상이었고, 수십년 동안 폐쇄병동에 갇혀 지낸 환자들은 온갖 기저질환에 시달리다 쇠약해진 채로 사망해왔다. 단지 예전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혹은 보려 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본모습을, ‘너’의 감염으로 인해 나까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직시하게 된 것일 뿐이다.

팬데믹이 불평등한 사회의 조명탄 역할을 해왔던 것은 이미 여러 연구결과를 통해 역사적으로 증명돼 왔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카이라 그랜츠 교수가 1918년 스페인 독감 대유행 당시 시카고 지역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도시 빈민과 실업자의 사망률이 가장 높았다. 실업률이 10% 상승하면 스페인 독감 사망률은 19.6% 높아졌다. 스웨덴에서도 스페인 독감 사망률을 직업군별로 살펴보니 저숙련 노동자-비숙련 노동자-사무직 노동자 순으로 나타났다.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 때는 영국 내 사망자를 전수조사한 결과 가장 빈곤한 소득 1분위의 인구 백만명당 신종플루 사망률이 12로 고소득층인 5분위 3.9의 3배가 넘었다. 영국 런던왕립대의 폴 루터 교수는 “이제까지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른 건강 불평등은 긴급한 사안으로 다뤄져 오지 않았지만, 다가올 팬데믹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격차를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마치 코로나19에 대한 경고로 읽히는 이 논문이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12년이다.

코로나19는 어떨까. 이미 미국과 영국 등에서는 흑인 사망률이 백인의 4배에 달한다는 보고서들이 발표되고 있다. 아직 한국에서는 충분한 연구결과가 나오지 않아 단편적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만, 확실한 것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쌓여갈수록 그것이 드러낼 우리 사회의 본모습은 짐작보다 더 가혹하리란 것이다.

코로나19는 당뇨, 흡연, 고혈압 같은 기저질환과 결합될 경우 사망위험이 큰 폭으로 증가한다. 그런데 이러한 만성질환 역시 저소득층일수록 유병률이 더 높다. 고혈압의 경우 고소득층인 5분위 환자가 2011년 27.7%에서 2018년 23.8%로 감소하는 동안, 저소득층인 1분위에서는 27.7%에서 30.7%로 오히려 증가했다. 당뇨병은 2011년까지만 해도 1·5분위의 유병률이 10.3%로 똑같았지만, 2018년에는 1분위가 12.9%로 증가한 반면 5분위는 7.9%로 감소해 격차가 벌어졌다. 코로나19에 가장 취약한 65세 이상 한국 노인의 빈곤율은 43.8%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이다. 코로나19가 행여나 사회적 약자에게 가는 길을 잃지 않도록 이미 불평등의 라인이 깊게 잘 파여 있는 셈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코로나19와 공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19가 끝난다 해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가올 팬데믹을 대비하기 위해 시급히 격차를 줄여야 한다”는 8년 전 루터 교수의 말은 2020년에도 유효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9일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이번에는 깨겠다”며 “코로나 위기 속에서 심화되는 불평등의 문제를 반드시 해결하겠다”고 했다. 그 각오는 반드시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우리를 약하게 만든 것은 역경 때문만이 아니지만, 역경이 드러낸 본모습을 직시한 사람에게는 적어도 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

코로나19 음모론과 정치의 책임

위기의 시대에 음모론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팬데믹, 곧 전염병의 대유행은 대표적 위기다. 14세기 흑사병으로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진 유럽에서는 유대인들이 기독교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져나갔다. 유대인 공동체 1000곳 이상이 공격당하고 주민들이 학살당했다. 19세기 초 영국인들에 의해 전 세계로 번진 콜레라는 각지에서 ‘콜레라 봉기’를 일으켰다. 1832년 프랑스 파리의 빈민가를 중심으로 콜레라 환자가 대량 발생하자, 정부가 하층민들을 몰살시키려 한다는 음모론이 퍼져나갔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에서 묘사한 혁명의 배경엔 콜레라가 있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1년 넘게 이어지면서 전 세계에서 1억1000만명 넘게 감염됐고, 250만명 이상 사망했다. 코로나19 원인과 백신 효능을 둘러싼 음모론의 확산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박영환 국제부장

