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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의감각 초연결지능(THE SEVENTH SENSE) 본문

4차산업혁명 관련/제7의 감각초연결지능

제7의감각 초연결지능(THE SEVENTH SENSE)

천아1234 2017. 8. 19. 06:58

제7의감각 초연결지능(THE SEVENTH SENSE)

'초연결지능'이라는 포인트보다 

복잡계 이론에 따른 네트워크 사회는

기존의 복합적인 현상과는 다르니,

전화기만 켜면 세상이 연결되는 네트워크사회에서

앞으로를 생각하며 알아두어야 할 지식들이 가득합니다.

오감을 넘어 제6의 감각은 '초월적인 감각'이죠.

직감이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는 추세이고요.

'4차 산업혁명'의 성질과 비슷하게 제7의 감각을 말합니다.

3차 산업혁명에 사물이 더 연결되는 그 사회성향처럼,

「사물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연결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연결, 네트워크에 관한 '초연결지능'. 

직감과 같은 것이지만 네트워크 자체에 대한 직감입니다.

인터넷은 정보의 민주화를 이루는 대혁신이었죠.

그러한 선의적 생각은 너무 순진한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IS의 공격과 같은 일들은 단순히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의한 연결된 사회에서의 문제점임을 말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SNS를 통해 이제 전화기를 켜면

세상과 모두가 연결되는 사회가 되었고,

예전에는 큰 권력이 눈에 보이게 정해져있었으나,

이제는 권력이라는 것 자체가 분산되어 있지만

오히려 집중되기는 또한 쉬워지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각의 사람들은 '노드'가 되어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것.

모두가 연결되어 각각의 소리를 낼 수 있으니

복합된 사회가 아닌, 복잡한 사회가 되어서

규정하기 어려운 성질들이 서로 얽혔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예전에 비해 '플랫폼'의 역할이 강해지고,

모두가 연결가능한 사회에 초연결지능들이 활동하니,

이들이 모이면 '밀도'가 강해집니다.

과거 문명도시들이 힘을 가질 때 필요한 '밀도'는

권력이 모이는 플랫폼에 사람들이 모이는 형태로

각각의 게이트랜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더불어 네트워크 시대에서는 공간과 시간이 또 따르니,

물리적 공간이 아닌 온라인 상의 연결된 공간이 발전하고,

또한 빠른 속도, 가속도의 매력은 중독성있게도

사람들을 더 빨리 연결하게 된다는 것이죠.

게다가 경제학에서 다루던 이론들도

이제는 또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브라이언 아서가 1990년대 정보기술의 대차대조표를 연구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수확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경제학에서는 '수확체감의 법칙'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산업시대까지는 그러했습니다만,

이제 생산력을 이야기하는데 정보기술 기업들은

고전적인 마셜의 산업 경제학의 이론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네트워크 시대, 

 합리적이고 선의에 근거한 개인을 가정하는

안일한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합니다.

제7의 감각이라는 것은

네트워크 시대에서 각 개인의 작은 움직임의 영향이

전체적으로는 큰 영향을 끼치는

복잡계 공간을 이해함에 근거하여,

연결에 관한 위험인식 감각이다 싶었습니다.

초연결사회에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모든 자극에 노출되었고, 그들은 각각 연결이 수월해졌습니다.

선한 의지의 사람들도 물론 많겠습니다만,

권력, 힘, 부를 위해 움직임이 또 다른 '욕망'의 개인들도 있습니다.

19세기 말, 총 x 기계에 관한 가정은 바로 잘못됨을 압니다.

총이라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무기를 모두 가졌으니

그리하여 평화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만,

총과 기계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상을 일으킨 결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x 무기의 결합에서는 어떨까요?

염려는 단순한 염려가 아닌,

갑작스러운 테러들을 바라볼 때,

분명 생각해볼 일이다 싶습니다.

정보기술의 시스템적인 연결환경은 이미 당연한 설정입니다.

더불어 AI라는 거스를 수 없는 발전도 또한 받아들여야합니다.

