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와 미래(ICT and Future) 티스토리 블로그
앨빈 토플러 본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별세, 소름돋는 명언 재조명…"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없는 일 위해 시간낭비"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은 29일 앨빈 토플러가 지난 27일 미국 로스엔젤러스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앨빈 토플러의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60년을 해로한 부인 하이디가 앨빈 토플러의 유일한 유족으로 알려졌다.
앨빈 토플러는 미래 사회상을 예견한 ‘제3의 물결’ 저자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이 책에서 앨빈 토플러는 인류가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을 거쳐 제3의 물결인 정보화혁명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해 큰 반향을 이끌어냈다.
앨빈 토플러는 또한 앞으로 펼쳐질 미래사회는 이전과 전혀 다른 사회상이 될 것이며 지식을 가진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앨빈 토플러는 변화의 방향성보다는 변화에 대한 적응에 초점을 맞춰 문명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문명을 지배하고 통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앨빈 토플러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그가 강의했던 어록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다음은 앨빈 토플러의 어록 중 일부이다.
1. 사람이 살아가면서 진지한 인간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관계를 맺을 뿐만 아니라 끊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2. 욕망을 채우려하기보다는 줄임으로써 행 복을 추구하라.
3.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를 지배하는 힘은 읽고, 생각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능력에 의해 좌우된다.
4. 젊은 날의 매력은 결국 꿈을 위해 무언가를 저지르는 것이다.
5. 한국의 학생들은 하루 15시간동안 학교와 학원에서 미래에 필요하지도 않은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 "풀빵 찍듯하는 학교 국가 경제 망칩니다"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한국, 미국과 헤어지면 '중국의 푸들'될 가능성"
"나보고 CEO 하라면 바이오·나노 기업 하겠다"
78세의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휜칠한 키에 푸근한 인상을 가진 노(老)신사였다. 지식세계의 정상에 우뚝 선 석학(碩學)의 권위적인 몸짓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적당한 스피치 속도와 중간 톤의 부드러운 목소리, 리드미컬한 손동작이 눈·귀를 사로 잡았다. 그의 입을 통해 끊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지혜와 통찰들이 손을 한 번 움직일 때마다 하모니를 이뤘다. 마에스트로의 지휘 같다고나 할까.
12시간이나 되는 장거리 비행, 국내 주요 신문·방송사와의 연쇄 인터뷰에도 피곤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13일 오후 1시간40여분에 걸친 인터뷰 내내 단 한 번, 딱 한 모금의 물만 마셨다. 의자 등에 기대지도 않았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BT(바이오 테크놀로지)·신경과학·NT(나노테크놀로지)로부터 중국의 미래와 북한 핵 문제까지…. 그의 지식 박스는 쉴새 없이 개폐(開閉)를 반복했다. 천생연분인 부인 ‘하이디’ 여사 얘기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의 얼굴표정은 활기로 가득찼고, 목소리에는 생기가 넘쳤다. 56년을 같이 살았건만, 부인과의 첫 만남 대목에서는 친구들에게 성공한 러브스토리를 자랑삼아 떠드는 20대 풋내기 청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먼저 세상을 떠나 보낸 딸 얘기가 나오는 대목에선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떨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의 모습은 미래학자 역시 똑같았다.
그는 유머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신문의 미래’에 대해 묻자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겠지만, 직업을 바꾸시죠?”라는 농담으로 웃음을 끌어 냈다.(그는 신문산업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며, 그렇더라도 최종적으로 살아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1960년대 TV가 보급됐을 때 잡지가 어려움을 겪었지만, 지금도 살아있는 것처럼.) 그는 “요즘에도 매일 아침 6~7개의 신문을 읽느라 손 끝이 까맣게 된다”며, 스스로를 ‘신문 중독자’라고 표현했다.
그는 ‘통찰력의 원천’에 대해서는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식의 원천으로 끝없는 호기심·독서와 사색·신문을 꼽았다. 한국인들에게는 ‘앨빈 토플러’ 이름 자체가 하나의 거대 지식담론(談論)의 화두다. 그래서 어렵고, 복잡한 담론성 질문은 피했다. 대신 그의 일상의 편린(片鱗), 세상·세계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소회(所懷)를 묻는 것에서 그의 속깊은 미래와 경제사상(思想)의 직관을 끌어내고자 했다.
―용접공 생활·칼럼니스트 등 경력이 다양합니다. 당신의 인생에 가장 큰 교훈을 준 경험은 무엇입니까?
“오호, (웃음)…. 공장 근로자에서 백악관까지 경험이 다양하죠, 사실 두 곳 사이의 시간은 2~3 년밖에 안 돼요. 놀라운 전환이랄까. 경제의 밑바닥에 있다가 워싱턴에서 국가 최고 결정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지켜봤으니까. 하지만 가장 교훈적인 경험은 직업이 아닙니다. 모든 다양한 경험들이 복합적으로 교훈으로 작용했습니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인생이) 참 재미있네요.
“더 재미있는 게 뭔지 아세요? 나와 언제나 함께 일하는 아내입니다. 그녀는 매우 지적(知的)이에요. 하지만 (남편인 나를) 피곤하게 만들어요. 그냥 흘러가도록 놔두질 않습니다. 우리는 논쟁하고 토론합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는) 그녀는 나에게 ‘바보 같다(stupid)’고 면박을 줘요. 그러니 내가 외부적으로 어떤 사안 얘기를 할 때 어리석은 얘기를 하지 않는 것 아닐까요? 아내가 나의 구원자인 셈이지요.”
―세계적인 석학이 부인에게 면박이라…. 믿기지 않습니다(웃음).
