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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김대중 전 대통령-앨빈 토플러 박사 오찬 대화록 본문

미래학자/앨빈토플러

[특별기획]김대중 전 대통령-앨빈 토플러 박사 오찬 대화록

천아1234 2021. 7. 10. 17:47

“北, 핵보유하는 한 통일 어렵다”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와 앨빈 토플러 박사가 5월 31일 오찬 대화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가 지난 5월 31일 동교동 김 전 대통령 사저에서 만났다. 김 전 대통령과 토플러 박사는 북핵문제 등 한반도 이슈와 미래사회의 변화상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김 전 대통령은 1980년 내란음모죄로 감옥에 있을 때 이희호 여사가 넣어준 토플러 박사의 ‘제3의 물결’을 읽고 지식정보화 사회의 도래를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재임 중에 김 전 대통령은 토플러 박사를 청와대로 자주 초청해 정보화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뉴스메이커가 김 전 대통령과 토플러 박사의 대화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전문을 싣는다. <편집자 주>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김대중) ▒ 오늘 이렇게 찾아주어 영광입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부인께서 빨리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앨빈 토플러 박사(이하 토플러) ▒ 내 처 하이디도 대통령님께 안부와 존경의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앞으로 괜찮아지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걸을 수가 없습니다. 정원 손질을 하다가 다리를 다쳤는데 의사가 근육 발육을 위해 장화 신기를 권유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거워서 오히려 무릎에 무리를 주어 지금은 무릎을 다친 상태입니다.

김대중 ▒ 한국의 정보화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이는 토플러 박사입니다. 그리고 전자정부를 권고해준 이로는 일본의 손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 뱅크 회장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있습니다.

토플러 ▒ 감사합니다. 그것은 저에게도 무척 기쁜 일이었습니다. 부시 정권이 남북한 문제에서 태도 변화를 보이고 있는데, 북한이 정말 핵무기를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는 모릅니다. 북한은 정확히 핵무기를 가지고 있습니까?

김대중 ▒ 핵탄두를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사일을 장착해서 발사할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토플러 ▒ 북한이 정말 변화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김대중 ▒ 그것은 미국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미국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방안으로) 첫 번째는 군사적 응징이 되겠습니다만, 현재 미국은 중동에 발목이 잡혀 있어서 북한을 대상으로 다른 전쟁을 치를 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 지금 일본과 함께 경제제재를 하고 있지만 중국과 한국이 동참하고 있지 않아서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은 미국이 북한과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는 협상을 해야 한다, 대화도 시도해보지 않고 제재부터 할 수 있느냐 라고 주장해왔습니다. 세 번째로 지난해 미국의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였는데, 민주당은 부시의 압박정책에 찬성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 협상으로 풀자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넷째, 부시의 임기가 거의 끝나가고 있는데 중동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한반도에서라도 성공할 필요가 있고, 그래서 최근 부시의 대북정책이 대화를 하자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자, 행동 대 행동(action to action), 말 대 말로 하자는 쪽으로 상황이 변하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 역시 미국이 핵포기, 비핵화를 조건으로 직접 대화, 안전보장, 경제제재 해제, 국교 정상화를 하겠다고 하니, 얻을 것 얻게 되면 핵을 고집할 명분이 없어집니다.

토플러 ▒ 두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만약 일본이 핵무기를 갖겠다고 하면 어떻게 됩니까?

김대중 ▒ 일본은 북한의 핵개발을 빌미로 핵을 보유하고 싶다는 것이 일본의 지도부 및 일반 다수의 심정입니다. 그러나 명분이 없습니다. 미국의 핵우산이 일본을 보호해주고 있기 때문에 명분도 없고, 일본의 핵보유를 미국이 원하지도 않습니다.

토플러 ▒ 그럼 미국의 핵우산이 과연 신뢰할 만한가라는 의문이 드는데요.

김대중 ▒ 미국이 얼마나 강력하게 결의하느냐, 그리고 일본과 미국이 얼마나 긴밀한 관계를 가져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만, 핵문제를 걱정할 필요는 없으리라고 봅니다. 일본이 핵을 보유한다는 것은 중국에게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일본이 핵을 보유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핵을 갖지 못하게 하려면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게 해서 일본이 핵을 가지려는 구실을 없애야 합니다. 그래서 중국은 북한의 핵포기에 전력을 다해 왔습니다.

토플러 ▒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주 다른 시나리오인데요, 시간이 흘러서 남북한이 어떤 형식으로든 통일이 되었다고 가정할 때, 북한이 현재의 핵을 그대로 보유한 채 통일이 될 수도 있을까요?

김대중 ▒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은 통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도 북한의 안전보장, 국교정상화, 경제제재 해제 등을 해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핵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통일 한국이 핵을 보유하는 것은 주변 강대국들도 지지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핵은 필요 없습니다.

