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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젠더, 트랜스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퀴어이론, 젠더이론의 시작 본문

4차산업혁명 관련/책소개

퀴어, 젠더, 트랜스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퀴어이론, 젠더이론의 시작

천아1234 2021. 7. 5. 17:49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정체성 중심의 권리운동을 젠더 문제로 꿰뚫으며
‘모두의 젠더 문제’를 외친 트랜스젠더운동가 리키 윌친스

생생하고 간결하게, 젠더이론을 말하다!

1990년대부터 2021년 현재까지 30여 년간 젠더 관련 인권운동에 앞장서며 각종 단체를 조직하고 열정적으로 활동해온 저자가 생생한 경험과 간결하고 쉬운 서술로 안내하는 퀴어이론, 젠더이론 입문서가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었다. 정체성 중심으로 전개된 20세기 중후반 미국의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 권리운동의 성취와 한계를 짚으며 모두가 맞물린 젠더 문제를 환기하는 데서 시작하는 이 책은 퀴어이론, 젠더이론의 핵심을 다루는 가장 생생하고 간결한 입문서인 동시에, ‘모두를 위한 젠더권운동’이라는 저자의 실천처럼 젠더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모두를 위한 책이기도 하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쓰는 데 집중한 리키 윌친스는 우리 사회에 너무나 깊숙이 자리잡고 있어 쉽게 인식하기조차 어려운 젠더 이분법을 끈질기게 파고들며, “더 넓은 젠더 패러다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가로막히는 세계에서 그 너머를 그리는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이분법을 퀴어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이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짓눌러버리는 세계에서 ‘퀴어한’ 세계를 그리는 일은 가능할까? 그 상상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까?

상세이미지

저자소개

저자 : 리키 윌친스

(Riki Wilchins, 1952~)
젠더 표현과 젠더 정체성에 관한 권리를 옹호하고 젠더 정의를 실현하는 데 앞장서온 사회운동가. 1995년 미국 최초의 젠더권운동단체인 젠더권옹호연대(젠더팩)(Gender Public Advocacy Coalition, GenderPAC)를 설립했고, 현재는 젠더·인종·계급의 교차적 접근을 모색하며 젠더 규범과 구조적 불평등에 맞서는 트루차일드(TrueChild)의 상임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Read My Lips)》(1997), 《젠더퀴어(GenderQueer)》(2002, 공동편집), 《트랜스/위반하다(TRANS/gressive)》(2017), 《이분법을 불태워라!(Burn the Binary!)》(2017), 《젠더 규범과 교차성(Gender Norms and Intersectionality)》(2019) 등이 있다. 미국 백악관, 질병통제예방센터, 보건복지부 등에서 연사로 섰고, 《타임》 선정 ‘21세기를 이끄는 100명의 시민혁신가’(2001) 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역자 : 시우

문화연구자. 레인메이커 활동가이며 오류동퀴어세미나, 전쟁없는세상, 젠더문화연구소에 참여하고 있다. 《퀴어 아포칼립스》(현실문화, 2018)를 썼고, 《섹슈얼리티 지리학》(캐스 브라운 외 엮음, 이매진, 2018), 《퀴어 성서 주석 1》(데린 게스트 외 엮음, 무지개신학연구소, 2021)을 함께 옮겼다.

목차

추천의 말
- 모든 이들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권리’를 위한 촘촘한 질문의 여정 / 나영
2판 서문
들어가며
1부 모두가 맞물린 젠더 문제
1. 여성의 권리운동
2. 동성애자의 권리운동
3. 트랜스젠더의 권리운동
2부 벽을 넘어
4. 데리다와 의미의 정치학
5. 푸코와 자기의 정치학
6. 푸코와 규율사회
7. 서로 반대되는 섹스라는 말은 가능할까
8. 포스트모더니즘 속의 불만
3부 정체성 정치를 넘어
9. 인터섹스 어린이와 정체성 정치
10. 버틀러와 정체성 문제
11. 모두를 위한 젠더권운동
감사의 말
해제
- 보이는 세계에서 내쳐진 세계를 안내하고자 할 때 / 전혜은
옮긴이의 말