저자의 결국 사회 구성원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생각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제7의 감각’은 어떤 사물이 연결에 의해 바뀌는 방식을 알아채는 능력이다. 오늘날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왜 너의 사진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해?” 혹은 “왜 너의 DNA를 건네주려는 거야?”라는 질문은 요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무엇이든지 연결되어 있을 때만 완전하거나 유용하다. “연결이 사물의 본질을 바꾼다”는 말은 “연결이 곧 권력”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연결을 놓친 이들은 위험하다. 구세력의 권력자라면 더 처참한 결말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힘없이 무너지는 권력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불과 몇 백 년 전의 노예들이 투표 부스를 상상할 수 없었듯이, 1985년만 해도 오늘날의 구글 검색 엔진 같은 것은 누구의 머릿속에서도 존재하지 못했다. 누구나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본다는 것은 실로 획기적인 일이다. 우리는 혁명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된 그 ‘원인’이 지금 우리의 오랜 사회적, 문화적 의식의 구조물을 흔들고 있다면?
1980년대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프랭크 위즈너 주니어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로 건너가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을 만났다. 무바라크에게 우아한 사임을 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무바라크는 ‘구세력’의 선봉이었다. 그는 30년 동안 나라를 지배했고, 당시의 불안 정도는 거뜬히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삼단논법은 이랬다. “이집트는 안정을 원한다. 나만이 안정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집트는 나를 원한다.” 그리고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그가 택한 것은 대국민 TV 연설이었다. 무바라크는 알았을까?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했을까? 무바라크가 카이로 거리뿐만 아니라 카이로의 스마트폰에서 펼쳐지는 이 생소한 혁명에 대항해 TV 연설을 택했다는 것은 구세력이 새로운 질서를 제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가차 없이 끌어내려졌다.
아랍 세계와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격렬한 저항과 신속한 응집의 공통점은 어디에도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자가증식하는 사회운동의 저변에 있는 것이 ‘연결’ 즉, 네트워크다. 스페인 출신의 유명한 사회철학자, 마누엘 카스텔에 따르면 “네트워크 사회는 인류에게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만난 적도 없고 전혀 다른 역사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광속의 비트 혹은 분노에 의해 뭉친다. 이들은 촛불집회, 월가의 시위대, 아랍의 민주화 세력, 홍콩 시위대, 해커, 테러리스트의 모습으로 나타나 느려터진 기존 권력자들을 위협한다. 저항 세력들과 테러리스트들은 연결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이해하고 있다. 대통령 궁에 안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본능을 가졌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용의자를 색출하라”식의 전통적 방식으로 대응했으나 실패했다. 왜냐하면 “용의자는 네트워크”였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체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소리 없는 무형의 지배
그렇다면 네트워크는 민주화로 해석될 수 있을까? 연결된 시스템에서 권력은 극심한 집중과 엄청난 분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이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마 곧, 권력과 영향력은 봉건시대보다 더 집중되는 동시에 민주주의 전성기보다 더 분산될 것이다. 이 이분법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제7의 감각’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우선 1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객체지향 코드를 만들 수 있고, 이 가운데 10만 명이 그 코드를 혁신적인 데이터 구조물로 만들 수 있다. 몇 천 명이 그 구조를 이용해 데이터센터를 설립한다. 그러나 구글이나 인텔 혹은 비트코인이 정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컴퓨터에 생각을 심어주거나 예술의 경지로 해킹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극소수의 엘리트다. 연결은 사물의 본질을 바꾸며, 그 연결을 통제하는 사람에게 극단적 수준의 권력과 영향력을 준다. 이들은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에 관여한다. 이들 대부분이 천문학적인 자산을 소유한 억만장자라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수 세기에 걸쳐 권력과 부를 이동시킨 것은 무장침투, 함포사격, 항공작전이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연결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의 지배와 사용이 실제적이면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리 없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진행된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늘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큰 전쟁은 모를 수가 없었다. 혁명은 헤드라인에 실렸다. 세상이 크게 변화하면 그 변화를 알아채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블랙박스 내부 네트워크 시스템의 심장을 미묘하게 조작함으로써 역사적으로 대단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거대한 힘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설사 알아챈다 해도 그 변화의 영향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승자독식의 세계
문제는 우리가 바로 연결의 대상이면서도, 그 연결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당신 호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 사실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 의해 해킹당할 수 있다. 즉, 연결은 소유하지 않고도 사물을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날 수십억 달러짜리 회사들은 자동차(우버), 금융시스템(비트코인), 호텔 객실(에어비앤비)을 통제하지만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들의 거대한 네트워크에 속수무책으로 갇히고 만다. 이렇게 네트워크는 야금야금 그 영토를 넓히고 있다.
만약 당신이 페이스북에 가입하고 열흘 동안 일곱 명의 친구를 찾는다면 그 플랫폼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 닫힌 네트워크 세계의 혜택을 누리면서 여덟 번째 친구가 다른 곳을 기웃거리기 훨씬 더 어렵게(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회원이 100만 명인 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배제당하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유전자를 10억 명의 유전자와 비교할 기회를 차단당한다면, 그건 치명적이다. 사용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네트워크의 힘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차단의 대가도 그만큼 빠르게 증가한다. 만약 오늘 당신이 구글 혹은 네이버에서 차단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 상태로 내일이 되면 절망할 것이다.
이것은 승자독식, 패자전몰의 세계다. 그러므로 네트워크 시대, ‘제7의 감각’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미래의 싸움은 우리가 네트워크에 얽히느냐 마느냐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얽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과거에 믿음직했던 것들이 쓸모없어지고 심지어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우리의 직관만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생존본능, ‘제7의 감각’이다.  
 전혀 별개로 보이는 현상들, 그 배경이 하나의 강력한 요인 때문이라면?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네트워크가 호텔을 대체할지, 알고리즘과 결합하여 통화를 대체할 지 그 누가 예상했을까

이제 우리의 세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새로운 힘, '네트워크'와 결합하여 변화할 기존의 익숙했던 영역들, 그 변화의 방향과 권력의 이동, 그리고 그 흐름 안에서 우리가 대처할 방법을 빠르게 찾는 안목으로서 "제 7의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봉권질서의 붕괴, 계몽의 시대에 새롭게 부상하고 일반화되었던 '자유'의 이념 못지 않게, 이제 '연결'에 대해 사람들은 기본권의 일부라는 정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연결은 동시에 기존의 우리가 누렸던 '자유'의 관념을 필연적으로 제한하고 기존의 권력구조를 재편하게 만들 속

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술변화에 따라 수동적으로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다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연결'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이로인한 사회적 변화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네트워크는 집중과 동시에 분산을 유발한다. 그 결과 많은 기존의 구조들을 산산조각낸다.비트코인을 비롯한 1세대 디지털 통화가 권위의 상징이었던 중앙은행을 초조하게 만든다.항공기술과 GPS 신호망의 공유 가능해지고 보다 빠르게 확산되면서 드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와 산업의 가능성들이 제시되고 있다. 연결이 해방이라는 생각은 근사하지만 (어떤 면에서)틀렸다. 연결된다는 것은 강하고 역동적인 긴장상태에 둘러싸이는 것이다. 연결이 사물의 본질을 변화시킬 것이다. 인간이 시장, 지식, 세계와 (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면 되돌릴 수 없이 삶이 변해버릴 것이다. 세상의 진동시키고 끌어당기는 힘, 연결의 망(네트워크)의 존재를 깊이 이해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일견 안정되어 보이는 시대를 바라보면서도 계몽과 진보의 시대, 우리 문명의 약점과 또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칭하는 '제 7의 감각'이란 결국, 권력이 어떻게 재편성되는지를 감지하는 직관적인 능력이다. 연결이 사물의 본질을 바꾼다는 말의 또다른 측면은 지속적인 연결이 사람들에게 일종의 권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연결은 일종의 갈망이다.) "송대,여진족의 침입이라는 양의 폭력이 항저우에서 음의 르네상스를 위한 조건을 마련한 것처럼, 연결된 점들이 가져오는 엄청난 분산이 혁명, 경제위기, 삶을 균열시키는 혁신을 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중앙집중화와 우리를 결속시킬 합의를 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케인즈는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우리는 문명이 개인과 극소수의 의지에 의해 세워진 얇고 불안정한 부스러기에 불과하며 교묘하게 수용되고 교활하게 보존된 규칙과 관례에 의해서만 겨우 유지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전통의 지혜나 관습의 규제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썼다. 우리는 기술이 종래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본질적인 것까지 앗아가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술이 갖는 강력한 힘에 끌려가기 보다 "네트워크는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가" 주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제어하여 시스템이 붕괴가 아니라 발전시키도록 해야한다. "어째서 시간의 압축이 그렇게 중요한가? 과거에 성공한 정치 시스템은 사람들이 꿈꾸는 인생을 자유롭게 누리게 해 주었다. '자유'는 영향력, 지식의 확산을 막는 낡은장벽을 무너뜨리는것을 의미했다. 바스티유 습격, 식민주의의 탈피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시민에게 교육, 법률적 보호, (최소한도의) 경제적 안정으로서의 복지와 같은 지원들-'사회적 비계'를 제공하는 것이

