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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뉴딜

문재인의 4차 산업혁명, 창조경제 안되려면

천아1234 2021. 4. 25. 07:57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1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에스플렉스센터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 직후 새 정부의 혁신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를 제시했을 때 국민들이 느낀 건 기대감보다는 당혹감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의 시작부터 제기됐던 ‘창조경제가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정권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내놓지 못했다. 오히려 창조경제를 매개로 시작된 정권과 기업 간 정경유착 비리가 드러나면서 창조경제는 적폐의 상징이 됐다.

대통령이 던지는 혁신의 메시지는 중요하다. 막대한 예산과 인력이 들어갈뿐더러 그 자체로 국가에 활력을 불어넣기도, 국가 백년대계의 설계도가 되기도 한다. 적폐를 딛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제시한 혁신 패러다임은 ‘4차 산업혁명’이다. 4차 산업혁명은 이른바 ‘J노믹스’로 불리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의 3대축 중 혁신성장을 주도할 핵심 전략이다. 이를 총괄할 컨트롤타워인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대통령 직속기구로 10월 11일 출범했다.

문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역시 ‘정체’가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말이긴 해도 아직 그 범주나 개념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다. 해외 선진국의 혁신 패러다임을 살펴봐도 4차 산업혁명을 표어로 내건 사례는 없다. 모호한 혁신 패러다임이 어떻게 침몰하는지를 문 대통령은 똑똑히 지켜봐 왔다. 문 대통령이 제시한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결국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한국형 혁신 모델’을 찾는 데 달려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을 전면에 꺼내기는 했지만 그 발상 자체가 새 정부의 전유물은 아니다. 정부 내에서 4차 산업혁명 관련 논의가 본격화된 시점은 지난해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AI) ‘알파고’ 간 세기의 바둑대결이었다. 불과 몇 년 새 놀랍도록 발전한 AI기술에 국민들은 경악했고, 자연스럽게 시선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로 쏠렸다. 여론이 들끓자 당시 미래창조과학부(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같은 해 3월 AI 등 시급한 대비가 필요한 기술 및 산업 발전 대책을 담은 ‘지능정보산업 발전방안’을 발표했다. 4월에는 ‘지능정보사회 중장기 종합대책’이 국무회의에 보고됐고, 5월에는 ‘지능정보사회 민·관합동 추진협의회’가 출범했다.

하지만 지능정보사회 종합대책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열리면서 표류했다. 자칫 과제만 잔뜩 쏟아내고 사라질 뻔했던 지능정보사회 대책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혁신 패러다임의 전면에 등장한다. 4차산업혁명위원회가 11일 출범하면서 공개한 기본 정책방향의 내용 대부분이 지능정보사회 종합대책과 유사하거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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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시즌2’가 안 되려면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는 지난 정부의 창조경제가 추진했던 대책을 그대로 가져와 ‘재탕’한 것일까. 그렇진 않다는 게 문재인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설계자’로 불리는 유웅환 한국과학기술원 창업원 연구교수의 주장이다. 인텔과 삼성, 현대자동차 등에서 근무했던 유 교수는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캠프에 영입한 ‘제1호’ 인재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유 교수는 “창조경제가 정치적 구호에 머무른 데 비해 현 정부의 4차 산업혁명은 기술과 산업의 변화를 따라가는 실체적 정책”이라며 “기존 4차 산업혁명 논의에 ‘사람’을 중심으로 한 문화와 소프트웨어적 혁신을 더했다”고 밝혔다.

방법론적으로도 문재인 정부는 창조경제와는 일단 다른 길을 선택했다. 창조경제는 전형적인 ‘하향식’ 정책이었다. 청와대가 대기업을 불러 압박한 뒤 전국에 지역 거점격인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설치해 ‘위에서 아래’로 창조경제를 확산하는 방식이었다. 당시 창조경제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민·관합동 창조경제추진단의 경우 2014년 2월 기준 단원 46명 중 87%가 대기업과 정부 인사들로 구성됐다. 이 때문에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구성됐던 국회 창조경제특위에서조차 “본래 취지를 잃고 대기업과 성과 중심의 보여주기식 정책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왔다.

