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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VR 쓰고 車 디자인 회의, 선거유세… ‘메타버스’가 온다

천아1234 2021. 7. 17. 10:41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 당선이 확정된 지난 7일 밤(현지 시각) 이런 일이 있었다. 페이스북의 최신 VR(가상현실) 기기를 쓰고 접속한 가상의 온라인 클럽에서 분홍 셔츠를 입고 턱수염을 기른 코미디언 카일 렌더가 공연을 했다. 아바타 모양의 관객 50명이 왁자하게 들뜬 가운데 그가 소리쳤다. “대통령 선거가 드디어 끝났다! 그치만 쉴 수 없잖아? 우리는 이제 3개월간 바쁠거야. 집에 안 가려는 트럼프를 보내버려야 하니까!” 주변 관객들이 손을 들고 박수를 쳤다. 렌더와 관객들은 모두 실시간으로 이 온라인 세계에 접속해 놀았다. 모습은 아바타였지만, 목소리는 VR 기기의 마이크를 통해 내는 실제 음성이었다. Mint는 태평양 건너, 한국 중구 조선일보 사무실에서 이 코미디를 관람했다.

①기아차 유럽연구소의 자동차 디자이너들(양쪽 끝)이 VR 기기를 착용하고 차량 디자인을 살펴보고 있다. 허공에 떠 있는 반투명한 형상은 연구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접속한 디자이너들이다. ②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안에서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통령 당선인을 만났다. 선글라스를 쓴 바이든의 아바타는 "헛소리 그만해!(트럼프를 겨냥한 구호)"라고 외쳤다. ③페이스북의 VR기기로 접속한 가상세계 '알츠스페이스 VR'. 이곳에서 8일 열린 코미디 쇼에 참가한 본지 장형태 기자의 아바타(노란 원). /바르요·게티이미지, '모여봐요, 동물의 숲' 화면 캡처, 카일 렌더 페이스북 캡처

같은날 바이든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닌텐도 게임 ‘모여봐요 동물의 숲’ 안에 차려진 바이든 선거 캠프에서다. 선글라스를 끼고 정원을 산책하고 있던 가상의 바이든은 선거를 마친 후여서인지 여유로워 보였다. 주변 가게에서 바이든의 이름이 적힌 옷과 모자를 나눠주길래 냉큼 받아 입었다. 바이든은 “헛소리는 그만!(No marlakey·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겨냥한 바이든 캠프의 구호)”이라며 웃었다.

초현실 디지털 사회를 뜻하는 메타버스(metaverse)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메타버스는 직역하면 ‘초(meta·超) 세계(verse)’란 뜻이다. 현실 사회를 디지털로 복제하고 발전시켜 돌아가도록 만든 가상의 온라인 세상을 가리킨다. 1992년 닐 스티븐슨이 소설 ‘스노 크래시’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개념으로, 소설은 극소수 ‘능력자’가 가상 세계를 만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통신·그래픽·클라우드·VR(가상현실) 등 관련 기술이 일제히 발전하는 동시에 코로나로 현실 속 사회 활동이 극단적 제약을 받으면서 가상 세상인 메타버스는 일상으로 급속도로 확장 중이다.

VR·AR(증강현실)로 대표되는 ‘메타버스 경제’는 2025년 현재의 6배 이상인 2800억달러(약 314조5800억원)로 커지리라고 시장 조사업체 스트래티지 애널리틱스(SA)는 전망한다. VR·AR 분야의 직·간접 경제 기여도는 지난해 464억달러에서 2030년 1조5000억달러로 폭증할 전망(PwC 보고서)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페이스북·엔비디아 등 요즘 가장 잘나가는 글로벌 테크 기업의 경영자들이 최근 일제히 ‘메타버스 시대’를 선언하고 나선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5일 열린 개발자 회의에서 “메타버스가 오고 있다"고 했다. "인간 아바타와 인공지능(AI)이 메타버스 안에서 함께 지내게 될 것이다. 메타버스에서 우리의 미래를 만들겠다.” VR 세상 ‘호라이즌’을 최근 만든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지난달 말 3분기 실적 콘퍼런스콜 때 “가상현실은 우리가 가장 앞서 있다. 호라이즌 안에 일단 1000만명을 모으겠다”고 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CEO도 지난달 27일 실적 발표 때 “우리 서비스를 쓰라. 세상 전체가 (디지털) 캔버스가 된다”고 했다. 가상과 현실이 결합하는 메타버스 세계의 확장을 Mint가 분석했다.

◇선거유세·콘서트·수학여행 “가상 세상 안에서”

미국 유명 힙합 가수 트레비스 스콧은 지난 4월 포트나이트 안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미국 에픽게임즈가 제작한 총 쏘기 게임 포트나이트는 전 세계 3억5000만명이 즐긴다. 이 게임은 총싸움을 하는 ‘배틀 로열’과 파티 등 친목 활동을 하는 ‘파티 로열’로 나뉜다. 이 파티장이 코로나 이후 메타버스의 성지(聖地)가 되었다. 산처럼 거대한 스콧의 캐릭터는 10분씩, 5회에 걸쳐 랩을 했다. 그가 신(神)마냥 손짓을 한 번 하면 게임 속 지형이 변했다. 1200만명이 게임 안에서 춤을 추고 날아다니며 공연을 즐겼다.

