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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 | 조선핵전쟁] 평양을 때린 뒤 세계는 사라졌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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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세계대전 시나리오 | 조선핵전쟁] 평양을 때린 뒤 세계는 사라졌다

천아1234 2021. 7. 31. 10:11

지구별에 핵겨울이 찾아오기까지… 2004년 8월부터 10월까지 정밀하게 쓴 일기

2004년 8월13일, 이른 아침 눈을 뜬 리처드 피터슨(Richard Petterson) 제독은 오늘이 매우 바쁘고도 중요한 날이란 걸 알고 있었다. 12시간 뒤에 조지 부시 현 대통령이 차기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다시 지명받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미합중국 태평양사령관 경력에 승패가 갈리는 날이었으니.

유엔결의안 2431, 최종 시한을 넘기다

피터슨은 12:00시, 오키나와 기지로부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핵 문제에 대한 최종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조선은 그동안 수많은 경고와 최근 유엔결의안 2431까지 무시하며 태평양사령부가 요구한 핵 시설 정밀사찰을 거부해왔다. 이제 평양은 그 세 번째이며 마지막으로 주어졌던 최종 시한을 넘김으로써 모든 결과의 책임을 져야 할 상황을 맞았다.


피터슨은 자신의 발표가 모스크바, 베이징, 파리 그리고 런던과 도쿄까지 격정에 빠트릴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의안 2431에 대한 워싱턴의 해석을 놓고 영국을 제외한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이견을 보였던 탓이다. 2431은 대이라크 결의안 1441과 마찬가지로, 자동적인 무력 사용도 조선에 대한 안보리 회원국의 일방적인 군사 행동도 허가하지 않았다. 게다가 조선은 이라크와 달리 협정이나 국제조약을 위반하지 않았다. 다만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했을 뿐이다. 핵확산금지조약 제10조 ‘회원국은 최상의 국가 이익에 따라 3개월 고지 기간을 거쳐 탈퇴할 수도 있다’를 인용해서.

그로부터 한국, 조선, 러시아,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이 참여하는 이른바 ‘6개국 다자회담'이 벌어졌으나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평양은 미국 사찰단에게 영변 핵시설 개방을 거부하면서 그 시설들은 재처리를 중단한 8천여개에 이르는 쓰고 난 핵 연료봉을 쌓아둔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평양은 미국이 ’안전보장’을 확약해야만 핵 문제를 놓고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워싱턴은 단호하게 거부했다. “이제 그만!”이라고 외친 부시는 “핵 공갈을 멈춰라”며 위협하기도 했고 “이라크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대놓고 협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마찰은 크립톤가스(Krypton-gas) 배출을 탐지하지 못해 결국 영변 핵 재처리 시설이 가동을 멈춘 상태라는 사실을 미국이 확인하면서부터 진흙탕에 빠져들었다. 러시아와 중국은 펄쩍 뛰었다. “워싱턴은 평양을 향해 준비해온 비현실적이고 어리석은 최후 통첩을 당장 멈춰라”

운니(E. P. Unny)/ <인디안 익스프레스> 시사만화가.

그러나 워싱턴은 새로운 정보를 흘리며 평양을 복종시키고야 말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조선은 5-6기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물질을 충분히 뽑아냈을 것이다.” 미국 정보당국과 국방성도 맞장구치며 서로 다른 정보들을 마구 풀어냈다. “아마도 연료봉으로부터 핵폭탄 3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추출을 마쳤을 것이다.” 물론 피터슨은 잘 알고 있었다. 미국이 지닌 핵폭탄이 6천기에 이른다는 사실을, 또 미국의 핵폭탄이 조선의 것에 비해 엄청난 위력을 지녔다는 사실도.

러시아와 중국은 조선이 플루토늄을 추출했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을 뿐만 아니라, 조선이 플루토늄을 추출했든 안 했든 간에 ‘불법’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프랑스 정보국도 ‘조선은 핵폭탄을 만들 만큼 플루토늄 추출을 하지 못했다’는 자체 평가를 내렸다.

세 나라가 미국에게 협상을 요구하는 가운데, 중국은 평양으로부터 ‘플루토늄 재가공을 다시 시작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공식적인 확언을 받아냈다. 중국은 조선 국경으로 파견했던 15만여명에 이르는 병력을 철수해도 상관없다고 여길 만큼 긴장감이 풀렸다.

러시아 입장도 강경했다. 푸틴은 미국과 거래하는 동안 거리 시위대로부터 상당한 압박을 받았다. 러시아 시민들은 이라크 전쟁을 놓고 푸틴이 미국에 항복하고 말았다는 불쾌감을 지녀왔다. 그는 앞으로 조선의 핵 문제로 워싱턴에게 다시 무릎을 꿇는다는 건 정치적 자살 행위와 다를 바 없다고 여기며 강경한 태도로 나섰다.