반면 4차 산업혁명의 컨트롤타워인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경우 25명의 위원 중 정부위원은 5명이고, 민간위원 20명 중 현직 대기업 위원은 2명에 불과하다. 남은 18석의 민간위원 자리는 AI, 로봇공학, 반도체 등 분야별 전문가와 스타트업 및 창업지원 현장 경험이 많은 전문가들로 채웠다. 이들 전문가는 향후 4차 산업혁명과 연관된 다양한 정책들을 심의하게 된다. 창조경제와 달리 전형적인 ‘상향식’ 정책이다. 문 대통령이 합석해 진행한 위원회의 1차 회의 분위기도 창조경제 때와는 사뭇 달랐다는 게 위원들의 전언이다. 한 민간위원은 “과거 대통령이 참석한 창조경제 행사 때는 발언할 내용까지 사전에 취합하고 휴대전화도 못쓰게 전파를 차단했던 것 같다”며 “이번 회의에서는 발언을 사전 취합하지도 않았고 위원장으로부터 ‘최대한 소신껏 발언해달라’는 주문까지 받았다”고 밝혔다.

정책 집행도 옥석부터 가린 뒤 시작한다는 게 문 대통령의 생각이다. 정부가 제시한 각종 종합대책들이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종류도 많다는 지적(산업연구원 9월 보고서)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위원회 출범식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분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구체적인 추진과제를 조기에 수립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국형 4차 산업혁명 모델 찾기 본격화

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꺼내기는 했지만 정부의 혁신 패러다임이 계속 ‘4차 산업혁명’으로 갈 가능성은 낮다. 1차 회의에서 가장 많이 나온 위원들의 주문은 ‘한국형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 핵심 참모로 알려진 문용식 위원도 “독일의 ‘인더스트리 4.0’과 같은 한국만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현실적으로도 한국형 모델을 찾는 게 4차 산업혁명을 시작하기 위한 선결조건이다. 국가별로 각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나 내부 산업구조도 제각각이라 해외 전략을 그대로 차용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가령 한국의 경우 산업 비중에서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적으로 높다. 산업연구원 관계자는 “산업구조와 경쟁환경이 서로 다른 개별 산업이 4차 산업혁명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각 산업의 현황과 속성에 대한 이해와 예상되는 파급효과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9월 26일 서울 KT스퀘어 앞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위원회 현판식에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현판 왼쪽 첫 번째) 및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현판 오른쪽 첫 번째) 등 관계자들이 현판 가림막을 잡아당기고 있다. / 연합뉴스

더욱이 문 대통령이 제시한 청사진은 ‘사람 중심의’ 4차 산업혁명이다. 산업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4차 산업혁명이 미칠 영향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한국형 모델을 찾는 작업은 단순히 기술이나 투자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차원을 넘어 정치·사회 전반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필요한 섬세한 작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모범사례’로 꼽은 독일의 ‘인더스트리 4.0’만 해도 정책 자체는 제조업의 스마트 공장화를 통한 효율성 증대 등을 추구하고 있지만, 이로 인해 발생하는 중소기업에 대한 영향과 일자리 감소 등 노동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노동 4.0’ 등과 같은 별도의 보완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다. 4차산업혁명위원회의 정부위원인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에 앞서 플랫폼 업종 종사자 등 새로운 고용형태에 대한 대응을 위해 기존의 노동관계법이 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 플랫폼 종사자 관련 통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형 모델을 찾는 작업은 4차 산업혁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하다. 당장 위원들이 AI산업 발전을 위해 선결과제로 꼽은 빅데이터 활용 활성화 문제만 해도 방대하게 수집된 개인정보를 산업적으로 활용토록 허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논란이 거세다. 올 6월 ‘문화연대 기술+미디어 문화위원회’가 주최한 ‘4차 산업혁명 어디로? 기술사회의 비판적 상상력’ 토론회에 참석한 심우민 국회 입법조사관은 “4차 산업혁명을 해야 하니 개인정보 보호까지 무작정 규제를 완화하자는 얘기가 나온다”며 “이는 규제가 사라진 영역에서 선점하거나 독점하겠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과 여당이 정치적으로 풀어야 할 숙제들도 많다. 4차 산업혁명 자체가 많은 법·규제를 바꾸거나 신설해야 하는 작업을 전제로 한다. 국정기획위의 계획안을 보면 올 하반기에만 4차 산업혁명 관련 창업지원법, 정보통신융합법, 국가정보화기본법 등의 개정안이 줄줄이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야당의 불협조로 입법 자체가 좌절되면 한국형 모델을 개발해도 적용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여당에서는 입법 과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국회 내 특위를 구성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지만, 특위가 마련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한 정부부처 고위 관계자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의석수가 여전히 100석을 넘어 정부나 여당이 국회를 주도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자칫 4차 산업혁명의 최대 걸림돌이 정책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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