기도 했다. 오늘날 산업화/도시화된 부유한 나라의 시민들은 낡은 관습/힘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이전시대에 비해 소위) '보장'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출생지나 부모의 신분, 경제적 상태가 자녀의 평생을 제한하던 과거에 비해 다소 덜 억눌리고,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 받는) 새로운 시대를 일궈나갈 수 있었다. "네가 무엇이 될지 정하라, 감히 알려고 하라!" 이것이 계우리가 아는 몽주의의 기적이다. 이제 미래를 보자, 네트워크 기반의 정치경제적 구조는 우리에게 단순히 자유 이상의 것을 허락(하고 또 요구) 할 것이다.(중략) 시산 압축을 추구하는 이 새로운 체제는 기존의 정치 경제 시스템의 대부분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 평등은 없다"는 이탈리아 역사가 잠바티스타 비코의 지적처럼, 이제 우리에게 빠른 것과 느린 것 사이의 평등은 없다. 공간과 시간을 가장 잘 압축할 수 있는 사람, 국가, 사업 그리고 '이동엘리트'들이 부와 기회를 잡는 데 있어 점점 더 놀랄만큼 유리해질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대부분의 권력투쟁은 공간적 지배와 영토를 그 대상으로 했다. 이제 다소 믿기 힘들겠지만 시간의 통제를 위해 다투게 될 것이다." 코머스 덜리엔은 연결된 삶 전체에 적용되는 네트워크 보안의 새로운 법칙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상을 통제하기 위해 그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예로 수백킬로미터 밖의 휴대폰이 해킹되는 상황을 예로 들어 그는 말한다. 삶의 모든 요소 아래로 조용하게 흐르는 대체 불가능한 망을 지배하면 국가는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모든 돌 안에는 작품이 들어있다" 미켈란젤로가 한 말처럼 모든 네트워크에는 토폴로지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것이 장군, 사업가의 일이다. "군사지역과 민간지역이 구분되는 전통적 전쟁과 달리 연결된 세상에는 전선이 없다. 모든곳이 전장이다. (후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공간은 네트워크가 파괴할 수 있는 하나의 벽에 불과하다. 더 잘 보호되는 토폴로지가 없다면 도망칠 곳은 없다.)" "과거의 위계적 시스템은 왕, 초강대국, 교황과 같은 최고 권력이 되기를 갈망했지만 우리시대는 밸브와 프로토콜, 게이트를 필요로 한다. 우리 모두 연결을 간덜히 바란다. 그러니까 조절장치와 브레이크도 갈망한다는 뜻이다. 권력의 질서를 바꾸려하면 토폴로지적 종간에서 분갱이 발생할 것이다. (중략)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다? 마흐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당신은 게이트키핑 하는가, 게이트키핑 당하는가?

'네트워크 시대의 권력, 부, 생존'에 관한 매우 상세한 분석과 대안 제시가 엿보이는 수작이다. 제6의 감각은 니체가 주장한 '역사적 감각'으로 직관적 본능으로 불리기도 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제7의 감각은 새로운 직관이며 초연결 지능으로 인터넷 만이 아닌 인공지능망, 정치 외교, 사회 경제 등 전체 네트워크를 연결하며, 역사와 정치, 철학에 대한 이해를 결합한 네트워크의 작동 방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감각이다. 새로운 네트워크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한 시대에 우리는 우리의 본능을 새롭게 개발하여 적응시켜야 한다. 계몽주의와 이성의 시대가 과거 유럽의 거의 모든 제도를 붕괴시키고 뒤따른 산업혁명 이후 가장 끔찍한 세계 전쟁을 유발했듯이, 똑같은 참혹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1부에서는 현재의 네트워크 현황을, 2부에서는 네트워크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마지막 3부에서는 새로운 감각으로 미래를 타진하는 대안을 제시한다. 네트워크를 제대로 이해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는 사람을 위해 쓰인 이 책은 새로운 힘과 그 힘을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사람들을 구분하는 본능에 대한 이야기다. 전문성과 속도 때문에 우리는 삶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 하는 것을 감지하고 가상의 힘을 인식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실제와 가상의 대립 속에 탄생하고 자라나는 미래는 낙원이 될지 지옥이 될지는 그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다. 다만, 가급적이면 지옥을 막는 방향으로 예민한 감각을 키워나가는 수가 가장 현명해 보인다.
무엇이든 연결되면 작동하던 힘은 변화한다. 모든 것이 즉각 연결될 수 있는 시대에 힘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연결은 이제 일종의 권리로 인식되어 사물의 본질마저 바꿔버린다. 미래 사회에 우리가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 중국, 테러, 통화 등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힘의 방향이나 파괴력이다. 국가, 시장, 군대 등 모든 조직이 네트워크의 공격을 받으면 한순간에, 간단하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연결은 해방이 아닌 강하고 역동적인 긴장 상태에 둘러싸이는 것이다. 연결의 의미와 영향력을 무시하거나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면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단시간의 끝없는 추락만이 기다릴 뿐이다. 연결을 선도하여 실행하는 사람이나 조직은 그 어느 때보다 상상할 수 없는 돈과 권력을 수중에 넣을 수 있다. 미증유의 부와 권력의 극단적 양극화는 점점 현실로 다가올 것이다.
저자는 '난화이진'이라는 대만의 유불교 통합 이해 구한 학자를 사부로 등장시키며 1부를 시작한다. 사부와의 만남을 통해 그가 오랜 시간 동안 수행한 목적은 오로지 새로운 정신의 힘을 배우기 위함이었음을 깨달은 후, 세상을 움직이는 새로운 힘에 저자는 적극적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폭발적인 침투가 이루어지는 네트워크는 모든 시스템의 본질을 변화시킨다. 2008년 금융위기처럼 연결된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끔찍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 먹잇감을 위해서라면 네트워크는 사람의 손을 떠나 스스로 성장하고 지속적으로 학습하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만든 사람조차도 그 힘을 제대로 통제하거나 억제하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랍의 봄', 'IS 테러 조직' 등에서 알 수 있듯 기존 법칙을 붕괴시키며 새로운 힘을 발휘하는 네트워크는 디지털 연결과 함께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과거 누구나 신에게 직접 접근이 가능함을 알린 종교개혁이나 우리에게 신은 존재하는지 의문을 던진 코페르니쿠스 사상과 비슷하게 말이다. 1959년 미국의 폴 배런의 네트워크 설계는 복잡한 상호작용 시스템이 기존 시스템을 붕괴시킬 수 있음을 예고하면서, 네트워크를 통제하는 사람은 대부분 억만장자이며 소수의 새로운 카스트를 형성하고 기술이 만능이며 효율성이 최고라는 신앙을 갖고 있다. 그들은 연결의 핵을 통제하려는 뜨거운 욕망에 휩싸였으며, 절대 속도는 절대 권력임을 스스로 깨달았다. 바야흐로 속도에 의한 시공간이 압축되어 그로 인한 '문명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연결이 낳은 새로운 구조물로 '게이트랜드'라는 말을 저자는 3부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모든 공간은 열려있는 것 같아도 '게이트'에 의해 차단된다. 그러므로 '게이트랜드'는 자연스럽게 건설되고, 가장 큰 힘과 권력과 이익은 바로 '게이트키퍼'에게 주어진다. 연결한다는 것은 곧바로 게이트랜드에 들어간다는 뜻이다. 연결의 힘은 승자독식 시스템을 보인다. 게이트키핑을 할 것인가, 당할 것인가. 지속된 연결은 문어발처럼 확산되어 기존의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건설을 도모한다. 정치 외교, 무역, 사이버 정보, 과학 연구 등 모든 걸 관리하기 위해서는 세심하게 설계되고 안전한 공동체 구축과 개발이 반드시 필요하다. 스스로 학습이 가능한 '강한' AI의 출현은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데이터를 축적하고 패턴을 연구 분석하여 수많은 사람과 아울러 또 다른 AI와 연결되는 AI의 연결체는 광섬유 속도로 정보를 비교 숙달하여 최고의 지능을 뽐낼 것이다.
연결 시대의 위험을 제대로 알아야 인간을 파괴로 이끄는 무지한 집단으로부터 인류를 방어할 수 있다. 제7의 감각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까닭이다. 과학기술이 인간을 마냥 풍요롭고 안락하게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기대와 위협은 동시에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제7의 감각의 본질은 우리의 인간성과 매우 가깝다. 우리의 본질적 인간성만이 인공지능을 탑재하여 무한대로 뻗어나가는 네트워크를 통제하여 무질서에서 질서로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이익을 우선하는 등의 거슬리는 내용만 제거한다면 제4차 산업혁명의 본질에 대해서도 차분하게 재검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등, 발생 가능한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보고 재검토할 수 있게 하는 상당히 의미 있는 책이다. 이미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힘의 정체를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는 시력이 필요한 즈음에 말이다...  