토플러 ▒ 그럼 핵을 어떻게 제거할 수 있을까요?

김대중 ▒ 2·13 6자회담 합의에서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고 북한은 핵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때 미국은 북한과의 국교정상화를 하고 국제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이 핵을 고집하는 이유는 안보에 대한 위협 때문인데 미국이 북한의 안전보장을 하겠다고 했고, 또한 한국전에 참전했던 4대 주요국, 남북한과 미국, 중국이 함께 평화협정을 맺어서 양쪽의 안전보장을 하자는 말을 부시 대통령이 이미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북한은 핵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2001년 6월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앨빈 토플러 박사가 청와대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 <김대중도서관 제공>


토플러 ▒ 네. 실제 핵을 포기한 국가들이 있기도 했습니다. 남아프리카가 그랬고 브라질인지 아르헨티나인지도 그랬지요. 그러나 핵을 포기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김대중 ▒ 그 외에 우크라이나도 미·소가 안전보장을 해서 핵을 포기했습니다. 리비아도 했지요. 부시 대통령이 클린턴 정부의 대북정책을 계승했다면 이 모든 상황은 진작에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ABC (Anything But Clinton)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그 동안 6년을 허비했습니다.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했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을 추방했고, 제네바협정도 어기고, 미사일 모라토리엄도 무시한 채 미사일을 발사했고, 핵실험을 하기도 하는 등 상황은 악화되기만 했습니다. 잘못된 정책 때문에 손해를 많이 입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정책을 선회하여 대화를 추구하고 있고 북한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토플러 ▒ 다른 질문 하나를 드릴까 합니다. 앞으로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역할은 어떻게 될 거라 보십니까? 현재 미군은 이 지역의 안정화에 기여하고 있는데, 이런 미국의 역할이 앞으로 필요하거나 유효하다고 보시는지요?

김대중 ▒ 그것은 미국이 하기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중국과 미국이 화해 협력하여 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는 정책을 추구한다면 미군의 역내 주둔은 바람직할 것입니다. 반면 미·일이 군사동맹을 강화하면 중국이 군비경쟁을 강화하는 등 미국에 반발하게 될 텐데 최근 그런 경향이 보이기도 합니다만, 아무튼 동북아 안정이 깨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군의 역내 주둔이 긴장을 더욱 강화할 것입니다.

토플러 ▒ 요즘 일본을 보면, 중국도 그런 듯합니다만 민족주의의 대두를 엿볼 수 있습니다. 뉴스를 보면 아베 총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야스쿠니 신사 이야기도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동북아 지역의 국가들은 변화가 가져오는 문제들을 직면하고 있지 않습니까?

김대중 ▒ 불안정으로 갈 것이냐 안정으로 갈 것이냐라는 갈림길은 미국과 중국의 관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토플러 ▒ 그럼 핵이 없다고 전제했을 때 통일 한반도도 중립국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김대중 ▒ 19세기 말에 중국, 러시아, 일본은 우리나라를 점하기 위해 전쟁을 치렀습니다. 일·러전쟁, 일·청전쟁 등이 있었는데 미국이 여기 있었다면 견제와 세력균형자의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입장은 미군이 한국에 주둔하고, 우리는 미국과 방위조약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러시아, 중국, 일본 등과 적대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반은 동맹, 반은 중립 같은 형태가 될 것입니다. 4대국과는 관계를 좋게 가져가면서 안보나 외교의 핵심에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다는 것입니다. 박사님, 박사님께서 최근에 출간하신 ‘부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토플러 ▒ 한국 및 전 세계는 현재 미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시대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30~40년간은 컴퓨터나 인터넷 등 제3물결에 해당하는 기술들이 큰 진전을 보였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만, 이런 기술들은 1950년대부터 시작한 것이고, 1960년대에 들어와서는 정치적인 부문에서 많은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예를 들어 여성운동이나 환경운동 등 말입니다. 기술이 다른 시대로 진전해가는 만큼 기관(institution)도 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회·정치 부문의 발전 없이 기술만 계속 진전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하이테크나 정보기반 지식경제 등 제3물결이 도래하는 가운데 기관은 아직 제2물결의 산업화시대에 머물러 있어서 이런 불일치가 비경쟁력을 낳고, 이런 것들 때문에 카트리나 재해 등이 발생했을 때 미국 정부가 상황에 대처할 수 없는 무능력을 낳았습니다. 이 외에도 의료·연금·교육 부문 등 위기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이것을 큰 위기라고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료적인 기관은 이제 적절하지 못합니다. 이들이 제대로 변화하지 않으면 적절히 기능할 수 없습니다. 한국, 일본도 그렇고 앞으로 중국도 그럴 것입니다.

