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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물결 그 이후 본문
제 3의 물결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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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우리는 놀라운 민주적 정치 질서의 확장을 목격하였다. 그 물결은 1970년대 중반 포르투갈 슬라짜(Slazar) 독재정권의 전복과, 스페인의 프랑코 사망 등으로 남유럽에서 시작이 되었다. 두 경우 모두, 비록 다른 과정을 거쳤지만, 장기간의 독재가 민주 정치에 그 자리를 내준 것이다. 그 후 적어도 세계의 다섯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변화가 뒤따랐는데, 대략 시간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 라틴 아메리카, 동아시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동유럽, 아프리카, 그리고 마지막으로 동남아시아 순 이다. 결과적으로 20세기말에는 전 세계 국가의 ‘대부분’이 민주국가로 분류되었다. 즉,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의 확대를 보장하며, 자유경쟁 선거에 의해 수립된 정권들을 말한다
현 세기에서 보이는 민주주의의 전 세계적 선점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것이다. 20세기에만 해도 민주주의가 약진하는 듯 보이던 시기가 두 차례 더 있었다. 첫 번째 시기가 제 1차 세계대전 후이고 두 번째 시기가 제 2차 대전 종전 후이다. 이 두 시기 모두, 민주주의의 확장은 다음 세 가지 발전에 대한 하나의 응전이었다: 전시에서의 정치적 참여 확대, 전제왕권의 붕괴, 그리고 새로운 국가 성립에 병행된 신 정권의 수립. 그러나 신생 민주주의 국가―또한, 민주 정권이 지속되었던 국가―는 20세기 말에 일어난 민주주의로의 쇄도에 비해 그 수가 매우 적었고, 지역적으로도 매우 편향되었다
가장 최근의 민주화 과정은, 즉, Samuel Huntington(1991)이 십 년 전에 명명한 것처럼, 제 3의 물결은, 다음의 두 가지 중요한 결과를 낳았다. 하나는 낙관론의 부상으로, 특히 서구 학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이 민주적 지배의 이익과 미래라는 두 측면에 대해서 낙관하게 된 것을 말한다. 그래서 많은 민주주의 분석가들은 민주주의가 인간의 욕구를 가장 잘 충족시켜주는 체계라고 믿게 되었다. 즉, 민주주의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고, 비정부기구, 국제 기구, 그리고 서방세계의 정부들은 민주주의를 성공리에 보급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낙관론은 의심의 여지없이, 순전히 지역적 파급 효과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경제적 부를 창출하는데 적어도 전제주의 체제만큼 성과를 거두면서도 동시에 전제주의 체제보다 전쟁을 하거나 기아로 허덕이는 경우가 적다는 경험적인 증거에 의하여, 마지막으로 빈번하게 경제적 난황을 겪고 있으며, 민주적 전통이 전무하여 서구 세계와는 아주 다른 문화적 환경 속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민주주의의 잠재력에 의해 유지되었다. 또한 1960년대에 성행하던 전 세계의 경제 발전과 경제적 평등에 대한 이례적인 장밋빛 예상을 한 서구 철학적 전통에 녹아들어 있던 낙관론에 영향을 받았다.
제 3의 물결의 다른 결과는 민주주의에 대한 연구가 일종의 성장하는 산업이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오로지 민주주의 연구를 지원하는 재단이 생긴 것이라든지,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 지속시키는 데 주력하는 미국의 시티즌 데모크라시 콥(Citizen Democracy Corp)등과 같은 여러 단체가 설립된 것이라든지, 세계 각 나라의 대학에서 민주주의 연구를 중점적으로 다뤘던 사실에서 알 수 있다. 또한 전 세계의 민주화 경향에 대한 조사를 주로 다루는 새 학술지인 “저널 오브 데모크라시(Journal of Democracy)”가 일시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민주화에 대한 경도는 다른 분야, 예를 들면 독재정권 분석 등의 연구에서도 나왔다.
이 논문의 목적은 제 3의 물결에 의해 촉발된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소개하려는 것이다. 첫 번째는 최근의 민주화와 민주화 일반에 대한 것으로, 우리가 제 3의 물결로부터 어떤 일반화를 이끌어낼 수 있고, 어떻게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분석해왔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두 번째는 앞을 바라보면서, 민주주의의 보급, 민주화 과정과 민주 정치 연구의 관점에서 우리가 미래에 어떠한 경향을 예측해낼 수 있겠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그러므로 필자의 목표는 양면적인 것으로, 우리가 배운 것을 돌아보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전망하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인 순서인데 왜냐하면 우리가 최근 과거 몇 년의 일을 얼마나 잘 읽어내느냐에 따라 우리 예측의 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제 3의 물결의 고유한 특성
미국의 민주주의 이론방면에서 권위자(dean)인 Robert Dahl은 우리가 지난 수 년 동안 민주주의에 관해 얼마나 많이 배웠는가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그가 논증하듯(1998: 2-3) “민주주의는 약 2500년 동안 때때로 논의되었고 2500년이란 세월은 모든 사람, 적어도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민주주의 개념을 도출해낼 만큼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좋던 싫던 간에 결과적으로 상황은 그러하지 못하다.”