“분명히 말할 수 있어요. (나는) 그녀가 관여하지 않은 일은 안 합니다. 아내는 내가 보지 못하는 차원을 봅니다. 모든 것에 대해 의문(raised eyebrow)을 갖죠, 내가 학생이라면 그녀는 깐깐한 선생님이죠. 그녀는 나를 시험 같은 것에 쉽게 통과시켜 줄 타입이 아닙니다. 우리의 작업. 참 훌륭하죠(terrific)?”
―일종의 파트너십 같습니다. 박사님은 글을 쓰고, 아내는 출판을 하고….
“혹시 내가 (인터뷰에) 몇 분 늦었나요? 아내와 전화통화 하다 왔거든요. 지금 LA에 있어요.”(웃음)
―부인의 취미는 뭡니까?
“세금!(웃음) 그녀는 요즘 정부 조세 정책에 아주 분노하고 있죠.”
―부인과는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나요?
“(제가) 뉴욕대 학생일 때 만났습니다.하이디는 뉴욕대에서 석사과정 여름 학기를 듣고 있었습니다. 나는 막 남부에서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뉴욕대 친구들을 보러 갔다가, 같은 수업을 듣는 한 여학생이 아름다운 금발의 여학생과 함께 앉아 있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남부로 안 갔죠. 우린 그날 밤 콘서트를 보러 갔습니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바그너(Wagner) 공연이었죠? 야외 공연이었는데, 그 이후 계속 함께 해왔습니다. 만난 첫 날부터 말입니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비결은?
“정직함, 서로에 대한 완벽한 오픈 마인드, 절대 거짓말 하지 않는 것, 사회에 대한 깊은 관심, 가족에 대한 헌신….”
―따님이 계시죠.
“(표정이 어두워지며) 15년간 신경근육성(neural muscular) 질병과 싸우다 6년 전에 세상을 떴습니다. …그 아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우린 모든 것을 다 바쳤습니다. 하지만 역부족이었죠.”
―당신의 통찰력은 어디서 나옵니까?
“사람들은 자신이 잘하는 전문분야를 가지고 있죠. 사회는 그것에 대해 보상을 하고. 과학자든 프로 골퍼든 어느 한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는 거죠. 하지만 정말 우연하게도 우리는 한 분야에서만 재능을 보인 것이 아니었기에, 하늘 아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주제에 관해 글을 썼습니다. 우리는 전문화의 굴레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학문에서 많은 아이디어와 정보를 모아 통합하여 하나의, 전체적인 아이디어로 만들었습니다. 공장에서 백악관, 비즈니스 매거진, 대기업 컨설팅 전문가…. 모든 종류의 일들이 상당히 특이한 행보였지요. 이 모든 게 다른 방식으로 현실을 보는 법, 현실을 새롭게 조합하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많은 예측을 하셨는데….
“예측이라는 단어를 안 좋아해요. 확신성을 암시하기 때문입니다. 제안이라고 보면 됩니다. 인간사는 물론이고, 심지어 물리적 환경에서도 우연은 발생합니다. 우리는 실제로 여러 번 현실화 된 아이디어들을 선보였지요. 첫째가 ‘미래 쇼크(Future Shock)’였죠, ‘세상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준비하라’는 것이었죠.”
―틀린 것은 뭡니까?
“환경운동에는 별 영향을 못 미쳤던 것 같아요. 1958년에 수질오염에 관한 글을 썼고, 1970년 ‘미래 쇼크’에서는 지구 온난화, 빙하가 녹는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정말로 틀린 것은 싹 잊었는데….(웃음)”
―잊었다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죠? 그렇죠?
“(웃음) 1970년에 쓴 책 ‘미래 쇼크’에서 우리는 동물과 인간을 복제하게 되리라 예측했어요. 실제로 동물이 복제되었고, 정부가 뭐라고 하든 누군가에 의해 인간도 곧 복제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예측은 맞았는데, 다만 우리는 1985년까지 일어날 것이라고 했죠. 시기가 완전히 틀린 셈이죠.”
―거짓을 전파한 셈이군요.
“(억울하다는 듯) 그런데 날짜를 제가 만들어낸 것은 아닙니다. 노벨상 수상 생물학자가 그렇게 말했어요. 우리 예측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날짜예요. 얼마나 오래 걸릴지, 얼마나 지속될지,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선거가 아니고서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구체적인 사항에선 실수도 있었지만, 성공률은 꽤 높은 편입니다. 변화의 가속화, 지식의 경제성 변화…. 주된 아이디어는 모두 옳은 것으로 증명됐잖아요.”
■“바이오·나노 산업 획기적 변화 일어날 것"
―당신에게 CEO제의가 온다면 어떤 기업, 어떤 산업에서 일하고 싶으십니까?
“자격이 안 되지만 굳이 하라면 바이오테크놀로지나 신경과학 쪽을 택하겠습니다. 나노 분야도 덧붙이겠습니다. 생물학이나 신경과학 분야가 나노 규모의 레벨에서 진행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몇 일 전 NASA(항공우주국)에서 리더로 일하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방금 제가 언급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리스크가 너무 크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 일이 굉장히 흥미롭고 잠재력이 엄청납니다. 제가 선호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알아내 거기에 투자하는 것이 제일 아닌가요? 저는 흥미롭고 중요한 일을 하며 제 인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지금 100만달러가 있다면, 무엇에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겠습니까?
“한가지 분명한 건, 하이디와 나는 주식에는 절대 투자하지 않습니다.”
―왜죠?
“매일 신문에 난 숫자들에 일비일희하며 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20, 30년 전에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집 한 채와 부동산이 있고, 투자를 하고 있는 곳이 있지만 주식 투자는 안 합니다.”
―가장 소중한 재산은 부동산입니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한가지 공개할게요. 아무도 모르는 건데…. 내가 뮤추얼펀드 사업에 관한 책을 쓴 적이 있어요. 1960년대였던가…. 뮤추얼펀드 관계기관으로부터 책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썼습니다. 하지만 제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습니다.”
―한국 부동산 값에 대해 들어 보셨나요?