김대중 ▒ 그럼 적절한 정부의 형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토플러 박사의 최근 저서인 ‘부의 미래’. <김대중도서관 제공>

토플러 ▒ 많은 실험이 행해질 것이고, 많은 실패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관료적인 조직을 만들려는 본능이 강하고, 또한 관료적 조직 내의 구성원들도 큰 변화에 저항할 것이기 때문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9·11 사태 이후 미국은 과거 더 작은 규모로 존재하던 15개의 정보기관(intelligence agency)을 1개로 통합하여 큰 관료적 조직으로 만들었습니다. 적(enemy)은 적은 수의 구성원이 센터나 본부도 없이 평평(flat)한 형태의 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말입니다. 사실 우리가 쭉 따라온 방법이 관료적인 조직 형태였기 때문에 그랬겠습니다만, 산업화 시대의 관료적 조직에서 벗어나 이제는 NGO나 시민사회 모델들, 네트워크 형태의 평평한 조직, 더 일시성(temporary)을 가지고 정확하게(correct)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합니다. 거대한(giant) 그리고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비대한 하나의 관료조직 대신에 말입니다. 어떤 형태의 기관이 되어야 하냐고 물으셨는데 참 어려운 질문입니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은 문제 발생이 점점 더 빠르기 때문에 조직 대응도 더 빨라야 합니다. 또한 한 개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문제가 유기적으로 얽혀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분야에만 집중하는 관료적 조직은 맞지 않습니다. 일어난 상황은 복잡다단한데 ‘우리는 이 문제만 다룬다, 저 문제는 저 쪽에서 다룬다’해서는 안 됩니다. 점점 더 복잡성과 일시성이 중요해질 텐데, 아직까지 이런 문제를 해결한 예는 없고, 심지어는 적절한 묘사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김대중 ▒ 그럼, 그런 바람직한 기관은 나타나지 않은 상태에서 사태만 진전되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토플러 ▒ 그렇습니다. 아직까지 슈퍼 모델(super model)도 나오지 않았고, 관심을 가질 만한 스몰 모델(small model)도 나오지 않은 상태입니다. 추측할 수 있는 것은 피라미드적 관료 조직이나 네트워크적 조직 등 두 가지뿐 아니라 훨씬 다양한 다른 조직이 나타나리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중요한 현상은 프로슈밍의 부상입니다. 사람에 따라서 이 현상을 다르게 표현하기도 합니다만, 점점 더 많은 활동이 경제적 대가(without payment) 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업의 새 광고 전략을 짜는 데 아이디어를 내어 기여할 수도 있고, 이처럼 돈을 받지 않고 기여하는 형태의 병렬 경제(parallel economy)가 나타나고 있는데,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병렬 경제의 성장세를 아직 묘사해내고 있지 못합니다. 돈의 흐름이 따르지 않는 활동은 포착하지 않기 때문인데, 프로슈밍 경제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개인이 돈을 받고 한 행위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돈과 관련된 결과(부의 창출)가 초래된 것을 의미하는데, 일례로 리눅스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컴퓨터 운영체제(OS)는 기존 운영체제에 불만을 가진 엔지니어 한 사람이 만들어서 그 후 수백 명의 엔지니어들이 개선해나간 것인데, 그들은 경제적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 편의를 위해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 정부에서 MS 제품 대신 리눅스를 사용하도록 법제화한 상태입니다. 이처럼 프로슈머들이 돈을 바라지 않고(without payment) 시작한 일이 결과적으로 돈과 결부된 경제(monetary economy)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이를 포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경제에 대한 다른 사고가 필요합니다. 사고, 팔고, 투자하는 등 돈의 흐름에만 집중하다 보니 병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돈과 결부되지 않은 경제(non-monetary economy)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알려는 노력을 많이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돈을 받고(paid) 돈을 받지 않고(unpaid) 간에 상호작용이 일어나고 있고, 돈과 결부된 경제와 결부되지 않은 경제 사이에서 부가 창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화폐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활동을 측량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본분에 충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활동들이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마치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한 쪽 폐만 알고 다른 쪽 폐는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이런 지적은 경제학자들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지요. 프로슈머로서의 개인은 이제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직접 생산에도 참여하고 있고 이것이 통화의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혈압을 재려면 의사를 찾아가 돈을 지불하고 혈압을 쟀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혈압 측정 기계를 개인이 사서 잴 수 있습니다. 사진도 예전에는 필름을 사고 찍어서 인화할 때는 따로 사진관에 맡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기계만 클릭하면 인화도 직접 할 수 있습니다. 돈이 통용되는 경제 부문에서 강력한 기술 발전이 이루어지고, 이것은 다시 돈이 통용되지 않는 경제 부문에서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대중 ▒ 인류가 제1물결인 농업경제에서 산업화시대로 들어오는 데 1만 년이 걸렸던 반면, 18세기 산업화사회를 거쳐 오늘날의 제3물결, 정보화시대로 들어오는 데는 200년밖에 안 걸렸습니다. 이처럼 사회가 급변하면 사람들이 정신이 없지 않겠습니까?