책 속으로

리키 윌친스는 젠더 표현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억압이 단지 트랜스젠더만이 겪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환기시키며, ‘젠더권’이라는 이름으로 끈질기게 이러한 억압들을 찾아내고 ‘모두의 권리’로 연결해나가려 한다. 윌친스가 제안하는 젠더권운동은 사회적·역사적으로 구성되어온 이분법적 젠더 체계의 억압을 깨고, 그 이분법의 틀에 자신을 맞추어 살아가지 않을 권리, 그로 인한 차별과 폭력, 낙인을 겪지 않으며 주거와 노동, 생존을 위해 자신을 해명하지 않을 권리,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갈 권리를 위한 운동이다.
이 책은 페미니즘운동과 동성애자권리운동의 성취와 한계를 짚고, 포스트모더니즘 이론과 퀴어이론의 핵심을 서술하는 훌륭한 개론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를 관통하는 젠더와 정체성 범주에 대한 비판적 통찰을 놓치지 않으며 운동 현장에서의 생산적 논쟁을 열어주는 고마운 책이기도 하다.
- 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 (추천의 말에서)
이 책이 출간 당시부터 알음알음 퀴어이론에 목말라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출간 후 16년이 흐른 지금에도 여전히 널리 읽혀야 할 책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젠더퀴어의 관점에서 쓰인 퀴어이론 입문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주로 동성애에서부터 시작해 길게 이론적 계보를 설명하다가 마지막에 트랜스젠더를 끼워주거나, ‘퀴어’라는 제목 아래 주로 동성애에 대해서만 논의하는 책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그런 점에서 수잔 스트라이커의 《트랜스젠더의 역사》와 케이트 본스타인의 《젠더 무법자》에 이어 한국에 출간되는 이 책은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및 젠더퀴어 인권운동의 한복판에서 한 시대를 이끌어간 활동가가 젠더퀴어의 관점에서 당대의 사회적 소수자 인권운동과 퀴어이론을 통과해가며 쌓아 올린 소중한 지식과 통찰과 비전을 열과 성을 다해 독자들에게 전하는 값진 기록이다. (……) 어떤 젠더를 표현하더라도 차별받지 않고 폭력을 겪지 않는 세상, 자신이 지닌 목소리를 모두 사용하는 세상. 이건 뜬구름 잡는 낭만주의 따위가 아니다.”
- 전혜은, 《퀴어 이론 산책하기》 저자 (해제에서)
이 책은 이론이 난해한 학술 논의에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 활용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도록 비교적 쉬운 언어로 쓰였다. 이 책의 매력은 비판적인 분석과 재치 있는 서술을 넘나들면서 사회운동의 복잡한 흐름과 추상적인 이론을 차근차근 풀어낸다는 데 있다. (……) 윌친스는 정체성 정치가 사회운동의 의제를 소유의 문제로 왜곡할 우려가 있다고 진단한다. 불평등을 해소하고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은 권력과 자원을 분배하는 기존의 규칙을 재설정하는 근본적인 문제에 응답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정체성 정치는 때로 ‘우리’의 파이를 더 많이 획득하는 일이 그 자체로 선하고 올바르다는 환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개별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를 도덕적이고 정당한 것으로 만들고는 한다. 이는 불가피하게 ‘우리’로 호명되기에 적합한 이들, 파이를 나누어 가져도 될 만한 자격이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식별하는 일로 이어진다. 정체성 정치는 우리와 그들의 경계를 수호하고 자격이 없다고 간주된 무임승차자를 처벌하는 일이 더욱 공평하고 안전한 사회를 실현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치안과 안보의 기획에 복무함으로써 존엄의 기초를 무너뜨리고 평등의 약속을 저버릴 위험이 있다. “해방운동은 새로운 위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위계를 없애는 것이어야 한다”(240쪽)고 강조하는 윌친스는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 이론과 실천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 시우, 문화연구자/《퀴어 아포칼립스》 저자 (옮긴이의 말에서)
■ 본문에서
이분법에 들어맞지 않는 모든 이들을 위한 책
만약 당신이 남성성이나 여성성에 관한 규범 때문에 힘겨웠던 적이 있다면, 왜 무언가에 들어맞아야 하는지 고민해본 적이 있다면, 모든 순간에 진짜 남자 또는 진짜 여자라고 느끼는 것은 아니라면, 동성애, 이성애, 양성애 사이의 전쟁에서 어느 편에도 서고 싶지 않다면, 여자아이같이 공을 던진다거나 너무 남자아이 같다는 이유로 놀림을 당한 적이 있다면, 바이섹슈얼, 유대인, 트랜스젠더, 아시아계 미국인, 남성과 같은 단어가 당신의 모든 것을 말해줄 수 없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것이다. (22~23쪽)
여성의 권리운동과 젠더 문제
이러한 점을 유념할 때, 페미니즘이 남성성, 젠더 표현, 젠더 정체성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분명하게 주장하지 않고서 과연 성차별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전미여성기구 전(前) 회장이자 젠더권옹호연대(Gender Public Advocacy Coalition, GenderPAC)(이하 젠더팩) 공동의장인 퍼트리샤 아이얼랜드(Patricia Ireland)가 이야기한 것처럼 “젠더를 젠더권으로 다시 논의하는 작업은 페미니즘이 나아갈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다.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gender stereotype)은 페미니스트가 여전히 마주하는 수많은 문제의 근본 원인이다”. (39쪽)