"육감"이란 말은 예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다만 그 정확한 뜻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입장이 제각각이며, 과연 모든 이에게 고르게 그 "여섯번째(라는) 감각"이 발달해 있는지(다섯 개의 기본 감각은 개체에 따른 편차가 크지는 않고, 작동 기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규명되어 있죠), 아니면 아예 그 존재 자체가 과연 믿음직한 기반을 마련하기나 했는지에 대해서도 다 의견이 갈립니다. 한편으로, 어떤 불가해한 보충적 감각의 총체가 없다면, 고지식하게 다섯 개의 센스(센서)만으로 인간이 살아남기란 매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문명과 집단 생활, 시스템의 발전이 일종의 FOOLPROOF를 마련함에 따라, 우리 인간은 점점 "육감"이 퇴화하는 중인지도 모르겠고요. 그렇다고, 육감이 혹 야생의 하등동물에게나 발달된 속성이라고 해서 이의 자가장착을 마다할 인간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남의 기분을 잘 읽는 능력, 상황에 맞게 머리를 잘 다듬고 옷을 근사하게 차려 입고 나가는 능력은 우리가 다 "센스"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이게 다 생존을 원활히 꾸려 나가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죠. 어쩌면, 머리가 좋다, 돈이 많다, 잘생겼다, 이런 칭찬보다 더 듣기 좋은 게 "센스 좋다"란 말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건 누구한테 배운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라, 왠지 타고난(혹은 좋은 환경에서만 체득된) 장점인 것 같아서이지요.
그런데 이 책은 "제7의 감각"으로서, 이른바 "초연결지능"을 거론합니다. 육감이란 말도 분명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거니와 그 자체로 포괄적(보충적)인 개념인데, 그것과는 또 별개로,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다른 지점(영역, 지식, 경험, 인간망)을 "연결"시키는 감각을 따로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어떤 능력이나 자질, 특성이 따로 이름을 가져야 한다면, 그 이유는 대개 분명합니다. 그게 목표를 이루거나 개체의 생존을 도모함에 있어, 최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현재의 트렌드(많은 이들이 그 정체를 몰라 불안해하기만 하는) 속에서, 변화의 바른 방향을 예견하고 성공적인 적응, 나아가 승자로서의 레이스를 이어가기 위해, 개인이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게 이 "연결지능", 아니 그를 넘어선 "초"연결지능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사실 우리에게 전혀 낯선 개념도 아니고, 이미 그 중요성이 (워딩만 달리하여) 큰 인기를 끌어가며 강조된 바 있습니다. 잡스가 타계한지 근 6년이 되어갑니다만, 혁신의 아이콘으로 널리 숭앙되었던 그가 혁신을 정의한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연결"입니다. 애플의 아이폰에 적용된 기술 중 잡스가 실험실에서 직접 머리를 짜 내어 안출(마치 토머스 에디슨처럼)한 건 거의 없습니다. 그는 타 여러 섹터에서 자생적으로 속출하던 여러 기술을, 디바이스 한 대에 집약 연결하여 모든 이의 손에 한 대씩 쥐어 주겠다는 생각을 최초로 했을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최적의 효용과 경제성으로 투입, 조립, 화학적 결합을 이룰지에 대해 남들보다 탁월한 안목을 지녔던 셈인데, 그게 바로 초연결지능이라고 볼 수 있죠. 다른 말로 하면 "혁신의 본체, 본질"이겠고 말입니다.
저자는 우리 인류의 지난 역사에 주목합니다. 큰 사이즈의 함포, 폭발력 좋은 화기, 적은 기름만 먹고도 쌩쌩 달리는, 그러면서도 잘 부서지지 않는 탱크, 이런 걸 가진 집단과 조직이 패권을 차지하는 게 정석이었던 과거. 그러나 현재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한 곳에 엮이기(꼭 물리적 동일 공간을 뜻하는 게 아님은 당연)만 하면, 그 연결만으로도 전에 없던 권력이 생성되는 게 현대의 마력이라는 겁니다. 더 놀라운 건, 우리들 개개인이 특정 배후 권력의 수단으로 쓰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그래선 안 되죠),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사이에서 연결 지점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권력의 창출과 변혁의 주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줄리언 어산지라든가 스노든 같은, 아무 배경이나 자산도 없던 "일개인"이 세계 역사를 바꿔놓을 만한 파장을 일으킨 걸 보십시오. 그들이 그런 사고를 칠 수 있었던 궁극의 동력은, 바로 네트워크의 힘입니다. 거대 권력 집단이 통치와 지배의 편의를 위해 깔아 둔 네트워크가, 이들 영민한 개인에 의해 허점이 발견된 후에는 오히려 권력 균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만 것이죠. 이 때문에 네트워크의 마력이 개인과 세계를 빼곡히 감싸고 도는 지금 같은 세상에선, "민주화"의 의미가 전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는 겁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이른바 "엠파이어 오브 건파우더"의 시대에도, 그저 물량만 가뜩 쟁여 놓는다고 패권이나 번영이 절로 찾아드는 건 아니었습니다. 자원이나 무기의 소재를 정확히 알고, 이의 유효한, 경제적인 활용을 도모할 줄 아는 어떤 "지혜"야말로 최후의 승자를 결정하는 요인이었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참된 생존의 비결을 이미 감지해 왔고, 이를 다만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말로 표현하는지도 모릅니다. 무관해 보이는 두 개(혹은 그 이상)의 적절한 접합, 화학적 결합을 절묘히 이룰 때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게 하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지혜이며, 한 고제 유방 같은 이도 결국 이 능력 하나로 천하를 손에 거머쥐었는지도 모릅니다. 혁신의 시대에 이 결합, 연결의 지혜야말로 우리가 가장 크게 염두에 두어야 할 계발 대상이라 하겠습니다.

