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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 중세의 암흑과 근대의 혁명

천아1234 2022. 1. 27. 12:56

에디터의 노트

이번 화에서 민주주의의 시곗바늘은 중세와 근대를 향합니다. ‘근대’와 ‘민주주의’ 하면 바로 ‘혁명’이 떠오르지만 ‘중세’와 연결 짓긴 쉽지 않은데요. 어떤 점에서 중세는 민주주의의 암흑기였을까요? 이와 더불어 오늘날 민주주의의 직접적 기원으로 꼽히는 근대 시민혁명의 중심 사상을 살펴봅니다.

배경🧩

 
중세가 민주주의 암흑기인 이유는?

유럽 역사에서 중세는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르네상스가 시작되기까지인 5~15세기, 약 1000년 동안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르네상스는 과거 그리스 로마의 문물을 부흥하고자 일어난 움직임입니다.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마키아벨리(1469~1527)가 당대 사회를 개혁하고자 고대 로마에 관심 가졌던 것처럼 말이죠.

 
 
 
 

왜 1000년 이상의 세월을 거슬러 답을 찾으려 한 걸까요?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세계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먼 훗날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고 해보죠. 인간들이 가까스로 해방에 성공한들 같은 세상을 구성할 순 없습니다. 다른 방식이 필요하죠. 그럼 생각하겠죠. ‘먼 옛날 인간 세상은 어땠지?’ ‘심지어 잘 굴러갔다고?’ 참고할 만한 좋은 모델입니다.

르네상스도 마찬가집니다. 인간 중심적 사고관이 발달하고 새로운 세상을 구축하고 싶은데, 그간 모든 것이 신의 권위 아래 이뤄졌던 중세 신 중심 사회에서 인간의 사유나 체제 등은 답보 상태입니다. 진전이 스킵돼 버렸죠. 중세는 ‘암흑기’라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야말로 블랙아웃(black-out)됐기 때문입니다.

신민(神民)의 세상

신이 군림하는 중세에서 정치적 고민은 인식 뒤편으로 사라집니다. 신이 내린 신적 대리자인 교황, 세속적 대리자인 황제에 의한 통치에서 의문의 여지는 없습니다. 통치의 합리성이든 권력 간 상호견제든 판타지 소설 같은 얘깁니다. 잘 굴러가면 그만이죠. 물론 우리나라 개화기에서처럼 가톨릭이 자유와 평등을 가져다준 측면을 무시할 순 없습니다. 교회의 부패를 계기로 일어난 종교개혁이 있기까지 긴 시간 잘 운영됐다고도 볼 수 있고요. 그러나 인간에 의한 다스림의 과학이라 할 수 있는 정치사상이 발전할 여지나 동인은 없었죠.

중세에 정체(政體)에 대한 연구가 아예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민주주의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나 중세에서 민주주의 개념은 고대에나 있던 하나의 헌법 형태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학 또는 문헌학적인 논의에서만 사용됐죠. 평등이라든지 공동 결정(Mitbestimmung) 등의 사상 역시 그래서 헌법 관련 사료나 발견할 수 있죠.

가령 농민 봉기 등이 일어나더라도 이를 민주주의적으로 묘사하려는 시도는 근대 이후인 19세기에서야 나타납니다. 중세에서 지배자의 권리 남용이나 의무 불이행 같은 게 문제 되지 않았다는 건 아닙니다. 문제 삼는 포인트가 다릅니다. 체제를 문제 삼는 게 아니라 체제가 잘 유지되지 않음을 문제 삼는 식이었죠. 이것이 근대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까지 민주주의가 학술용어에만 머무른 이유입니다. 프랑스혁명 같은 근대 시민(市民)혁명이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 중 하나기도 하고요.

내용📝

시민혁명과 민주주의

 
오늘날 민주주의의 직접적 기원은 17~18세기 시민혁명을 통해 등장한 근대 민주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의 역사로 300~400년을 거론할 때 근거기도 하죠.

시민혁명의 의의는 다양합니다. 먼저 이름처럼 시민이라는 보편적 주권자를 탄생시켰으며, 스스로 주체가 돼 그간 절대군주의 자의적 지배나 귀족 중심의 봉건적 특권 체제를 전복했죠. 그 과정에서 논리이자 당위, 수호해야 할 가치가 된 것이 바로 자유와 평등 같은 인권 개념입니다.

모든 이에게는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으니, 이를 위협하는 지배 체제나 국가마저 투쟁의 대상이 됐습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권재민(主權在民), 인민주권론을 기반으로 하는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나아갔습니다.