동성애자의 권리운동과 젠더 문제
문화적 보수주의자들이 젠더를 가지고 동성애자권리운동의 활동가들을 공격했을 때, 활동가들은 페미니스트들과 똑같이 반응했다. 이른바 새로운 시대의 동성애자는 사람들에게 더욱 매력적이고 젠더 규범적으로 보여야 했다. 활동가들은 젠더 문제에서, 그리고 퀴어함에서도 물러서기 시작했다.
젠더는 동성애자권리운동의 정치적 의제에서 사라졌다. 정치적 의제로 다시 등장하기까지는 25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야 했다. 젠더를 또 다른 소수자인 트랜스젠더 집단의 문제로 안전하게 떼어놓을 수 있는 시기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51쪽)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있었다
젠더퀴어 동성애자와 페미니스트는 운동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지만, 무대 뒤에 조용히 남겨진 채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초, 이러한 상황은 뜻밖의 방식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친구는 ‘트랜스 집단을 포함할 것’이 강하게 요구되는 새로운 흐름에 시큰둥하게 반응하며 “트랜스젠더 얘네들은 1970~80년대에는 전부 어디에 있었대?”라고 내게 말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 원래 여기 있었어. 근데 그때는 동성애자였을 뿐이야.”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이곳에 존재했다. 다만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커다란 깃발 아래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동성애자라는 것과 젠더가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트랜스젠더라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해졌다. (61~62쪽)
언어라는 문제, 젠더라는 언어
데리다는 언어에 몇몇 문제가 내재해 있다고 주장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언어는 발화 공동체 구성원이 공통으로 지닌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언어는 동일성을 선호하며 특별한 것, 반복되지 않는 것, 개인적인 것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가장 특별하고 반복되기 어려우며 개인적인 것 중 하나는 몸에 대한 감각이다. 이는 우리가 몸을 어떻게 느끼는지, 젠더에 관한 감각을 어떻게 경험하는지를 뜻한다. 이러한 사실은 언어가 애초부터 젠더를 다루기에 무딘 도구라는 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89쪽)
이분법이라는 폐쇄회로
이분법 문제에서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별다른 소용이 없다. 예컨대 대체로 환영받는 젠더 스펙트럼 논의를 살펴보자. 젠더 스펙트럼은 젠더를 다룰 때 더욱 포용적인 자세를 갖기 위한 노력의 결과다.
그러나 젠더 스펙트럼은 불가피하게 ‘남자’와 ‘여자’라는 두 가지 진짜 젠더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외의 모든 ‘기타 등등의 젠더’는 빨랫줄에 걸린 옷처럼 남자와 여자 사이에 늘어져 있거나 정해진 궤도를 따르다가 벗어난 우주선처럼 남자와 여자 주변을 맴돈다.
‘두 가지 진짜 젠더와 기타 등등의 젠더가 있다’는 설명이 논의의 기본 전제가 될 때, 이분법의 첫 번째 항(term)은 중심으로 기능하며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에 우리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 이성애가 아니라 동성애, 백인성(white-ness)이 아니라 흑인성(black-ness), 일반(normal) 젠더가 아니라 트랜스젠더의 의미에 대해서만 끝없이 논쟁하게 된다. (99~100쪽)
‘나’를 부르는 이름, 담론, 해석, 의미가 계속해서 변화할 때
어렸을 때 나는 내가 남자아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유별나고 이상하며 매우 불행한 남자아이였지만 남들과 똑같은 남자아이라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퀴어인지 의심스러워했고, 실제로 나는 수년 동안 게이로 살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나는 훌륭한 게이로 살았다. 내게 여자 연인이 있었고 남자에게 성적으로 끌리지 않았다는 점만 제외하면, 나는 지금도 훌륭한 게이로 지냈을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내가 트랜스섹슈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학술자료의 표현에 따르면 트랜스섹슈얼은 남자의 몸에 갇힌 여자를 의미했다. 이러한 설명은 내가 왜 항상 마음 깊이 심란함을 느꼈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줬다.
나는 나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법을 익혔지만, 적대적인 사람들을 수없이 마주하면서 점차 내가 여자를 모방한 어떤 존재인 것만 같은 고통스러운 느낌을 받게 됐다.
[나 자신을 여자라고 생각하는 법을 익힌 뒤에도] 여자친구와 만났다는 점에서 내가 트랜스섹슈얼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몇 년이 지나자 담론이 바뀌었고 나는 트랜스젠더가 됐다. (110~111쪽)
‘서로 반대되는 섹스’의 발명
역사적으로 정소와 마찬가지로 그저 생식샘으로 알려졌던 난소에는 별도의 이름과 ?