미래에는 연결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의 지배와 사용이 실제적이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리 없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문제는 우리가 바로 연결의 대상이면서도 그 연결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연결은 소유하지 않고도 사물을 통제할 수 있게 해 자칫 우리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속수무책으로 갇혀버리고 만다. 미래의 싸움은 우리가 네트워크에 얽히느냐 마느냐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얽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믿음직했던 것들이 쓸모없어지고 심지어 위태로워질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직관만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생존본능, 제7의 감각일 것이다.

제7의감각 초연결지능(THE SEVENTH SENSE)

'초연결지능'이라는 포인트보다 

복잡계 이론에 따른 네트워크 사회는

기존의 복합적인 현상과는 다르니,

전화기만 켜면 세상이 연결되는 네트워크사회에서

앞으로를 생각하며 알아두어야 할 지식들이 가득합니다.

오감을 넘어 제6의 감각은 '초월적인 감각'이죠.

직감이라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는 추세이고요.

'4차 산업혁명'의 성질과 비슷하게 제7의 감각을 말합니다.

3차 산업혁명에 사물이 더 연결되는 그 사회성향처럼,

「사물의 본질을 변화시키는 연결의 불안정한 분위기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연결, 네트워크에 관한 '초연결지능'. 

직감과 같은 것이지만 네트워크 자체에 대한 직감입니다.

인터넷은 정보의 민주화를 이루는 대혁신이었죠.

그러한 선의적 생각은 너무 순진한 입장이라고 말합니다.

IS의 공격과 같은 일들은 단순히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네트워크에 의한 연결된 사회에서의 문제점임을 말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SNS를 통해 이제 전화기를 켜면

세상과 모두가 연결되는 사회가 되었고,

예전에는 큰 권력이 눈에 보이게 정해져있었으나,

이제는 권력이라는 것 자체가 분산되어 있지만

오히려 집중되기는 또한 쉬워지는 사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각의 사람들은 '노드'가 되어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것.

모두가 연결되어 각각의 소리를 낼 수 있으니

복합된 사회가 아닌, 복잡한 사회가 되어서

규정하기 어려운 성질들이 서로 얽혔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예전에 비해 '플랫폼'의 역할이 강해지고,

모두가 연결가능한 사회에 초연결지능들이 활동하니,

이들이 모이면 '밀도'가 강해집니다.

과거 문명도시들이 힘을 가질 때 필요한 '밀도'는

권력이 모이는 플랫폼에 사람들이 모이는 형태로

각각의 게이트랜드를 만들고 있습니다.

더불어 네트워크 시대에서는 공간과 시간이 또 따르니,

물리적 공간이 아닌 온라인 상의 연결된 공간이 발전하고,

또한 빠른 속도, 가속도의 매력은 중독성있게도

사람들을 더 빨리 연결하게 된다는 것이죠.

게다가 경제학에서 다루던 이론들도

이제는 또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브라이언 아서가 1990년대 정보기술의 대차대조표를 연구하면서

시간이 흐를수록 수확이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경제학에서는 '수확체감의 법칙'을 이야기했었습니다.

산업시대까지는 그러했습니다만,

이제 생산력을 이야기하는데 정보기술 기업들은

고전적인 마셜의 산업 경제학의 이론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네트워크 시대, 

 합리적이고 선의에 근거한 개인을 가정하는

안일한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합니다.

제7의 감각이라는 것은

네트워크 시대에서 각 개인의 작은 움직임의 영향이

전체적으로는 큰 영향을 끼치는

복잡계 공간을 이해함에 근거하여,

연결에 관한 위험인식 감각이다 싶었습니다.

초연결사회에서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모든 자극에 노출되었고, 그들은 각각 연결이 수월해졌습니다.

선한 의지의 사람들도 물론 많겠습니다만,

권력, 힘, 부를 위해 움직임이 또 다른 '욕망'의 개인들도 있습니다.

19세기 말, 총 x 기계에 관한 가정은 바로 잘못됨을 압니다.

총이라는 강력하고 효율적인 무기를 모두 가졌으니

그리하여 평화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가정했습니다만,

총과 기계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살상을 일으킨 결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네트워크 x 무기의 결합에서는 어떨까요?

염려는 단순한 염려가 아닌,

갑작스러운 테러들을 바라볼 때,

분명 생각해볼 일이다 싶습니다.

정보기술의 시스템적인 연결환경은 이미 당연한 설정입니다.

더불어 AI라는 거스를 수 없는 발전도 또한 받아들여야합니다.

