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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어제에 갇힌 일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본문

세계정세/일본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 어제에 갇힌 일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천아1234 2022. 3. 28. 07:44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언제나 앞서간다고 생각했던 나라, 일본
어제에 갇힌 일본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다

‘일본통’ 유영수 기자의 일본 선진국론 해체!
그들의 문제에서 우리 문제의 뿌리를 찾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가기 시작하던 2020년 2월, 일본에서 출항한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항해 도중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크루즈선은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갔지만, 일본 정부의 늑장 대응과 적절하지 못한 후속 조치로 2월 28일까지 705명이 확진되고 6명이 사망했다. 의료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한 일본의 미흡한 대처에 의문이 들었지만 그저 일회적인 문제에 그친 줄 알았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일본 국내에 급속도로 퍼져나가자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에서 한국, 대만 등 인접국과 비교했을 때 엄청난 차이가 드러났다. “선진국 일본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우리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진 순간이었다.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착각》은 일본을 막연히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리의 편견이며, 어째서 일본이 정체와 퇴보를 거듭하고 있는지를 명쾌하게 알려주는 책이다. 수년 동안 일본 특파원으로 활약하며 3.11 동일본대지진과 한류 붐을 지켜본 유영수 기자는 전후(戰後) 일본의 성장 동인이 오늘날에는 족쇄가 되고, 메이지유신 시대의 질서가 제대로 쇄신되지 못하면서 지금의 일본이 갈수록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음을 다양하고 생생한 사례와 치밀한 역사적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민주주의를 도입했고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지만, 권위주의 문화가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산업의 쇠퇴와 주변국의 부흥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며 ‘좋았던 옛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라 일본. 이 책은 우리가 따라잡아야 할 나라로 생각했던 일본이 어떻게 해서 ‘어제’에 갇혀버렸는지 살펴봄으로써, ‘선진국’ 일본의 맨얼굴을 직시하고 우리에게도 남아 있는 일본의 그림자를 깊이 성찰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유영수

서울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SBS 기자로 27년 동안 일하면서 경제부, 사회부, 문화부, 국제부를 두루 거쳤다.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을 지냈고, 2010년부터 3년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3.11 동일본대지진과 한류 붐을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도하기도 했다. 현대 일본인의 심리를 분석한 《일본인 심리 상자》를 썼으며,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일본인 진짜 속마음〉 시리즈 강의를 하는 등 자타공인 ‘일본통’이다. 우리 자신을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 우리의 타자인 일본 바로보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목차

들어가며_일본이 ‘선진국’이라는 믿음이 흔들리다

Part 1. 일본은 ‘선진 법치 국가’일까

Chapter 01. 왜 닛산 회장은 ‘인질 사법’이라고 비난할까
Chapter 02. 일본에 헌법재판소가 없는 이유는
Chapter 03. 왜 일본에서는 미투 운동이 활발하지 않았을까
Chapter 04. 왜 총리는 성폭력 피해자를 비하한 의원을 감쌌을까

Part 2. 개인이 보이지 않는 사회, 일본

Chapter 05. 일본인은 집단주의적일까, 개인주의적일까
Chapter 06. 왜 일본에서는 기부가 활발하지 못할까
Chapter 07. 일본이 ‘약한 시민사회’로 불리는 이유는
Chapter 08. 왜 한국 정부는 731부대원에게 훈장을 줬을까

Part 3. 일본 정치는 왜 정체되고 있을까

Chapter 09. 심은경은 어떻게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나
Chapter 10. 왜 관료는 ‘발전의 견인차’에서 ‘개혁의 걸림돌’로 전락했을까
Chapter 11. 같은 칸 영화제 대상인데 한일 반응이 다른 이유는
Chapter 12. 일본에만 있는 자숙경찰, 왜 활개 칠까

Part 4. 뒤처지고 있는 ‘일본주식회사’

Chapter 13.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Chapter 14. 전문가들이 경산성의 대한수출규제 주도를 우려한 이유는
Chapter 15. 왜 일본의 경영자는 CEO보다 사장으로 불리기를 선호할까
Chapter 16. ‘회사사회’ 일본의 붕괴

Part 5. 일본은 ‘문화 선진국’일까

Chapter 17. 왜 일본에서는 창작 영화가 드물까
Chapter 18. 나이키 광고가 일본에서 논란을 일으킨 이유는
Chapter 19. 초대 문부대신이 ‘언어적 매국노’라고?

