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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아1234 2017. 9. 22. 14:00

탈원전 위해 사우디 원전 수출 포기하는가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팔을 걷어붙였다.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해 미래 에너지원(源)을 원전 중심으로 재편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는 2032년까지 원전 17기를 건설하기로 하고 최근 1.4GW급 원전 2기 건설에 대한 국제 설명회를 열었다. 다음달에는 건설비 200억 달러(약 22조원)가 소요되는 입찰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런 계획은 한국이 주도해 온 아랍에미리트(UAE)의 원전 건설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한국은 독자적 기술로 개발한 3세대 원전 APR 1400을 UAE에 수출해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 신형 원자로는 신고리 5, 6호기에도 사용될 예정이다. 한국형 원전이 국내외에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 가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찬물을 끼얹고 있다. 자국에서 포기하려는 원전을 수입할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해외 원전 수주는 지원하겠다”고 했지만 현실은 어떤가. 지난 18일 국제 설명회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서기관을 대표로 보냈다. 반면 중국은 상무부총리가 사우디 왕세자를 직접 만났다. UAE 원전 건설을 계기로 한국이 차려 놓은 중동의 원전 건설 잔칫상을 자칫 중국에 내줄지도 모르게 된 것이다.
원전 수주는 국가적 총력을 다해도 어렵다. 한국은 2010년 요르단, 2011년 터키 원전 수주에 잇따라 실패했다. 미국·일본·프랑스·중국·러시아 등 원전 강국의 벽을 넘기 쉽지 않아서다. 최근엔 도시바가 한 발 물러서면서 영국 원전도 수주할 기회가 생겼지만, 이 역시 한국의 탈원전 선언에 따라 중국이 가로챌 기회를 엿보고 있다. 세계 시장 규모 300조원의 원전시장을 이렇게 어처구니없이 포기할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원전 수주에 총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김명수 인준 가결, 코드 버리고 협치 세우는 계기로
김명수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이 천신만고 끝에 가결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로써 헌법재판소장·대법원장 동시 공석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피할 수 있게 됐으며, 북한 핵·미사일의 현실적 위협 앞에서 국정동력의 급속 상실에 따른 국가운영의 표류를 가까스로 막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번 인사 파문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그리고 여당은 지나친 ‘코드 인사’를 걱정하는 국민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임기 4년 내내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박근혜 정부의 집권 초기 낙마자가 7명이었는데 문재인 정부 또한 이미 같은 수가 낙마했다. 아직 인선이 끝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 많은 낙마자가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거듭된 인사 실패는 부실검증과 효율적이지 못한 인사 시스템 탓도 있겠지만 정치적·이념적 동종 교배만을 추구한 코드 인사에서 비롯됐음을 우선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심지어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 후보자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당이 반대하고 나서는 웃지 못할 코미디까지 벌어졌다. 나와 이념적 성향이 다르면 적폐라는 오만, 개혁과 좌편향을 혼동하는 편견을 서둘러 버려야 한다. 이번 표결에서도 드러났듯 문재인 정부는 향후 국정수행에 있어 국민의당 등 야당의 협조 없이는 여소야대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능력만 있으면 야권 인사도 발탁하는 협치와 탕평 정신을 인사의 제1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만이 한반도 위기상황을 기회로 바꿔 역사에 남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울러 김 대법원장 후보자는 이제 자신의 발목을 잡았던 좌편향 우려를 극복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정치권력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롭고 오로지 법과 정의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법부를 만들 것을 국민들과 약속하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사법개혁이다.
