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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이름이 있는 대한민국 남성 가운데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만큼 이력서가 짧은 사람이 없다. 1965년 조선일보 입사. 기자, 특파원, 편집국장, 주필을 거쳐 현재 고문. 이 한 줄이 전부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무척 좋아 한다는데 나는 한 번도 그와 상을 같이 한 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글을 써 줄 수 없겠는가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이런 축하의 기회가 또 있을까 해서이다. 김대중 고문과는 대조적으로, 본의 아니게 긴 이력서를 지니게 된 연상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있었다. 존경과 부러움이 섞인 찬사를 보내며 감사를 표시하고, 앞으로도 더 오래 오래 글을 읽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

내가 당한 명예훼손 사건 수습기자로 출발하여 한 신문사에 반세기를 재직한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우리 언론 역사상 김대중 고문이 유일하다. 일선기자에서 부장, 국장, 주필을 거치는 동안 글 쓰는 부서에만 종사하면서 세운 기록이다. 하지만 김대중을 평가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그는 1990년 대 10년 동안 전국 언론인 가운데 영향력 1위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논객으로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위상이다. 여기서 나는 김대중 고문이 모르는, 어쩌면 작지만 의미 있는 사건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1999년 6월에 나는 강준만(전북대), 김동민(당시 한일장신대) 두 교수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이 ‘인물과 사상’이라는 출판물에 나를 비방하는 글을 실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 흔한 말로 신문쟁이가 된다는 것은 그런대로 멋진 일이다. 나같이 사회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나도 오래 전에 신문쟁이를 희망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시절, 광주사태가 일어났다. 마침, TV에서 광주 MBC건물이 불타는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그 속에 갇힌 기자들의 안부가 먼저 걱정되었다. 그런데 생각은 이상한 대로 흘렀다. 일필휘지로 사건을 분해해야할 기자가 권력에 갇혔다는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 그 돌발적 사건이 나의 희망을 포기하도록 종용했다. 대신 갇힌 기자와 가둔 권력을 통째로 분해하는 그런 직업으로 희망을 전적했다. 지금하고 있는 사회학교수다. 그래도 신문쟁이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못해 칼럼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저널리스트 50년이라면 아마 대한민국..

언론인 50년을 맞는 김대중 고문님. 정말 '멋진 삶'이었습니다. 달리 표현할 말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찬사로 담아내기에는 김 고문님의 인생 족적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 언론계를 대표하는 김대중 고문님의 글을 제가 어떤 식으로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과분한 듯합니다.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늘 질타를 받는 정치인으로서 큰 언론인을 보고 느낀 소감을 글로 표현하는 게 저에게는 크나큰 정신적 고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영광으로 알고, 정치인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함께해온 독자로서 느낀 점을 감히 5가지 정도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김 고문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첫 느낌은 참으로 쉽고 평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군더더기가 거의 없어 때로는 ‘별로 재미없는데…’라는..

"정치가 이 모양이고 경제가 막막하고 사회 개혁이 제자리걸음인 데는 대통령의 지도력·통치력·친화력 부재도 한몫하고 있다. (…) 앞으로 남은 2년 남짓한 기간이 지난 2년 국정 패턴의 연장이고 반복이라면 박근혜대통령의 치세(治世)는 암울하다. 박대통령을 여기까지 끌고 왔고 여기까지 올려준 것은 어느 부분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다. 박대통령은 그만큼 아버지에게 빚이 있다. 아버지의 절반이라도 닮으라는 것이다." - 김대중 칼럼 '내 무덤에도 침을 뱉어라'(조선일보 5월 12일자) 중에서 현직 대통령을 작심하고 비판한 위 글은 야당 정치인의 글이 아니다. 진보언론에 실린 칼럼도 아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최근 쓴 기명 칼럼이다. 김대중 고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칼럼이다. 김대중 고문의 글은 직설적이고 ..

김대중 기자! 어느새 기자생활 50주년을 맞이했다니……. 누구도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는 이치가 새삼스럽다. 한 인생이 80세를 바라보면서까지 최초에 선택했던 직업을 50년 동안 외길로 살아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권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유혹도 적지 않았는데도 묵묵히 가는 길을 고집해온 뚝심에 놀란다. 스스로의 역할에 만족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많은 애독자와 정치인들의 반응에 보람도 느꼈으리라 믿는다. 자기수련·탐구력·청렴성 있었기에 언제나 당당했던 기자 언론인의 사명은 현상화된 사회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탐색적 방법으로 현상을 판단하여 이를 독자들에게 가치중립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문적 지식과 풍부한 경험..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기자 50’년을 기록한 것은 한국 언론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50년이란 세월도 그렇고, 반세기 동안 줄기차게 글만 썼다는 것도 그렇고, 그런 그에게 그럴 언덕을 제공해 온 조선일보의 배려도 그렇다. 그의 글을 꾸준히 읽어주고 공감해 주고 비판해 준 독자들 또한 예사롭지 않다. 그 곁에서 그와 함께 취재하고 글 쓰고 신문을 만들어 온 언론동료들 역시 덩달아 짠한 감개를 느낄 ‘김대중 기자 50년’이다.언론인 김대중과 그 동시대인들은 한 생애에 4~5 또는 5~6종류의 삶을 산 세대다. 보통은 한 생애에 그저 한두 종류의 시대를 살다가 간다. 그런데 이 세대는 여러 종류의 시대를 살았다. 우선 독립국도 아닌 식민지에 태어나 10살이 채 안 됐을 때 8. 15 해방을 맞았다. 이어서..

김대중은 내가 존경하는 친구다. 그런데 금년이 그가 조선일보사에 입사하여 기자생활을 시작한지 50년이 되는 해다. 한 직장에서 50년을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신문사에서 이런저런 기념행사를 마련하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 문화부의 이한수 기자가 전화를 했다. 이만 저만하니 김대중에 관한 글을 하나 써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작년(2014년) 여름에 펴낸 수필집 '술의 노래'(도서출판 선)에 김대중에 관한 글이 있어서 나에게 청탁을 한 것인지 모른다. 어쨌거나 김대중과 나의 관계를 생각하면 거절하기가 어려웠다.김대중이 한 신문사에서 반세기동안 기자 생활을 한 것은 경이롭다. 우리나라 신문 역사에서는 처음이고, 아마 마지막일 것이다. 신문사고 어디고 오너가 아닌 이상 한 직장에서 50..

언론 외길 김대중 本社고문 "아부 안 해도 되고,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신문기자로 산 게 좋았다" 난 財福 없는 '신문사 안 개구리'… 나랑 반대로 하면 돈 번다고들 하더라 좋은 글, 좋은 칼럼이란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나 몰랐던 걸 알게 해줘야 짜깁기 않고 단번에 써야 독자들도 한 호흡에 읽어 '쟁이' 본분을 지켰다 권력 압박·유혹 있었지만 다른 직업 생각하지 않아 매일매일 정면 승부 하는 사회부장 때가 재밌었다 '배짱'대로 쓴 게 통했다 논객은 소통하는 직업 아냐 자기의 생각을 얘기할 뿐 的確한 단어를 찾아내면 비로소 글이 풀리더라 잘 삐지는 싸움닭 예의 안 차리면 싫어해 나는 好不好가 강하다… 류근일이 내게 그러더라 당신같은 사람 받아줄 덴 신문사밖에 없을 거라고 강인선 부국장 입력 2015.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