나가며_‘어제’에 갇힌 일본을 생각한다

책 속으로

‘99.9%의 유죄율’은 양면성이 있다. 일본 검찰은 이 수치를 자랑스러워하고, 신화로 여긴다. 철저한 ‘정밀精密 사법’을 통해 유죄라고 확신이 드는 사건만 기소하기 때문에 재판에서 높은 유죄 판결을 끌어낸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피의자 처지에서는 너무 절망스러운 수치다. ‘기소=유죄’, 즉 기소되면 재판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무죄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이야기다. 웬만하면 구속되고 자백하지 않으면 장기간 구금되는데, 기소되면 거의 유죄라니. 기소되면 말 그대로 끝장인 셈이다. 상당수 일본 변호사와 법학자가 ‘99.9’라는 수치를 일본 사법 체계를 비판할 때 쓰는 이유다.
_20~21쪽, Chapter 01. 왜 닛산 회장은 ‘인질 사법’이라고 비판할까

왜 일본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하지 못했을까? 언론들은 이토 시오리 사례에서 보듯이 폭로 자체가 어렵고, 폭로해도 처벌을 기대할 수 없으며, 폭로 이후 부는 역풍이 피해자를 괴롭히는 일본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독자의 88.9%는 미투 운동에 공감한다면서도, 92.9%가 “일본 사회는 추행 등 성폭력 피해의 목소리를 내기에 좋은 사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더욱이 성차별 의식을 내면화한 여성이 적지 않은 것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같은 여성이지만 피해자를 지원하기보다 오히려 비난하거나 방조한 셈이다.
_45쪽, Chapter 03. 왜 일본에서는 미투 운동이 활발하지 않았을까

그럼 일본에서 ‘관 우위’의 관점은 근대화 초기에만 있던 인식일까? 적지 않은 전문가가 아니라고 말한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이 군국주의로 흘러갔던 사상적 배경에는 개인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한 일본 특유의 공사公私 개념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기 전까지 일본에서 ‘公’은 국가, 더 나아가 천황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슬로건인 멸사봉공滅私奉公은 원래의 좋은 뜻과는 거리가 먼 ‘천황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뜻했다. 따라서 ‘公’은 우선시해야 하는 큰일인 반면, ‘私’는 ‘사사로운 일’ 또는 ‘사리사욕’에 가까운 말로, 억제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했다고 지적한다. ‘公私’에 해당하는 영어 ‘public’과 ‘private’라는 단어가 상하관계의 뉘앙스가 없는 대등한 개념인 데 비해, 일본은 항상 ‘公’이 ‘私’보다 위였고 이는 군국주의라는 불행을 불러왔다고 단언한다.
_94~95쪽, Chapter 06. 왜 일본에서는 기부가 활발하지 못할까

가토가 훈장을 받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한국 신문을 찾아보니, 그가 제주도와 경남 등지에서 기생충 퇴치 봉사를 한 공로로 훈장을 받았다는 기사가 짧게 실려 있었다. 일본 신문에도 “가토 씨가 저개발국 한국의 기생충 조사를 위해 훈장을 받기 전까지 한국을 여섯 차례 다녀갔다.”고 나와 있었다. 또 다른 일본 신문에는 그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도 여러 차례 방문해 ‘의학 봉사’를 했다는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731부대 희생자 대부분은 중국인과 한국인이었다. 가토는 어떤 마음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의학 봉사를 했을까? 731부대 시절 자신이 가담했던 만행에 대한 나름의 속죄라고 생각했을까? 자신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며 평생 합리화하며 살았을까? 취재하면서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그리고 어쩌면 적지 않은 일본인이 가토 방식의 ‘반성’과 ‘자기 위안’을 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_114쪽, Chaper 08. 왜 한국 정부는 731부대원에게 훈장을 줬을까