균형잡힌 대통령 유엔 연설 … 대북 지원은 최대한 늦춰야
문재인 대통령의 21일(현지시간) 첫 유엔총회 연설이 무난하게 마무리됐다. 예상대로 ‘평화’를 강조하면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의 필요성도 부각했다. 문 대통령은 “북핵 실험 후 우리 정부는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어내기 위해 더욱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밝혀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엔 안보리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대북제재를 결의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자는 호소도 빠뜨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 압박·평화 함께 강조해
미국 입장 고려한 수위조절 적절
지금은 대북 지원 밝힐 상황 아냐
그동안 문 대통령이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줄기차게 강조해온 만큼 이번에도 ‘압박’보다 ‘평화’에 무게가 실릴 것이라는 관측이 적잖았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은 양쪽 간 균형의 추를 맞춘 연설을 했다. 연설 후반부에서 “북한이 스스로 핵을 포기할 때까지 강도 높고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면서도 “지나치게 긴장을 격화시키거나 우발적인 군사적 충돌로 평화가 파괴되는 일이 없게 해야 한다”고 지적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문 대통령이 균형 잡힌 연설을 한 것은 지난 19일 국제적 논란이 될 정도로 북한을 강력히 비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흘 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이런 터라 이번 연설은 한·미 동맹 사이에서 엇박자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수위조절의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연설과 대조적으로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가 800만 달러 규모의 인도적 대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북핵 위기에 맞서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는 국제적 흐름과 동떨어진 판단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는 인도적 차원의 대북 지원을 줄곧 지지해 왔다. 굶주리고 병든 어린이와 임산부를 돕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는가. 다만 지금이 이런 결정을 내릴 적기인지는 의문이다. 지금도 북핵 문제를 두고 북·미가 물밑 접촉을 통해 전격 타협을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에 대비해 대북 지원 사업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주장도 일리는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김정은 정권은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갈 핵무기 개발에 폭주하고 있다. 심지어 20일에는 이용호 북한 외무상이 쌍욕이나 다름없는 “개소리”라는 표현을 써 가며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을 헐뜯었다. 그런 판에 북한을 돕겠다니 국제사회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한·미 동맹 간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곳곳에서 나오는 판이다. 남북교류협의회가 대북 인도적 지원을 결정했지만 실제 집행은 최대한 늦출 필요가 있다. 앞으로 정부는 대북 정책을 결정하거나 발표할 때 국내외 상황을 잘 살펴 가며 지혜롭게 대처하길 바란다.
흐루시초프의 덫에 걸린 트럼프
북한 완전 파괴는 정당화될 수 없어
군사옵션은 압박수단에 머물러야
제재와 압박, 강한 억지력 보유가
대북 선제공격에 대한 대안
미국의 첨단무기를 구입하되
전략자산 상시 순환배치 받아내야
소련 공산당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는 1960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미친 사람이 아니고는 한국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한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바로 그 연단에서 북한 완전 파괴 발언을 하여 이 세상 사람이 아닌 흐루쇼프의 “미친 사람”이 되어버렸다. 트럼프는 미국과 동맹국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북한을 송두리째(totally) 파괴하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트럼프는 57년 전에 흐루쇼프가 쳐 놓은 덫에 걸린 꼴이 되었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로켓맨”으로 부르는 데는 무리가 없다. 핵·미사일 무장을 서두르는 김정은이 자살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말도 김정은에 대한 상식적인 인식을 대변한다. 그러나 북한을 완전히 파괴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은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멈추지 않으면 지도자 제거나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하겠다는 말로 김정은을 압박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완전 파괴라면 거기에는 2500만 북한 주민들과 북한 땅 모두가 포함된다.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평화의 전당이라는 유엔 무대에서 한 나라를 통째로 파괴한다는 발언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당돌한 폭언이다.
트럼프의 반이성적, 반인류적 발언이 북한을 압박하기 위한 고강도의 수사(레토릭)라고 해도 문제다. 그런 발언은 김정은에게 핵·미사일 개발의 완성을 서두르라고 촉구하는 역효과를 낼 게 분명하다. 북한 외무상 이용호가 트럼프의 말을 “개 짖는 소리”라고 일축한 것을 봐도 김정은이 트럼프의 말폭탄에 놀라 핵·미사일 야욕을 포기할 일이 없을 것임을 알 수 있다.
북한이 7월 미국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두 번, 8~9월 괌까지 날아가는 중거리미사일(IRBM) 발사, 6차 핵실험을 한 뒤 미국은 군사옵션 쪽으로 크게 기울고 있다. 9월 18일 국방장관 제임스 매티스는 서울에 중대 위험이 없는 군사옵션이 있다고 말했다. 그럴 수가 없다. 8월 14일자 뉴욕타임스는 여섯 개의 한반도 가상 전쟁 시나리오를 실었다. 그 여섯 개의 시나리오 어디에도 서울과 수도권이 무사한 것은 없다. 시나리오의 하나는 동·서해의 구축함에서 발사하는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괌과 미국 본토에서 날아 온 전폭기들이 수행하는 한 번의 공격(single strike)으로 북한 핵·미사일을 제거하여 김정은이 핵·미사일을 포기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전역의 땅굴 속에 분산 배치된 북한의 단·중·장거리 미사일을 모두 단번에 파괴할 수는 없다.