필자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 3의 물결은 사실상 민주주의와 민주화에 대해 여러 가지 중요한 통찰들을 제공했다. 우리는 제 3의 물결의 고유한 특징의 결과로 전개된 일반화에 초점을 맞추면서 이러한 통찰들에 대하여 검토를 시작할 것이다. 각별히 제 3의 물결이 특징적인 것은 단지 제 3의 물결이 상륙한 지역의 범위 때문만은 아니다. 민주주의로 이양되었다고 하는 시점을, 권위주의적인 지배가 종식된 것을 기점으로 하고 첫 자유경쟁에 의한 선거가 시행된 것을 종점으로 하는 기간으로 정의할 때, 얼마나 빨리 민주주의로 이양이 되었는가 라는 점에서 제 3의 물결은 특징적이다. 또한 모든 경우에서, 군대와 경찰력을 장악하고 있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듯한 독재자들이 정치적 독점력을 잃어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양이 얼마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일어났는가 라는 측면에서도 제 3의 물결은 특징적이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로 이양하는 초기 단계에서 이양이라는 것은 폭력을 수반하는 과정 바로 그 자체였다. 이것의 예로 영국의 명예 혁명이라든지 프랑스 대혁명을 들 수 있겠다. 다음의 두 가지 궁극적인 점이 매우 특별하다. 최근의 민주주의로 이양되는 것을 보면 종종 과거 독재정권과 미래의 민주정권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들이 컨소시엄을 형성하기도 한다(DiPalma, 1990). 더욱이, 이러한 신생 민주정권들의 다수가 매우 지속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제 1의 물결과 제 2의 물결이후에 일어난 민주화와는 직접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는데, 특히 1930년대에 거의 반에 가까운 유럽의 민주정권들이 와해된 것이나 1960년대부터 1970년대 내내 라틴 아메리카에서 연달아 민주정권들이 종국을 맞았던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놀랄 것도 없이, 이 모든 특징들은 제 3의 물결에 의한 민주화를 분석하는 방법에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많은 연구들이 다양한 민주화 사례들을 비교하였으며 그러한 연구들의 대부분은 보통 한 지역에서 국가마다 민주화 경험의 연속성의 동일함에 초점을 두고 있었으며, 그래서 종종 민주정권이 붕괴된 경우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이 연구들은 다음과 같은 가정 하에서 전개가 되었다. 민주화는 어떤 일정한 방법에 의해 실현이 더 잘 되는 특정 과업을 포함하고 있고, 민주주의를 향한 길을 닦음에 있어서 경제나 사회 구조보다는 특히 엘리트 수준의 정치가 훨씬 더 중요하며, 민주주의로 이행에 있어서 시간적으로 근접하여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연구하는 것이 시간적으로 먼 요인(즉, 역사)을 연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민주화에 있어서 핵심적 쟁점이 자유경쟁, 시민 자유권, 그리고 정치권이라는 최소의 조건을 충족시키며, 민주 정권은 정교하고 신속하게 성립될 수 있다는 가정이다. 또 민주화는 이행단계와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라는 두 단계로 구분된다고 가정했다.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란, 보다 오랜 기간동안 지속되며 역사나 일반 대중, 그리고 사회구조 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단계이다. 비록 간단하게나마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은 제 3의 물결 시기 동안의 민주화 연구에서 우위를 점했던 학파-즉 ‘이행학(transitology)’-에 대한 것이었다
민주화의 양상
제 3의 물결이 민주주의와 민주화에 관하여 제공한 여러 가지 중요한 통찰들 중 두 번째는 그 기간 동안 일어났던 민주화의 양상에서 유래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민주화된 첫 번째 권위주의적인 정권들은 사실상 재민주화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제 3의 물결이 일어나는 동안 민주주의가 전국적으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유포되면서, 전혀 역사적으로 민주적 전통이 없던 많은 국가들이 이 정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러시아가 적절하고 명백한 경우가 될 것인데 1917년 전제 정치가 와해되고 같은 해에 볼셰비키 당원들이 실질적인 정권을 장악하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만이 러시아로서는 권위주의적인 지배가 없는 시기였다. 제 3의 물결 시기에 첫째로 ‘신생’ 민주정권의 뚜렷한 양상을 보이고 단지 권위주의적인 과거만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나중에 민주 진영으로 편입된 경우보다 더 오래 지속되며 좀 더 높은 질의 민주주의를 향유한다는 사실에서 다음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민주주의는 민주적 전통이 없고 권위주의적인 지배가 정치뿐 아니라 경제와 사회적 측면에까지 유난히 스며들어가 있는 환경에서 도입되기도 힘들고 지속되기도 힘들다는 사실이다. 다시, 탈공산국가들이 적절한 예가 된다. 이들 국가들이 민주화된 예가 라틴 아메리카의 권위주의적인 국가들보다 더 적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점은 이전에 공산주의였던 대부분의 국가들이 민주정치에 대한 경험이 전무했음을 반영하며, 라틴 아메리카의 관료주의적 권위주의와는 반대로 국가 공산주의가 국가, 당, 그리고 조합과는 별개인 독립적인 개인생활 같은, 민주주의의 초석이 되는 많은 부분들을 파괴하였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한마디로, 국가 사회주의는 시민 사회와 정치 사회가 자리잡아야 할 부분을 진공상태로 남겨두었던 것이다.
경제적 발전과 민주주의
세 번째 일반화는 경제적 발전과 민주주의 사이의 관계라는, 오래되었지만 새롭게 구성된 의문 하나를 제기한다. 경제 발전의 수준은 민주주의를 존재하게 하는가의 여부보다는(이는 초기의 관심사였다. 장기간에 걸쳐서 민주주의가 지속되도록 하는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이것은, 경제적 부국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빈국도 민주주의를 도입할 수 있지만, 민주주의가 지속되어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는 실제적으로 경제 발전 수준이 높은 경우에 증대된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두 가지 관찰이 관련이 있다. 첫째는, 동아시아의 새로운 두 민주정권―즉, 타이완과 한국―이 장기적인 민주주의 진영의 기준에 맞을 만큼 충분히 큰 경제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비록 Przeworski와 그의 동료들이 사용하고 있는 자료가 탈사회주의 세계에서 민주주의로의 이양이 일어나기 전에 끝나지만, 탈사회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대한 논의를 지지하는 상당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지난 십여 년 동안, 탈사회주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의 수행과 경제 발전의 수준 사이에 상대적으로 로버스트한 상관관계가 있었던 것처럼, 탈사회주의 국가들 중 처음은 민주정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권위주의적인 형태의 정부로 바꾼 소수의 국가들이(예를 들면, 알바니아나 키르지즈스탄(Kyrzyzstan)의 경우) 공교롭게도 여전히 민주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탈사회주의 국가들보다 더 가난하다
엘리트와 제도