언론의 정권 견제 능력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 언론 감시단체 ‘국경 없는 기자회RSF’가 발표한 ‘2020 언론자유도’에서 일본은 66위였다. 2011년 같은 발표에서는 11위였다. 9년 가까운 아베 전 총리의 장기 집권 기간에 계속 뒷걸음질 친 셈이다. 언론의 큰 기능인 정보 전달과 견제ㆍ비판 중 후자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같은 조사에서 한국은 42위였다. 아시아 국가 가운데 제일 앞자리를 차지했지만 여전히 자랑스럽지는 않은 수준이다. 일본 정치부 기자들이 자국 정치인들을 비판할 때 종종 쓰는 표현이 ‘위로부터의 시선上から目線’이다. 아직도 정치를 베푸는 걸로, 국민을 그저 ‘통치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국민의 수준을 가리키는 ‘민도民度’나 ‘분수에 맞게’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사적인 자리에서는 ‘백성’이란 단어를 쓰는 정치인이 아직까지 있다니 말 다했다.
_143~144쪽, Chapter 09. 심은경은 어떻게 일본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나

반면 코로나19 대응에서 일본은 과거 의료복지 선진국의 모습을 더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아베노마스크安倍のマスク’로 상징되는 지도자의 무책임과 우왕좌왕, 여전히 확진자 수를 팩스로 집계하는 아날로그 방식이 크게 부각됐지만, 검사 키트와 선별 진료소의 부족 등 누가 봐도 의료 체계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들려오는 소식은 “망가져도 너무 망가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적지 않았다. 적지 않은 일본 전문가가 지나친 신자유주의적 개혁 이후 누적된 의료복지 시스템의 취약점이 이번에 드러났다고 비판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보건소 부족 문제다. 일본에서도 코로나19 검사의 70%가 보건소에서 이뤄질 만큼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2000년대 공공의료 축소 정책 시행으로 보건소가 절반으로 줄었기 때문에 의료 현장에서 코로나19 대응에 여러 가지로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실제 일본에서 보건소는 1992년 852곳에 달했지만, 개혁을 이유로 통폐합이 진행되면서 2019년 기준 472곳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지나치게 효율을 추구하다 너무 작아진 것이다.
_168쪽, Chapter 11. 같은 칸 영화제 대상인데 한일 반응이 다른 이유는

자숙경찰은 어떤 대상에 딱지를 붙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콕 찍어서 쉽게 공격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다. 코로나19 긴급사태에서는 외출이나 영업 등을 ‘자숙’해달라는 정부 지침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는 명목일 뿐, 실제로 가해 대상은 ‘괴롭혀도 별 탈이 없을 것 같은’ 사회적 약자였다. 대형 점포는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은 것과 달리, 지침을 잘 지킨 작은 음식점과 주점이 표적이 됐다. 재일교포와 차이나타운이 공격 대상이 된 것도 ‘소수자 차별’이라는 맥락이었다. 그래서 일본 학자들은 자숙경찰의 공격은 학교나 직장에서의 이지메(집단 따돌림)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고 지적한다. 일종의 집단 내 편 가르기와 희생양 만들기 현상으로 본 것이다.
_172쪽, Chapter 12. 일본에만 있는 자숙경찰, 왜 활개 칠까

이시와라는 좌절했지만, 그의 국가 개조 계획은 기시 노부스케 등 국가주의 색채가 짙은 경제 관료들이 이어받았다. 체제 변혁을 목표로 1937년 기획원에 모인 새로운 경제 관료들을 당시 일본에서는 ‘혁신 관료’라고 불렀다. 이들은 만주에서 통제경제를 실험하며 경험을 쌓은 뒤 일본으로 돌아와 군부와 결탁해 주도권을 쥐며 활약했다. 그들이 만든 통제경제 방식의 산업정책은 주로 전쟁물자 동원과 배분으로 이어졌다. 혁신 관료들은 국가의 경제 통제를 강화하면서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는 체제를 확립했다. 또 패전 후에는 일본 경제정책을 마련했다. 대장성, 상공성, 기획원 등에서 요직을 차지하고 일본 경제의 틀을 짰다. 그들은 전쟁 전이나 전쟁 이후나 일관되게 통제경제 요소를 유지하며 ‘일본주식회사’를 이끌었다.
_204쪽, Chapter 14. 전문가들이 경산성의 대한수출규제 주도를 우려한 이유는