남한과 일본, 그리고 어쩌면 괌에 대한 보복공격은 각오해야 한다. 매티스 장관과 한·미군 수뇌들은 정직해야 한다. 서울에 대한 중대 위험이 아니라면 어느 수준의 위험을 감수하라는 건가. 문제는 또 있다. 미국 단독으로 또는 한·미 연합으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의 준비를 위한 병력과 장비와 함정의 이동배치가 북한에 포착되기라도 하면 북한은 사이버 선제공격으로 한·미군의 전쟁기능을 마비시킬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수석연구원 스콧 세이건은 포린 어페어스 최신호에서 김정은은 군부 지도자들에게 자신이 미국의 제1격으로 사망하면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발사하라는 지시를 내려놓았을 수도 있다고 썼다. 참으로 합리적인 추측이다.
군사옵션은 압박수단에 머물러야 한다. 군사행동의 목적이 북한 파괴여서도 안 된다. 미국은 한국의 참여와 동의 없는 대북 군사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잃을 것이 많은 것이 우리의 약점이라는 것, 북한은 ‘약자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다. 그래서 평화가 알파요 오메가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전쟁이 일어나도 거기(한반도)서 일어나고 죽어도 그들(한국인들)”이라는 사고회로를 바꿔 흐루쇼프의 덫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럴 가능성이 작다. 9월 11일 유엔 안보리가 만장일치로 채택한 북한 제재결의안 2375호는 필요한 제재의 70% 정도 될까 말까다. 중국이 문제다. 30% 부족한 제재에 중국이 동조한 데 만족할 수는 없다. 미국은 중국에 세컨더리 보이콧의 카드를 들이대고 대북 원유수출을 중단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최고의 제재와 압박, 그리고 최고 수준의 억지력 보유가 대북 선제공격에 대한 대안이다. 트럼프는 한국에 첨단무기를 많이 팔려고 ‘갑질’을 하고 있다. 그의 배후에 가공할 군산정(軍産政) 복합체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래도 우리는 미국의 첨단무기를 사주는 대신 미국의 전략자산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를 받아내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문 대통령, 송영무를 품어라
‘예스맨’만 쓰면 안보 재앙 불 보듯
균형인사로 집단사고 막는 슬기를
“나, 그 사람 안 만날라요.”
“왜 그러십니까.”
“그 사람 만나서 뭐 되는 일이 있어야지. 남북대화 방해나 해 싸코.”
참여정부에서 안보실장과 외교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국 대통령과 만나실 때”라고 건의하자 노무현이 보인 반응이다. 노무현에게 조지 W 부시는 눈엣가시였다. 어렵사리 북한을 달래 협상장에 끌어낼 때마다 ‘악의 축’이라 욕하거나 금융제재 철퇴를 휘둘러 파투를 놓기 일쑤였다. 만나기 싫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송민순은 물러서지 않았다. “민간인은 싫은 사람 안 만나도 되지만 대통령은 싫어도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버텼다. “다친다”는 주변 만류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무현은 “당신은 왜 날 그리 갈구요?(괴롭히느냐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라며 화를 냈다. 하지만 며칠 생각해 보더니 마음을 돌렸다. 송민순을 불러 “외교 책임자가 하라는데 어쩌겠노. 부시랑 언제 어떻게 만나면 되는지 얘기하시오”라고 지시한 것이다.
노무현은 “반미면 어떠냐”로 재미를 본 대통령이었지만 외교 정책과 인사에선 이렇게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았다. 청와대에 포진한 386(지금은 586)들 주변에 관료 출신 현실주의자들을 배치해 균형을 잡았다. 송민순이 그랬고, 반기문이 그랬다.