저자의 결국 사회 구성원들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처 방법을 생각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제7의 감각’은 어떤 사물이 연결에 의해 바뀌는 방식을 알아채는 능력이다. 오늘날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왜 너의 사진을 세상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해?” 혹은 “왜 너의 DNA를 건네주려는 거야?”라는 질문은 요점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무엇이든지 연결되어 있을 때만 완전하거나 유용하다. “연결이 사물의 본질을 바꾼다”는 말은 “연결이 곧 권력”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연결을 놓친 이들은 위험하다. 구세력의 권력자라면 더 처참한 결말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
힘없이 무너지는 권력
예전 같으면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불과 몇 백 년 전의 노예들이 투표 부스를 상상할 수 없었듯이, 1985년만 해도 오늘날의 구글 검색 엔진 같은 것은 누구의 머릿속에서도 존재하지 못했다. 누구나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본다는 것은 실로 획기적인 일이다. 우리는 혁명에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볼 수 있게 된 그 ‘원인’이 지금 우리의 오랜 사회적, 문화적 의식의 구조물을 흔들고 있다면?
1980년대 이집트 주재 미국 대사를 역임한 프랭크 위즈너 주니어는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이집트로 건너가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을 만났다. 무바라크에게 우아한 사임을 권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무바라크는 ‘구세력’의 선봉이었다. 그는 30년 동안 나라를 지배했고, 당시의 불안 정도는 거뜬히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삼단논법은 이랬다. “이집트는 안정을 원한다. 나만이 안정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집트는 나를 원한다.” 그리고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그가 택한 것은 대국민 TV 연설이었다. 무바라크는 알았을까?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했을까? 무바라크가 카이로 거리뿐만 아니라 카이로의 스마트폰에서 펼쳐지는 이 생소한 혁명에 대항해 TV 연설을 택했다는 것은 구세력이 새로운 질서를 제어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가차 없이 끌어내려졌다.
아랍 세계와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격렬한 저항과 신속한 응집의 공통점은 어디에도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자가증식하는 사회운동의 저변에 있는 것이 ‘연결’ 즉, 네트워크다. 스페인 출신의 유명한 사회철학자, 마누엘 카스텔에 따르면 “네트워크 사회는 인류에게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만난 적도 없고 전혀 다른 역사와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광속의 비트 혹은 분노에 의해 뭉친다. 이들은 촛불집회, 월가의 시위대, 아랍의 민주화 세력, 홍콩 시위대, 해커, 테러리스트의 모습으로 나타나 느려터진 기존 권력자들을 위협한다. 저항 세력들과 테러리스트들은 연결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는 힘을 이해하고 있다. 대통령 궁에 안락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본능을 가졌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용의자를 색출하라”식의 전통적 방식으로 대응했으나 실패했다. 왜냐하면 “용의자는 네트워크”였기 때문이다. 네트워크를 체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소리 없는 무형의 지배
그렇다면 네트워크는 민주화로 해석될 수 있을까? 연결된 시스템에서 권력은 극심한 집중과 엄청난 분산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이것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아마 곧, 권력과 영향력은 봉건시대보다 더 집중되는 동시에 민주주의 전성기보다 더 분산될 것이다. 이 이분법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제7의 감각’이 있는 것이다. 이들은 누구인가?
우선 10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이 높은 수준의 객체지향 코드를 만들 수 있고, 이 가운데 10만 명이 그 코드를 혁신적인 데이터 구조물로 만들 수 있다. 몇 천 명이 그 구조를 이용해 데이터센터를 설립한다. 그러나 구글이나 인텔 혹은 비트코인이 정말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는 사람은 수십 명에 불과하다. 컴퓨터에 생각을 심어주거나 예술의 경지로 해킹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극소수의 엘리트다. 연결은 사물의 본질을 바꾸며, 그 연결을 통제하는 사람에게 극단적 수준의 권력과 영향력을 준다. 이들은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삶에 관여한다. 이들 대부분이 천문학적인 자산을 소유한 억만장자라는 사실은 어쩌면 당연하다.
수 세기에 걸쳐 권력과 부를 이동시킨 것은 무장침투, 함포사격, 항공작전이었다. 그러나 미래에는 연결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의 지배와 사용이 실제적이면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리 없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진행된다. 우리가 아는 역사는 늘 공개적으로 이루어졌다. 큰 전쟁은 모를 수가 없었다. 혁명은 헤드라인에 실렸다. 세상이 크게 변화하면 그 변화를 알아채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블랙박스 내부 네트워크 시스템의 심장을 미묘하게 조작함으로써 역사적으로 대단한 영향을 주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알아채기도 전에 거대한 힘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설사 알아챈다 해도 그 변화의 영향을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승자독식의 세계
문제는 우리가 바로 연결의 대상이면서도, 그 연결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당신 호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이 사실은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 의해 해킹당할 수 있다. 즉, 연결은 소유하지 않고도 사물을 통제할 수 있게 해준다. 오늘날 수십억 달러짜리 회사들은 자동차(우버), 금융시스템(비트코인), 호텔 객실(에어비앤비)을 통제하지만 그것들을 소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들의 거대한 네트워크에 속수무책으로 갇히고 만다. 이렇게 네트워크는 야금야금 그 영토를 넓히고 있다.
만약 당신이 페이스북에 가입하고 열흘 동안 일곱 명의 친구를 찾는다면 그 플랫폼에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 닫힌 네트워크 세계의 혜택을 누리면서 여덟 번째 친구가 다른 곳을 기웃거리기 훨씬 더 어렵게(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다. 회원이 100만 명인 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에서 배제당하는 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의 유전자를 10억 명의 유전자와 비교할 기회를 차단당한다면, 그건 치명적이다. 사용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네트워크의 힘만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차단의 대가도 그만큼 빠르게 증가한다. 만약 오늘 당신이 구글 혹은 네이버에서 차단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 상태로 내일이 되면 절망할 것이다.
이것은 승자독식, 패자전몰의 세계다. 그러므로 네트워크 시대, ‘제7의 감각’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미래의 싸움은 우리가 네트워크에 얽히느냐 마느냐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얽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과거에 믿음직했던 것들이 쓸모없어지고 심지어는 위태로워질 것이다. 우리의 직관만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생존본능, ‘제7의 감각’이다.  
 전혀 별개로 보이는 현상들, 그 배경이 하나의 강력한 요인 때문이라면? 불과 수년 전만 하더라도 네트워크가 호텔을 대체할지, 알고리즘과 결합하여 통화를 대체할 지 그 누가 예상했을까

이제 우리의 세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새로운 힘, '네트워크'와 결합하여 변화할 기존의 익숙했던 영역들, 그 변화의 방향과 권력의 이동, 그리고 그 흐름 안에서 우리가 대처할 방법을 빠르게 찾는 안목으로서 "제 7의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봉권질서의 붕괴, 계몽의 시대에 새롭게 부상하고 일반화되었던 '자유'의 이념 못지 않게, 이제 '연결'에 대해 사람들은 기본권의 일부라는 정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연결은 동시에 기존의 우리가 누렸던 '자유'의 관념을 필연적으로 제한하고 기존의 권력구조를 재편하게 만들 속

성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기술변화에 따라 수동적으로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다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필요하다.