“조금 들었습니다. 집주인들이 합심해서 집값을 올리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살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그런 것은 경제에는 좋지 않아요.”
■대기업군(群)에만 의존하는 경제는 위험하다
―한국경제는 대기업군(群)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의 재벌은 대단한 조직입니다. 많은 분야에서 세계를 리드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 어떤 국가도 소수조직에만 의존하면 안 됩니다. 지금 단계에서는 중소기업이나 모든 분야의 다양성을 촉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벌기업이 나쁘다는 뜻으로 비쳐집니다만.
“아닙니다. 재벌을 처벌하자거나 묻을 닫게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보다 균형성을 갖는 것은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노력 같은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윗부분만이 발달되어 무거워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은 수많은 달걀을 손바닥만한 바구니 하나에 담으려 하고 있어요. 하나가 잘못되면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구조입니다.”
창조적 인간 기를 수 있게 교육시스템 통째로 바꿔야
숫자에 일희일비하기 싫어 주식엔 절대 투지하지 않아
'고령화 사회=비용증가'라는 도식적 경제개념은 바꿔야
■변화를 거부하는 교사들이 교육, 비즈니스를 망친다
―만약 10대이거나 고등학생이라면, 어떤 언어나 어떤 분야를 공부하시겠습니까?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다 다르니까요.”
―당신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저는 쓰고 생각하는 것을 아주 좋아합니다. 지식을 추구하면서 만족감을 느끼지요. 모든 사람들은 다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식 투자에서 많은 돈을 번 친구 부부가 있는데 똑똑한 아들과 딸이 있어요. 부모가 금융 분야에 있어서 딸이 금융 분야에 종사하기를 바랐어요. 딸은 유명 은행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아주 불행해했습니다. 결국 일을 그만두고 공부를 다시 해서 심리학자가 되었어요. 현재 심리 상담을 하고 있는데 아주 행복해해요.”
―어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동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아이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한국이든 미국이든 모든 사회가 5살 이상 된 아이들을 수년간 감옥에 가두고 있어요.”
―감옥이라니요?
“학교라는 감옥 말입니다. 학교는 현대사회의 유일한 의무 제도입니다. 자유주의 국가에서 자유를 외치지만, 아이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얘기입니다.”
―의무 교육에 반대하십니까?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나이에 학교에 가서 똑같은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나요? 말도 안돼요. 어떤 아이들은 3살에 학교에 입학할 준비가 되어있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8살이 되어도 준비가 안 돼 있을 수 있습니다.”
―획일적인 교육이 문제라는 지적이시군요.
“공장 같은 교육 제도는 터무니없습니다."
―교사들의 역할은?
“교사들이 효율적으로 미래의 기업 환경에 걸맞은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어요. 교육과 비즈니스는 항상 긴밀히 연결돼 있습니다. 훗날 기업의 일원들을 길러내는 게 교육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교육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미국 공교육의 기초가 다져진 때가 19세기 말입니다. 당시 공교육의 가장 큰 목적은 바로 산업화에 걸맞은 인재들을 길러내는 것이었습니다. 기업주들은 아이들이 제때 일하러 공장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이들을 ‘공장형 인간’으로 교육시키는 게 가장 큰 현안이었죠.”
―공업 교육 위주였겠네요?
“공업 훈련(industrial disciple)을 주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이제는 기업들이 다른 가치를 요구합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줄 아는 창조성을 가진 사람들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 역시 같은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한국 아니라 온 세계가 이러한 고민을 안고 있습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 시스템을 재구성하자는 논의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요?
“볼리비아의 교사들이 최근 강성 노조를 만들었어요. 변화에 무조건 반대합니다. 볼리비아 대통령은 최근 1~3학년의 뛰어난 학생들을 위해 월반(越班)제도를 제안했어요. 하지만 교사들의 반발로 무산됐습니다. 자그마한 변화도 반대하는 반동적 교사들(reactionary teachers)은 세계 어디에나 있습니다.”
―한국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럼요. (그는 한국의 전교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했다.) 나는 한국의 아이들이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친(crazy) 짓입니다.”
■교육 개혁은 뿌리째 바꿔야 한다
―교육 개혁 방향은?
“한두 해 전에 빌 게이츠가 한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교육 시스템을 기존 시스템의 토대 위에서 개혁(reform)할 수는 없다. 아예 뿌리째 바꿔야(replace)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과거 교육이 계속되면? 결국 학교가 실업자를 양성하는 셈입니다.”
―해결책이 있을까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교육에 사용되는 돈의 일부를 실험 학교에 투자하면 어떨까요? 현재 미국 아이들 중 1% 정도가 부모들로부터 교육(home schooling)받습니다. 좀 더 극단적인 그룹은 아예 교육을 받지 않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도록 놔둡니다.”
―실험학교를 대안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캘리포니아의 한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장애인들을 위한 제품을 만듭니다.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제품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교육 제도는 한마디로 사악합니다(evil).”
―교사들은 어떤가요?
“교사들은 무언가 변하면 항상 크게 반발합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 아닙니까? 만약 한국이 시장지향적이면서 기업이 원하는 것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을 개발(invent)해 낸다면 이는 오늘날 교육과 비즈니스 사이에 있는 막다른 골목(deadlock)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될 겁니다.”
■비자본의 경제로의 패러다임 변화
―앞으로 어떤 산업이 유망할까요?
“조금만 달리 보세요. 새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요. 대표적인 발상의 전환은 ‘프로슈밍(prosuming)’ 개념입니다. 앞으로 똑똑한 기업들은 의료 서비스를 대체하는 ‘셀프 케어(self-care)’산업에 뛰어들 겁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지금까지 나는 혈압을 재기 위해 의사를 찾았어요. 하지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요. 10초 만에 혼자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일본 제품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자본의 경제(money economy)에서 생산된 제품을 오히려 자본의 경제 밖으로 끌고 나온 전형적인 예입니다. 이제까지는 코닥을 통해 사진을 현상해 왔는데,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내 힘으로 현상합니다. 사야만 했던 서비스를 스스로 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큰 산업이 되고 있습니다.”