노무현 정부 첫해였던 2003년 말, 외교부 북미라인을 ‘숭미 사대주의자들’로 낙인 찍어 북미국을 초토화시키고 윤영관 장관까지 낙마시킨 386들은 기세가 하늘을 찔렀다. “다음 장관은 우리 말 잘 듣는 ‘자주파’로 뽑자”며 인선(?)에 나선 끝에 외교부 차관보와 프랑스 대사를 지낸 J씨를 밀었다. 하지만 노무현의 선택은 달랐다. 외교부에서 대표적 미국통으로 꼽혀 온 반기문을 장관에 낙점한 것이다. 뒤통수를 맞은 386들의 반발은 극심했다. “어렵사리 늑대를 쫓아냈더니 대통령이 호랑이를 불러들였다”며 반기문의 주변과 사생활을 이 잡듯 뒤져 낙마시킬 구실 찾기에 나섰다. 하지만 노무현은 흔들리지 않고 반기문에게 실권을 줬다. 386들에겐 “미국의 반응이 심상치 않아 반기문을 쓴 것”이란 이유를 댔다. 그러나 그들에게 지나치게 힘이 실리는 것을 막기 위한 견제구 성격도 컸다.
반기문은 노무현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미국의 믿음을 바탕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용산기지 이전 같은 껄끄러운 이슈들을 매끄럽게 처리했다. “이혼 직전의 왕과 왕비”란 말이 나올 만큼 삐걱댔던 한·미 동맹이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건 반기문 기용으로 우리 외교의 좌클릭에 제동을 건 노무현의 ‘균형 인사’ 덕분이었다.
송영무 국방장관이 청와대의 엄중 경고를 받았다. 청와대 내부의 ‘자주파’들과 확연히 다른 안보관을 가진 송 장관에 대한 견제일 것이다. 이럴수록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을 떠올리며 송영무를 지켜야 한다. 586 비서관들이 주도하는 집단사고(group think)에 현혹돼 그쪽 손만 들어 줬다간 외교적 재앙을 당하기 십상이다. 현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은 실력도 맷집도 약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워낙 많다. 이런 가운데 그나마 믿음을 주는 사람이 송영무다. “대통령님께 감히 공개적으로 대들었습니다. 잘라야 합니다”는 말만 듣고 그를 경질하는 건 쉬울지 모른다. 그러나 그를 자르고 나면 대통령 주변엔 ‘예스맨’만 판치게 된다. 특정 집단에 힘이 집중되면서 대통령의 운신 공간과 권력도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안보도 지키고 정권도 잘나가게 하려면 자신에게 대들고 하기 싫어하는 일을 시키는 부하를 기꺼이 품은 노무현의 현실주의와 균형인사가 정답이다.
트럼프의 유엔 연설, 해야 할 말 한 거다
‘북한 철저 파괴’ 과격 표현에
지지층 통쾌, 국내외에 불안감
발언에 담긴 외교안보 메시지
미 대통령 응당 해야할 대응책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19일 유엔총회 기조연설은 그가 의도한 효과를 챙겼다. 특히 논란과 불안감을 초래한 그의 북한 관련 발언은 도하 각 신문 1면 톱 뉴스를 장식했다.
미국의 리버럴(liberal) 매체와 정치권 인사들은 경악했다. 메릴랜드주에서 발행되는 볼티모어선은 이렇게 물었다. “누가 미쳤나. 김정은인가 트럼프인가.”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의 발언 때문에 미 동맹국들이 “조마조마해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일부 미 상원의원은 대통령의 전쟁 선포를 제한하는 의회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파가 경고음을 울렸다면 보수주의자들은 통쾌함을 맛보았다. 워싱턴타임스의 칼럼니스트들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전 세계를 다니며 미국의 잘못을 사과한 ‘사죄 순방(apology tour)’이 드디어 끝났다고 선언했다. 폭스뉴스는 북한·이란·베네수엘라를 직설적으로 단죄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냈다. 종종 트럼프를 비판하는 네오콘 성향 잡지인 코멘터리도 세계를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결 구도로 보는 듯한 트럼프의 연설을 이번에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트럼프 입장에서 이번 연설은 정치적으로 괜찮은 수확을 한 셈이다. 그는 미국의 사회적·정치적 상처에 소금을 뿌림으로써 권력을 쟁취한 인물이다. 오바마는 ‘통합자(uniter)’ 역할을 표방했다. 트럼프는 통합을 꾀하는 시늉조차 안 한다. 골수 지지자들은 트럼프 유엔 연설이 ‘남자답다’고 환호했다. 오바마와는 다른 이런 모습을 기대했기에 그에게 한 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런 기대에 부응하듯 트럼프는 전례 없는 ‘분열자(divider)’ 노릇을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적절한 비평의 대상이어야 한다. 그가 김정은을 ‘로켓맨(Rocket Man)’이라고 부른 것은 프로레슬링 연출 기법을 연상시킨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지지자들은 환호했을지 모르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미 행정부가 진중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정책에 대해 유엔 연설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그 알맹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인내심이 강하지만, 미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하도록 강요당한다면 우리는 북한을 철저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게 될 것이다.”
