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ICT와 미래(ICT and Future) 티스토리 블로그

문재인·노무현家와 김대중의 친일행적 문재인 노무현 김대중, 친일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본문

정치인 김대중

문재인·노무현家와 김대중의 친일행적 문재인 노무현 김대중, 친일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천아1234 2021. 7. 4. 08:07

문재인 노무현 김대중, 친일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대중:

① 히틀러를 능가하는 2차 대전의 전범이자 조선침탈의 원흉 히로히토 일왕 영정에 90도 각도로 절하며 조문

② 일왕의 대한민국 정부 공식 호칭을 천황(天皇)으로 명명 지시

③ 자신의 성(姓)을 김씨 아닌 일본식 성인 ‘도요다(豊田)’, 이름을 ‘다이쥬’로 개명

④ 신(新)한일어업협정 이라는 망국적 간판 아래 독도를 포함, 울릉도 33해리까지 한국·일본이 공동 관리하는 수역을 확정해 우리 영해의 주권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스스로 포기

⑤ 일본제국 육군에 지원해 근무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군 하사관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는 설 해명 필요



문재인:

① 아버지 문용형씨가 일제의 교육기관인 함흥농고 졸업 후 조선총독부 산하 지방관서인 흥남읍사무소(현 흥남시청)에서 농업계장·농업과장으로 근무

② 당시 농업관련 업무 담당 공무원은 농민들로부터 쌀 등 곡물을 공출이란 이름으로 수탈해 일본에 보냈기 때문에 이런 업무를 맡았을 가능성 농후

③ 딸 다혜씨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으키고 일본제국의 조선 국권 침탈을 준비했던 극우 단체 ‘현양사’ 계열 인사들이 설립한 고쿠시칸대학 ‘유학’

④ 부인 김정숙 여사가 부산 소재 일본의 이름난 다도(茶道) 유파인 ‘리천가(裏千家, 우라센가)’의 다도 교실에 열심히 다녔다는 설

⑤ 노무현 변호사와 함께 친일 부정축재 의혹 기업인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상속세 부과처분취소청구소송에 참여해 승소를 이끌어냄



노무현:

①부모의 창씨개명 스스로 인정

②친일 부정축재 의혹 기업인 김지태 씨의 장학금으로 중·고교 졸업

③친일 부정축재 의혹 기업인 김지태씨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117억 상속세부과처분취소청구소송에 변호인으로 참여, 전액승소를 이끌어 사례금 6천만원 받음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政博)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박원순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홍용표 더불어 민주당 의원,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 선대(先代)들의 친일 의혹(사진=뉴데일리 캡쳐)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따른 배상문제를 놓고 촉발된 韓·日 무역갈등이 마주 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치킨 게임(chicken game)’ 양상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여야 간 친일 논란이 노골화 되고 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대변인은 30일 문재인 대통령 부친이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산하 공무원을 했으며, 문 대통령 딸 다혜(36)씨가 일본 도쿄(東京)의 사립대인 고쿠시칸대학(国士舘大学)에서 유학했다면서 문 대통령에 대해 친일 프레임을 들고 나왔다.

▲민족수탈의 원흉 히로히토 영정 앞에서 90도로 꺽어 절하고 있는 다이쥬(大中) 총재



민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문재인의 ‘文’자만 나와도 펄펄 뛰던 청와대가 문 대통령 3대에 걸친 친일 행적, 특히 딸의 일본 극우단체 설립 대학교 유학설에 단 한 마디도 없는 게 참으로 괴이하다”면서 “(문 대통령) 본인은 국가를 상대로 한 골수 친일파 기업인 김지태(金智泰) 후손이 제기한 세금취소 소송의 변호인을 맡아 거액 승소를 안겨주었고, 딸은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극우파 현양사(玄洋社, 겐요샤)가 세운 일본 고쿠시칸대학에 유학했다”고 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전의원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히로히토 일왕 조문을 비난하고 있다



문대통령의 부친 문용형(文龍炯, 1920-1978년)씨는 일제 강점기 함경남도 흥남 남평 문씨 집성촌 솔안마을 출생으로 함흥농고를 졸업한 뒤 1940년 일제가 주관한 공무원 시험에 합격, 조선총독부 산하 함경남도 함주군 흥남읍사무소(현 흥남시청) 농업과의 농업계장·농업과장을 지냈다. 1950년 12월 흥남 철수 때 어머니 강한옥씨와 문 후보의 누나 재월씨를 데리고 경남 거제로 피란했다.