―‘경제 콘셉트’가 바뀌고 있다는 뜻입니까?
“우리는 혁명적인 변화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어요. ‘고령화 사회=사회적 비용 증가’라는 도식적인 개념을 바꿔야 해요.”
―‘자본의 경제’(money economy)에서 ‘비자본의 경제’(non monetary economy)로의 전환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 주세요?
“경제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경제학자들은 한가지 면만 파고듭니다. 첫 번째 측면은 단순히 소비자·생산자의 상호작용과 관련된 개념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 ‘사고 파는’ 돈의 경제(money economy)만을 연구합니다. 하지만 ‘비자본의 경제’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앞으로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그 ‘무엇’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주시죠.
“리눅스라고 있죠? 핀란드의 한 젊은이가 핀란드 어딘가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입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아 이 프로그램을 개발해 낸 후 “추가할 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추가해라!”라며 모두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있어요. 돈이 목적이 아니에요. 심심해서 한 것입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중국 정부도 리눅스를 공식적으로 이용하고 있어요. 마이크로소프트가 기존 사고의 틀을 깬 리눅스로 인해 영역을 침범당한 겁니다. 경제 가치들이 바뀌고 있습니다. 나는 이를 ‘부의 시스템 전환’이라고 부릅니다. 부의 시스템은 크게 ‘자본 파트’(money part)와 ‘비자본 파트’(non money part)로 나뉩니다. 할머니가 손자를 돌보는 것이나, 아픈 아이들을 돕는 자원봉사, 쓰나미 구호활동 등은 그 가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습니다. 경제학자들이 이걸 보지 못해요. (경제학자들) 정말 많이 틀리지 않습니까?”(웃음)
중국의 위성국가 안되려면 미국을 지렛대로 활용해야
한국의 재벌은 대단하지만 달걀을 한바구니에 담는 격
하나가 잘못되면 엄청난 파장 중소기업 키우기 적극 나서야
■중국은 부패한 정부, 분노한 농민 때문에 수퍼파워 못 된다
―지식경제 시대의 세계경제의 미래가 궁금합니다. 미국은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까? 유럽·중국·일본 등 강대국들의 미래를 전망해주세요.
“혁명적인 변화의 시기에 예측은 어렵습니다. 내가 볼 때 중국이 꼭 수퍼파워가 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왜 그렇죠?
“중국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어요. 지난 20년간 중국은 정말 놀라운 성과를 냈습니다. 하지만 과연 폭발 없이 지속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내가 볼 땐 아닙니다.”
―어떤 갈등에 주목하십니까?
“부의 속도와 집중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을 봅시다. 과거 공동체에 속해있던 영국 농민들은 산업혁명 이후 값싼 노동력으로 전락했습니다. 이후 혁명의 시대가 왔죠. 지금 중국이 그렇습니다. 수억명에 달하는 불행하고 분노한 농민과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반면 정부는 부패했습니다. 한편에선 돈을 엄청나게 긁어모으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중국 경찰은 해마다 7만번 이상의 시위를 진압하고 있습니다. 알려진 것만 그렇습니다. 얼마 전 사망한 자오즈양(趙紫陽) 전 당서기는 죽을 때까지 ‘없는 사람(Unperson)’으로 치부됐습니다. ‘그들은 왜 민주주의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민주주의, 혁명은 다른 맥락입니다. 문화혁명 당시 수백만명이 학살된 역사도 있죠.”
―내부적 갈등으로 중국이 두세 개 나라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뜻일까요?
“중국의 과거사를 보면 그런 적이 있죠. 그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역사가 똑같이 반복되지 않겠지만, 중국 리스크는 정말 큽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보다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이 큰 일을 낼 수도 있다고 지적하셨던데요.
“일본은 전쟁 후 폐허로부터 재건에 성공했습니다. 돈이 넘쳐나 한때 원조를 받던 미국을 비롯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까지 투자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고 남의 제품을 모방하는 데 매우 뛰어난 재능을 보입니다. 매우 빠르고 샤프하고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상당 부분 배울 점이 많습니다. 경영 부문에 있어서도 새로운 기법들을 거듭 발전시켜 왔습니다.”
―10년 장기불황을 겪기도 했는데.
“관료주의 때문입니다. 종신고용제가 좋은 예입니다. 변화가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말합니다. 일본은 하나를 바꾸면 연쇄적으로 모든 것을 따라서 바꿔야 합니다. ‘초(hyper)관료주의’ 사회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일본은 관료주의의 틀을 깨는 과정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의 기업들을 탐방하며 여행하면서 느낀 것들입니다. 일본이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 한국 장점은 전통 중시하면서도 개방적인 것
―한국에선 최근 미국보다 중국에 대한 우호적인 경향이 생겨났습니다.
“질문을 하나 하죠. 아시아와 한국에서 미군의 역할은 어떤 것이었는가? 태평양 지역에 만약 미군이 없었다면, 그래서 지역이 매우 불안정했다면 아시아 지역이 이만큼 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누가 불안정한 곳에 투자를 하려고 하겠습니까? 미국은 베트남에 수십억 달러를 투자했습니다. 미국의 대변인은 아니지만.”
―우려하고 계시는군요.
“중국 친화적으로 가면 한국이 국제적인 외교나 경제 문제에 있어서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중국이 한국에 지배적인 권한을 행사한다면 한국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과의 관계를 하나의 지렛대(reverage)로 활용해야 합니다. 중국의 위성 국가로 전락하는 길을 택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의 푸들뿐이 더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자주 오셨는데, 한국인들에 대한 생각은?