프랑스는 부시가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점점 더 광폭해지고 거만해지는 미국에게 유럽이 자기 주장을 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사실을 예리하게 꿰뚫고 있었다. 심지어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마저도 노동당 내부로부터 압박을 받으면서 이라크에 이어 또 다른 재앙에 말려들 수 없는 처지여서 몸을 사렸다. 특히 이번 조선 핵 문제는 반쪽짜리 정보도 없이 벌어진 일이다 보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 도박이었다.

하워드 딘에게 밀린 부시의 선택

대통령선거가 6주 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각종 여론조사는 부시가 35%대에 머물려 50%대를 오르내리는 하워드 딘에게 밀리고 있는 사실을 연일 쏟아냈다. 이런 부시에게 조선은 자신의 강인함을 시험하는 무대가 되었다. 부시를 지원하는 신보수주의 주전론자들에게는 마지막 ‘계산’의 순간이 다가왔다.

“지금이야말로 다시없는 기회다!” 피터슨은 자신이 국내·국제적 정치 위기의 한복판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피터슨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8월13일 12:00시, 피터슨은 최후 통첩을 날렸다. “태평양사령부는 9월22일을 데드라인으로 선포한다. 조선은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더 이상은 없다!”

‘오퍼레이션 기율과 응징’, 같은 날 미군 선발대들은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태평양 전진기지에서 도상훈련에 돌입했다.

피터슨은 조선이 이라크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피터슨은 심각한 저항에 부딪칠 조선 침공작전을 예상하며 지긋이 눈을 감았다. 특히 그는 조선이 반격용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노동미사일과 대포동미사일에 대해 확실한 평가를 내리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다.

D-데이 9월23일, 07:45시, 미 전략폭격기들이 영변과 평양 주석궁을 타격했다. 같은 시각, 4만여명으로 구성된 최정예 해병대와 공중강습사단이 원산항을 치고 들어간 데 이어, 08:00시 6만여명이 해주쪽으로 그리고 11만7천여명이 비무장지대를 돌파했다.

조선은 사력을 다해 반격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조선은 서울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조선의 가공할 만한 화력은 미 정보당국과 국방성 정보를 웃돌았고, 미군은 침공 2주만인 10월5일 이미 1만5천여명에 이르는 전사자와 3만여명의 중상자를 내며 충격에 빠져들었다.

부시-체니 팀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어떻게 조선을 깨뜨릴 것인가? 재래식 병력 증강 투입으로 더 많은 손실을 입을 것인가, 아니면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핵무기를 사용할 것인가?”

피터슨은 두 가지 선택 모두에 대한 명령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피터슨은 핵폭탄 사용 가능성을 놓고 떨었다. 피터슨이 지닌 핵폭탄의 이미지는 ‘억지력’이었을 뿐, 전투용 무기가 아니었던 탓이다. 그러나 명령은 명령이었다.

러시아, 프랑스, 중국은 미국에게 경고했다. “핵무기를 사용하지 마라. 지구적 재앙을 불러올 것이다. 우리는 핵무기 사용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워싱턴, 당신을 멈추게 하는 일 말고는 선택권이 없다. 당신들은 분명히 대가를 치를 것이다. 만약 워싱턴이 조선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전술핵무기로 조선에 파견된 미군들을 공격할 것이다.”

핵미사일, 모스크바로 상하이로…

워싱턴, 미군 사망자 수가 늘어나는 만큼 하워드 딘의 인기는 점점 높아갔다. 부시 진영에서는 강경파들, 즉 딕 체니, 리처드 펄, 폴 월포위츠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지금 당장 한반도로 가라. 아니면 선거에서 지던지!”

10월11일 11:45시, ‘나우(now)!’.

B-2폭격기가 100kt의 핵폭탄을 평양에 투하했다. 60%가 넘는 평양 시민들이 사망했다. “더 많은 핵폭탄을 받을 것인가 당장 항복할 것인가, 그 선택은 너희들 몫이다.”

15개 유엔안보리 이사국 가운데 13개국이 비상회의 개최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10월12일 03:15시, 러시아 잠수함이 중국 해역에서 SS-N-23 스키프미사일로 개성을 장악한 미군 진영을 타격했다. 4개 탄두 가운데 하나만 사용하는 제한적인 핵 장착으로 0.6kt 폭발력을 지니도록 한 SS-N-23은 450여명에 이르는 미군 사망자와 8천만달러어치 군사장비를 파괴했다.

부시는 선포했다. “미국인의 생명을 싸구려로 만들지 마라.”

정확히 1시간 뒤, 미군은 10개 탄두를 장착한 20기에 이르는 미니트맨-III 대륙간탄도탄을 모스크바로 날렸다. 그리고 MK-5 해상발사미사일 10기로 상하이를, 트라이던트-II 미사일 7기로 베이징을 각각 때렸다.

수백만명의 러시아인과 중국인이 끔찍하게 죽었다. 러시아가 보복 공격을 감행한 뉴욕과 시카고에서도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발생했다. 그리고 1주일 뒤 전쟁은 끝났다. 지구별에는 핵겨울이 이어졌다. 영원히.

델리=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타임 오브 인디아> 전 편집장 · 핵 전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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