정치적 엘리트가 민주화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이것은 제 3의 물결 시기동안의 민주주의가 “빠르고” “정교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데에서 관찰되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독재정권에서 민주주의로 이행이 있는지 아닌지는 정치 지도자들의 관심거리, 가치 그리고 행동 등에 주로 달려있는 것 같이 보인다. 즉, 그들이 지금 권력을 잡고있는지, 권력을 잃으며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지, 아니면 정권이 바뀐 상태에서 권력을 획득하고자 하는 경쟁자들인지에 달려있는 것 같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일이 전 시대의 민주주의화에 적용되는 것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즉, 최근에 일어난 민주화뿐 아니라 오래 전에 일어난 민주주의 정치로의 이행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사실, 엘리트가 민주화를 어떻게 이끌었는 지에 대해서 아주 간명하게 요약해 볼 수 있을 정도이다. Moore (1966)의 통찰을 좀 빌자면, 권위주의적인 엘리트가 분열되었을 때, 민주주의적 결실을 맺을 가능성은 실질적으로 증가한다. Huntington (1991)의 말을 빌자면, 분열된 엘리트가 권위주의적인 체제를 정치적 가능성이 확장된 상황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더군다나 당면한 사안이 민주주의로 이행 문제가 아니고 민주주의의 공고화 문제일 때, 엘리트 중심 성향은 지속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엘리트들은 정치 제도를 고안하여(이러한 제도는 민주주의의 질과 어쩌면 존속 그 자체에 영향을 미치는데),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규칙에 다소 제한을 받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지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그들은 민주주의를 옹호하거나 혹은 폐지하는 데 자신의 권력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일단 확립이 되면, 그 행보는 복잡다단한 요인들에 달려있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면, 권위주의의 사회-경제적, 제도적, 문화적 유산과 같은 장기적인 요인들이나, 시민 정치 사회로서의 견고성의 정도와 같은 중단기적인 요인들, 그리고 경기 침체, 선거 유권자들의 양극화 현상과 같은 단기적인 요인들이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실제로 종식시킬 것인지의 여부는 바로 엘리트의 결단에 달려있는 문제라는 사실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한편으로, 이미 약해진 민주정체를 동요시키는 저항에 가담하거나 대립적 정치성향을 보이는 일반 대중이 민주주의를 와해시킨 주범이라고 종종 추정되었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교체가 일어났던 라틴 아메리카나, 양 대전 사이의 시기에 존속하던 민주정체의 반이 권위주의 체제로 퇴락하게 되었던 유럽의 경우에서도,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는 근거는 희박하다
우리가 제 3의 물결에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정부와 국가의 제도를 고안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질과 존속가능성에까지 대단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핵심적인 두 가지 관찰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내각제가 대통령제보다 우월해 보인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대통령제는 통치 위기를 맞기 쉽고, 소수에게 과다하게 정치 권력이 집중될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민주주의 실험을 와해시킬 가능성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는 특히 이전에 공산권이었던 지역과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 적용될 때 특히 적절해 보인다. 공산주의 진영이었던 나라들에서는 대통령제가 이미 언급했던 유해한 영향들 이외에도 경제적 개혁을 약화시키고 있다. 또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는 오랫동안 대통령제가 민주주의의 붕괴로 이어졌다. 둘째는, 사회 구성이 이질적일 때 국가 제도 고안과 관련되어 있다. 새롭게 민주화 과정을 겪고 있는 나라들의 대부분이 이러한 경우라는 사실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탈사회주의 진영에서, 연방의 일부 혹은 전체가 각각의 소수 민족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는 민족연방제(ethnofederations)인 국가와 높은 수위의 민족 간 갈등, 계속되는 분리 요구, 민주정치의 질적인 퇴락(시민 자유권의 감소, 의사결정의 마비, 폭력의 증가 등)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조적으로, 다양한 인구 구성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지역적으로 집중되어 있는 경우라고 해도, 중앙 집권적 국가들은 민족적 갈등을 피하거나 민족간의 불화를 중재하는데, 또 국가와 민주주의를 영속시키는데 훨씬 더 많이 성공을 거두는 것 같다. 더 구체적인 비교를 해 본다면, 민족 연방제 국가인 러시아 공화국, 조르지아(Georgia),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중앙집권국가인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 사이에 지난 10년 동안 정치적인 역동성에서 큰 대조를 보였던 사실에 주목하자.
어떤 이는 탈공산주의 지역 외에 인도와 스페인, 두 국가를 들어 이 일반화를 반박할 지도 모르겠다. 이 두 나라는 상당한 민족적 다양성과 민족 연방 제도의 특징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안정된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그에 대한 답변으로, 필자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목하고자 한다. 인도와 스페인은 모두 중앙집권 국가로 민주주의로 이행을 시작했고, 사실상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중앙 집권적 정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다양성이 문제로 부각되었을 때, 그 두 국가는 완전히 민족 연방제가 되거나(인도의 경우로, 인도는 언어를 기준으로 나누긴 했지만), 아니면 민족 연방제적 요소를 첨가하였다(스페인에서는 지역 자치제를 시행한다). 그 과정에서 이 두 국가는 과거의 중앙 집권적인 정체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았는데, 다른 요인들과 함께 이 점이, 민족적 차별성에 다리를 놓고, 분리주의적 정서에 맞닥들일 만큼 충분한 국가 수용능력을 창출하며 중앙과 하위 단위인 연방들 사이의 거래에 유연성을 제공한 공동의 동질성을 조성하였던 것이다. 민족 연방적인 양상이 첨가될 때에도 다수 민족들이 위협을 느낀다거나 소수 민족들이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은 것처럼 느끼지 않았다. 서로가 협조하여, 따라서 폭력이나 분리를 막을 수 있었기 때문에 양 측 모두에게 이익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방법으로 인도와 스페인의 정체와 국가는 보호되었고 민주주의가 융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민(nation)과 국가(state)
여섯 번째 통찰은 민주주의의 성공이 대중들이 국민적 동일성(national identity)을 공유하고 있는가, 국민의 정의가 포괄적인가, 그리고 국민의 경계와 국가의 경계가 일치하는가 등에 주로 달려있다. 이것은 30년 전에 Dankwart Rustow (1970)의 논의이자, 민주화의 제 3의 물결 시기에 계속적으로 확인되었던 바이다. 최소한 국민에 대한 논쟁과 국가의 경계에 대한 논쟁은 민주화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최대한, 이러한 논쟁이 민주주의로 이행을 막거나 민주화가 진행되다가 민주주의 붕괴를 초래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민주화는 국민과 국가에 대한 의문들이 선결되는 것에 달려있게 된다. 아프리카 신생국 중 많은 국가와 이전 공산권 국가들에 있어서 그러한 해결은 일종의 환상이었음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Ted Robert Gurr은 민족 갈등이 더욱 더 첨예해지는 경우는 다음의 세 가지 요인이 합쳐질 때라고 하였다. 세 가지 요인이란 신생국가인데, 처음 민주주의가 도입되는 경우, 사회구성이 다양한 경우를 이른다.