“정말 강한 문화를 갖고 있어요. 전통을 중시합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과는 다릅니다. 아랍 국가들은 과거에 매몰돼 있거든요. 최근 30명 아랍 지식인들이 만든 보고서를 봤는데, 매우 충격적인 통계가 있었어요. 매년 헝가리어로 번역되는 아랍의 저서는 900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랍 국가들에 번역되는 헝가리 책은 ‘0’입니다. 아랍 사회가 그만큼 문을 꽁꽁 닫고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랍 국가들은 폐쇄적입니다. 한국은 개방됐습니다.”
■날씨만 빼면 도쿄에서 살고 싶어
―세계 여러 곳을 다니셨는데, 가장 살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
“동부 출신이면서, 왜 캘리포니아에 사는지 많이들 묻습니다. ‘아시아를 자주 가는데, 미국 동부보다 서부가 아시아와 가깝고, 친구가 많으니까’라고 얼버무립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는 ‘날씨’가 좋아서입니다. 정말 1년 내내 날씨가 좋죠. 날씨만 빼면 도쿄(東京)를 택하겠습니다.”
―왜 그렇죠?
“왠지 모르게 편하게 느껴집니다. 대도시여서 편리한 시설이 잘 돼 있습니다. 말도 그렇고, 미국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미디어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분명한 사실은 신문은 앞으로 오랫동안 정말 어렵고 고통스런(long tough) 시간을 견뎌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비관할 필요는 없어요. 1950~1960년대 TV가 보급되면서 미국 잡지도 생존의 기로에 선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잘 나가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전략이 필요할까요?
“독자가 원하는 신문을 만들어야 합니다. 저도 자동차가 있습니다만, 몇 년에 한 번씩 바꿉니다. 그러나 매일 또는 매주 새로 나온 자동차 기사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잃을 필요가 뭐 있습니까? 하지만 요즘 신문들 보세요. 섹션이다 뭐다 해서 분량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동차 섹션 등 몇몇 섹션은 집에 배달되는 순간 쓰레기통으로 들어갑니다.”(웃음)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몇 년 전 일본 제국호텔에 묶을 때, 아사히(朝日)신문이 섹션을 여러 개 묶어서 파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 개 섹션을 사느냐에 따라 가격을 달리 받더군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였습니다. 앞으로는 독자가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거기에 맞게 돈을 지불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게 필요한 정보라면 돈은 얼마든지 낼 용의가 있습니다.”
―어려운 얘기하시네요.
“(웃음)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비밀을 하나를 공개할까요. 저는 신문 중독자입니다. 하루도 신문을 보지 않고는 못삽니다.”
―젊어서 기자 생활도 하셨죠.
“네, 신문은 정말 정말 ‘정보와 지식의 보고’입니다. 매일 아침 저는 세계의 신문을 보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합니다. NYT, FT, WT, 요미우리, 아사히 신문 등 6~7개를 샅샅이 읽습니다. 터키 신문도 보고요. 어느 나라를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떤 상황인지 알려면 신문을 보면 됩니다. 신문에는 세계가 돌아가는 소식이 실리고, 매일 새로운 지식이 실립니다. 아침에 몇 시간 동안 신문을 다 읽고 나면 손가락 밑이 까맣게 될 정도입니다.”(웃음)
―건강 유지 비결은 있나요? 엄청난 여행 스케줄이 소화하고 계신데.
“전 여행을 즐깁니다. 운동은 약간씩 하는 편이고. 농구장이나 테니스장에서 몇 시간씩 운동을 하는 친구들에 비하면 적죠. 식사는 제가 좋아하는 음식을 위주로 매우 가볍게 하는 편입니다. 고정된 건강 관리법은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 하는 거죠.”
토플러 "바이오 정보산업 한국이 키워내길"
김대통령-앨빈 토플러 면담
김대중 대통령은 7일 낮 앨빈 토플러 박사와 1시간30분간 오찬을
함께 하면서, 정보화시대에 한국이 나아갈 길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
토플러 박사는 “한국은 정보인프라 구축에 성공, 국제사회에서 앞서가기
시작했으나 현 상태에서 머무를지, 더 변화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며 “현재에 머문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으므로 정보인프라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키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토플러 박사는 “이제는 IT(정보기술)가 BT(생물기술)로부터 영향을 받아
양측이 결합하는 바이오 정보산업이 번창할 것”이라면서, 이를 집중육성
시키라고 주문했다. 또 ▲첨단분야의 인재육성 ▲국내 경제기반 강화
▲수출품목 다변화 ▲교육개혁·노조개혁·전자정부로의 구조개혁 등
국가·사회의 신경제 체제로의 변화 ▲의료·교육 등 서비스분야 육성 등
6가지를 주문했다.
토플러 박사는 또 “한국은 여러 문제가 있지만 국민과 문화가
혈기왕성하고, 신경제의 잠재력을 이해하는 사람이 증가해 미래를 낙관할
수 있다”고 밝게 전망했다.
토플러 박사는 김 대통령이 80년대 초 청주교도소 수감시절 명저 ‘제3의
물결’을 통해 정보화의 눈을 뜨게 한 ‘정보화 선생님’이다.
앨빈 토플러 "아시아 금융시스템 마차에 엔진 단 격"
“제3의 물결에는 정형화된 모델이 없다. 따라서 한국의 미래는 기업·정부·학교·개인 등 한국인 스스로가 만들어 가야 한다.(made in korea)”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의 저서로 유명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 교수는 “한국이 변화에 성공하려면 변화에 대해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해야 할 것”이라면서, “한국 정부는 무엇보다 (기업 활동 전 과정에 간섭하는) 미시적인 규제를 탈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과학부 최성환 전문기자가 정보통신부 초청으로 방한중인 토플러 교수를 만났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위기를 겪은 가장 큰 원인은?
