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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나는 왜 댓글을 거부하나

천아1234 2021. 8. 24. 15:47

김대중 이사기자

저는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고 있는 김대중 입니다. 이 글을 워싱턴에서 드립니다. 저는 얼마전 어느 독자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얼마나 도도하길래 당신 글에 대한 100자평을 받지 않느냐?”는 내용이었습니다. 직업적 특성 때문이겠습니다만, 저는 신문을 보면 먼저 뉴스를 살피고 곧바로 사설, 칼럼 그리고 독자투고란을 봅니다. 외국신문을 볼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는 한때 독자투고란을 담당한 편집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독자 투고에 관심이 많고 즐겨 읽습니다. 제가 여기 워싱턴 D.C.에서 매일 아침 접하는 신문이 NYT이기에 그 신문의 예를 들면 독자투고란을 먼저 읽고, 비평이 흥미롭거나 눈을 끌면 역(逆)으로 투고의 대상인 사설이나 칼럼을 찾아 읽는 경우가 허다 합니다. 그런 제가 자기 글에 대해 100자평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일견 자기 모순인 것으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100자평을 받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제 기사에 대한 독자의 생각과 교류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 안목이 미치지 못한 대목, 제 시야가 넓지 못했던 측면, 제 생각이 모자라는 구석들을 지적하고 편달해주는 독자투고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펜을 놓고 싶을 정도로 깊은 좌절을 맛보게 하는 신랄함, 제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저를 통박하는 논리의 정연함, 그리고 더 나아가 언젠가 기회를 만들어 마주 앉아 서로의 견해를 정리하는 술자리- 이런 것들이 제가 바라고 기대하는 독자들의 채찍입니다. 솔직히 글에 대한 평가나 호감을 넘은 지나친 ‘칭찬’도 결코 좋은 독자투고는 아닙니다. 어떤 점에서 동의하고 어떤 점에서 견해를 달리하며 어떤 관점에서 당신 글이 틀렸다고 지적해 주는 것이 진정한 ‘칭찬’이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현재 각 신문의 인터넷 공간에서 난무하는 독자평이랄까 100자평은 때로 우리 기자들을 허망하게 만듭니다. 어떤 분은 ‘100자’의 짧은 글에서 무슨 논리를 펼 것이며 무슨 지적을 할 수 있는가고 반문 하실 겁니다. 그것은 신문이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한계이기는 합니다. 세계 신문이 모두 그렇습니다. 그러나 요즘 인터넷 상에서는 독자의 긴 글도 자주 보입니다. 문제는 욕입니다. 견해가 다르면 다르다고 지적하고 필자의 생각이 틀렸다고 말하면 되지 왜 욕을 합니까? 기자에게 뿐 아니라 다른 수 많은 공직자를 놓고 그런 상스럽고 막가는 욕설을 한국만큼 대놓고 하는 나라는(그것이 비록 인터넷상이지만 글자로 남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익명성도 문제입니다. 그것은 그래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하는 발언에는 어떤 쾌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상대방 발언의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숨어서 하는 반응은 더욱 쾌감을 주기 마련입니다. 그래도 욕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인격을 모욕하거나 조상까지 들추는 인신공격은 제발 없었으면 합니다. 다른 사람이나 정책이나 생각을 비판하는 입장에 있는 저로서 다른 사람의 비판을 마다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더우기 이제 ‘어떤 생각’이 일방적으로 작용하던 시대가 아니라, ‘쌍방 통행’이나 교류가 요구되는 상황에서 한 기자의 생각이나 견해가 막무가내로 군림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다만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비판이지 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현재의 방식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모처럼 ‘공간’을 찾아가던 독자의 소리가 자지러지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람들이 매일 거의 직업적(?)으로 등장하는 독자의 자판기식 평(評)에 식상해지면 아마도 인터넷 신문의 독자란도 시들해질 것입니다. 그래서 견해와 주장의 독식과 편식을 막고 양방향 통행의 건전함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모서리’를 조금씩 다듬어 나가야 될 것 같습니다. 김대중 이사 기자 (워싱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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