민주주의 실험에 있어서 국가의 중요성은 다른 일반화를 이끌어낸다. 신생 민주 국가는 민주주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제도 형식과 민주주의 기준에 못 미치는 실질적인 수행간에 상당한 편차를 보인다는 것이다. 이것은,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탈사회주의 진영,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본격적인 민주주의 시행에 주요 걸림돌은 법에 의한 지배가 전무하거나 불공평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라는 수렴된 주장을 낳게 된다. 한 예로, 이런 지역적 맥락 모두에서는 첫째, 관료제도를 선출된 공무원들에게 일임하고 관료들이 민주적 절차에 힘쓰도록 하는데, 둘째, 정치 지도자가 일단 선출이 되면 민주주의 실행을 고수해서 그들의 행위에 대해 투명하고 책임지는 정도에, 셋째, 정부와 국가가 선거인의 선호를 해석해서 공공정책에 반영하는 능력에 대해, 넷째, 선출에 의하지 않았으나 영향력 있는 압력단체가 정책 입안자와 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다섯째, 국가 전체에 정부의 능력이 미치는 지에 대해, 여섯째, 보다 일반적으로, 부패에 대해 걱정을 해왔다.
국가에 대한 논쟁은, 제 3의 물결에 의해 새롭게 탄생한 민주주의 국가에 잘 적용되는 세 가지 논의로 이어진다. 첫 번째, 민주주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할 필요성이다. 최근 민주화에 대한 연구 대부분이 민주 정치에 대한 최소주의적 이해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졌다. 즉, 공직에 대한 제도화된 경쟁이 있는 정체라고 민주주의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정의는 너무 쉽게 개방적인 체계를 민주주의라고 부르게 하여, 이 정의 때문에 민주주의 연구가 선거분석 연구로 축소되었다. 국가의 문제에 관련된 사안들은 경쟁 조건이 민주적 지배에 필요조건이기는 하나 충분 조건이 아니라고 이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사실상, 시민적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법의 지배가 없을 때에도 지켜질 수 있다는 주장을 하도록 압력을 받는다. 두 번째 논의는 신생 민주주의 국가들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정부와 제도의 견고함과 능력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질적인 수행에서 이것은 무엇보다도 법체계와 법문화에 관심을 쏟는 것이다. 법의 지배 없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 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본격적인 민주주의 체계를 설립하는 관점에서 어려움의 순서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시민의 자유권과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보다 경선을 도입하는 것이 훨씬 쉽고, 어려움 순위에서 밑으로 내려가면서, 조직화되고 투명한 정치 과정을 형성하는 것이다.
지역적 요인들
제 3의 물결 시기의 민주화에서 이끌어내던 마지막 교훈에 대해 논의하여야 할 차례이다. 이제까지는 제 3의 물결 시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이 겪었던 경험들로부터 도출해낸 교훈에 초점을 맞췄다. 그 나라들이 민주화된 시기, 그들의 역사나 문화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시 말하면, 문화와 역사적 차이에 상관없이 최근 민주화 과정에는 어떤 지속성이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제 3의 물결 시기의 민주화는 지역적 관점에서 여러 가지 방식을 취했다. 예를 들면, Carothers와 다른 사람들이 논했듯, 민주적 지배에 대한 위협이 지역적으로 정의되는 것 같다고 한다. 예를 들면, 라틴 아메리카, 남유럽, 동아시아, 아프리카(계속 법치 체제의 보호를 받는다고 해도) 등에서 군부가 민주주의에 아주 심각할 정도로 위협적인 존재였던 반면, 탈공산주의 진영에서 군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는 상당 부분, 민간인이 군부를 통제했던 오랜 러시아의 전통 때문인데, 이것이 공산주의 국가였을 때 소비에트 연방과 그 동맹국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그러나 유고슬라비아 같은 그 블록에 속하지 않았던 공산주의 국가의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반면에, 탈공산 진영의 신생 민주국가들이 맞닥들이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민주화와 동시에 독립국가와 자본주의로 이행하는데 따르는 엄청난 어려움과 함께, 시민 정치 사회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비슷한 논의가, 특히 정당에 강조점을 두고, 파키스탄과 한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인도 정체의 견고성이, 1980년대 이후 더욱 일반적으로, 인도 의회, 정당체제의 차별화와 정당간 경쟁의 증가에 있었듯이, 이것은 여전히 계속되는 파키스탄의 문제로서, 파키스탄은 민주주의 체계에서 정당이 마땅히 해야 할 다음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 정치적 지원을 하고, 명확한 방식으로 이익을 대변하고, 선호되는 의견을 취합해서 작동가능하고 충분히 국민의 의사를 대표하여 수행에 책임지는 정부를 만드는 등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프리카의 경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커다란 요소들 중 두 요인이 개입되어 있는데, 이 두 요인 다 탈공산주의 국가의 경험과 일치한다. 즉, 국민을 국가에 결합시키는 어려움, 그리고 국가와 정치체제의 취약성이다. 이 두 문제가 라틴 아메리카에서도 목도했던 좀 더 일반화된 문제이다. 즉, 수평적 책임감이 부족하다.
그러나, 이것이 오로지 지난 25년에 거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동안 가시화된 유일한 지역적 효과는 아니다. 다른 지역적 효과는 민주화와 경제 개혁 사이의 대조적인 관계에 있다. 이 두 가지 요소는 라틴 아메리카, 남유럽, 아시아에서 긴장 상태에 있는 것으로 탈공산화 사회에서는 상호 지지하는 관계로 보인다. 예를 들어 민주화와 사유화, 시장화, 자유 무역에서의 진보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입증된다. 이러한 특별한 환경에서 민주주의와 경제 개혁은 상치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함께 가는” 것 같다.
마지막 지역적 차이로는 민주주의로 이행이 시작된 정치적 원인과 민주화의 과정 사이의 관계이다. 라틴 아메리카나 남유럽의 경우, 계약에 의한 이행의 경우가 수준 높고 지속적인 민주주의 탄생에 더욱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대조적으로 거리에서 시작된 이행은 보다 많은 문제에 직면하는 것 같다. 그러나 탈공산 사회, 아프리카, 그리고 한국의 경우, 민중 동원의 비용은 훨씬 덜 분명하다. 간명하게, 이런 나라들에서의 민주주의 과정은 정치 엘리트들이 주도가 된 이행이 실패했다기 보다는 과거 권위주의와 관련된 사안에 더 의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상 많은 경우, 민중 동원은 민중들을 정치에 참여시키고 편히 안주하고 있는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들에게 선거민주주의를 도입하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와 남유럽 민주화에 대한 많은 문헌에서 가장 엘리트적인 혹평을 한 것은 일단 다른 지역으로 초점을 돌리면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느 정도는 이런 식이 되어야 했을 것이지만, 많은 이행론자들은 민주주의가 민중에 의한 지배로 정의된다는 사실을 잊은 것 같아 보인다.