“아시아 국가들은 작고 단순한 금융 시스템을 유지해 왔다. 이들 국가가 미국의 크고 복잡한 금융시스템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려고 했다. 마치 제트 엔진을 마차에 다는 격이었다.”
―위기 이후 한국이 추진해온 구조조정 노력을 평가한다면?
“구조조정이나 개혁은 위기가 있든 없든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한국은 산업화로 가는 제2의 물결에서는 가장 성공적인 나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산업화 시대에서 통용하던 사고와 경영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개혁은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지속적인 작업이며, 스스로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치열한 경쟁과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 남기 위해 한국의 기업들이 해야 할 과제는?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너무 심해 위험할 정도이다. 60~70년대에 수출 주도의 경제 개발 전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쟁자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같은 전략을 채택하는 경쟁자가 너무 많다. 한국의 기업들은 정보집약적·개인화·지식화된 첨단기술상품을 개발해야 한다. 한국은 중국이 생산할 수 없는 상품을 수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하던 규제와 간섭을 탈피해야 한다. 규제를 풀어야 할 부문을 잘 결정해야 하는데, 기업들이 자유스럽게 경쟁하면서 변화에 즉각 반응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정부의 보호를 받는 기업들은 변화에 대한 적응이 느려 결국 쇠퇴하게 된다. 미국의 경우, 규제가 많은 통신산업은 발전이 느린 반면, PC 등 규제가 없는 장비 산업은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정보화 또는 지식시대의 선도산업은 무엇이 될 것인가?
“생명공학분야이다. 생물학과 정보기술의 접합은 정보통신 산업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두 가지를 권고하고 싶다. 기업·정부·학교·연구소가 공동투자하는 생명공학펀드를 만들어 한국의 연구원과 대학원생이 연구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미국·유럽 등의 첨단 생명공학분야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이오 MBA(Master in Bio-Administration) 과정을 개설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과 경영 마인드를 갖춘 생명 경영학 석사는 앞으로 가장 수요가 많은 직종이 될 것이다.”
―‘미래는 사람이다(The future is people)’의 의미는 무엇인가?
“지식시대의 가장 중요한 생산요소이자 자산은 당연히 사람이 아니겠는가? 앞으로의 미래는 여성인력의 활용과 교육에 달려 있다. 특히 교육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일본 등 모든 나라들이 골치를 앓고 있는 문제다. 산업화 사회에 필요한 공장형 교육은 더 이상 필요 없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혁신과 독립적 사고가 가능한 교육이 되도록 학교는 물론 교수법과 강의과정을 보다 다양화해 나가야 한다.”
김문수 경기지사, 22일 앨빈 토플러 박사 만나
지난 20일 김문수 경기도지사가 세계적 언론사인 블룸버그통신사와 인터뷰에서 '중국과의 무역'과 '우리나라 미래'에 대해 언급했다.
김 지사는 뉴욕 블룸버그 본사 인터뷰 자리에서 "작년에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중국은 북한과 상시적인 군사적 협력체제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중국은 "한국의 가장 밀접한 무역 상대국인 동시에 경쟁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현재 한미FTA를 두고 한국의 반미세력이 미국에 대한 반감을 일으키려고 하고 있다"며 "미국과의 공고한 안보 동맹은 북한과 대화하고 협상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고 말했다.
김 지사를 2012년 한국 대선의 유력 후보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한 블룸버그는 기사를 통해 '한국과 북한은 기술적으로 여전히 전쟁 중이며 휴전협정은 어떤 종류의 평화조약으로도 대체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은 현재 북한의 핵 개발 계획 폐기와 천안함, 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50명 이상이 사망한 사건에 대해 평양의 사과 없이는 남북대화를 할 수 없다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김 지사는 "북한의 적대적 태도나 중국과의 경쟁보다 한국경제의 가장 큰 위협은 저출산율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들이 아이들을 더 낳지 않는다면 한국경제는 매우 심각한 성장 장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정부가 저소득층 가족들을 위해 어린이들의 보육, 교육비용을 제공하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 고 강조했다.
한국의 출산율은 지난 5년 간 여성 일인당 1.21명을 기록하고 있는데, UN의 데이터에 따르면 이는 세계에서 4번째로 낮은 수치다.
김 지사는 "아시아에서 네 번째 경제대국인 한국과 저임금과 싼값의 토지를 바탕으로 하는 중국과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으며, 미래성장 동력 발굴을 위해 미국과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고 말했다.
또한 김 지사는 내년에 실시되는 한국의 대선에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 "두고 보자"며 "아직 대선까지는 20개월이 남아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지사는 22일(현지시간)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박사를 만나 '통일 한국의 미래'를 주제로 대담할 예정이다.
이번 만남은 앨빈 토플러 박사가 지인으로부터 김문수 지사의 미국방문소식을 듣고 김 지사 쪽에 면담을 요청,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박근혜,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면담
한나라당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가 15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와 오찬을 겸한 면담을 갖는다.
이날 면담은 산업자원부 주최 ‘부품·소재 신뢰성 국제포럼’ 참석차 방한한 앨빈 토플러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박 전 대표측은 “토플러 측에서 한국의 여성 권익이 상당히 신장된 상황에서, 대표적 여성지도자인 박 전 대표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토플러와 북핵문제를 비롯한 국내외 현안 및 21세기 한국의 미래 전망 등에 대해 대화를 나눌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재벌 스스로 해체길 걸을 것"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 박사는 "한국은 이제 정부, 학교, 언론을 포함한 사회적인 기관에 대한 개혁에 돌입할 때"라고 말했다.
31일부터 서울에서 열리는 APEC 포럼에 참석차 방한한 앨빈 토플러 박사는 30일 힐튼호텔 숙소에서 가진 조선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현재는 지식·디지털 혁명인 제3의 물결 중 첫번째 단계에 불과하다"며, "인터넷이 모든 기존 조직과 관행, 사고, 경영스타일을 뒤엎어버리는 무시무시한 혁명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토플러 박사는 또 "한국 재벌은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해체될 것"이며, "수많은 벤처기업이 새로운 경제를 이끌어 갈 것"으로 전망했다.