2016년 한국에서는 히노 에이타로日野瑛太郞의 책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가 화제였다. 책은 재치 있게 서비스 잔업과 같은 과중한 노동을 당연시하는 일본의 사회 분위기에 문제를 제기했다. 저자는 회사가 과거와 같은 혜택과 보장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과거와 같은 노동자의 헌신을 바라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히노는 책을 쓴 이유로 “많은 사람이 ‘일의 보람’이라는 저주에서 빠져나오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면서 일본식 고용 관행에 야유를 보냈다. (…) 그러나 일본식 노사 관행이 일본의 전통이라는 환상은 여전히 사회에 남아 있고 이런 믿음은 비극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현상이 이른바 ‘블랙 기업’의 출현이다. 블랙 기업은 영어권에서는 ‘악마 기업evil company’, 우리말로는 ‘악덕 기업’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특히 신입사원에게 혹독한 근무 환경과 노동 착취를 조직적으로 강요하고 소모품으로 취급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_233~234쪽, Chapter 16. ‘회사사회’ 일본의 붕괴

2020년 11월 일본의 ‘국민 아이돌’ 아라시嵐의 멤버 마쓰모토 준松本潤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그는 미국 연예 전문지와의 인터뷰에서 “K팝의 뿌리는 쟈니스”라고 주장했다(아라시는 쟈니스 소속이다). J팝이 전성기를 누렸던 시절, 한국 연예계에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국 팝의 영향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벤치마킹’에 불과했다. (…) 마쓰모토 준의 말에서는 자신감보다 K팝의 성공에 대한 위기의식이 느껴진다. ‘과거의 영광’까지 끌어들이는 대목에서는 초조함마저 엿보인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일본에서 K팝은 이제 붐이라고 표현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일본 청년층의 주류 문화로 탄탄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인 멤버가 여럿 포함된 걸 그룹 트와이스의 성공 이후 세계 음악시장에서 성공하려면 K팝 가수가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면서, 한국 유학을 결정하는 일본의 10대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엔터테인먼트의 본고?

출판사 서평

1. 일본은 ‘자유로운 선진 법치 국가’라는 착각
- 시민 개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

저자는 〈Part 1. 일본은 ‘선진 법치 국가’일까〉와 〈Part 2. 개인이 보이지 않는 사회, 일본〉에서 그동안 ‘선진 법치 국가’라고 생각했던 일본의 사법제도와 사회 분위기를 날카롭게 해부하면서 갈수록 집단주의적인 분위기에 함몰되는 일본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일본은 근대 초 서구 국가들과 같은 선에 서기 위해 근대적인 사법제도를 도입했지만, 어디까지나 구색 맞추기에 불과했고 제도는 철저하게 권위주의적이고 가부장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어도 전근대적인 악습은 단단했다. 개인보다 집단을 강조한 결과, 일본의 시민사회는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2019년 12월 말 카를로스 곤 전(前) 르노·닛산자동차 회장의 ‘악기 상자 일본 탈출극’이다. 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전격 체포된 그는 극적인 탈출 끝에 자신이 “정의롭지 못한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일본 검찰의 ‘유죄율 99.9%’는 유죄라고 확신하는 사건만 처리한다는 일본 검찰의 자부심을 상징하지만, 죄가 확정되지 않은 사람이라도 피의자로 지목되면 인권이 없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일본 사법의 강력한 권위주의는 국가의 이익을 중시하는 일본 사법부의 판결에서도 잘 드러난다. 1999년 8월 〈국기(國旗)와 국가(國歌)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자 국가가 일장기 게양과 기미가요 제창을 강제할 것이라는 진보진영의 우려가 나왔다. 이를 증명하듯 “군국주의 교육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국기 게양을 거부한 교사들을 학교 측이 업무 명령 위반으로 처벌했다. 일본 사법부는 한 번도 교사들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법이 약자의 편에 서지 않는 모습은 일본의 미투 운동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2019년 3월 각지의 지방법원이 성폭력 가해자들에게 잇따라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이에 항의하고자 여성들이 ‘플라워 시위’를 벌였다. 여성을 동등한 시민으로 간주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는 뿌리가 깊다. 연합국 최고사령부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에 여러 민주화 조치를 시행했다. 하지만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천황 원수, 재군비, 기본적인 인권의 제한, 가족제도 부활’을 내세우며 제국 시대의 가부장적 질서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아베 정부에 들어서서는 여성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머노믹스’를 내세웠으나 사실상 파트타임 노동자를 양산하는 정책을 끌고 갔을 뿐이다. 개인이 아니라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는 이렇게 시민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개인보다 국가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라는 말은 현대 일본인을 생각한다면 어딘가 맞지 않는 것처럼 들린다. 타인의 시선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는 데 몰두하는 일본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그 정반대편에는 서로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것을 제일 덕목으로 생각하고 혼자만의 시간과 취향을 마음껏 누리는 데 인색하지 않는 일본인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저자는 여러 일본인론(論)을 살펴보면서 일본 사회가 추구하는 일본인이 ‘단단한 개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 주목한다. 이는 근대 초 일본이 ‘개인’의 번역에 애를 먹었다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국가/천황=공(公)’이라는 도식 속에서 집단을 개인보다 앞세운 근대 일본은 기부에 부정적이고 국가주의 교육을 강조하는 지금의 일본으로 이어진다.