포트나이트 말고도 ‘동물의 숲’ ‘마인크래프트’ ‘로블록스’ 등 사용자가 온라인으로 모일 수 있도록 설계된 게임 안에선 최근 들어 생일파티, 결혼식 등 사회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4월 캐나다 퀘백주의 한 고등학교는 코로나 탓에 그리스 수학여행이 취소되자, 액션 게임 ‘어새신크리드 오디세이’에 단체 접속해 고대 그리스를 탐험했다. 이 게임은 고대 그리스를 사실적으로 재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캘리포니아대(버클리 캠퍼스)·펜실베이니아주립대 등 미국 대학생들은 등교를 못 하자, 아예 마인크래프트 속에 캠퍼스를 만들어 수업을 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책 ‘세컨드 라이프 만들기(The making of second life)’의 저자 와그너 제임스 아우는 Mint에 “메타버스의 한 축인 게임 플랫폼은 이제 콘서트·마케팅 등 게임을 넘어선 콘텐츠를 선보이며 수익을 창출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책 제목에 나오는 ‘세컨드 라이프’는 2003년 출시됐던 PC 게임으로 초기 단계 메타버스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바타가 서로 어울리고 사업을 해서 사이버머니도 벌 수 있었는데, 2000년대 후반 소셜미디어 열풍이 불고 스마트폰 게임이 쏟아지면서 외면받아 2010년 문을 닫았다. 10년 후 다시 돌아온 메타버스는 그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VR·AR 기술은 현실을 거의 완벽히 복제할 정도로 발달했고 스마트폰 성능도 좋아져 포트나이트 등의 메타버스는 스마트폰으로도 접속이 가능하다. 손바닥 안 메타버스가 가능해진 것이다.

◇현대차, VR로 다국적 디자인 회의

코로나는 인류가 메타버스로 이주하도록 가속하는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게임사 로블록스의 맷 커티스 부사장은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우리의 상호작용 방식을 완전히 바꿔놨다”고 했다. 게임 수준이 아닌, 전문적인 업무까지 메타버스 안에서 이뤄지는 시대가 코로나로 예상보다 빨리 닥친 것이다.

현대차 디자인팀은 대표적인 ‘메타버스 이민자’ 중 하나다. 코로나 이전엔 이랬다. 신차 디자인 품평회를 하려면, 미국·독일·인도 등지에서 디자이너들이 한국으로 와 차량 모형을 손수 깎아가며 회의를 했다. 모형 한 대 가격만 수천만~1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부터 현대차 디자이너들은 HTC의 VR 헤드셋을 쓰고 각자의 나라에서 회의에 참석한다. 헤드셋을 쓰면 눈앞에 신차 모형, 회의에 접속한 바다 건너 동료의 모습이 나타난다. 손짓 한 번에 도색을 바꾸고, 가상으로 차 문을 열고 들어가 계기판 모습도 수정한다.

최경원 현대차 책임연구원은 지난 4일에도 독일·미국 디자이너 20명과 함께 ‘메타버스 회의’를 했다. 디자인 중간 품평회였다. “VR 회의를 하니 이전보다 더 자주 모일 수 있게 됐습니다. 다른 장점도 많더군요. 예컨대 모형 차를 세워 두는 공간 제약이 없어져서 동시에 여러 대의 차를 두고 품평할 수 있게 됐으니 훨씬 효율적이죠." 기아차는 핀란드의 VR스타트업 바르요의 기술을 활용한 VR 디자인 회의를 지난 9월 도입했다.

코로나로 개최가 어려워진 오프라인 전시회도 메타버스로 대거 옮겨가고 있다. 지난 7월 미국 마케팅 기업 엑솔라는 한국모바일게임협회와 성남산업진흥원이 주관한 인디게임 전시회 ’2020 인디크래프트'를 자사 게임 플랫폼인 ‘유어월드’ 안에서 개최했다. 참가자는 게임 속 아바타를 조작해 부스를 돌아다니며 전시 작품을 구경한다. MS는 자사 협업 툴 팀즈에 마치 강의실에 실제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의 화상회의 기능(투게더 모드)을 제공하고 있다.

Mint가 인터뷰한 전문가들은 메타버스가 이제 시작 단계라고 했다. 아우 작가는 “코로나는 기존 동영상 회의 플랫폼인 줌·스카이프보다 훨씬 재미있고 화려한 가상의 사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메타버스가 업무의 핵심 기술로 자리 잡을 날이 멀지 않았다”고 했다. VR 스트리밍 스타트업 젠비드테크놀로지의 제이컵 나보크 CEO는 한발 더 나아갔다. “거대 테크 기업에 의한 메타버스 점령을 걱정해야 할지 모릅니다. 인터넷처럼, 전 세계인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개방된 메타버스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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