앨빈 토플러 박사는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미래의 충격' '새로운 문명의 창조' 등 미래 서적을 쓴 세계적인 미래학자이다. 1928년생으로 뉴욕대학을 졸업하고 포천지 기자, 코넬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초기 대통령 자문역을 자청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다음은 토플러 박사와 가진 일문일답이다.
―어제(29일) 도착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재벌에 대해 '이제는 해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는데, 한국 재벌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한국 재벌과 같은 철저한 위계구조의 경영으로는 절대로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한국 재벌의 특징은 저부가가치, 문어발 경영, 철저한 위계적 명령체제, 오너에 대한 지나친 충성심이다. 이제 2002년이면 10억명의 인구가 인터넷으로 연결된다. 이런 글로벌 경쟁에서 이런 과거 경영패턴에 머무르고 있는 재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ㅡ인터넷 기업의 주가가 얼마나 더 올라갈 것으로 보는가.
"미국 나스닥에 상장한 인터넷 기업을 보는 두 가지 의견이 있다. 하나는 인터넷 기업은 모두 거품이라는 주장이다. 기업이나 산업은 바뀐 게 없고 기본(펀더멘털)이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완전히 틀렸다. 다른 쪽은 신경제를 맞아 성장성이 무척 중요하다는 전망이다. 이는 나스닥 인터넷 기업의 주가를 정당화하는 이론이다. 이것도 절반은 틀렸다. 나는 지금의 인터넷 비즈니스 열풍이 전혀 놀랍지 않다. 벌써 10년 전에 예측했던 제3의 물결이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다. 제3의 물결은 곧 혁명이고, 혁명에는 피냄새가 난다. 모든 게 뒤바뀌고, 신분 상승과 하락이 엄청난 속도로 일어난다. 그러나 아직 혁명으로 볼 만한 징후는 별로 없다.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보고 그 쪽으로 옮겨가는 눈치빠른 사람만 있을 뿐이다."
―포럼에서 발표할 '제3의 물결 정보화사회'의 요지는.
"제1의 물결은 1만년 전의 농업혁명이다. 수렵 및 채집사회에서 농경사회로의 전환을 말한다. 제2의 물결은 300년 전 산업혁명이다. 농경사회는 공장 중심의 문명에 자리를 내주었다. 제3의 물결은 기술과 경제의 단순한 변혁 이상이다. 물질경제에서 지식경제로의 이동을 말한다. 이는 고통스러운 사회, 문화 제도, 도덕 및 정치적 혼란을 수반한다. 제3의 물결로 대기업과 정부 조직마저도 마지막 숨을 내뿜는 공룡처럼 죽어갈 것이다. 기존 조직이나 기관은 제2의 물결시대인 산업사회에서 작동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이런 조직은 바뀌어야 한다."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선박 수출 등 굴뚝산업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다. 기존의 굴뚝산업은 어떻게 되나.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면서 디지털과 결합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녹슨 굴뚝과 공장 조립라인으로 상징되는 제2의 물결에서 컴퓨터, 정보 및 미디어 중심의 맵시있는 경제·사회 시스템으로 변화할 것이다."
―곧 한국에서는 총선이 있는데, 디지털 경제가 정치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으로 보는가.
"앞으로 24시간 일주일 내내 인터넷으로 투표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한 목표를 가진 인터넷 동호인 그룹이 모여 막강한 정치 파워를 발휘할지 모른다. 이들은 한 가지 목적으로 만난 뒤 목적을 달성한 후 해산하는 한시적인 정당의 모습을 가질 것이다. 예컨대 미국에 유학 중인 한 미얀마 대학생이 인터넷에 미얀마 정부의 인권 탄압에 항의하기 시작, 수백만 네티즌들의 성원을 받았다. 이 때문에 미얀마 투자를 준비하던 미국기업은 미얀마 투자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이제 시민단체뿐 아니라 네티즌 그룹도 정치적인 권력 집단으로 성장하고 있다."
―지금 한국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김대중 대통령의 자문역도 한 것으로 아는데 이번에 김 대통령을 만나면 어떤 자문을 할 것인가.
"한국은 사회개혁을 시작할 때다. 디지털·지식경제가 엄청난 속도로 가는데 나머지 분야는 여전히 제2의 물결 속에 머물고 있다. 한 분야만 앞서가면 절름발이가 된다. 우선 학교가 혁명의 대상이다. 지금의 교육은 디지털 기업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지 못한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의사결정 속도와 정부기관의 의사결정 속도를 한번 비교해봐라. 부패한 데다 결정마저 늦은 정부 조직은 공룡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다 죽어갈 것이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금융기관, 병원도 개혁하지 않으면 모두 마찬가지 운명이다. 경제는 시속 100㎞로 달려가는데 나머지 사회는 시속 10㎞로 기어가면 조화가 깨진다. 한국인은 근면한 데다 교육열이 높아 금융위기를 1년 6개월 만에 극복했듯이 사회개혁도 빠른 시일 안에 추진할 것으로 생각한다."