소셜미디어를 통해 코로나19는 인구통제를 위해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와 딥스테이트(숨은 권력집단)가 의도적으로 퍼트렸다는 음모론이 확산됐다. 백신에 들어 있는 나노칩으로 사람들을 조종하려 한다는 주장까지 퍼졌다. 5세대(5G) 이동통신이 코로나19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생성하고 5G 송신탑이 감염을 확산시킨다는 음모론이 퍼지면서 영국과 네덜란드에서는 5G 송신탑 수십곳이 불타는 사건도 발생했다. 미국에선 백신 음모론을 퍼트리는 극우 음모론 집단인 큐어넌에 동조하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유럽에서 백신 음모론의 힘은 상당하다. 파리정치대학 정치연구소가 지난 1월20일~2월11일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영국인들을 조사한 결과 ‘정부와 제약사가 짜고 코로나19 백신의 위험성을 덮고 있다’는 응답은 프랑스에서 39%로 가장 높았고, 이탈리아·독일은 32%, 영국 31%로 나타났다. 10명 중 3~4명이 백신 음모론을 믿고 있다는 의미다. 유럽 곳곳에선 여전히 백신 접종 반대시위가 잇따르는 등 백신 불신은 집단면역 형성의 장애물이 되고 있다.

팬데믹 시기 음모론이 확산되는 것은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코로나19 음모론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소셜미디어와 정치의 역할이다. 정치가 부추기고 소셜미디어가 날개를 달아준 음모론이란 것이다.

소셜미디어의 발달은 온라인을 통한 음모론의 급속한 확산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에서 페이스북, 트위터는 물론 극우 인사들이 주로 이용하는 팔러, 갭 같은 소셜미디어는 음모론 전파의 플랫폼 역할을 했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자신이 원하는 여론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점은 소셜미디어와 음모론의 결합을 촉진했다. 주류 언론이 팩트체크로 대응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동시에 소셜미디어의 부정적 영향을 제한할 수 있는 합리적 규제 방안 마련은 코로나19 음모론이 던진 우리 시대의 숙제다.

정치의 역할도 돌아봐야 한다. 음모론은 단순한 거짓 정보가 아니라 자신을 둘러싼 불확실한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이고, 기성 제도가 제공하는 해석을 불신할 때 대안으로서 힘을 얻는다.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불신은 음모론의 토대가 되는 셈이다.

유발 노아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흑사병이나 20세기 초 스페인독감 유행 때와 달리 이번에는 과학이 제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과학자들은 원인 바이러스를 찾아내고 이를 퇴치할 백신도 몇달 만에 개발했다는 것이다. 그는 팬데믹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도 엄청난 희생을 막지 못한 것은 결국 정치의 책임이라고 지적한다. 집권을 위해 기성 정치와 미디어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50만이 넘는 미국인들이 목숨을 잃게 만든 주범이라 할 수 있다.

한국도 지난 26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2억명이 넘게 백신 접종을 마쳤지만 음모론은 여전하고, 한국 사회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일부 개신교 선교단체들은 서구의 백신 음모론을 국내에 전파하고 있다.

정치권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신뢰도 공방 등 정치적 논쟁을 멈추고 백신 정책을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정파적 이해를 위해 백신 음모론과 불안감을 부추기는 3류 정치는 피해야 한다. 대신 정치권은 이번 기회에 백신 개발과 소셜미디어 역기능 제어 등 팬데믹 관련 정책들을 점검하고 한국 사회의 팬데믹 대응 역량을 제고할 수 있는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경제관료들의 ‘코로나 불평등’ 해법은?

‘후베이성 우한에서 원인 모를 폐렴 환자 27명 발생.’ 작년 새해 벽두 1월2일 출근해, 중국 베이징 특파원이 타전해온 아침 현장보고를 보고 단순한 유행성 폐렴인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정체를 드러낸 80~100나노미터(㎚) 초미세 바이러스 역병 입자는 급기야 온 세상을 집어삼켜버렸다.

그로부터 1년, 백신 보급 소식과 함께 우리 경제도 산업 현장과 수출 전선에서 다시 새해를 맞는다. 구랍 30~31일 실물경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차관은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과 대전 이마트에서 잇따라 특별방역 릴레이 현장점검에 나섰다. 경제·방역의 공존을 보여주는 광경이다. 새해 정부 경제정책 방향도 ‘경제와 방역 간 정교한 균형 도모’, ‘경제사회 시스템의 회복 탄력성 강화’로 집약된다.

