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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핵의 역사]②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원래 목적지는 나가사키가 아니었다? 출처: 아시아경제 본문

세계정세/일본

[숨겨진 핵의 역사]②나가사키에 투하된 원폭, 원래 목적지는 나가사키가 아니었다? 출처: 아시아경제

천아1234 2021. 8. 6. 20:42

1945년 8월9일 나가사키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팻맨(Fat man) 모습(사진=위키피디아)

1945년 8월9일, 일본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 '팻맨(Fat man)'은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리틀보이(Little boy)'보다 훨씬 강력한 위력의 폭탄이었지만 인명피해는 히로시마의 4분의 1정도만 발생했다. 완전 평지인 히로시마와 달리 산지로 둘러싸인 나가사키는 폭심지에서 발생하는 열선과 폭풍이 산과 계곡에 가로막혀 멀리 확산되지 못한 덕분이었다.

물론 이 나가사키 원폭 투하로 일본이 항복하게 됐지만, 이후 전쟁사에서는 의문 중 하나로 남았다. 2차 폭격 대상인 나가사키는 위력이 훨씬 큰 폭탄이 투하된 만큼, 미군이 예상한 인명피해도 훨씬 컸을 것인데 굳이 핵무기 위력이 반감되는 나가사키에 투하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나가사키에 떨어진 팻맨은 원래 노렸던 투하지점에서 4km나 떨어진 곳에 투하돼 더욱 위력이 줄어든 상태였다.

 

태평양전쟁기 주요 군수물자 기지였던 야와타 제철소(사진=기타큐슈시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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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문은 전후에 완전히 풀리게 됐다. 원래 팻맨의 목적지가 나가사키가 아니었던 것. 미국이 두 번째로 원폭을 투하하려던 곳은 나가사키가 아니라 나가사키 근교에 있는 도시인 '고쿠라(小倉)'였다. 이곳은 현재 기타큐슈시의 일부로 남아있다. 당시 고쿠라는 오늘날 신일본제철의 전신이라 알려진 야와타제철소(八幡製鐵所)가 위치해있었으며 전시 각종 군수물자가 생산되던 군수기지였다.

당시 팻맨을 싣고 이륙한 B-29 기종 복스카(Bockscar) 폭격기는 고쿠라로 날아갔으나 작전 당일 고쿠라 일대는 구름이 잔뜩 꼈다. 지금처럼 미사일이 자동 유도돼서 폭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람이 직접 폭격지점을 눈으로 확인해서 투하해야했던 당시엔 구름이 끼면 폭격위치 확인이 어려웠다. 더구나 앞서 출격한 초계기와 정보수집기가 투하지점은 물론 고쿠라 일대 사진을 찍는데 실패했다.

여기에 8월6일, 히로시마에 원폭을 맞은 이후 일본군은 대공포와 남은 구식 전투기로 필사적인 대공방어에 나서고 있었다. 그렇다고 B-29와 같은 고고도 비행 폭격기를 격추할 수는 없었지만 역시 이런 방해로 저고도 비행이 어려워지자 육안으로 투하위치를 잡기 어려워졌다. 결국 고쿠라 상공만 1시간 넘어 빙빙 돌던 복스카는 고쿠라 폭격을 포기하고 근처 또다른 대도시인 나가사키로 기수를 돌렸다.

나가사키 원폭 투하 전(위)과 투하 후(아래) 비교 모습(사진=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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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가사키에도 구름이 껴있었다. 연료까지 줄고 있어서 더 이상 지체하기 어려워진 미군 폭격기가 원폭을 대충 떨어뜨리고 원대 복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갑자기 구름이 걷히며 30초간 시가지 전체가 보였다고 한다. 결국 1945년 8월9일 11시 2분에 나가사키의 운명은 결정됐다. 30초간 잠시 걷힌 구름으로 말미암아 수만명의 운명이 바뀐 것.

당시 나가사키는 공습경보조차 울리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미처 대피도 못한 채 사망했다. 일본 군부는 미국의 핵공습도 문제였지만 전날인 8월8일, 소련이 불가침조약을 깨고 만주와 일본 북부 해안 일대로 진격한 것으로 인한 긴급회의로 정신이 없었다. 미군 폭격기가 나가사키로 방향을 돌렸으나 쉽사리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날 고쿠라에 낀 구름이 두 도시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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