조선의 공무원들이 태평양전쟁 시기에 농민들의 곡식을 수탈하는 일에 동원되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시·군의 농업과 직원들은 농민들이 피땀 흘려 가꿔 수확한 쌀과 보리를 공출이란 명목으로 수탈해 일제에 바치는 일이 주 임무였다. 이들은 전 조선인의 농지 규모 및 쌀 수확량을 파악해 일본으로 수탈 해갔다. 그렇게 수탈한 쌀은 일본군의 군량미로도 쓰였다.



여기서 문용형씨가 창씨개명을 했는지는 알려진 자료가 없으나, 일제시대 과장급 이상 고위 공무원은 창씨개명이 100%에 달한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창씨개명을 하는 것이 취업과 출세, 승진의 지름길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히틀러를 능가하는 2차대전의 전범이자 조선의 수탈범인 히로히토 일왕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경우는 행정력이 잘 미치지 못한 낙도와 산간벽지 주민이거나, 자식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서 농사만 짓는다며 취업 안 해도 된다고 버틴 극소수에 달했다. 일제는 창씨개명이 강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에 반대한 극소수 인사들에게는 ‘선전용’으로 조선 성명을 쓰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문용형씨가 다녔던 함흥농고는 함경남도의 명문이다. 당시 고등학교는커녕 소학교(오늘날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던 조선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일제 치하에 ‘고등학교’는 아무나 막 들어가 졸업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한 당시 공무원 시험 주관처는 일제의 조선총독부였다. 여기서 우리는 문 대통령 부친의 집안이 흔히들 말하는 부르주아(지주 등 부자)였고, 부친이 온전히 고등교육을 마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비추어 볼 때 일제와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유지했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추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학교도 못 다니며 재산이 몰수되고 죽임까지 당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신사참배나 창씨개명 등 일제에 협력하지 않은 학교는 폐쇄되기 일쑤였고 설립허가는 아예 나오지도 않았다.



앞서 일본의 보수 매체인 산케이(産經)신문은 문 대통령의 딸 다혜씨가 일본의 고쿠시칸대학에 유학한 사실이 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도쿄에 위치한 이 대학은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일으키고 일본제국의 조선 국권 침탈을 준비했던 극우 단체 ‘현양사’ 계열 인사들이 설립한 학교로 알려져 있다.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 78) 산케이신문 특파원은 지난 3월 30일 ‘서울에서 여보세요’라는 고정칼럼 코너에 “이번 주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견학할 목적으로 부산 남구에 다녀왔는데, 그 지역에서 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부산 소재 ‘리천가(裏千家, 우라센가)’의 다도(茶道) 교실에 열심히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김 여사가 리천가를 열심히 다니고 딸(문다혜 씨)이 고쿠시칸대학에 유학했던 것을 보면 문 대통령 가족은 의외로 일본에 우호적일지도 모른다”는 글을 올렸다. 오늘날 6백여 개나 되는 일본 다도의 유파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리천가와 오모테센가(表千家)이다. 이 두 유파는 일본 다도의 집대성자이자 일본의 다성(茶聖)이라 불리는 센노리큐(千利休, 1521-591년)의 자손들이다.



