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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는 어떻게 자리 잡았을까요?

천아1234 2022. 2. 10. 08:56

에디터의 노트

지난 화에선 근대 민주주의의 뿌리가 된 시민혁명과 이를 구성하는 정신적 토대인 홉스, 로크, 루소의 사상을 들여다봤습니다. 자유, 생명, 재산을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천명해 국가의 기능을 재정의하는 한편 루소는 구성원의 의사 반영을 중시해 공공선을 위한 시민의 의지인 ‘일반의지’까지 강조했죠. 이는 법과 정부의 운용 원리가 되고 참정권 및 시민의 정치 참여에 대한 근거가 되는데요. 이번 화에서는 현대에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실질적 이해관계를 한번 살펴봅니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소환됐을까요?

배경🧩

자본주의+민주주의

혹시 실정법(제정법)과 대비되는 개념인 ‘자연법’에 대해 아시나요? 실정법이 나라의 실정에 맞게 경험에 따라 제정되는 법이라면, 자연법은 인간이라면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보편한 법입니다. 대표적인 게 인권이죠. 인권의 개념이 인간의 자연 상태에서 고찰됐듯 인권은 인간의 본성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이를 보장하는 법을 자연법이라 하는데요.

민주주의는 최악의 정치체제다. 지금까지 실시된 모든 정치체제를 제외하면.

— 윈스턴 처칠

민주주의는 좋다. 다른 제도가 더 나쁘기 때문이다.

— 자와할랄 네루

이렇게 생각하면 민주주의 역시 인간의 본성으로 여길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의 나이가 이렇게 어리진 않을 텐데요. 모든 정체(政體)가 그러하듯 민주주의 역시 사회의 필요에 따라 등장했습니다. 그 사회의 필요란 중세 봉건사회에서 상업경제의 발달로 맞이한 자본주의적 전환입니다.

관계를 따져보자면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와 함께 발전했습니다. 아니, 자본주의가 아니었다면 발전할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기존 봉건 질서와 대비되는 새로운 자본주의 질서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보편한 정치이념으로 떠오른 게 민주주의니까요.

중상주의 질서가 대두하며 사회 유력층이 된 상인 및 부르주아는 봉건사회에서 유력층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스스로 유리한 체제를 꿈꾸며 기존 귀족 중심 사회 및 정치 구조와 충돌하며 발전시킨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혁명 역시 기존 권력 체제에 갇혀 있던 자신들의 부와 야망을 발휘해 사회적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었고요. 하지만 혁명에는 동지가 필요한 법입니다. 구체제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부르주아 계급과 지식인들은 대중을 모아야 했습니다. 농민이나 노동자, 여성 등을 모아 ‘시민’의 깃발 아래 함께 싸운 속내 중 하나입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이룩한 인권 및 민주주의의 진보는 폄훼할 수 없는 가치이자 정치적 계몽이지만요.

대상📍

최초의 민주주의 국가

그럼 처음으로 ‘민주주의’를 천명한 국가는 어디일까요? 위에서 민주주의의 나이를 언급한 자료에서 보셨듯, 바로 미국입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 이후 2000년 만의 부활인데요. 그러나 사실 처음에는 ‘민주주의’ 국가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꺼려 했는데요.

그 이유는 고대 그리스 당시와 같습니다. 무지한 인민의 정치, 가난한 빈민들의 통치로 간주됐기 때문인데요. 그렇기에 민주주의는 혼란과 무질서, 무정부 상태를 야기하고 무엇보다 재산권을 위협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당시 민주주의의 이명은 빈민정치였으니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그러나 재산권은 인권으로 확립된 가치 중 하나고요.

오히려 공화제가 훨씬 더 선호됐습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아버지인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 헌법안 비준을 위한 <연방주의자 논설>을 작성하며 미국을 공화국이라 밝혔을 정돈데요. 실제로 미국이 민주국가로 불리게 된 건 헌법을 제정한 20~30년 후의 일입니다. 왜일까요? 키임브리지대 킹스칼리지 명예교수 존 던은 ‘민주국가’ 미국에 대해 이런 분석을 내놓습니다.

그저 미국의 정치 체제에 붙일 차별화된 이름이 필요했다는 겁니다. 당시 대표적인 공화제 국가는 프랑스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공화정은 재산권 보호에 매우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여 사람들의 반감을 샀는데요. 반면 일관되고 강력하게 사유재산권 보호에 힘써 온 미국이 다른 이름을 찾다 보니 군주정도 귀족정도 아닌 민주주의였던 거죠.