자, 이제 우리는 이런 교훈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서 좀 더 일반화된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전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분에서 민주화의 제 3의 물결은 매우 독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3의 물결자체에 대한 것과 일반적인 민주화에 대한 것, 양 측면에 대해 몇 가지의 중요한 일반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번에는 이 논문의 나머지 부분에서 다루어지게 될 질문 하나를 이끌어내자. 즉, 21세기에도 이러한 일반화가 계속 유효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예측의 위험성
예측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사회과학분야에서, 우리가 가진 지식이 어떤 상태인지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목전의 사안이 거시적인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변화와 관련된 사안일 때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출될 것인가 공화당 후보가 선출될 것인가에 대한 예측을 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반면(2000년 대선 경험이 좀 주저하게 만들지만 말이다!), 국가가 어떤 방향으로든지 정체의 변화를 겪을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필자는 특히 1989년에서 1992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들로 벌을 받은 것 같은데, 공산 체제가 연이어 붕괴되고,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체코슬로바키아 이 세 국가가 해체되었다. 필자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수년동안 증가하는 공산주의의 당면 문제에 대해 글로 폭넓게 다루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종말이 그렇게 갑자기, 또 그렇게 빨리 온 것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 지역적 범위에도 놀랐다. 이것은 공산주의 체제 자체의 붕괴를 앞둔 일종의 총연습과 같은 것이었을 뿐이었다. 마치, 1965년의 헝가리, 196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1980-1981사이의 폴란드의 경우와 같이 말이다.
그러므로 진짜 논점은, 취약한 독재주의와 장기간 존속하고 있는 독재주의의 붕괴가 서로 다른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모든 정치체계가 그렇듯이, 이 체계들도 자신을 재생산하도록 고안되어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지만,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 멕시코의 최근 전개 상황은 미래를 예측하는 우리의 능력에 대해 충고조의 회의적인 사람들이 설 입지를 더 넓혀주고 있다. 사실상, 일년 육 개월 전 정도로 최근에, ‘저널 오브 데모크라시(Journal of Democracy)’에 한 논문이 실렸는데, 그 논문은 아르헨티나가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에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나 지금 아르헨티나는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붕괴의 일로에 서 있다.
그러므로 정치와 경제는 우리 모두를 놀라게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지만, 그럼에도 필자는 민주화에 대해 몇 가지 예측을 하고자 한다. 지금 논의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들에 대해서 그러하듯, 필자도 필자의 행동에 책임질 것이라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필자는 특히 앞으로 몇 십 년 동안 민주주의가 보급되는 양상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한다. 여기에서의 주안점은, 전체적 경향, 중요한 사례들, 그리고 이행의 과정들의 세 부분이다.
전체적인 경향
전 세계의 민주국가 수가 앞으로 상당 기간동안, 비교적 고정적일 것이라고 예측할 만한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이 예측은 여러 방면의 고찰을 근거로 하고 있다. 첫째, 19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의 경향이라는 점이다. 20세기 말엽에 두서넛의 신생 민주국가들이 출현했던 것처럼, 즉 제 3의 물결이 거의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초기 민주화의 몇 경우가, 단지 소수에 불과하나, 독재체제로 도퇴하였다. 지난 6년간의 결과를 본다면 상당히 안정된 상태를 이루고 있다. 멕시코 공화국 전체에서 벨라루스(Belarus)가 있었을 뿐이다.
동시에, 민주화가 전 세계적인 규범이 되었다고 말해도 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독재주의는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더욱 힘겨운 시기를 맞고 있다. 특히, 세계화가, 정부와 국가가 정보나 돈의 흐름, 자신의 국경 안에서의 발전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더군다나 선례들이 남아있다. 만약 공산주의가 붕괴되어 냉전 시대의 국제 질서가 종결될 수 있다면, 모든 독재주의가 어떤 의미로는 당연히 취약해질 것이다. 이런 식의 논리가 민주체제의 확산을 암시해 주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압력의 효과는 다른 고찰들에 의해 상쇄된다. 지난 15년간 성립된 대부분의 신생 민주 국가들은 제 3의 물결의 초기에 민주화되었던 독재주의와는 반대로 그 제도적 기반이 약하고 큰 결함이 있었다. 이미 언급했듯이, 이는 대부분,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에도 계속되는, 민주적 지배에 유난히 적대적인 역사 발전의 한 양상을 나타내어 준다. 이는 또한, 이들 국가들이 다른 국가들보다 늦게 민주주의 대열에 편입되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여기에서 우리는 분석적 관점 하나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제 3의 물결 시기에, 미주국가로 “세례”받는 것이 그것들 모두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실상, 많은 학자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함축적 의미는, 민주주의를 최소주의적으로 정의하여, 정의상 의미로도 많은 국가들을 민주주의라고 받아들일 수 있게 그 벽을 낮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민주화의 두 번째 단계, 즉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에서는 그 벽을 상당히 올려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이런 식의 해석은 하나의 암시를 낳는다. 만약 전 세계 정권의 대부분이 민주주의라면, 그들 중 대부분이 공고화되지 않은 상태의 민주주의이고, 그런 상태로 한동안 존속할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아프리카와 탈공산주의 지역에서 성립된 신생 민주 국가들이 매우 움츠러들게 만드는 조건하에서도 민주화를 진행시켜왔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된다. 예를 들어, 탈공산주의 지역을 구성하는 28개 국가들 중 오직 두 개의 국가만이 민주주의적 과거가 있었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고, 22개 국가는 겨우 10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을 뿐이고, 단지 3개국만이 십여 년 전 정치적 이행이 시작되었을 때보다 훨씬 더 큰 경제 규모를 오늘날 가지고 있다. 그러나, 흥미진진한 사실은 이러한 냉혹한 통계 결과에도 불구하고, 탈공산화 이후 최초 10년 동안, 크지는 않지만 민주주의 체제의 수가 늘어난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약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미래는 가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몇 몇은 붕괴되고, 대부분은 지금의 불안정한 상태로 계속 갈 것이다. 그리고 소수가 공고화될 것이다. 필자가 만약 탈사회주의 전문이 아니라, 아프리카 전문이었다면, 필자는 이러한 결론을 수정하여 대부분이 붕괴될 것이라고 논할 지도 모른다.