백신을 두고 ‘이제 인류가 반격에 나섰다’고 자못 감격스러워하지만 고약하게도 바이러스의 볼썽사나운 얼굴은 도처에 여전하다. 간헐적인 코로나 출몰이 바이러스발 경기순환 변동을 일으키며 우리를 주기적으로 괴롭힐 수도 있다. 감염 공포가 점차 ‘백신 국면’으로 바뀌면서 경제가 탄력 있게 반등하더라도, 정상궤도 회복에 올라서는 과정은 무척 더디고 힘겨울 것이다.

바이러스 급습 초기에 세계 지성들은 ‘코로나 이전과 이후’라는 어휘로 인류 문명 전환의 장기 관점을 제출했다. 하지만 일상의 단기 시계(視界)에서 인간의 대응은 훨씬 역동적이고 풍부했다. 기업과 사람들은 봉쇄·비대면에 적응하고 학습하며 바이러스에 맞대응하는 법을 배웠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호황 부문’이 출현해, 디지털·바이오헬스·반도체·배터리 신산업은 사상 최대 실적을 내고 고용·소득도 별다른 쇼크를 겪지 않았다. 사람들의 연결·공유 습성이 세계를 지난 1년간 혼돈의 역병 연대기로 몰아갔지만, 초연결·인공지능(AI)이라는 또 다른 연결·공유 기술은 역병을 뚫고 살아가는 힘이 된 셈이다. 돌이켜보면 시장자본주의의 근원적이고 특유한 역동성도 별로 파괴되지 않았다. 전기차·수소차·태양광·풍력에서 혁신과 경쟁이 이어지며 기업·시장을 뒤흔들고 산업이 급변하고 있다.

재정·통화 자원을 각 경제 부문에 배치·투입하는 국가 정책도 기존 관행과 전통을 완전히 뒤집고 전대미문의 방식으로 바뀌었다. 중앙은행마다 ‘바주카포’ 유동성 퍼붓기에 나서고 우리 정부도 300조원의 재정·금융 패키지와 316조원에 이르는 무역·금융공급까지 총동원해 재정 화력을 쏟아부었다. 경제·산업도 코로나에 적응하는 내성을 갖게 된 것일까? 초기에 경제·무역·이동 긴급 봉쇄령이 내려지자 경제분석가마다 허둥지둥하며 대공황·파국 엄습 같은 암울한 전망을 쏟아냈으나, 세계 경제는 휘청거리고 수축하면서도 그럭저럭 견뎌내고 있다. 글로벌 생산분업 체제에 광범하고 깊숙이 편입돼 있는 한국 경제도 버텨오면서 ‘미약한 회복세’ 진단 속에 새해를 맞는다.

그러나 백신 소식에도 새해를 맞는 심경은 복잡하다. 취약 영역들은 상당수가 이미 쓰러지고 상처받고 깨졌다. 이번 팬데믹의 뚜렷한 특징은 사회경제적 집단·계층에 미치는 영향이 극적으로 차별적이라는 점이다. 지난해 4월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90% 경제’라는 표지 제목을 뽑았다. 봉쇄가 풀린 뒤에도 일상 소비·생산활동은 이전에 견줘 90% 수준에 오랫동안 머무를 거라는 뜻이다. 많은 일에서 90%는 ‘그런대로 괜찮은’ 수치이지만 경제에선 비참한 상태를 뜻한다는 해설을 붙였다. 경험과 실증에서, 그 비참한 소득·고용 상태에 빠진 지위·계층은 비공식 자영업자, 중소기업·소상공인, 불안정노동 주변부 노동자로 구획되고 있다.

지금은 통상적인 경기순환이나 금융 불황과는 다르다. 비대면 거리두기가 사회적 습속으로 굳어지고 생산·소비에서 인간의 행태 변화가 장기적으로 이어지면서 코로나 수혜 업종·노동자와 그 반대편의 격차는 지속되고 커질 것이다. 회복의 속도와 범위에도 차이가 벌어지면서 ‘코로나 그 후’까지 소득·고용 불평등은 더 깊고 넓게 파여 상흔으로 남을 공산이 크다. 90% 경제에 두껍게 퍼진 ‘코로나 열패자들’을 겨냥한 정교한 정책 조준에 나서야 할 때다. 무릇 모든 정책은 집행의 ‘시차 지연’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기관 등 430곳에서 총 1238개에 이르는 각종 국가승인 공식통계(조사·보고·가공)를 내고 있으나 속보지표조차도 조사·분석에 오랜 시간이 걸린다. 코로나 충격에 따른 경제사회의 구조적 변모 양상을 신속하고 통합적으로 또 세밀하게 포착하는 통계시스템 구축, 여기에 근거한 처방의 적기 수립·실행 역량이야말로 올 한해 정책관료들에게 요청되는 책무다. 바이러스야 어쨌든 물리치겠지만, ‘코로나 불평등의 교정’이라는 또 다른 싸움에 우리는 들어서고 있다.

