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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은 없다

천아1234 2017. 9. 30. 13:06
4차 산업혁명은 없다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로버트 J. 고든 지음, 이경남 옮김/생각의 힘(2017)
이세돌 프로바둑 9단이 지난해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제5국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인터넷보다 세탁기가 세상을 더 많이 바꿨다.”
영국에서 활동하는 경제학자 장하준이 몇 해 전 저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부키)에서 한 도발적인 주장이다. 우리는 변화를 얘기할 때 종종 “망원경을 거꾸로 들고 과거를 돌아보는” 오류에 빠지는데, 최근의 변화일수록 혁신적이라고 생각하는 습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재 일어나는 변화를 과도하게 강조할 때 우리는 바람직하지 않은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저개발국을 도울 때 가난한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사주고 인터넷선을 깔아주는 것보다 우물 파주고 전기 끌어다 주는 게 더 나을 것이라는 게 장하준이 하고 싶은 말이었다.
4차 산업혁명이 한국 사회의 ‘화두’다. 2016년 초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주제로 제시됐고, 그해 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로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더니 올해 들어서 국내에서 열리는 주요 포럼이나 세미나에 4차 산업혁명은 단골 주제가 됐다. 새 정부의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4차 산업혁명 대비’를 3대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을 쓰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로보틱스 같은 4차 산업혁명 기술이 경제와 사회에 큰 변화를 몰고 오는 ‘변곡점’ 또는 ‘제2의 기계시대’(에릭 브린욜프슨, 앤드루 맥아피)에 다가가고 있다는 낙관론이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미국 주식시장에서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테슬라 같은 지능정보기술 기업의 주가가 상위권을 휩쓰는 것도 이런 기대가 반영된 것이다.
인플레이션, 실업, 경제성장에 관한 전문가인 로버트 제이 고든이 새로 내놓은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는 이렇게 달뜬 열망의 정수리에 한 바가지 찬물을 끼얹는 듯한 책이다. 1960년대 이후 본격화된 컴퓨터와 네트워크 기반의 3차 산업혁명은 엔터테인먼트 등 협소한 분야에만 영향을 줘 성장을 끌어내는 힘이 그다지 강하지 않다고 저자는 진단한다. 3차 산업혁명이 이렇다면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미약한 기술혁신에 사회적 불균형까지 겹쳐, 앞으로 20~30년간 미국은 성장을 거의 하지 못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고든은 경고한다.
우리의 상식과 달리 경제는 일정한 보폭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1700년대 중반까지 인류 역사에서 성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 250여년간 자본주의 성장 궤도는 혁신과 기술변화에 따라 부침이 심했음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 고든이 주목한 시기는 1920년부터 1970년의 50년간이다. 이때는 음식, 옷, 주택, 교통, 의료, 오락, 근로조건 등 우리 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크게 탈바꿈했고 대량소비의 현대 사회가 열린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시기였다는 것이다. 이 시기 성장을 촉진한 기술은 19세기 말 발명된 전기, 전신, 내연기관 등 2차 산업혁명의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수십 년 동안은 주변 여건이 갖춰지지 않아 파급력이 약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실용화하는 스케일업(scale up) 과정이 이어졌고, 1920, 30년대를 거쳐 1940년대에 날아올랐다.
이 시기의 위대함은 총요소생산성(TFP) 증가율에도 나타난다. 총요소생산성은 기술진보와 혁신이 성장에 끼친 영향을 보여주는 척도인데, 1920년부터 1970년까지 연평균 1.89% 증가해 그 앞뒤의 어떤 시기보다 높았다. 1930년대 공황, 1940년대 세계대전의 절박함이 생산 현장의 혁신을 촉진했고, 노동자의 법적 권리 강화는 노동시간 단축과 시간당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런 선순환 덕분에 1945년부터 70년대까지는 모든 계층의 소득이 고르게 증가하는 ‘대압축’의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성장은 1970년대 이후 막을 내렸고, 앞으로 다시 반복되지 않을 ‘일회성 사건’이라는 게 고든의 판단이다. 1970년부터 2014년까지 총요소생산성 성장률은 0.64%로 앞 기간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았다. 그 가운데 좀 역동적인 시기는 1994년부터 2004년까지의 10년으로 1.03%로 생산성이 높아졌다. 이 시기는 사무실과 유통, 금융회사가 정보화, 디지털화로 탈바꿈한 시기였다. 그에 이어지는 2004년부터 2014년까지 성장률은 다시 0.4%로 떨어진다. 고든은 “경제가 인터넷과 웹 혁명에서 얻을 혜택은 다 받았고, 3차 산업혁명은 2차만큼 인간생활의 전 영역으로 확산하지 않았”다고 본다. 즉 2차 산업혁명은 반세기를 지속한 총요소생산성 상승의 큰 파도를 만들어낸 반면, 3차 산업혁명의 황금기인 1994년~2004년의 부활은 수명이 짧았고 규모도 작았다.
이렇게 3차 산업혁명의 영향력이 요란한 기대와 달리 미약한 것은 “발명가가 총기를 잃거나 새로운 아이디어가 바닥나서”가 아니라 음식, 의복, 주택 등 “현대적 생활 수준을 결정하는 많은 기본적 차원에서 이룰 것이 이미 다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고든은 주장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머튼 솔로가 비꼬는 투로 말한 ‘컴퓨터 생산성 역설’, 즉 “컴퓨터 시대가 어디나 왔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생산성 통계에서 이를 확인할 수는 없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앞으로 생산성을 크게 끌어올리리라는 믿음도 근거가 약하다고 말한다. 4차 산업혁명의 상징과도 같은 무인자동차만 해도 이른바 ‘테크노 낙관론자’ 들이 말하는 것처럼 실제 현장에서 인력을 획기적으로 절약하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 무인 화물차의 경우, 실제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트럭만 몰고 가는 운전기사는 없다. 그들은 상점에 도착해 손수레로 코카콜라나 빵을 옮겨 선반에 일일이 올려놓는 일까지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결국 이런 소소한 일들은 로봇이 아닌 사람 손으로 상당 기간 이뤄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인공지능으로 인한 일과 일자리의 변동은 급격하기보다는 점진적이리라는 게 고든의 판단이다.
이처럼 기술변화와 혁신이 가진 생산성 추동 능력이 약해진 가운데 고든은 불평등, 정체된 교육, 고령화하는 인구, 급증하는 대학생 학자금 대출과 연방정부 부채 같은 미국 사회의 ‘역풍’이 생산성의 발목을 한 번 더 잡으리라고 예견한다. 미국 사회에서 상위 1%의 소득비율은 1974년 8%에서 2014년에는 22%로 세배 가까이 늘어났다. 상위 0.01%의 소득비율은 같은 기간에 1%에서 5%로 다섯배 뛰었다. 소득 불평등을 포함해 앞에서 열거한 4가지 ‘역풍’은 “향후 25년 동안 1인당 실질가처분소득 중앙값이 성장할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고든은 분석한다. 이대로 가면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젊은 세대의 생활 수준이 부모 세대의 생활 수준보다 못한 시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안으로 저자는 누진 세제 강화, 최저임금 인상, 영·유아 교육기회확대 등 결과와 기회의 평등을 높이는 정책을 제안한다.
고든의 진단과 제안은 과학기술 발달이 성장과 번영의 시대를 자동으로 열 것이라는 믿음보다, 당장 고통스러운 삶의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하는 경제학이 필요하다는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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