이러한 연습으로부터 도출한 핵심적인 통찰은 세 가지 연관성을 인식하는 것인데, 그 연관성들은 서로가 조합이 되면 적은 변화도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한편으로 민주화가 전 세계적인 규범이고, 세계화 자체가 독재 통치와 타협하는 것 같기 때문에, 우리는 현재 붕괴되어 가고 있는 독재주의와 민주주의로 이행되고 있는 나라들 중 몇몇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고 하는 것 같다. 반면에 지금까지도 민주화가 되지 않은 국가들은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민주화 경향은 한정적일 것이다. 더구나, 최근 생겨난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여서, 1960년대, 1970년대 라틴 아메리카에서 볼 수 있었던 그 정도의 수준을 이룬 것은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민주화를 돕는 국제적 원조 때문이기도 하고, 세계화와 많은 국가가 가지고 있는 국가 자체의 취약성을 낮은 수준의 민주주의에 대한 ‘관용’으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고찰들의 최종결과는, 제 3의 물결이 “제 4의 세류(細流, Fourth Trickle)"와 같은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수한 사례들
지난 5년간 경향에서 볼 때,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안전한 예상이다. 그러나 필자는 명확하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특별히 중요하나 제 3의 물결의 범위 밖에 존재하는 국가들을 논의에서 제외하고 있었다. 그 국가들이란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과 현재 남아있는 공산 국가인 북한, 쿠바 그리고 중국을 가리킨다. 통계학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의 분포를 가장 잘 예측한 자료 중 하나가 전 세계의 여성 문맹률 자료이고, 바로 이러한 차원에서 이슬람 국가가 다른 많은 국가들과 첨예한 대조를 이뤄 두드러지게 보인다. 전문가가 많이 없는 상황에서, 필자는 이슬람 세계에 대해 예측하는 것이 주저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많은 이 지역 전문가들이 이슬람 사회가 점점 다원주의화 되어간다는 사실에 놀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부분적으로는 세계화와 민주적 규범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결과로 독재 지배에 제약을 가하려는 반응이다.
필자는 북한, 쿠바, 그리고 중국에 대한 전문성도 부족하다. 그렇지만, 이 국가들이 가진 하나의 양상은 필자에게도 친숙하다. 즉, 국가들이 지닌 정치-경제 구조이다. 이 정치-경제 구조야말로 필자가 동중부 유럽과 전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를 분리시킨 결정적인 원인으로 본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경제 수행 능력이 감퇴되고 있다는 공통점을 생각하면, 처음 두 경우(즉, 북한과 쿠바)는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이나 동유럽과의 유사성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십 년 전에 붕괴한 다른 공산주의 정부들과 일치하는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이들 나라가 최근 민주화를 겪었던 국가나 (쿠바의 경우) 지역과 아주 가깝다는 사실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28개 탈공산주의 국가들에서 민주주의 분포를 가장 정확히 예측하는 지표는 그 국가가 서유럽 국가들과 근접한가의 여부라는 사실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마지막 유사성은, Castro가 노화하고 있어서 특히 쿠바의 경우와 관련이 있는데, 바로 지도력 승계의 역할이다. 소비에트 연방과 동유럽의 공산주의 붕괴는 소비에트 연방의 새로운 지도 세력의 등장으로 이미 전조가 되었고 (그리고 이것이 더 나아가 소비에트 블록에 영향을 미쳤던 것인데), 알바니아,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헝가리에서의 지도 세력의 교체 역시 이러한 효과를 내었다. 사실상, 더 일반적인 패턴이 존재한다. 지도력 승계가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세계의 주요 개혁을 가장 잘 예측해 주는 요인이 된다.
이러한 유사성들은 구체적이기보다는 일반적이고, 암시적이기보다는 확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서는 좀 더 깊은 유사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데, 특히 현재의 북한과 1989년 이전의 동독의 상황에서 그러한 도출이 가능하다. 두 경우 모두, 동일한 민족이 최근에 매우 인위적으로 분리되었고, 분리된 양측간에 보다 많은 접촉이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민선 지도자가(서독의 경우, Willy Brandt, 한국의 김대중) 있다. 더구나 동독이 소비에트 블록 중에서도 강경 노선을 걷는 국가였고, 공산주의 체제일 때는 경제 개혁을 거부했기 때문에 같은 블록 안에 있는 경제적으로 발전된 국가들과는 뚜렷이 대조를 이루었으나, 붕괴되기 전 몇 년에 걸쳐, 서독과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상호작용이 계속 증대되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1989년 동독에서 일어난 대규모 대중동원이 전환점이 되었다. 이 과정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1987년 한국에서 선거 민주주의 채택을 이끌었던 사건들과 매우 흡사한 과정이었다.
이러한 비교에 회의적인 이유도 충분히 있다. 특히, 동유럽 지역에서 민주주의로 이행이 일어날 때 서유럽의 역할(예를 들어,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서 뿐 아니라 문화와 사상의 보급을 통해서), 같은 블록에 속한 국가들에 확산시킬 만큼 저항의 능력을 증대시킬 수 있었던 소비에트 블록의 구조, 소비에트 연방과 서독에 대한 동독의 정치적, 경제적 의존성, 북한과 다르게 훨씬 더 발전했던 동독의 경제 수준, 현재 한국보다 1989년의 서독의 민주주의가 더 정착되어 있었고, 서독경제가 동독의 부채를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었다는 사실 등이 두 경우를 비교하는 회의적인 시각에 이유가 된다.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사회 구조, 정치 구조, 경제 체계, 그리고 현대화의 정도에서 존재하는 심각한 차이를 생각할 때, 두 한국이 합쳐지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이 면에 대한 더 자세한 논의를 보고 싶다면,
세 번째이자 마지막 경우인 중국에 대해 생각해 볼 차례이다. 이 경우는 예측하기가 더욱 어렵다. 국가 사회주의 문제에 대한 중국식의 대처는―빠른 시장화와 세계 경제로의 통합, 계속되는 정치적 억압, 상당한 군부의 권력, 지도부의 중국 국수주의, 심각한 부패상 등의 문제에 대한― 국가 사회주의 몰락 이전에 다른 공산주의 국가들과는 달리 매우 다양하다. 사실, 중국은 유고슬라비아, 루마니아, 헝가리,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이 이전 공산주의 4개국이 공산주의 체제의 마지막 10년간 채택했던 전략들을 혼합하여 사용하는 것 같다. 중국 전문가들은 종종 이것이 매우 효과적인 혼합책이며, 경제 성장이 중국 공산당의 독재 권력을 보호할 것이라고 쉽게 가정하지만, 필자의 경우는 그만큼 확신이 서지 않는다. 중국경제의 기적이 무한히 계속될 것인지, 부수적인 정치 부산물이 도시지역에 한정된 상태에서 경제 개혁이 성공적으로 확산될 것인지, 중국 공산당이 빠르게 다원화되고 있는 듯한 중국사회를 ―특정 정치적 범위 안에서의 다원화로, 이는 1968년에서 1989년 사이의 헝가리 상황과 다르지 않은데― 계속 통제할 수 있을 지에 대하여 의심을 품는 이유들이 있다. 필자는 반복적으로 중국에 대하여 이야기되어온 세 가지 논의에 대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 정당 국가가 완전한 권력을 구가하고 있거나 적어도 충분한 권력을 행사하며, 독립적이면서도 한데 뒤섞여 있는 중국의 지도자 그룹은 여러 방면에서의 의견 차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 할 것이며, 그 목표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고, 중국 인민들뿐 아니라 엘리트들도 혼란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정치적, 경제적 자유를 모두 포함하는 정책을 수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하지만 이것은 고르바초프 집권 하의 전 소비에트 연방에서의 경향이기도 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가정하고 있다.