“정보화에 기업은 일류, 정부는 삼류”
‘제3의 물결’저자인 앨빈 토플러 박사는 1일 “정보화 사회로의 거대한
변화에 기업이 가장 빨리 적응해 가는 반면 정부 조직은 상대적으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토플러 박사는 이날 오전 전국경제인연합회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기업은
지식기반 경제 중심의 정보화에 시속 100마일로 가장 빨리 변화하고 있고
뒤를 이어 비정부기구(NGO) 등 시민단체들이 시속 95마일 정도로 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토플러 박사는 “정부와 정부 산하 규제기관들은 그러나 시속 40마일
정도의 ‘털털이 차량’과 같이 변화에 빨리 적응치 못하고 사회 전체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고있다”며 “이같은 현상은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적인
양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부보다도 더 느린 조직은 학교와 법률제도라고 할 수 있는데 시속
10마일 정도에 불과, 변화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며 “인터넷과 정보화로
대변되는 새로운 경제.사회 체제를 구축하는데 사회 모든 조직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토플러 박사는 “한국의 경우 재벌과 금융 부문의 구조조정이 가속화돼야
하고 이들의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 “구조조정을 주도할 기구는
필수적이며 재벌과 금융이 변하기 위해 정치.사회적 변화도 병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토플러 박사는 “정보화 사회를 의미하는 ‘제3의 물결’에 이어 제4의
물결이 과연 무엇인지 다소 불투명하지만 제4의 물결이 있다면 아마도 우주로
진출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 구조적인변화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국과 인연이 깊었던 앨빈 토플러 30년 어록 살펴보니
‘제3의 물결(The Third Wave)’ ‘미래 쇼크(Future Shock)’ ‘권력이동(Power shift)’
지난달 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별세한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저서 제목만봐도 가슴이 설레입니다. 지금 읽어도 무릎을 치게 하는 그의 혜안 때문이기도 하지만 , 정보화 혁명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토플러에 열광하던 한국 사회 풍경이 정말로 그립기 때문입니다.
앨빈 토플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래학자이지만, 한국 사회 만큼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도 없습니다. 그는 1989년 한국에서 ‘제3의 물결’과 ‘미래 쇼크’를 출간했고 1991년엔 ‘권력이동’을 내놓았습니다. 특히 권력이동은 34만4000부나 팔리며 공전의 히트를 쳤습니다. 사회과학 서적은 3만부만 넘어도 출판계에서 화제가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2001년 그는 김대중 대통령 당시 한국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의뢰로 ‘위기를 넘어서―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110쪽 분량의 이 보고서에서 토플러는 “한국이 세계 경제의 사다리 상위층에 자리 잡으려면 정보통신, 생명공학 등 지식기반 경제로 체질을 바꿔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토플러는 2006년 12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의원을 만나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 했습니다 (위 사진). 그는 한국의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 ‘뉴로사이언스(뇌신경)’ ‘양자연계연구’ ‘하이퍼 농업’ ‘대체 에너지’ 등 5가지를 제시했지요.
박근혜,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와 면담 <2006. 12. 15>
토플러는 한국 대통령들뿐 아니라 세계 지도자들의 멘토 역할을 했습니다. 중국의 개혁파 지도자 자오쯔양(趙紫陽) 전 공산당 총서기, 소련의 개혁개방을 추진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도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지요. 다행히도 그가 원하는 정보화 사회를 한발 앞서 실현한 곳은 한국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토플러와 만나 오랫동안 환담을 나눴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에게 전화를 걸어 토플러의 타계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는 2011년 4월 22일 경기지사 시절 투자 유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토플러 박사 부부와 대담을 나눴습니다. 김 전 지사는 당시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그의 부음을 전한 뉴스도 꼼꼼하게 챙겨보고 있었습니다.
“토플러가 젊었을 때 공장에서 일했어요. 이민자 가정인 그의 어린 시절이 유복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또 당시 지식인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풍토도 있었던 것 같아요. 토플러의 부인도 상당히 적극적인 성격이어서 대화에 참여하며 훈수도 많이 뒀어요. 훌륭한 동반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토플러는 1928년 10월 뉴욕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브루클린에서 자란 그는 1949년 뉴욕대를 졸업한 뒤 중서부 공업지대에서 용접공으로 일했습니다. 뉴욕타임즈(NYT)는 대학 졸업자로서 노동직을 선택한 것은 대량생산체제를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고픈 갈망 때문이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해보니, 공장 근로자들이 사무직 근로자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틀리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했습니다.
김 지사는 덧붙였습니다.
“앨빈 토플러가 미래도 많이 내다보지만, 사회 저변, 특히 어려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참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돼 감명을 많이 받았습니다. 젊은 시절 노동자로서 경험한 덕분에 정보화 사회의 도래, 지식 근로자의 출현에 대한 제대로 된 혜안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토플러가 남긴 저서는 인류가 품격있고 존엄감 있는 미래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지 알려주었다”면서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앨빈 토플러 박사님,
부디 영면하소서.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 토플러 박사님을 사랑했던 한국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아직 너무 어리고 경험없는 풋내기 청년에게 세상과 미래를 열어주었던 토플러 박사님께 머리 숙여 깊은 애도의 마음을 올립니다. 대전환의 시점에 서 있는 대한민국과 새누리당에게 토플러 박사의 교훈은 실로 무겁게 다가옵니다.”
앨빈 토플러의 타계 소식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라는 국가적 환난을 맞이하고서도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과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15년전 한국 사회의 모습을 새삼 떠올리게 합니다. 저(低)성장의 늪에서 허우적 거리면서 총체적 난국에 직면한 한국 사회가 다시한번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한 사회로 전환하기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토플러의 인터뷰 기사를 전합니다.
[토플러 인터뷰] "한국재벌 스스로 해체길 걸을 것" <2000. 3. 30>
[앨빈 토플러] “정보화에 기업은 일류, 정부는 삼류” <2000. 4. 1>
앨빈 토플러 "아시아 금융시스템 마차에 엔진 단 격" <2001. 6. 7>
토플러 "바이오 정보산업 한국이 키워내길" <2001. 6. 7>
앨빈 토플러 "풀빵 찍듯하는 학교 국가 경제 망칩니다" <2006. 12. 15>
[‘부의 미래’] 시간·공간·지식의 혁명이 한국을 뒤흔든다 <2006. 12. 28>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별세, 소름돋는 명언 재조명..."한국 학생들은 미래에 필요없는 일 위해 시간낭비" <2016. 6.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