구로다 기자는 “대통령 비서실장을 그만 둔 최측근(임종석씨를 지칭)이 웃는 얼굴로 일본을 여행하는 사진도 현지 언론에 나오고 있다”며 “일반 국민과 마찬가지로 가족과 측근은 일본을 즐기고 있는데, 문 대통령 본인은 일본 보수파 때리기와 친일파 규탄, 반일애국 역사를 돌아보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나경원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난 2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친일파 후손들은 민주당에 더 많다. 우리 자유한국당에 친일파 후손이라고 불릴 만한 분이 없다”며 “10대 1 정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따지면 친일 기업인 후손(김지태 씨를 지칭)이 국가를 상대로 한 재산 환수 소송 변호사도 맡았다. 아마 우리 쪽에 어느 의원이 그랬으면 지금 그분은 친일파로 매장돼 국회의원 출마도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강훈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성일종 자유한국당 의원은 2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의 민주당 친일파 후손 발언을 놓고 언쟁을 벌였다. 강훈식 의원은 “왜 자꾸 자기 스스로들이 친일 프레임을 만들어가는 지 잘 이해가 안 간다. 제가 볼 때 (민주당 의원의 친일파 후손 여부는) 나경원 의원이 밝히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나 원내 대표가) ‘친일 아니다. 친일·반일로 가르지 마라. 우리는 친일 정당 아니다’라고 계속하다가 안되니까 ‘민주당이 더 많더라. 또 대통령도 친일이다’ 이렇게 범국민 친일 물타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라며 “‘전부 다 우리 친일이지 않느냐’라고 하는 것 정도가 아니면 구체적으로 (누가 친일인지 나 원내대표가) 밝히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성일종 의원은 먼저 친일 프레임을 씌워 시비를 건 것은 청와대와 집권 여당이었다고 맞받아쳤다. 성 의원은 “(한국당에서 조사한 결과) 민주당의 핵심 당직을 지내신 분도 있다. 옛날에도 있고 이 정부에 들어와서 한 분이 있지 않느냐”며“ 조국 전 민정수석이 나와서 협조를 받을 야당한테 (친일 프레임을) 몰아갔다. 이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성 의원은 이어 “국가적인 큰 어려움이 닥쳤을 때 야당한테 손을 내밀고 어찌 같이 힘을 합쳐서 이 국가적인 어려움을 함께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지혜를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 여러분께서 다 아시다시피 조국 전 수석과 이해찬 대표가 나서서 ‘죽창 가지고 싸우자 또는 쫄지 말자’ 등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을 했다”며 “국민이 권력을 위임한 집권 세력이 국가에 해(害)가 될 수 있는 이런 이야기들을 선도한 것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져야한다”고 덧붙였다.

▲ 일왕(日王)을 ‘천황(天皇)’으로 고쳐 부르게 지시한 후 방일해 붉은 넥타이를 매고 히로히토를 이은 아키히토 일왕과 2002 월드컵 본선을 관람하는 김대중 대통령



문 대통령 뿐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정신적 지주인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도 모두 ‘친일’ 시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입장이다.



집권 후 측근들과 좌익언론을 총동원해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끊임없이 친일파로 음해한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후 일본을 방문할 때 목포상고 일본인 스승 ‘무쿠모토 이사부로(椋本伊三郎)’에게 달려가 “센세이 아노 도요다(豊田) 다이쥬 데스요”(선생님 저 김대중입니다. 豊田은 김대중 씨의 일본 성)라고 정중하게 인사말을 올렸다. 이사부로는 조선총독부 교육청 훈도담임선생으로 일제강점기 말까지 우리 민족에게 황국신민조선을 교육시켜 민족얼 말살에 나섰던 전형적 침략주의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민당 총재시절인 1989년 1월 민족의 원흉 히로히토(裕仁)일왕이 사망하자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은 조문을 거부했으나, 스스로 일본대사관 뒷문을 통해 몰래 들어가 90도로 깍듯이 절을 하며 조문을 했다. 그 누구의 조문 강요도 없었고 일본정부의 공식조문 요청도 없었으나 김 총재는 스스로 조문을 갔고 이것이 경향신문에 포착돼 1989년 1월 9일 사진과 함께 특종으로 보도됐다. 민족수탈 수괴이자 전범 총책임자에 대한 조문행위는 국민정서에 반하는 명백한 친일·반역행위다.