이런 식의 발언은 새롭지 않다. 1993년 한반도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무의미하다고 선언했다. 북한이 미국의 보복으로 “파괴될(destroyed)” 것이기 때문이었다. 클린턴의 경고는 제1차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나왔다. 신중하게 준비된 발언이었다. 발언의 목적은 미국의 핵우산이 효과적일 것이며, 평양이 대한민국과 미국을 협박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 있었다.
그 어떤 미 대통령도 트럼프만큼 심각한 정도로 북한 핵·미사일 프로그램의 위협을 접해 보지 못했다. 미 대통령이라면 누구나 ‘미국의 동맹국이나 미국에 대한 평양의 공격은 북한의 파멸로 끝난다’는 미국의 오랜 입장을 재확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면 트럼프는 유엔 연설에서 그가 미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말을 했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젭 부시가 대통령이 됐다고 하더라도 같은 말을 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미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조와 정책을 선택할 의무가 있다. 언론은 미 정책에 대한 트럼프 연설의 실제 내용을 역사적 맥락에 따라 분석할 책무가 있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서는 단절성보다 연속성이 훨씬 더 많이 발견된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대다수 미국민은 자유무역, 미국의 글로벌 관여 정책, 한국 방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지지한다. 트럼프 행정부도 그런 국민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고심한 결과라고 본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주의에 대한 미 보수주의자들의 혐오증 및 ‘미국 우선주의’를 수사적으로 구현해야 했다. 둘째, 미국의 유엔 지지와 미 외교 정책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도 보여 줘야 했다. 뜯어보면 트럼프 연설에 모순이 있고 이상한 주장도 있었다. 미 대통령이 유엔에서 행한 연설 중에서 위대한 연설로 기억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연설은 연설이 담은 정책과 관련된 실제 내용으로 우선 평가받아야 한다.
안보 위기 속 방영 중인 ‘적폐 청산’ 활극
일본 언론의 서울 특파원들에게 ‘한국과 일본 생활이 얼마나 다른지’를 물어보면 이런 답변이 자주 돌아온다.
“한국을 잘 아는 선배들이 ‘절대로 일본의 잣대나 시각으로 한국을 봐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고. 도쿄와는 너무 다른 서울 생활(예를 들어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전화 통화를 하고 다른 사람과 부딪쳐도 사과 한마디 없는 사람들, 손님이 있든 없든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높이고 달리는 ‘소음 택시’들처럼 일본에선 접하기 어려운 이색 체험)을 불편해하기 시작하면 본인만 괴로우니 ‘문화적 상대성’을 최대한 존중하려 한다는 뜻이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그런데 요즘 그들이 더 신기하게 여기는 건 ‘문화적 상대성’보다 한국 사회의 ‘정치적 상대성’인 것 같다.
전례 없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속에서도 현 정부가 사력을 다하고 있는 적폐 청산 드라이브 때문이다.
5년마다 10년마다, 정권교체 때마다 피바람을 일으키는 사생결단식 편가르기에 익숙지 않은 일본 기자들에겐 엄청난 구경거리다. “적폐인지 아닌지를 누가 결정하느냐” “이명박 정권 때 잘나갔다가 박근혜 정권에서 못 나갔으면 적폐냐 아니냐”는 디테일한 질문에 대답하기가 민망할 때가 많다.