출판사 서평

“젠더권은 인권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
트랜스젠더운동가 리키 윌친스의
생생하고 간결한 퀴어이론, 젠더이론 입문서!
비장애인 백인 트랜스섹슈얼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인 리키 윌친스는 젠더 표현과 젠더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특정 정체성의 문제를 넘어 ‘모두의 문제’로 확장하며 사람들을 연결하고자 투쟁해온 사회운동가다. 1952년에 태어나 20세기 중후반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의 권리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된 시대를 살아온 리키 윌친스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나뉜 장에서 모두가 맞물린 문제로서의 젠더 문제를 조명했다. 이에 따라 ‘모든 사람을 위한 젠더권(gender rights)’이라는 원칙 아래 1995년 젠더권옹호연대(이하 젠더팩)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젠더 표현과 젠더 정체성에 관한 개인의 권리를 뜻하는 젠더권은 한마디로 “다를 수 있는 권리”에 대한 요구다. 젠더권이 인권이자 모두의 문제인 이유다. 남자 아니면 여자로만 나뉘는 젠더 이분법의 세계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존재, 둘 사이 경계에 위치한 존재, 이쪽과 저쪽을 가로지르는 존재 들은 수많은 문제에 직면한다. 차별과 혐오는 물론이고 건강, 교육, 노동, 주거 등 삶의 기반을 이루는 대부분의 영역에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기도 어렵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여성,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라는 정체성으로 호명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이 세 가지 정체성 정치를 관통하는 핵심에 젠더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젠더 이분법이 공고하게 작동하는 사회에서 ‘진짜 여자 같지 않은 여자’ ‘남자가 되려는 여자’ ‘남자를 좋아하지 않는 여자’는 여성혐오, 동성애혐오, 트랜스젠더혐오 어느 하나로도 온전히 설명할 수 없는, 복합적으로 맞물린 차별과 혐오를 마주한다.
저자는 정체성의 이름으로 포착되지 않는 대표적인 존재로서 인터섹스를 이야기하며 정체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권리운동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20세기 중후반 정체성 정치가 이뤄낸 성과를 존중하고 환영하면서도, 그 성과를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간과되었던 젠더 문제를 정체성 정치의 한계로 지적하며 새로운 연대의 중심으로 젠더권을 제시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윌친스는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의 권리운동사를 ‘젠더 문제’로 관통하며 다시 살피고(1부), 젠더이론, 퀴어이론의 기초가 되는 철학자들(자크 데리다, 미셸 푸코)의 작업을 비롯해 의학, 과학, 법학, 역사 등 지식 체계를 지배해온 이분법을 해체한 이론가, 연구자 들을 소개하며(2부), 퀴어이론의 창시자로 꼽히는 주디스 버틀러와 정체성 정치학, 그리고 정체성 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실천으로 저자가 도모했던 젠더권운동을 이야기한다(3부).
한편, 2004년 미국에서 초판이 출간된 책을 2021년 한국에서 만날 독자들이 읽고 느낄 수 있는 시차를 좁히기 위해 연구자, 활동가, 옮긴이가 한마음으로 목소리를 보탰다. 《퀴어 이론 산책하기》를 펴낸 퀴어 페미니즘 장애학 연구자 전혜은은 이 책으로 퀴어이론, 젠더이론에 입문할 독자에게 필요한 이론적 배경지식을 더하며 입문자들을 위한 길잡이로서의 해제를 보탰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SHARE 대표 나영은 “모든 이들의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권리’를 위한 촘촘한 질문의 여정”으로 이 책을 요약하며 “운동 현장에서의 생산적 논쟁을 열어주는 고마운 책”이라는 추천의 말을 보탰다. 문화연구자이자 이 책의 옮긴이인 시우는 책에 서술된 당시의 시대상을 꼼꼼히 알려주고, 정체성 정치와 젠더팩을 둘러싼 논쟁을 보다 상세히 설명하는 후기를 통해 독자의 정교한 이해를 돕고자 했다.
모두가 맞물린 젠더 문제