토플러 ▒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은 이미 ‘미래충격’(Future Shock)에서 얘기했습니다만, 앞으로 이런 일이 점점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육체·정신적으로 처리(process)할 수 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요. 그러나 앞으로 신경학이나 유전학 등의 발달로 두뇌 자체가 변화되어 30~50년 후에는 이런 한계조차 뛰어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도대체 어디까지 인간이라 규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봉착하게 되겠지요.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얘기를 하나 해 드리자면, 얼마 전 오염된 사료를 잘못 먹고 강아지가 죽자 이를 둘러싸고 법적 논쟁이 붙었는데, 강아지 주인이 이 사료업체를 고소하자 사료업체는 그 강아지를 얼마에 구입했느냐, 사료비로 얼마가 들었느냐, 그만큼 배상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강아지 주인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심리적으로 그 강아지는 가족과 마찬가지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인간과 비인간 사이를 가르는 것이 재미있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매우 종교적인 이슈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했더니 하이디가 저더러 미쳤다고 하더군요.(웃음)

김대중 ▒ 이것은 반 농담입니다만, 급속한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심리적 공황에 빠지는 이들을 중심으로 집단적 저항이 일어나면서 원시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토플러 ▒ 충분히 그럴 수 있습니다.

김대중 ▒ 이슬람들이 점점 원리주의에 경도되어 현 문명은 기독교 문명이고 우리의 문명이 아니다라고 기존 문명을 배척, 나아가서는 문명간의 대결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어느 분이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보십니까? 기독교보다 이슬람인들은 신앙심이 더 깊어 힘이 폭발적인데요.

토플러 ▒ 일리 있는 말씀이십니다. 이슬람 신도들 중 몇 퍼센트가 극단주의자들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향후 몇십 년 동안 위험한 상황이 지속될 수는 있습니다.

김대중 ▒ 그럼 그런 위험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토플러 ▒ 이슬람인들을 획일적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대개 이슬람인들은 자살을 하거나 타인을 해치려고 하지 않습니다. 2~3년 전 인도네시아의 한 학자를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인도네시아에는 큰 이슬람 조직이 2개 있습니다. 각각 회원이 3000만 정도 되는데, 그 학자가 두 개 주요 조직 중 한 개의 수장이었습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 호텔로 찾아가 방문 앞에서 기다리며 누가 나올까, 수염을 길게 길렀을까 아니면 가운을 길게 늘어뜨렸을까 등등 궁금해했습니다. 그런데 문이 열리고 나온 이는 젊은이였고 느슨한 바지에다 미국식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셔츠에는 ‘University of Chicago’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후에 그가 그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만 당시는 매우 놀랐습니다.

이어서 한 번은 연설을 할 일이 있어 두바이에 잠깐 들렀다가 파리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었습니다. 통로쪽에 앉아 있었는데 맞은편 통로쪽에 앉아 있던 한 신사가 영자 신문을 보고 있다가 제 쪽을 자꾸 돌아봤습니다. 보니 제 사진이 실려 있더군요. 그러다가 신문에 실린 사람이 제가 맞느냐고 물어보기에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이란인이었고 두바이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러다 대화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되어 갑자기 두바이에서 부동산을 더 매입해야 할까요 하고 질문을 하더군요. 그래서 두바이에 겨우 18시간밖에 안 있었는데 어떻게 알겠는냐고 대답했습니다. (웃음) 사람들은 미래학자라고 하면 모든 것을 알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김대중 ▒ 지금 보면 이슬람의 원리주의가 급속히 번지고 있고, 기독교의 원리주의도 커지고 있어서 이것이 미국의 대선을 좌우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을 두고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만 이런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전 이란 대통령은 문명 간 대화가 필요하다고 얘기했습니다.

토플러 ▒ 물론 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부 과격한 집단들이 돈을 대주고 무기를 대주고 있지만 정부를 통제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란 등과 얘기를 시작해야 하긴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극단주의자들을 극복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김대중 ▒ 사람들도 언젠가는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 때가 올까요? 토인비가 신에 대해 한 얘기를 보면 인간이 육체와 관련해서 의학 연구를 해온 것은 수천 년 전부터이지만, 인간의 내면이나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를 해온 것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프로이드나 융의 연구를 통해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극히 최근 일이고, 심층심리학 등은 어린이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몇백 년이나 1000년씩 연구를 해 나가면 신이 있느냐 없느냐를 알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요?

토플러 ▒ 이와 관련된 논쟁은 1000년이 지나도 끝나지 않지 않을까요?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3&artid=14720#csidxd4ed5ce54b2da589c5eb5368d65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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