여기까지 이야기하며 환기하려는 것은 하나입니다. 적어도 혁명 이후 초기 민주주의의 모습은 통념만큼 그렇게 달달하지도 낭만적이지도 숭고하지도 않다는 거죠. 오히려 이념과 이름으로만 소비된 인상도 큽니다. 그렇담 말만 가져왔을 뿐이었던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하는 때로 볼 수 있는 건 언제일까요? 민주주의의 기치처럼 모든 시민이 자원 배분에 참여하고 통제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전개⚙

참정권의 확대와 민주주의의 확립

정치란 사회적 가치, 즉 희소한 자원의 권위적 배분이다. — 데이비드 이스턴

바로 참정권입니다. 정치적 의사를 반영한다는 건 달리 말해 자원의 배분 과정에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려면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이자 주권이며 평등이기도 하고요. 그러므로 민주주의의 보편적 이념으로서 성장은 참정권을 향한 일반 시민들의 의지와 함께 이뤄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보통선거권이죠.

보통선거권을 위한 투쟁은 19세기 중엽 영국 차티스트 운동 등 유래가 깊습니다. 20세기 초 애멀린 팽크허스트의 주도 아래 일어난 여성참정권 운동인 서프러제트에서 보여주듯 ‘보통’이란 기표에서 차별을 걷어내는 데도 오래 걸렸고요.

일반 시민의 보통선거권 쟁취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세계대전입니다. 모든 국민이 주인인 민주주의의 정착은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 도운 셈인데요. 가장 일찍 확립된 영국에서 보통선거권이 확립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중입니다. 무기 생산 노동력이 필요했던 정부와 노동자 사이에서 타협을 이뤄 1918년 남성에게, 1928년 여성에게로 확대됐죠.

보통선거권 이전부터 투표권은 군사적 지원을 대가로 주어졌습니다. 17세기부터 선거권이 주어질 때에도 ‘남성 한 명당 하나의 투표권과 한 자루의 총’이 당시 슬로건이었죠. 투표권을 가지되 군사적 의무도 져야 했습니다. 그 예로 총알이라는 영어 단어 ‘불릿’(bullet)과 투표용지의 ‘밸럿’(ballot)은 원래 ‘작은 공’을 가리키는 동의어죠.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으시나요? 고대 그리스 아테네, 고대 로마에서 전쟁과 함께 시민의 권리를 획득한 것과 유사하죠.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요.

더 보기👀

대의제를 바라보는 상반된 시각

공화정, 즉 대의제가 왜 선호됐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일도 흥미롭습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왜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는지는 아마 어린아이도 답할 수 있을 겁니다. 네, 사람도 많고 땅도 넓은데 일일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정치적으로 반영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인데요.

그러나 앞서 언급한 미국 헌법의 주요 설계자인 존 매디슨과 프랑스혁명의 주도자인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슨은 다른 시각을 내놓습니다. 쉽게 말해 둘 모두 대의제를 직접민주주의의 하위 호환 또는 대체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제임스 매디슨(왼쪽)과 에마뉘엘 조제프 시에예슨(오른쪽).

먼저 살펴볼 시에예스의 관점은 보다 건조하면서 구조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그의 대의제는 소위 ‘분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 정치할 시간도 정치에 관여할 시간도 없다는 겁니다. “바쁘다 바빠” 소리가 절로 나오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경제적 생산과 교환에 매진할 여력밖에 없다는 거죠. 노동 분업에 적용되는 효율성이 정치적 영역에 적용된 꼴입니다.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 정치 역시 분업의 영역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죠.

민주주의와 공화제 간의 가장 큰 두 가지 차이점은 첫째, 공화제의 경우 시민이 선출한 소수의 대표에게 정부를 위임한다는 사실이다. 둘째, 공화제는 더 많은 수의 시민들과 더 넓은 범위의 국가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 <연방주의자 논설> 중에서

매디슨은 대의제를 고대 민주정과 다른 우수한 정치 체제로 생각했습니다. 논점은 다수의 정치참여에 대한 회의입니다. 효율적이지 않으니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점은 시에예스와도 유사합니다. 그러나 매디슨은 다수의 잘못된 전제정치를 막는 기제로서 대의제를 옹호했습니다.

매디슨의 생각은 정치적 의사를 타진하는 시민 집단이 선택되는 과정에서 대중의 견해는 정제되고 논의는 확대된다는 겁니다.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거죠. 게다가 선출 집단은 사명감과 현명함으로써 공익을 분별하고 사적인 이해관계에 눈멀지 않을 것이라 여겼죠. 쉽게 말해 그들에 의해 여과된 민중의 목소리가 공공선 또는 일반의지에 더욱 부합하리란 것이죠. 이러한 미국의 공화제에 대한 신뢰는 지금도 공화-민주 양당 체제나 선거인단을 통한 간접선거 등을 통해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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