'연결'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 이로인한 사회적 변화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네트워크는 집중과 동시에 분산을 유발한다. 그 결과 많은 기존의 구조들을 산산조각낸다.비트코인을 비롯한 1세대 디지털 통화가 권위의 상징이었던 중앙은행을 초조하게 만든다.항공기술과 GPS 신호망의 공유 가능해지고 보다 빠르게 확산되면서 드론을 활용한 새로운 서비스와 산업의 가능성들이 제시되고 있다. 연결이 해방이라는 생각은 근사하지만 (어떤 면에서)틀렸다. 연결된다는 것은 강하고 역동적인 긴장상태에 둘러싸이는 것이다. 연결이 사물의 본질을 변화시킬 것이다. 인간이 시장, 지식, 세계와 (보다 더 긴밀하게) 연결되면 되돌릴 수 없이 삶이 변해버릴 것이다. 세상의 진동시키고 끌어당기는 힘, 연결의 망(네트워크)의 존재를 깊이 이해 할 수 있다면 지금의 일견 안정되어 보이는 시대를 바라보면서도 계몽과 진보의 시대, 우리 문명의 약점과 또다른 가능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저자가 칭하는 '제 7의 감각'이란 결국, 권력이 어떻게 재편성되는지를 감지하는 직관적인 능력이다. 연결이 사물의 본질을 바꾼다는 말의 또다른 측면은 지속적인 연결이 사람들에게 일종의 권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연결은 일종의 갈망이다.) "송대,여진족의 침입이라는 양의 폭력이 항저우에서 음의 르네상스를 위한 조건을 마련한 것처럼, 연결된 점들이 가져오는 엄청난 분산이 혁명, 경제위기, 삶을 균열시키는 혁신을 일으킨다. 그러나 동시에 중앙집중화와 우리를 결속시킬 합의를 갈망하게 만들기도 한다." 케인즈는 1차 세계대전을 경험하며 "우리는 문명이 개인과 극소수의 의지에 의해 세워진 얇고 불안정한 부스러기에 불과하며 교묘하게 수용되고 교활하게 보존된 규칙과 관례에 의해서만 겨우 유지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전통의 지혜나 관습의 규제를 존중하지 않았다."고 썼다. 우리는 기술이 종래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본질적인 것까지 앗아가버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기술이 갖는 강력한 힘에 끌려가기 보다 "네트워크는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가" 주체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제어하여 시스템이 붕괴가 아니라 발전시키도록 해야한다. "어째서 시간의 압축이 그렇게 중요한가? 과거에 성공한 정치 시스템은 사람들이 꿈꾸는 인생을 자유롭게 누리게 해 주었다. '자유'는 영향력, 지식의 확산을 막는 낡은장벽을 무너뜨리는것을 의미했다. 바스티유 습격, 식민주의의 탈피가 그것이었다. 그리고 시민에게 교육, 법률적 보호, (최소한도의) 경제적 안정으로서의 복지와 같은 지원들-'사회적 비계'를 제공하는 것이

기도 했다. 오늘날 산업화/도시화된 부유한 나라의 시민들은 낡은 관습/힘의 굴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삶을 의지대로 살 수 있는 자유를 (이전시대에 비해 소위) '보장'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출생지나 부모의 신분, 경제적 상태가 자녀의 평생을 제한하던 과거에 비해 다소 덜 억눌리고,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 받는) 새로운 시대를 일궈나갈 수 있었다. "네가 무엇이 될지 정하라, 감히 알려고 하라!" 이것이 계우리가 아는 몽주의의 기적이다. 이제 미래를 보자, 네트워크 기반의 정치경제적 구조는 우리에게 단순히 자유 이상의 것을 허락(하고 또 요구) 할 것이다.(중략) 시산 압축을 추구하는 이 새로운 체제는 기존의 정치 경제 시스템의 대부분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약자와 강자 사이에 평등은 없다"는 이탈리아 역사가 잠바티스타 비코의 지적처럼, 이제 우리에게 빠른 것과 느린 것 사이의 평등은 없다. 공간과 시간을 가장 잘 압축할 수 있는 사람, 국가, 사업 그리고 '이동엘리트'들이 부와 기회를 잡는 데 있어 점점 더 놀랄만큼 유리해질 것이다. "인류역사에서 대부분의 권력투쟁은 공간적 지배와 영토를 그 대상으로 했다. 이제 다소 믿기 힘들겠지만 시간의 통제를 위해 다투게 될 것이다." 코머스 덜리엔은 연결된 삶 전체에 적용되는 네트워크 보안의 새로운 법칙을 이렇게 표현했다. "대상을 통제하기 위해 그것을 소유할 필요는 없다" 간단한 예로 수백킬로미터 밖의 휴대폰이 해킹되는 상황을 예로 들어 그는 말한다. 삶의 모든 요소 아래로 조용하게 흐르는 대체 불가능한 망을 지배하면 국가는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모든 돌 안에는 작품이 들어있다" 미켈란젤로가 한 말처럼 모든 네트워크에는 토폴로지가 있다. 그것을 발견하고 사용하는 것이 장군, 사업가의 일이다. "군사지역과 민간지역이 구분되는 전통적 전쟁과 달리 연결된 세상에는 전선이 없다. 모든곳이 전장이다. (후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전략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공간은 네트워크가 파괴할 수 있는 하나의 벽에 불과하다. 더 잘 보호되는 토폴로지가 없다면 도망칠 곳은 없다.)" "과거의 위계적 시스템은 왕, 초강대국, 교황과 같은 최고 권력이 되기를 갈망했지만 우리시대는 밸브와 프로토콜, 게이트를 필요로 한다. 우리 모두 연결을 간덜히 바란다. 그러니까 조절장치와 브레이크도 갈망한다는 뜻이다. 권력의 질서를 바꾸려하면 토폴로지적 종간에서 분갱이 발생할 것이다. (중략) 안에 있는가, 바깥에 있는다? 마흐트를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면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당신은 게이트키핑 하는가, 게이트키핑 당하는가?