1부는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 권리운동의 역사를 속도감 있게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 사이 미국,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도, 갈등을 빚기도 하며 활발하게 전개된 이 세 운동을 살펴보는 이유는 정체성 정치의 성취와 한계를 되짚는 작업이자, 젠더 문제가 정치적 의제에서 어떻게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게 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주요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동성애자권리운동과 트랜스젠더권리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트랜스단체를 만들고 활동하며 깊이 관여했던 저자의 경험은 ‘트랜스 집단을 포용’하는 문제로 떠들썩했던 1990년대의 상황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한다.
가장 먼저 다뤄지는 여성의 권리운동은 젠더권이 모두의 문제임을 확실하게 환기하는 장이다. 여성운동의 전개를 속도감 있게 좇는 저자는 2000년대에 이르러 마침내 여성이 ‘남성적인’ 직업을 갖고 ‘남성적인’ 권력을 행사하며 ‘남성적인’ 영역에서 성공하는 일이 받아들여진 시대에도 여전히 ‘남성적인 존재가 되는’ 일만큼은 용인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한편 여성의 남성적인 젠더 표현을 지지했던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은 이따금 최악의 분리주의를 택하기도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분리주의는 때때로 레즈비언 페미니스트들이 트랜스젠더 집단에 대해 기계적인 적대감을 갖도록 만들었으며, 이는 특히 학계에서 두드러졌다”(37쪽)라는 말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트랜스젠더혐오와 결코 무관하지 않은 대목이기도 하다.
여성운동과 마찬가지로 젠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권리운동은 동성애자권리운동이다. 저자는 동성애자권리운동이 젠더 문제를 끌고 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다음의 두 가지를 꼽는다. 첫 번째는 도덕적인 이유로, 퀴어운동이 확장되는 주요한 계기인 스톤월항쟁의 중심에 드랙퀸과 비백인 트랜스 집단이 있었던 것이다. ‘눈에 띄는 퀴어’로서 숨을 수 없는 존재였던 이들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퀴어 커뮤니티의 대표자 역할을 오랫동안 감당하며 억압의 시대에서 감내해온 상처가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두 번째 이유는 젠더가 상징의 언어라는 점에서, 적지 않은 동성애자가 어떤 식으로든 젠더 규범을 넘어서며 동성애자‘로’ 인식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동안 젠더 문제는 동성애자권리운동의 주요한 의제였으나, 보수주의자들의 젠더 공격이 시작되자 동성애자권리운동은 적극적으로 규범에 순응하는 전략을 취한다. “우리는 이성애자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단지 동성과 섹스할 뿐이죠.”(53쪽) 젠더와 성적 지향 사이에 확실한 선을 긋고, 젠더 이분법에 전제한 ‘정상성’을 강조하는 전략을 택한 동성애자운동은 분명 그 나름으로 큰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윌친스는 동성애자운동이 젠더 문제는 물론, 퀴어함에서도 물러나기 시작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공론장에서 젠더 문제가 사라지고, 젠더는 새로운 ‘동성애’가 되었으며, 아울러 ‘티부(티 나는 부치) 사절’과 같은 동성애자 커뮤니티 내부의 혐오에 대한 책임까지도 안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1990년대, 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이 주축인 성소수자운동에 ‘트랜스 집단을 포함할 것’이 강하게 요구되는 새로운 흐름과 함께 젠더 문제는 다시 부상했다.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이곳에 존재했다. 