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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찾아서] ‘한반도 신탁통치’ 설파한 루스벨트 / 김자동

천아1234 2023. 3. 2. 18:25
1943년 11월22일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회담을 하고 있는 장제스 중국 국민당 주석(왼쪽부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처칠 영국 총리. 제2차 세계대전 승리에 대비한 전후 처리를 논의한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독립’ 문제가 거론됐다.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50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완전히 역전되어 연합국의 승리가 거의 확실해진 1943년 11월22일부터 26일까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 영국의 처칠 총리, 중국 국민정부의 장제스 주석이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 역사적인 회담을 열었다. 장제스 주석은 국민당 우파에 의한 27년의 반공 쿠데타 이후 군사위원회 위원장과 국민당의 당주석 등으로 중국의 실권을 장악했으나 국가주석 자리는 린썬(임삼)이 맡아 왔다. 그러던 중 43년 9월 린 주석이 사망해 그의 후임으로 명목상의 주석까지 겸임해 국가수반의 자격으로 이 회담에 참석한 것이다.43년 11월27일 발표된 ‘카이로선언’의 주요 내용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첫째, 미·영·중 세 나라는 일본에 대해 가차없는 압력을 가한다. 둘째, 3국은 일본의 침략을 저지·응징하지만 영토 확장의 뜻은 없다. 셋째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이 획득한 태평양제도를 박탈하고, 만주·대만 등은 중국에 반환하며, 모든 점령지역에서 일본을 추방한다.’그리고 한국 문제에 대한 특별조항을 넣어 “세 나라는 한국민이 노예상태에 놓여 있음을 유의하여 ‘적절한 시기에’(in due course) 한국이 자유롭고 독립된 국가가 되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선언했다. 이렇게 한국의 독립이 처음으로 국제적인 보장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특별조항에 들어 있는 ‘인 듀 코스’라는 세 단어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이 문구가 결국 해방 이후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크게 작용하게 된다. 나도 위에서 일반적인 번역을 따라 ‘적절한 시기’라고 기술했으나, 오히려 ‘적절한 절차에 따라’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은 듯하다.당시 회담에 앞서 미국은 아시아 지역 피식민지들의 전후 처리를 두고 영국과 의견교환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피식민 국가들을 신탁통치를 거쳐 독립시켜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는 제1차 세계대전 말에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구상과 비슷한 점이 있다. 윌슨과 다른 점은 루스벨트가 식민지 해방의 방식에 대해 미국의 주도 아래 실천하겠다는 것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다.카이로회담에 앞서 그해 3월24일 루스벨트는 워싱턴에서 앤서니 이든 영국 외무장관과 한 회담에서 ‘신탁통치’에 대해 논의했다. 국제회의에서 이 문제가 제기된 기록으로는 이것이 최초이다. 이때 루스벨트는 이든에게 한국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가 전후의 신탁통치에 특히 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식민지 제국인 영국은 전후의 ‘식민지 독립’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여기에 동맹국인 프랑스의 식민지가 포함된 것이 걱정스러웠다. 코델 헐 당시 미 국무장관은 그의 회고록에서, 이들과의 회담 직후인 3월27일 루스벨트 대통령이 “한국은 중국, 미국 및 1~2개 다른 나라가 참여하는 국제적 신탁통치하에 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루스벨트는 피식민 국가들이 당장 독립할 능력이 없다고 자의적으로 판단했으며, 그러므로 신탁통치를 통한 후견기간을 거쳐 독립을 시킨다는 구상을 한 것이다.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그는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실시된 위임통치 방식이 피식민지를 어느 특정 국가(승전국 중의 하나)에 앞으로 독립시킨다는 명목으로 무기한 위임함으로써 사실상의 식민지가 됐다는 것을 올바르게 인식했다. 그래서 단일국가가 아닌 몇 나라가 공동으로 일정한 기간을 정해 독립이 되도록 돕는 구상을 했으며, 이런 구상을 창안한 것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겼던 듯하다. 그러나 카이로회담에서는 이 구상이 구체화되지 않았으며, 그 문제는 얄타회담으로 넘어간다.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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