이 세 논의에 대한 필자와 같은 반응은 중국 정책분석을 비교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위에 요약했던 논의들은,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이전 소비에트 연방 공화국에 대한 논의와 같다. 혼란을 두려워하는 것은 소비에트 연방의 심리에도 깊게 내재되어 있었으며, 많은 분석가들은 이 정당국가가 실제보다 훨씬 세력이 있고 깊이 안치되어 있다고 가정하였다. 그러나 부패상이 늘어가고 주요 정책을 변화시키라는 압력 등에 직면하여, 고르바초프가 결국 “허용”하자,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당은 경쟁적인 장으로 신속하고 쉽게 분열되었다. 이러한 관찰은 다음과 같이 간명하게 나타낼 수 있다. 지도자가 여전히 세력을 쥐고 있고, 민중과 지도자 모두 혼란을 두려워하고 있는 시기에도 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말이다. 이에 덧붙여서 중국 외의 다른 나라의 경험으로부터 두 가지를 더 고려해 볼 수 있겠다. 하나는 권위주의적 지배가 쇠퇴하는 핵심적 원인이 부패라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소비에트 연방, 루마니아, 그리고 동독의 경우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성취가 민주화와 복잡하고 일견 모순적인 관례를 갖는다는 것이다. 많은 권위주의 체제에서 독재 정치의 파국이전에 경제적 성취가 감소하는 것을 본 것처럼, 다른 많은 독재주의 국가들이 매우 반대의 결과, 즉 장기간 지속되는 급속한 성장과 도시화 등을 경험하였다. 폴란드, 루마니아, 러시아가 처음의 범주에 속한다면, 스페인과 한국이 후자의 범주에 속한다. 중국은 공산당 지배하에서 장기적인 근대화 과정을 거치고, 경제 개혁으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겪는 경우이며, 아마도 이러한 과정이 그 구조와 선호 면에서 굉장히 복잡한 사회와 경제를 창출했을 것이므로 공산당의 단순한 독재 정치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Moshe Lewin (1988)이 고르바쵸프에 대해 통찰력 있게 쓴 자신의 책에서, 소비에트 사회는 (그리고 소비에트 공산당이라 하더라도) 좁은 감방과 같은 스탈린 식의 체제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이는 매우 역설적이다. 신속한 사회-경제 변혁을 추구한 스탈린주의의 정책이 스탈린 체제 자체를 훼손시킨 것이다.
민주주의의 과정들 ,
이런 모든 이유에서, 필자는 향후 10년 이내에 중국이 최소한 공산당 1당 독재를 끝낼 것이고, 장기간 안목으로 보아야겠지만, 좀 더 민주화된 정부 형태로 이행할 것이라고까지 예상한다. 그러나 이런 이행은 예를 들어, 멕시코의 최근 경향과는 다를 것이다. 멕시코는 독재 정치의 침식이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고 있는 반면에 민주주의로의 전환은 오히려 급작스럽고, 정체 변화의 전반적 진행이 평화로운 특색을 띠고 있다. 그 대신에 중국 공산당 지배의 종말은 매우 빠르게 일어날 것이며, 잦은 폭력적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로 이행은 훨씬 느리게 일어나면서 결코 평탄하지 않게 진행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중국이 공산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은 헝가리가 아닌 루마니아와 유사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제 3의 물결의 규범에서 뚜렷이 이탈한 이러한 시나리오를 예측하는 다른 이유들도 있다. 하나는, 인민 해방군(People's Liberation Army)의 자율적 정치력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전 소비에트 연방이나 동유럽국가들 중에서 공산당 지배에서 무력으로 탈출한 국가가 루마니아와 유고슬라비아인데, 이들 국가에서 군대는 공산당과 연합하여 중요한 정치 행위자였다가, 공산당이 세력이 덜 미치는 곳과 사회 전반을 통제하는데 군대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던 시기에 중요 공산당과 결별하게 된다. 중국의 민주화가 폭력적일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다른 이유는―루마니아가 그 선례로 다시 한 번 떠오르는데― 중국 시민 사회의 취약성 그 자체 때문이다. 여기에서 1989년에 폴란드, 헝가리, 체코에서 일어났던 사건과 같은 해 중국에서 일어난 시위를 비교할 수 있을 것 같다. 앞의 세 국가의 경우는 반대 세력이 잘 조직되어서 일단 정체가 붕괴되자, 정권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었던 반면, 중국에서 일어난 반대운동은 훨씬 더 파편화되어 있었고, 지도부나 정치 경험, 앞으로의 지향들이 없었다. 좀 더 최근의 발전상들을 하나의 확인 절차로 볼 수 있는데, 소비에트 연방, 동-중부 유럽에서 민주주의로 가장 힘들게 이행된 국가들은 강력한 반대 세력이 성장하기 전에 공산당의 독재 정치가 와해된 경우들이었다. 이 시점에서 필자는 폴란드와 헝가리의 정치적 전개상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러시아,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경우를 대비시켜 염두에 두고 있다.