다만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커다란 깃발 아래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62쪽)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전까지 트랜스젠더는 동성애자, 또는 퀴어로 존재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용어의 등장과 함께 이들은 새롭게 ‘구분’되었고, 1960년대 버지니아 프린스(트랜스젠더라는 표현을 대중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활동가)의 활동 이후 ‘트랜스젠더 혁명’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1990년대를 전후로 사회적 소수자에서 정치적 소수자로 인식의 변화를 경험한 트랜스섹슈얼들은 트랜스젠더네이션이나 트랜섹슈얼매너스 같은 트랜스섹슈얼단체의 설립으로 결집하며 활발한 운동을 전개한다. 이에 따라 LGB(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에 T(트랜스젠더)를 더하려는 동성애자단체의 실질적인 노력이 전개되었고, 성소수자운동은 커다란 전환기를 맞이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자 거의 모든 동성애자단체가 LGBT라는 표현을 단체 소개나 사명선언문에 명시하게 되었고, 인텔, 애플, 나이키와 같은 대기업들에서는 ‘젠더 보호 조항’을 신설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젠더 문제가 트랜스섹슈얼의 문제로 머물러 있는 상황을 문제로 지적하며 여전히 논쟁적인 주제로 남아 있는 젠더권을 불러온다. 젠더 문제를 철저히 트랜스 집단의 문제로 국한시키는 여성운동과 동성애자운동의 인식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트랜스 집단 내부에 만들어진 새로운 위계(호르몬요법을 받거나 수술에 대한 생각이 없다는 이유로 ‘진짜’ 트랜스젠더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는 이야기 등)의 문제를 인식하고, 나이, 인종, 계급, 장애와의 교차성이 간과되는 상황을 염려한다.
더 넓은 젠더 패러다임을 인식하기 위해
젠더 문제가 정치적인 문제로 가시화되는 데 기폭제로 작용한 첫 번째 요인이 트랜스젠더운동의 등장이라면, 저자가 두 번째 요인으로 꼽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시기 퀴어이론, 젠더이론의 출현이다. 2부는 저자가 자신의 삶을 설명할 길이 없었던 삶에 언어를 쥐여주었던 포스트모던 이론을 비교적 쉬운 설명으로 풀어 쓴 부분이다. 4장 데리다와 의미의 정치학, 5장 푸코와 자기의 정치학, 6장 푸코와 규율사회, 7장 서로 반대되는 섹스라는 말은 가능할까,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된 2부는 자크 데리다와 미셸 푸코 철학의 주요 개념, 그리고 섹스가 구성된 역사를 연구한 토머스 라커의 논의를 중심으로 퀴어이론, 젠더이론의 핵심적인 개념과 지식을 간결한 문장들로 서술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퀴어한’ 세계를 상상하지 못하게 가로막혔던 인식의 벽들을 무너뜨리고, 들어맞지 않는 몸, 언어가 없었던 몸을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것이다.
저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빼앗긴 이들의 철학이자, 말할 수 없고 주변화됐으며 그저 지워져버린 몸과 젠더에 제격인 철학”(104쪽)이라고 말한다. “차이에 대한 적대감, 젠더 이분법이라는 지독한 코미디, 내 몸에 대한 [다른 이들의] 끊임없는 주장, 정체성의 불가능성. 포스트모더니즘은 내가 나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게 해준 도구였다. 아마도 다른 존재로 사는 누구에게나, 다르다고 느끼는 누구에게나 포스트모더니즘은 같은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을 너무나 쓰고 싶었던 이유도 이 도구를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22쪽)라는 서문에서의 고백이 어떤 이야기인지 구체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2부의 내용이다.
윌친스는 데리다, 푸코, 토머스 라커에 기대어 동성애, 인터섹스, 반대되는 성을 가능하게 하는 가정을 해체하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정치학을 비판하며, 새로운 형태의 권력으로서 담론을 이야기하고, 드랙이나 트랜스 몸과 ‘진짜’ 몸 사이의 구분 또한 해체한다. 독자는 2부를 통해 젠더 이분법을 중심으로 우리가 인식하는 세계를 둘러싼 모든 이분법을 의심하게 될 것이며, 섹스까지도 구성된 것이라는 사실, 즉 글로 표현되는 언어뿐만 아니라 시각적으로 나타나는 몸의 언어 역시 투명하지 않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들어맞지 않는 몸과 정체성 정치