 

왼쪽부터 홉스, 로크, 루소.

홉스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를 검토한 것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라면, 근대 민주주의의 사상적 기틀을 마련한 삼대장은 홉스와 로크 그리고 루소입니다.

먼저 살펴볼 것은 영국의 정치철학자이자 최초로 민주주의적 측면에서 사회계약론을 주창한 토머스 홉스(1588~1679)입니다. 사회계약론이란 말 그대로 사회는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계약적으로 구성되고 유지돼야 한다는 이론입니다.

지금에야 당연한 소리지만 당대엔 무서운 소리입니다. 구성원의 필요에 응하지 않으면 정부도 해체돼야 한다는 얘기니까요. 당시 통치 정당성을 보증하는 왕권신수설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얘기기도 하고요. 여기서 ‘구성원의 필요’에 해당하는 것이 생명과 재산입니다. 오늘날 인권에 해당하는 셈인데요, 인간은 자유 상태에선 이를 보호하기 위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이를 제어할 사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명 저서 <리바이어던>(Leviathan)의 이름처럼 절대권력이 이를 수행해야 한다고 봤죠. 시민성이 정치에 차지하는 중요성에 주목하면서도 절대권력으로 귀결된 점은 마키아벨리와도 유사한 측면이죠.

로크

홉스가 주창한 사회계약론의 민주주의적 면모는 영국 정치철학자 존 로크(1632~1704)에게로 이어져 구체화합니다. 로크의 사회계약론 역시 구성원의 필요에 따라 사회는 계약적으로 구성돼야 한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와 같은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아닙니다. 자연 상태에서도 인간은 완벽히 자유롭지만, 발생할 수 있는 권리 침해 상황을 대비하고 막기 위해 사회가 필요하다는 거죠.

로크는 자유, 생명, 재산을 남에게 양도할 수 없고 침해받아선 안 되는 인간의 기본권, 즉 ‘천부인권’으로 바라봤습니다. 특히 재산권을 중요하게 여겨 계약에 의해 구성된 권력이나 정부는 개인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선의 증진을 위해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죠.

이를 어기거나 소홀히 할 경우 전복하고 새로운 정부를 수립할 권리가 인민에게 있다고 함으로써 주권재민(主權在民) 사상을 확립합니다. 홉스가 개인의 필요를 제어하기 위해 절대적 주체로 권력을 몰아주는 방향을 제시했다면, 로크는 대의제처럼 권력의 행사를 위임할 것을 내세웠다는 점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루소

“선거는 4년이나 5년에 한 번씩 투표할 때만 주인과 자유인이 되고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 루소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프랑스의 작가이자 철학자, 음악가이기도 한 장자크 루소(1712~1778)입니다. 자유, 평등, 박애를 주창했던 그는 그간 개인적 영역에 머물렀던 자유를 민중적으로 확대해 프랑스혁명의 사상적 지주로 꼽힙니다. 다양한 이력만큼 다재다능한 인물이며, 낭만스러운 구석도 있는 자유로운 영혼이기도 하죠.

<사회계약론>이라는 책까지 남긴 그가 국가 상태를 필요로 한 이유는 자유를 위해섭니다. 루소의 대표 저작인 <인간 불평등 기원론> <에밀> 등에서 드러나는 한결같은 메시지는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행복하며, 그렇기에 속박에서 벗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겁니다. 그러나 산업혁명이 일어날락 말락 하는 시기에 ‘자연인’이 되는 것은 무리니까 차선으로 정부를 둬서 자유를 보장하자는 게 그의 사회계약론입니다.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에 열광한 1인이었던 루소는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했습니다. 주체로서의 자유를 중요시했던 그이기에 어쩌면 당연한데요. 그래서 그의 사회계약론은 홉스처럼 ‘몰아주기’도 로크처럼 ‘위임’도 아닙니다.

국가는 그 전체 구성원과 계약을 통해 성립되며 그 사회 안의 모든 개인은 사회 구성원 전체 의사로 통치돼야 한다. —루소, <사회계약론>

주권은 양도할 수 없으며 누가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루소는 투표와 선거를 매우 싫어했죠. 그러나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의 경우와 달리 근대에 이르러 체제적으로 직접민주주의는 불가능에 가까운 소리였습니다.

그러나 주권의식이라든지 사회는 구성원 모두의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는 ‘일반의지’ 개념은 법으로써 구체화되고, 나아가 정부 운용의 원리로 확장합니다. 낭만적이리만치 열정적이었던 그의 메시지는 혁명은 물론 민주주의의 체계에까지 닿는 중심 사상이 된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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