차별·불평등 드러낸 코로나19…‘후순위’로 밀려난 약자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가 공동주최한 ‘사회적 소수자 그리고 재난’ 집담회서 패널들이 말하고 있다. 탁지영 기자

활동가들 코로나19 집담회

“대처 능력의 차이 고려 안 돼

차별 없애는 제도 설계 필요”

코로나19는 사회적 약자에 가혹한 한국 사회 단면을 드러냈다. 국내 코로나19로 인한 첫 사망자는 경북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에 입원 중이던 환자였다.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은 마스크마저 자비로 마련해야 했다.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조되면서 무료 급식이 중단돼 노숙인들은 끼니도 챙기지 못했다. 최근 서울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여파가 커지면서 성소수자들은 혐오와 ‘아우팅’(당사자 동의 없이 성적 지향 등이 공개되는 행위) 공포에 휩싸였다.

장애·노동·빈곤·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지난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4·16연대 사무실에 모여 ‘사회적 소수자와 재난’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이들은 “코로나19는 세상을 바꾸지 않았다. 모순적인 세상을 ‘드러냈다’ ”고 입을 모았다.

코로나19는 여느 재난과 다르다. 빈부·나이·성별·인종·국적 등을 초월해 ‘누구나 감염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겼다. 활동가들은 “모두가 위험에 처해도 대처하는 능력은 ‘불평등’하다”고 했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코로나19 시국에서 시설 입소자나 장애인은 ‘후순위’였다”며 “약국에서 마스크를 구입하는 체계로 가다보니 ‘접근 가능한 자와 불가능한 자’ ‘능동적인 자와 수동적인 자’로 명확히 나뉘었다. 후자에 속한 사람은 대처하는 데 더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재임 빈곤사회연대 활동가는 “노숙인종합지원센터에서도 감염 우려를 이유로 신규 입소를 받지 않는다”며 “이들은 생활공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고 했다. 명숙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활동가는 “학습지 교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일거리가 끊겼다. 정부가 고용유지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했지만 근본적으로 차별을 없애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감염에 대한 불안은 타자에 대한 공포를 낳고 혐오를 부추긴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만연했던 환경에선 그 양상이 더 심하다. 웅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활동가는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정치세력화됐던 토양 위에서 질병이라는 구실로 혐오와 차별이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확진자가 ‘게이클럽’에 다녀갔다는 보도가 나온 후 ‘색출하자’며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가입하려는 시도도 있다”며 “성소수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내리는 등 일상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이후 “사회적 연대가 강해져야 한다”고 했다. 변 국장은 “질병과 무관한 개인 정체성을 두고 ‘혐오해도 되는’ 근거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주변인과 연대할 용기가 필요해진 시대가 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감염병의 정치학···"코로나19는 누구에게나 평등하지 않다"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혐오와 차별의 유행, 감염병의 정치학’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건강형평성학회 학술대회

“질병 구실로 혐오·차별 확장

‘감염 치안화’ 문제 고민해야”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마스크’라는 자원은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배분돼야 할까. 시간제 임금을 받는 생산직 노동자가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로 일을 쉬게 됐을 때, 생계유지를 위한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할까.

이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까.

한국건강형평성학회가 15일 ‘혐오와 차별의 유행, 감염병의 정치학’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학술대회를 열었다. 토론자로 참여한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며 “코로나19를 비롯한 감염병은 생물학적, 보건의료적인 동시에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감염 이후의 삶은 평등하지 않다. 2015년 메르스 발발 당시 전라북도 순창군 장덕리 마을이 폐쇄됐다. 동네 안쪽에 거주하던 한 노인이 확진판정을 받았고, 역학조사를 통해 14명의 밀접접촉자가 확인됐다. 이후 100명이 넘는 주민들이 거주하던 마을 전체가 격리됐다. 인구밀도가 더 높은 도심에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박유경 시민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언론에 ‘방역 모범사례’로 알려진 이 사건을 감염 불평등의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했다. 박 연구원은 “동선이나 주거밀집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편의적 조치이자 과도한 공포에 기초한 비이성적 조치였다”며 “주민들은 폐쇄 결정 과정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생계나 의료 체계와의 단절을 견뎌야 했다”고 말했다.