3부는 인터섹스 셰릴 체이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생후 18개월까지 남자아이로 자란 ‘찰리’가 난소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성기절제수술을 받고 ‘셰릴’이 된 과정은 언어로 실재하지 않는 몸에 가해지는 이분법적인 담론의 폭력, 이를 바탕으로 하는 의학의 폭력을 보여준다. 들어맞지 않는 몸에 ‘진짜 섹스’를 요구하는 ‘정상성’의 강요가 어떻게 이뤄지는지 인터섹스 셰릴을 둘러싼 이야기가 증언한다.
대표적인 문제는 의학과 정신의학에서 나타났다. 인터섹스 유아에게 행해지는 성기절제수술은 ‘남자’ 아니면 ‘여자’라는 이분법에 맞추어 ‘정상적인’ 아이로 만들기 위해 이뤄지는 성기성형수술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분법적 젠더에 순응하지 않는 어린이에게 젠더 정체성 장애 진단을 내린다. 젠더 비순응 자체를 정신질환으로 규정하는 방식은 2013년부터 ‘젠더 위화감’이라는 불편감에 주목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지만, 그 이전까지 수많은 젠더 비순응적 어린이들은 행동수정, 정신병동 입원, 향정신성 약물처방 같은 ‘치료’를 받았다. 저자는 이러한 ‘치료’가 “성인 시기의 동성애를 예방하도록 고안”(228쪽)되었다고 지적하는 동시에, 3세 어린이는 활동가들이 대표하는 동성애자 정체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이 문제가 정체성 정치에서 다뤄지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인터섹스 성기절제수술을 받은 셰릴은 여러 방식(성기가 절제된 여성, 성기가 절제된 남성, 트랜스젠더 등)으로 이해된다. 저자와 셰릴은 인터섹스 성기절제수술이 당사자의 동의 없이 이뤄지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요청하고자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 단체를 찾지만 모든 단체가 그것이 왜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 이슈’인지를 되묻고, 저자는 각 단체가 기초한 정체성에 맞추어 인터섹스 성기절제수술이 여성/동성애자/트랜스젠더 이슈인 이유를 설득했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저자는 어떤 단체도 이 문제를 배제하려는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정체성을 구분하는 임의적인 정의가 포용하지 못하는 존재들이 계속해서 밀려나는 상황에 부딪치며 정체성 정치의 근본적인 한계를 고민한다.
이분법의 단순명료한 진술은 끊임없이 차이를 밀어낸다
‘여성’이라는 일견 단순해 보이는 정체성 역시 결코 단순하지 않다. 주디스 버틀러의 관점으로 정체성 정치학의 문제를 서술하는 저자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과 갈등을 이야기한다. ‘여성’과 ‘여성 아닌’ 사람을 ‘생물학적 섹스’에 기초해 나누어 판단하는 일은 그 근거의 결점도 문제지만, “누가 판단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든 판단하는 행위는 위계를 만들어낸다”(240쪽)는 점에서, “이 위계에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여성으로 판단할 자격이 있는 여성이라는 정당성을 먼저 갖게 된다”(240쪽)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낸다. 해방을 외치는 운동이 새로운 위계를 만들어내는 문제 말이다.
이분법적 섹스, 본질적인 섹스라는 기준을 설정하고 경계를 긋는 페미니즘이 초래하는 것은 이분법의 강화뿐이다. “‘급진’ 본질주의는 이론적 확신이 아니라 (이론가 게일 루빈이 지적했듯이) 거슬리는 복잡한 현실을 없애버리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인다”(246쪽)는 저자의 말처럼, 본질주의의 단순명료한 진술은 정체성을 형성하는 실천이라기보다 배제를 정당화하는 정치적 수단이 되었으며, 이는 다시 한번 차이를 밀어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섹스와 젠더는 정말 구분되는 것일까? 섹스는 단 두 개이며, 그 자체로 본질적인가? 앞서 2부에서 토머스 라커의 연구를 끌어와 섹스 역시 구성된 것임을 서술했던 저자는 3부에서 버틀러의 정체성 정치학 논의를 끌어오며 섹스와 젠더의 구분 역시 “또 다른 이분법의 귀환”(260쪽)으로 지목한다. 버틀러를 통해 “체계 안에 균열이 존재한다는 점”(267쪽)을 깨달은 저자는 이를 획기적인 돌파구로 삼으며 이론이 정치적 실천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직접 시도한다. 바로 젠더팩의 설립, 모두를 위한 젠더권운동이다.
모두를 위한 젠더권운동