이런 김 총재는 1998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일본 공식방문을 앞두고 후임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정부공식 호칭을 천황(天皇)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 국내의 반대 여론과 논란이 많았으나 강력히 밀어붙여 1998년 10월 방일을 앞두고 천황으로 공식 명명하게 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 공식방문 중 일본에게 독도해역 반을 즉시 일본에 넘겨준다. 신(新)한일어업협정 이라는 망국적 간판 아래 독도를 포함, 울릉도 33해리까지 한국·일본이 공동 관리하는 수역을 확정해 우리 영해의 주권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스스로 포기했다. 일본에게 독도 침탈 빌미를 제공한 이 굴욕적 협정은 친일 부역(附逆) 행위나 다름없다.



어민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어선 700여 척이 헐값에 강제 폐선 처리됐으며 가수 정광태(鄭光泰)의 ‘독도는 우리땅’ 노랫말은 금지곡으로 독도주권과 대한민국 자존심을 지켜주지 못하고 사라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지난 2015년 일본에서 발간된 한 서적이 일제 말기 김씨의 신분이 ‘일본군 하사관’이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한 영국 기자의 눈으로 본 연합국 전승사관(戰勝史觀)의 허망(虛妄)’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일본의 ‘쇼텐샤(祥傳社)’에서 2013년에 발행됐다. 영국 출신 저명 언론인 헨리 스캇 스톡스(Henry Scott Stokes)씨는 초판에 이어 2014년 11판까지 발행된 일본어판의 이 서적 170쪽에서 김대중 씨가 “일본제국 육군에 지원해 근무”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는 일본군 하사관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현재 81세인 스톡스 기자는 명문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영국의 세계적인 경제일간지 The Financial Times(1964-1967), 역시 영국의 세계적인 종합일간지 The Times(1967-1970), 그리고 미국의 세계적인 권위지인 New York Times(1978-1983)의 토쿄 지국장으로 근무한 뒤 지금은 일본에 거주하면서 저술 활동을 벌이고 있다. 스톡스는 2000년에 간행된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의 삶과 죽음(The Life and Death of Yukio Mishima)’과 2016년에 시판된 ‘광주봉기(Kwangju Uprising: A Miracle of Asian Democracy as Seen by the Western and the Korean Press)’의 저자이기도 하다.



스토크스는 이 서적의 170쪽에서 “나는 취재를 목적으로 30회 이상 김대중을 만났으며 따지고 보면, 내가 인터뷰한 일본과 아시아의 요인(要人) 가운데 김대중과 인터뷰한 회수가 가장 많았다”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김대중은 한국 서남부 전라남도 하의도(荷衣島)의 한촌(寒村) 출신으로 언론이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는가에 관하여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코미디언(희극배우)을 방불케 하는 정치가로 그때그때의 주어진 상황에 맞추어서 자신을 변신시키는 것을 능사로 하는 카멜레온과 같은 인물이었다. 김대중은 한국군에 입대한 일이 없었지만 일본제국 육군에 지원하여 근무한 사실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그는 일본군 하사관의 군복을 입고 있었다.”