이는 일본의 ‘약한 시민사회’와도 직결된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민주화운동과 연결되어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주력하는 것과 달리, 일본의 시민사회는 1995년 한신대지진을 계기로 활성화되어 시민의 생활을 돕는 데 집중하고 있다. 정치 참여에 대단히 부정적인 여론도 여기에 한몫한다. 전공투를 비롯한 1960년대 학생운동의 실패, 아래로부터의 개혁에 성공해본 적 없는 역사적 경험이 맞물리며 집단의 규범에 순응하는 문화가 일반화된 것이다. 일본 우익의 역사 공세는 그와 같은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힘입어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가미카제 공격으로 사망한 일본군 소년병을 애도하며 역사 기념관으로 개조된 ‘전함 미주리호 기념관’은 전쟁의 비극을 되새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일본 우익은 이를 ‘애국의 헌신’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하고 있다. 전쟁 책임을 일부 군인에게 돌려버리고 피해자 의식만 키우는 일본 사회는 민주주의의 쇠퇴와 떼려야 뗄 수 없다.

2. 일본은 ‘정치적·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나라’라는 착각
- 건전한 비판이 무력해지고 산업의 활력도 떨어져가는 사회

〈Part 3. 일본 정치는 왜 정체되고 있을까〉와 〈Part 4. 뒤처지고 있는 ‘일본주식회사’〉는 우리가 선망해온 ‘민주국가’이자 ‘경제대국’ 일본의 쇠퇴를 차근차근 살펴본다. 군부 독재가 지속되고 빈곤을 서둘러 극복하는 데 급급했던 한국과 달리, 일본은 1945년 이후 민주화되어 아시아 주변국에 비해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받았고 경제적으로 월등히 성장해 ‘1억 총 중류사회’를 표방하며 풍요를 누려왔다. 저자는 그랬던 일본이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경제가 정체 상태에 들어선 이유를 세심하게 짚어본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폐색감’이 짙어지는 일본 사회가 보다 민주적인 방향으로 쇄신되지 않으면 더 큰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정치·경제 상황은 더욱 주목을 요한다.

한국 배우 심은경은 아베 전 총리의 학원 스캔들을 다룬 영화 〈신문기자〉로 2020년 일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아 우리를 놀라게 했다. 한 가지 씁쓸한 사실은 일본에서 아무도 작품을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 배우에게까지 배역이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일은 정부 비판이 너무나 어려워진 지금 상황을 잘 보여준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의 임명을 거부한 일로 총리를 집요하게 추궁한 공영방송 간판 앵커가 자리에서 물러났고, 정부에 비판적인 논조로 보도를 이어가던 민영방송 앵커들도 줄줄이 경질되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의회를 도입했고 패전 후에 본격적으로 민주화되었지만, 자민당 독주 체제가 지속되면서 ‘선출되지 않는 절대권력’이 되어가는 총리와 너무나 오래 지속되는 세습 정치, 언론의 기능장애 등 온갖 병폐를 낳고 있는 것이다.