폭력을 예상하는 마지막 이유는, 중국 서쪽 국경 지역에는 지역적으로 집중되어 있고 불만이 늘어가는 소수민족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수 민족들 중 몇 몇은 중국과 중앙 아시아의 신생 독립국들 사이에 동시에 분포하고 있다. 이것이 폭력을 유발시킬 확실한 요인이 되는데, 국가 사회주의의 제도적 특징 때문에 정부의 세력이 약해지면 국가 역시 힘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 점은 특히 다른 두 가지 사항을 고려해 볼 때 옳은 것 같다. 소비에트 연방과 동유럽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공산주의에 대한 경험은 다수 민족과 소수 민족들 사이에서 대부분 우연하게 이지만, 강한 국가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것 같다. 중국의 신캉 지역(Sinkiang Province)에서처럼, 특히 행정 구역 경계가 민족의 경계와 일치할 경우에 그렇다. 동시에 중국 지도부는 다수인 한민족의 관점에서 배타적인 국수주의를 장려하고 있는데, 이것은 많은 정부들이 어려운 시기에 사용하는 계책으로, 공산주의 정부들은 이를테면 경제 개혁과 사회의 다원화 등으로 제도적 통제력을 잃을까 두려울 때 사용한다. 이러한 모든 경향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해석된다. 즉, 중국 공산주의 정부와 국가 모두가 동시에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분리주의의 요구가 높아지는 것으로 표현이 된다.
이에 더해서, 미래에 중국만이 이런 길을 걸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이유들이 있다. 필자가 방금 전까지 개설했던 시나리오는 다른 경우에도―새롭게 민주화가 된 그룹에 속해있는지, 아니면 민주화에 항거하는 그룹에 속해 있는가에 따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서방세계에 속하지 않은 국가들은 대부분 그 구성에 있어서 다민족적이다. 이들 국가들 대부분이 약체들이며(이 의미는, 국경 내에서 정치 권력을 펴기 힘들어서 세금징수와 정치 질서 수립에서 한계를 보이는 국가라는 것이다),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여 그 지지 기반층이 얇은 정부가 대부분이다. 이런 사실이 암시하는 바는, 미래 동향에 대해 요점적으로 예측해주는 것인데, 제 3의 물결이 끝났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세계적 확산 속도가 느려졌을 뿐 아니라, 극소수의 국가만이 민주화되고 있고, 많은 신생 민주 국가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3의 물결을 정의했던 다른 특징들이― 즉 엘리트에 의해 조직되고, 신속하고 평화롭다는 특징들― 사라지고, 느리고 비단선적이고, 폭력이 수반되고, 엘리트뿐 아니라 민중까지 관여하게 되는 식으로 전부 바뀔 것이다. 이런 냉혹한 시나리오는 다음 사실을 추가적으로 고려에 넣는다면 현실이 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대부분의 국가가 소수민족을 구성원으로 가지고 있고, 그 사실이 민주화를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처럼, 많은 소수 민족들도―유럽의 집시들(Roma), 중동의 팔레스타인들, 유라시아의 쿠르드족 등― 자신의 국가가 없어 여러 국가에 퍼져 살면서 너무나도 명확하게, 인권이란 국가를 통해서만 보장된다는 사실을 점점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고투가 다시 그 역사적 근원으로 즉, 포함과 주권을 위한 투쟁이었던 때로 돌아갈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프랑스 대혁명의 메시지인 것이다. 이 혁명은 유럽인들에게는 장기간의 새로운 아젠다를, 민족 국가 개념을 가지고 참여와 민주주의라는 문제로 전세계적 수준의 정치학을 창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 민주화 모델은 스페인식의 국민적이고 영토의 측면에서의 싸움과 프랑스식의 폭력과 민주주의로의 반복적인 우회를 합쳐놓은 모델이 될 것 같다.
조사연구의 의제
미래 민주주의의 변화는 민주화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민주주의 공고화에 대한 흥미가 계속되는 반면, 민주주의 붕괴에 더 많은 관심이 모일 것이다. 둘째, 더구나, 민주주의 분석은 역사, 문화, 그리고 경제의 요인들에 한층 더 민감해질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요인들은 민주주의로 이행에 선행하는 요인들로서, 서구 핵심적 민주화 사례들 연구에서 보다 강조되었으며, 민족적, 지역적으로 민주화 과정의 특징적인 면모들을 시사해 줄 것이다. 셋째, 제 3의 물결 시기에 엘리트와 제도에 초점을 두었던 것에 비해, 일반 대중의 선호와 행동양식에 더 큰 관심을 두는 방향으로 바뀔 것이다. 특히 연구의 초점이 신생 민주국가들의 공고화에 있느냐, 아니면 독재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에 있느냐에 따라 이러한 경향은 더 커질 것이다. 넷째, 제도적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초점은 정당에 모아질 것이다. 일찍이 언급했듯이, 정당 발전에 관련된 문제들은 대부분의 신생민주국가들에게서 나타난다. 더구나 정당은 (신생 민주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인데) 행동에 대한 책임성 문제에서, 민주주의 존속의 문제에서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다섯째, 민주화, 국민, 국가 사이의 관계에 많이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 이 세 가지 요소들이 상호 지지적이었다. 보다 최근의 민주화에서는 이들 사이의 관계가 더욱 중심이 되고 있다. 여섯째, 경제는 민주화 분석에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다. 이는 일부 세계화 때문이기도 한데, (국가 내에서, 그리고 국가간에) 세계적인 불평등과 경제적 성취의 편차가 더욱 심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또한 일부 민주주의가 (앞으로 이행되어야 하겠지만) 전반적인 경제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민주화 연구는 각 국가의 수도에서 일어나는 과정으로 파악하기보다는, 일반 대중이 일상에서 그 정체를 경험하고, 민주 정치의 폭력성이 더 쉽게 드러나고, 민주적 지배를 이루는 여러 요소를 배우거나 혹은 배우지 못하게 되는 지역적 정치과정으로 파악하게 될 것이다.
결론
제 3의 물결은 세계사에서 경이로운 시기였다. 이전과는 다르게 민주화가 일반적인 현상이고, 평화롭고 용이한 과정으로 보였던 시기였다. 중요한 필자의 예상이라면 이 시기가 그 막바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 확산 속도가 느려질 것이고, 특히 최근에 수립된 신생 민주국가들 중 일부가 몰락할 것이며, 많은 경우에서 민주화 과정 자체가 비단선적이고 지체되고 더욱 폭력적인 양상을 띠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다. 민주주의를 둘러싼 낙관론은, 이 장의 도입부에서 언급했듯이, 여전히 신생 민주국가들과 기존 민주국가의 대중과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연구하는 분석가들에게 존재할 것이지만 동시에 색이 바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민주화 연구는 경제 발전 연구와 비슷한 패턴을 밟고 있다. 이 두 경우에서의 교훈은 똑같다. 즉. 민주주의에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인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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