사실은 김대중 씨의 이력 가운데 최종 학력과 1945년 해방 직전의 행적은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일제 때 그가 ‘도요다 다이쥬(豊田大中)’라는 일본식 창씨(創氏) 이름을 가졌던 사실은 그 동안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관하여 항간에서는 일본에 의한 식민 지배 말기 조선인들이 일본에 의하여 창씨개명을 강요당했을 때 대부분의 김(金) 씨들은 ‘카네다(金田)’, ‘카네야마(金山)’ 또는 ‘카네무라(金村)’ 등으로 ‘김(金)’이라는 본래의 성을 가미(加味)한 창씨 이름을 쓰는 것이 통례였는데, 김대중 씨의 경우에는 어째서 이 같은 통례와는 달리 고유한 일본인들의 성인 ‘도요다(豊田)’라는 창씨 성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가 일제 말기 만주 여순(旅順)의 건국대학교(建國大學校)에 입학을 했었는데, 이 건국대학교라는 학교가 특히 조선인들과 만주인들 가운데 부일배(附日輩)들을 양성해내는 특수 목적의 교육기관이었다는 주장이 없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과 체결한 신한일어업협정이 독도를 한일 공동수역에 포함시킴으로써 사실상 독도를 일본에 팔아넘겼다고 규탄 시위를 벌이고 있는 국민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5월27일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연세대 학생들을 상대로한 ‘변화의 시대, 새로운 리더십’이라는 제목의 특별강연’에서 ‘친일파’ 문제를 거론하는 가운데 “제 부모도 창씨개명을 했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닌가 하고 고심했다”면서 “과거 떳떳치 않은 사람들을 다 숙청하면 저도 숙청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숙청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인지 걱정스럽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노 전대통령은 1960년 김해 진영중학교 2학년 재학중 친일 부정축재 의혹이 있는 김지태씨가 설립한 부일장학회 시험에 합격해 1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 부산상고에 입학해서도 동문회장인 김지태씨가 교내에 만든 ‘백양장학회’에서 3년 동안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마쳤다. 1978년에는 김지태씨가 설립한 삼화그룹 고문 변호사로 일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전 에세이 ‘여보, 나 좀 도와줘’에서 이런 내용을 언급하면서 “나는 장학금만 바라보고 부산상고에 입학해 김지태 선생의 후배가 되었고, 나의 오늘은 그 분(김지태)이 디딤돌을 놓아준 셈”이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매일경제, ‘정수장학회에 얽힌 노무현-박근혜 인연’, 2004년 8월 3일).



노 전 대통령은 또한 변호사 시절인 1984년엔 김지태 회장의 유족들이 부탁한 117억원 짜리 상속세 소송을 맡아 전액을 취소시키는 승소판결을 이끌어낸 바 있으며 그 대가로 착수금 2천만원에 승소 사례금 4천만원을 포함, 총 6천만원을 김지태씨 유족으로 부터 받았다(동아일보, ‘선택 2002 대선후보 검증 제1부 <2> 변호사 시절’, 2002년 5월 13일)

  

정수장학회 논란이 한창이던 2012년 10월 22일, 당시 이정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공보단장은 노무현과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의 원래 명칭)의 원소유자인 김지태씨와의 이와 같은 인연을 들어 논란을 촉발 시켰다. 이정현 단장은 “김지태씨는 친일 부정축재 의혹이 있는데, 민주당이 언제부터 그런 의혹이 있는 사람들의 대변자가 됐냐”라며 노무현의 ‘친일성’을 우회적으로 부각 시켰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군 하사관’ 근무설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고증을 통해 그 사실 여부가 가려질 필요가 있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도 부모가 창씨개명은 했을 뿐 아니라 ‘친일 부정축재 의혹 기업인’의 돈을 받고 학교를 다녔고 이 분의 유족이 낸 거액 상속세 소송의 변호사로 참여해 거액의 승소 사례금을 받은 이상 더불어민주당 측은 그들의 정치적 뿌리에 해당하는 두 전직 대통령의 이 같은 ‘친일’ 행적 의혹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민주당이 상대 당 지도부 인사들의 ‘선대(先代)’들의 경력을 가지고 ‘친일’ 시비를 거는 것이야말로 “내 눈에 박힌 대들보는 보지 않고 상대편의 눈에 박힌 가시만을 보고 시비하는 격”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들의 비행(非行)은 ‘로맨스’라고 우기면서 상대편의 비행에 대해서는 ‘불륜(不倫)’이라고 시비하는 것, 즉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