서보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한국의 HIV 정책을 통해 전염병 감염인이 ‘낙인화’되는 현상을 짚었다. 1985년 첫 감염인 발생 이후 한국에 HIV가 대대적으로 확산한 적은 없었고 치료법 역시 꾸준히 전문화됐다. 하지만 HIV 감염인의 일상적 삶을 ‘전파 매개 행위’로 간주해 처벌해야 한다는 논리는 끊임없이 정당화됐다. HIV 감염인임을 밝혔을 때 의료기관에서 진료·입원을 거부하는 사례도 반복됐다.

서 교수는 “질병 당사자를 사회문제화하는 것은 공중 보건에 기여하지 않으며 감염인의 사회적 고통만을 더할 뿐이라는 것이 지난 40년간 HIV 정책의 교훈”이라며 “(코로나19 국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염의 치안화’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가”라고 했다.

토론자들은 ‘감염정책의 민주화’가 궁극적인 해결책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코로나19의 근본적 해결에 백신과 치료제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지만 ‘구체제’가 바뀌지 않으면 그 해결은 아주 적은 일부 집단에 국한될 것”이라며 “지역사회 감염이 한 고비를 넘기면 ‘시민참여적 방역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교육 불평등 심화…“거리 두기 가능한 대면수업이 해답”

시민사회대책위 긴급 제안

“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학급당 학생 수 20명 이하로

모든 학교에 보건교사 배치”

코로나19로 심화한 교육 불평등과 교육 질 저하를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학급당 학생 수 감축, 교원 증원 등을 통한 공교육 강화만이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있다는 시민사회와 교육 현장의 목소리가 나왔다.

코로나19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1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른 학교 교육에 대한 긴급제안’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밝혔다. 대책위는 “코로나19 이후 등교 연기와 온라인 수업 등이 이뤄졌지만 교육 불평등과 교육 복지, 학교 노동을 둘러싼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을 발표했다.

대책위는 코로나19 확산 속 대안으로 도입된 원격수업의 단점을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교원 증원으로 풀어야 한다고 했다. 원격수업이 교육 격차를 심화하고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결국 거리 두기가 가능한 ‘대면수업’이 답이라는 것이다. 강정구 전국교직원노조 정책실장은 “내년부터 단계적으로라도 학급당 인원수를 20명 이하로 감축해야 한다”며 “이에 따른 교실 확충과 교원 증원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학교 학급당 학생 수는 23.4명이다.

코로나19 이후 교내 보건 업무 증가에 따른 보건교사 확대 필요성도 제기됐다. 31년차 보건교사인 지은숙 전교조 보건위원장은 “보건교사들은 이전부터 화장실에 가거나 밥 먹을 시간도 확보하기 어려웠지만 코로나19 이후 더 심해졌다”며 “그나마도 보건교사가 없는 학교에서는 일반 교사가 관련 업무를 맡아 본인 수업보다 코로나19 지침 연구에 시간을 더 써야 했다”고 말했다. 학교보건법에 따라 모든 학교는 보건교사를 두어야 하지만 현재 전국 학교의 보건교사 배치율은 85% 수준이다.

복잡하고 각기 다른 학교 상황을 고려해 보다 유연한 지침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은경 전교조 특수위원장은 “현재 학교가 처한 상황은 (거리 두기) 1단계와 2단계, 3단계라는 설명으로 절대 표현할 수 없다”며 “1단계 상황에서도 3단계와 같은 위험성을 내포할 수 있고 반대 상황도 가능하다. 학교 사정에 따라 안전과 관련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조건을 열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책위가 발표한 제안에는 학생들의 코로나19 학교대책 참여 권리 보장과 미등교 취약계층 학생들에 대한 긴급 구호 및 학대 예방 대책 마련, 화장실·세수대 등 교내 기초적 안전 시설의 개·보수 등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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