적폐 사냥의 영향권에선 안보 위기의 최일선에 서 있는 외교안보팀도 자유롭지 않다. 청와대 통일·외교·안보특보에게 “상대해서 될 사람이 아니다”는 직격탄을 날렸다는 이유로 청와대는 현직 국방부 장관에게 ‘엄중 주의 조치’를 내렸다. 수백 통의 격려 문자를 받았다는 장관은 적폐일까 아닐까. 북한 핵·미사일 외교의 심장부인 외교부도 공관장과 국장급 인사를 앞두고 들썩대고 있다.
‘이명박근혜 정권’ 때 요직을 지냈으면 다 적폐인지, ‘이명박근혜 정권’에서 잘나갔음에도 청와대에 픽업된 사람들은 실력이 그만큼 출중한 건지, 가족들 중에 ‘이명박 정권 부역자’가 있어도 괜찮은 건지, 과거 노무현 정권에 제대로 찍혔던 인사들은 또다시 한직으로 쫓겨나는지, 과거 공기업 낙하산처럼 공관장 30%에 대선공신들이 줄줄이 임명될 것이라는 소문은 사실인지 등으로 조직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현 정권이 온 힘을 다해 밀었던 외교장관을 향해서도 여권 내부에서 “지난 대선 때 문재인 대통령 반대쪽에 섰던 전직 외교장관들을 초청해 식사를 했다는 소문이 있다”고 공격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정권 초부터 이어졌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시리즈에 이어 고무줄 잣대로 무장한 현 정부의 적폐 청산 드라이브가 빈대 대신 초가삼간을 태울까 걱정된다.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안보 위기 속에서.
미워할 권리
출근길 엘리베이터 안, 내가 내리기도 전에 ‘닫힘’ 버튼을 누르는 아저씨, 오늘도 있다. 괜한 심술에 슬로 모션으로 내리는 나도 참, 한심하다. 퇴근 버스 안, 진분홍색 커버를 씌운 임산부 석에 앉은 쩍벌 어르신도 있다. 촌스럽기 짝이 없는 분홍 커버가 시력 저하로 안 보이시나. 이런 생각하는 나도 참, 못됐다.
그래도 이제 웬만하면 “어린 게 뭘 아냐”는 얘기는 안 들을 나이가 돼서 그런지,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엘리베이터 버튼남도, 쩍벌 어르신도, 뭔가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 거다. 인간적으로 성숙해서가 아니다. 자신감이 없어져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생각, 내가 저 사람을 몰아붙일 자격이 있는가 하는 의문 때문이다. 살면 살수록 세상은 단순하지 않고 어려울 따름이다.
이런 나는, 240번 버스 기사를 대하는 대다수 네티즌들의 순도 100% 증오가 놀라웠다. 울부짖는 엄마와 네 살배기 아이를 이산가족으로 만든 비정한 운전 기사. 이 프레임에 네티즌들은 신기할 정도로 한 톨의 의심도 갖지 않았다.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니, 너는 나의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식이다. 독일 언론인 카롤린 엠케가 『혐오사회』에서 “증오에는 절대적 확신이 필요하다”고 설파한 그대로다.
엠케는 사람들이 타자를 증오하게 되는 이유로 “경솔한 순진성”을 들었지만, 대한민국 네티즌들에게선 거기에 더해 외로움도 읽혔다. 뭘 해도 살기 힘든 세상, 공공의 적이라도 만들어 화풀이라도 하고 싶다는 심리가 아닐까. 그래도 방법론이 틀렸다는 데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누군가를 그렇게까지 미워할 권리, 미움을 분출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정작 위로가 필요한 건 “극단적 선택까지도 생각했다”는 버스 기사다. 길을 걸을 때면 행인들이 모두 그를 몰아붙인 네티즌들로 보일 터다. 꿋꿋이 버티시길.
스오 마사유키(周防正行) 감독의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의 마지막 대사가 떠오른다.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몰려 유죄가 된 무고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부디 당신이 심판받고 싶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저를 심판해 주시기를.” 절대선도 절대악도 이 세상엔 없다. 아, 그리고 아무리 바빠도 엘리베이터 버튼은 사람이 내리고 난 뒤 누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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