사회 비판에 부정적인 정치권의 분위기는 또 다른 영화와 관련해서도 잘 드러난다. 2018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아베 당시 총리로부터 축사 하나 받지 못했고 우익에게서는 맹비난을 받았다. ‘연금사기’ 사건 같이 ‘아름다운 나라’ 일본의 그림자를 드러냈다는 이유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의료보험을 도입했고 전후 경제성장과 맞물려 의료보장을 확대한 일본은 그야말로 ‘의료복지 선진국’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는 이와 같은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아베 전 총리를 비롯한 정부 당국은 우왕좌왕했고 검사 키트와 선별 진료소가 부족해 의료 체계에 구멍이 나 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 의료보장비와 사회보장비가 크게 삭감되면서 재정적으로는 ‘건전’해졌지만 실제로 필요한 사람들에게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이들이 바로 ‘자숙경찰’이다. 자숙경찰은 정부의 방역수칙에 따르지 않는다고 간주된 사람들을 위협하는 일종의 자경단이다. 이와 같은 자경단은 억압적인 전시체제의 산물이다. 정부의 의료 공백을 비판하고 오류를 고치려고 하기보다 ‘비국민’이라는 낙인을 찍어 이견을 용납하지 않는 행태가 부활한 것은 매우 큰 위험 신호다.

일본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관용이 쇠퇴하는 것은 갈수록 정체되는 경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1992년까지 세계경쟁력 평가에서 연속 1위를 차지했던 일본은 이제 34위까지 떨어졌다.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가 일본을 벤치마킹하며 고도성장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일본이 후발 국가보다 점점 뒤처지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의 어느 나라보다 산업화에서 앞서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도쿄는 19세기에 이미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했고, 일본 전역에서 관광업이 발달했으며, 일본의 기업은 산업화 초기부터 영국 등 선진 산업국가의 기술을 빠르게 소화했다. 또한 1950~60년대 일본은 경제 관료의 활약에 힘입어 폭발적으로 성장해 국가 재건을 완수했다. ‘만주사변의 주모자’ 이시와라 간지의 ‘전시 총력전 체제’ 구상을 이어받아 전쟁 대신 경제성장에 매진한 경제 관료는 한국전쟁 특수를 활용하며 일본을 부유하게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래서 일본 경제가 쇠퇴한 지금, 고도성장 시기의 경제정책을 ‘1940년 체제’로 분석하는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일본의 경제성장이 전시체제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주장은 일본 내외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1940년 체제론은 안정적인 생산에 방점을 두고 경쟁을 최소화하는 기업 시스템을 설명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관료와 기업, 국민 모두가 경제성장을 향해 돌진했던 일본은 ‘일본주식회사’라 불리며 서구 국가의 감탄을 자아냈다. 패전 이전의 경제체제가 열악한 노동조건과 단기성과에 급급한 경영 행태를 보여준 것과 달리, 평생직장을 보장하는 전후의 고용 관행은 노동자 출신 전문경영자를 낳았고 사원 모두가 똘똘 뭉쳐 회사의 운명에 함께하는 집단의식이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강력한 ‘회사사회’ 일본에도 그늘이 있었다. 영어 보통명사가 될 정도로 악명 높은 ‘과로사(Karoshi)’가 대표적이다. 게다가 이제는 고도성장 시기의 고용 관행도 약해지면서 청년 노동자를 심각하게 수탈하고 버리는 ‘블랙 기업’까지 등장하고 있다. 점점 정치적인 자유가 줄어들고 산업의 활력이 떨어지는 일본을 보며 남 일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일본식 경제체제를 적극 도입하며 일본 따라잡기에 골몰했던 우리도 같은 문제에 봉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3. 일본은 ‘문화적으로 앞서 있는 나라’라는 착각
- ‘갈라파고스화’되며 다양성을 잃어가는 사회