리키 윌친스는 30여 년간 인터섹스와 트랜스젠더, 젠더퀴어를 위한 여러 단체를 조직하고 젠더 관련 인권 문제에 앞장서왔다. ‘생물학적 여성’만 참가할 수 있던 미시간여성음악축제 행사장 바깥에서 트랜스 여성의 권리를 외친 캠프 트랜스의 1991년 창립 구성원이었고, 1993년 전국 규모로 확대된 최초의 트랜스 직접행동단체 트랜섹슈얼매너스의 공동 설립자이며, 인터섹스활동가 셰릴 체이스와 함께 북미인터섹스협회의 소식지 《성깔 있는 반음양》을 발행하기도 했다. 젠더 이분법이라는 문제를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여러 책도 썼다. 지금은 널리 쓰이는 ‘젠더퀴어’라는 용어를 만든 것도 리키 윌친스다. 한마디로 그는 젠더 이분법을 끝장내기 위해 투쟁해온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젠더권운동을 전개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1995년, 젠더팩이 설립되었다. 젠더팩은 젠더권단체로 조직되었으나 트랜스젠더 커뮤니티에 기반을 두었다. 젠더 문제가 공통적인 정체성의 기초가 되는 집단이 트랜스 집단이며, 트랜스는 그 존재 자체가 젠더 규범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젠더팩의 문제의식에 가장 크게 호응한 것도 트랜스 집단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젠더팩은 엄청난 내부 갈등을 겪는다. 젠더팩을 전국적인 규모의 트랜스젠더단체로 생각했던 구성원들과 ‘모두를 위한 젠더권’을 추구했던 리키 윌친스 사이에 강렬한 다툼이 발생한다. ‘모두를 위한 젠더권’이라는 원칙에 다른 트랜스젠더단체는 물론, 동성애자단체, 바이섹슈얼단체, 인터섹스단체 등 정체성에 기초한 거의 모든 단체가 의문을 제기한다. 젠더팩이 트랜스젠더단체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냐는 의문이었다.
당시의 갈등을 회고하며 저자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젠더권’이라는 이름이 붙은 항목이 없다. 트랜스젠더와 관련이 없는 문제는 모두 동성애자, 페미니스트, 혹은 그 밖의 다른 항목으로 분류된다”(277~278쪽)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젠더 표현과 젠더 정체성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안을 ‘트랜스젠더 법안’이라고 부른다. 발레를 좋아하는 소년 빌리와 그런 빌리에게 권투를 가르치려는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다룬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젠더 영화로 보지 않는다. 뉴스에서는 젠더 표현 때문에 공격당하는 일을 ‘성차별’ 또는 ‘동성애자 증오범죄’로 보도한다. ‘젠더’ 항목으로 분류되는 사건은 트랜스젠더와 관련된 것뿐인 세상에서 모두의 젠더 문제는 너무나 쉽게 가려진다.
젠더팩이 전개했던 활동은 직장 내 고용기회평등 정책 도입, 젠더 정체성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는지에 대해 평가하는 학교젠더평등국가지수 작업, 젠더퀴어 청소년들의 인권 실태에 관한 보고서 발간, 증오범죄 모니터링, 차별금지교육, 차별금지조약 국회 로비 등이다. 그러나 동성애자단체도 트랜스젠더단체도 아니라는 이유로 젠더팩에 쏟아지는 비판은 멈추지 않았다. 윌친스는 젠더팩에 쏟아진 비판들을 “누워서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격”(283쪽)이라고 날카롭게 받아치지만, “트랜스 집단과 함께 가지 않는 젠더권운동은 실패라고 생각한다”(284쪽)는 점 역시 밝힌다. 그러나 동시에 “특히 어린이를 억압하는 젠더 체계에 대한 비판 없이 트랜스젠더 집단을 돕는 데만 집중하는 젠더권운동 역시 실패”(284쪽)라고 덧붙이며 젠더권운동의 목표를 다시 한번 확고히 밝힌다.
“젠더권은 모두를 위한 것이며, 각자가 어떠한 정체성을 지녔는지는 핵심이 아니다”(290쪽)라는 윌친스의 주장은 2021년 한국의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모두를 위한 젠더권’이라는 비전은 실현 가능할까? 트랜스젠더를 여성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것이 버젓이 논쟁으로 전개되는 여기, 낯선 이를 애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닥치는 여기, “퀴어한 몸짓, 다른 젠더의 실천, 트랜스하는 삶에 대한 적대와 혐오가 짙어지는 시기”(325쪽, 옮긴이의 말에서)에 마침맞게 도착한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불러일으킬 생산적 논쟁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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