저자는 〈Part 5. 일본은 ‘문화 선진국’일까〉를 통해 앞서 이야기했던 일본의 집단주의적인 심성과 답보 상태에 놓인 경제가 문화적으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계적인 거장을 배출하며 명성을 날리던 일본 영화계는 위축된 지 오래이고, 1990년대 문화를 선도했던 일본 드라마 또한 과거의 성공 법칙에 머물러 있다. 서점가에는 혐한(嫌韓)·혐중(嫌中) 서적이 날개 돋힌 듯 팔려나가고 혐한 특집 코너까지 마련되어 있는 데서 일본의 문화적 다양성이 크게 떨어져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깥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온 일본에서 문화적 감수성의 쇠퇴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재 일본의 박스오피스 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작품은 대부분 ‘극장판’ 영화와 애니메이션이다. 인기 드라마와 TV 애니메이션을 영화로 재생산한 극장판은 제작자 입장에서 안정적인 수입원이지만, 창작의 활력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일본의 문화산업을 잠식해왔다. 1990년대 거품경제의 붕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활성화된 제작위원회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높았던 일본 드라마(일드)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다. 신선한 감각과 섬세한 심리 묘사로 아시아권의 시청자를 끌어모았던 일드는 지나친 내수·고령층 위주의 기획으로 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 K팝의 성공을 의식하며 “K팝의 뿌리는 쟈니스(일본의 유명 기획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방어적인 일본 음악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문화에 대한 방어적인 심리는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유튜브 광고에 대한 반응에서도 잘 나타난다. 소수자들이 차별과 따돌림을 이겨내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을 응원하는 내용의 나이키 광고에 9만 5000건의 ‘좋아요’가 달렸지만, ‘싫어요’도 7만 3000건에 달했다. “그런 일본은 없다.”는 대중 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반응은 서점가에 넘쳐나는 혐한·혐중 서적의 인기에도 반영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서구 국가와 같은 반열에 올랐음을 자부했지만, 언제나 서구보다 열등한 존재임을 의식하며 서구의 인종주의적 편견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왔다. 파리 만국박람회의 인종차별적인 인간 전시를 그대로 본따 오사카 박람회에 조선인을 비롯한 여러 민족의 생활을 전시한 사례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일본의 계몽사상가로 알려진 후쿠자와 유키치의 ‘탈아입구론’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처럼 일본은 스스로를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 즉 ‘문명국’의 위치에 자리매김해왔다. 사회적 소수자를 받아들이는 감성의 부족은 바로 여기에 원인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일본의 문화 수용 역사를 살펴보는 것은 일본의 문화적 다양성이 쇠퇴하는 이유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 일본어를 폐지하고 영어를 국어로 채택하자는 과격한 주장이 나올 정도로 근대 초의 일본은 서구화에 매달렸다. 특히 중국이 아편전쟁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것을 계기로 일본의 지배층은 앞다투어 서양 배우기에 나섰다. 번역 사업이 크게 성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번역의 시대’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근대기 일본에서 적극적이고 충실한 번역은 일본을 ‘근대화의 우등생’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필요한 것을 알맹이만 쏙 빼먹겠다는 ‘선택적 수용’의 태도가 오히려 일본의 문화적 다양성이 확대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분석한다. 일본의 근대화 구호인 ‘화혼양재(和魂洋才)’는 자기화의 과정만 강조될 뿐, 이질적인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되었다고 해서 ‘갈라파고스화(化)’라 불리는 현재의 일본 문화가 문화적 다양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바뀌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4. ‘잃어버린 시대’에 갇힌 일본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선진국 일본’이라는 환상을 넘어

게이오대학에서 1년간 방문연구원을 지냈고, 2010년부터 3년 동안 도쿄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3.11 동일본대지진과 한류 붐을 현지에서 생생하게 보도했던 유영수 기자는 이 책을 통해 ‘어제에 갇힌 일본’의 현재를 진단한다. 일본을 선진국으로 알고 추격하는 데 바빴던 우리는 어느새 정치적·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그 사이 일본은 1990년대 거품경제 붕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리만 쇼크’), 2011년 3.11 대지진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며 쇠퇴일로를 걷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일본은 여전히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점점 위기의 징후가 커지고 있다 해도 일본은 의회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사회다. 출판·만화 왕국답게 양질의 콘텐츠를 가득 보유하고 있으며, 일본의 드라마와 만화, 애니메이션은 우리 독자와 시청자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제조업 시대의 성과에 집착함으로써 몰락을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일본은 거품경제의 붕괴를 계기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잃어버린 30년’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기보다 결과가 검증된 성공 방식을 답습하는 데 그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에서는 ‘폐색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져간다. 1980년대까지 고도성장의 과실을 누렸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는 느낌이 출구 없는 세계에 대한 절망감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웃나라에 살고 있으면서 식민이라는 역사적 경험으로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긴밀하게 얽혀 있는 우리에게 일본은 늘 발전의 모델이었다. 하지만 우리 역시 같은 굴레에 갇히지 않기 위해서는 성장과 진보가 아니라 쇠퇴와 정체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이 책은 ‘선진국 일본’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일본을 우리나라와 동등한 이웃나라로 이해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유용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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