계속되는 테러, 난민의 물결, 침체된 세계 경제, 놀라운 선거 결과, 뜻밖에 찾아온 부의 순간, 기적적인 의학의 진보…… 이 모든 현상이 연결성의 산물이라면?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소셜미디어 등 혁신적 기술로 인해 인류는 초연결사회 진입을 앞두고 있다. 그에 따라 생존은 물론 권력과 부 또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하는 자에게 돌아가리라 전망된다. 『제7의 감각, 초연결지능』에서 조슈아 쿠퍼 라모는 미지의 권력과 부를 깨울 새로운 본능을 제안한다. 네트워크 시대의 작동 원리를 간파해 이용하는 힘, 그것이 바로 그가 창안한 ‘제7의 감각’이다. 
미래에는 연결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의 지배와 사용이 실제적이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리 없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문제는 우리가 바로 연결의 대상이면서도 그 연결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연결은 소유하지 않고도 사물을 통제할 수 있게 해 자칫 우리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속수무책으로 갇혀버리고 만다. 미래의 싸움은 우리가 네트워크에 얽히느냐 마느냐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얽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믿음직했던 것들이 쓸모없어지고 심지어 위태로워질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직관만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생존본능, 제7의 감각일 것이다.

연결이 권력인 시대, 제7의 감각은 새로운 생존 본능이다!

당장 내일 구글이나 네이버에 접속할 수 없게 된다면?

만약 인공지능이 최고의 효율성을 앞세워 대통령 선거에 나선다면?

인간과 인간, 인간과 기계가 서로 촘촘히 연결될 네트워크 사회에서, 연결에 의해 환경과 조건이 바뀌는 방식을 알아채는 제7의 감각은 미지의 부와 권력을 만들 새로운 도구다.

계몽주의 운동에서 주목할 것은 전통과 무지, 관습과 두려움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자 사람, 토지, 투표권, 주식과 같은 것들의 본질이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농노에서 해방된 농민은 시민이 되었고, 그러자 그의 정치적 견해, 경제적 희망, 교육과 학습 능력이 바뀌었다. 그 변화는 수 세기에 걸친 분열의 방아쇠를 당겼다. 세상이 바뀌어버렸다. 제7의 감각의 시대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연결되면 힘이 변화한다. 그 힘이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기대할지, 어떻게 조종당하거나 공격받고, 혹은 어떻게 부자가 될지를 바꾸어놓는다. 지금은 연결 시대의 비교적 초기다. 다시 말하면, 연결할 부분이 아주 많이 남아 있을 뿐만이 아니라, 연결 자체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세상이 즉각적으로 연결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연결이 더 향상된다. 기본적인 연결은 이미 강력한 힘이 되었다.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인공지능 기반 네트워크가 어떤 역할을 할지 상상해보라. 
네트워크 권력의 시대 
증권 거래에서부터 무역 블록에 이르기까지, 현대적 네트워크 시스템에서 힘은 과거와 다르다. 작은 힘들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다. 하나의 잘못된 상품 거래가 시장을 엉망으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러면 무질서의 양동이를 국가, 기업, 무역 회사에 기울이게 될 수도 있다. 컴퓨터 네트워크의 뒷구멍으로 몰래 들어가는 한 명의 해커가 국가의 방어 시스템을 도어스톱처럼 적극적으로, 전문용어를 쓰자면 ‘벽돌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과거에는 거대한 산업의 힘을 막으려면 다른 거대한 산업의 힘이 필요했다. 그러한 힘든 승리의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 승리는 준비할 수 있었다. 심지어 막을 수도 있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시대의 가장 가공할 만한 물리적 구조물, 즉 군대, 시장, 정부조차 그것들이 연결된 신경계에 가상의 공격을 받으면 간단하게 마비될 수 있다. 이런 공격(어떤 경우에는 사고)은 네트워크의 속도로, 그러니까 거의 즉시라고 할 수 있는 속도로 이것들을 마비시킨다. 미국의 국가 안보 전략은 테러리즘에 대한 ‘오랜 전쟁’이나 떠오르는 중국에 대해 이야기 하지만, 미래에 변화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일어날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네트워크와 플랫폼, 프로토콜을 장악하기 위한 수십 년간의 투쟁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이 변화가 속도 때문에 우리에게 해를 끼칠까 우려스럽다. 
전쟁, 평화, 네트워크 
단순히 인터넷만이 아니라 모든 연결된 시스템을, 즉 네트워크 시대를 이해하려면 인식의 비약이 필요하다. 우선 이렇게 생각해보자. 연결된 시스템에서 권력은 극심한 집중과 엄청난 분산으로 특징지어진다. 단순한 이분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 오래지 않아 권력과 영향력은 봉건시대보다 더 집중되는 동시에 민주주의 전성기보다 더 분산될 것이다. 네트워크의 힘은 서로 연결된 수십만 개의 점이 필수적인 핵들에 집중적으로 연결된 형태로 존재할 것이다. 세상이 측정 불가능할 만큼 빠른 속도로 연결된 장치들과 사람들로 채워지면서 그와 동시에 중앙집권적인 기업과 프로토콜, 시스템도 구축되고 있다. 과거에는 생물학 연구가 너무 복잡해서 수십억 달러가 드는 연구실들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대규모의 클라우드 기반 유전자 데이터(집중)를 재빨리 조회하는 연구실 컴퓨터들(분산)이 그 일을 담당한다. 휴대폰(분산)으로 고화질의 동영상을 촬영하고 그리고 그것을 인스타그램 같은 연결된 중앙 무대에서 수백만 명과 공유할 수 있다. 금융공학자는 새로운 거래 도구(분산)를 설계할 수 있지만 이익은 바쁘게 돌아가는 가격 결정 시장(집중)과의 즉각적 연결에 달려 있다. 
연결의 집게 
우리는 이제 중심과 주변 사이의 인력, 즉 네트워크의 긴장이 어떻게 오래된 구조들을 파괴하는지 잘 알고 있다. 연결은 긴장이 작용하는 망 속에 대상을 위치시킴으로써 그 본질을 바꾼다. 제7의 감각은 이 긴장을 느낄 수 있다. 환자, 의사, 비행 장치, 통화를 연결하면 이것들은 서로 엮이고 결과적으로 변화한다. 어떤 것은 커지고 어떤 것은 완전히 부러져 회복이 불가능해진다. 또 어떤 것은 고통스럽게 적응한다. 네트워크의 인력은 새로 생겨난 엄청난 부뿐만 아니라 기존의 생각과 제도의 붕괴도 설명해준다. 우리 시대가 그렇게 불안정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배런의 어망이 커지면서 그 망이 건드린 모든 것이 새로운 구조 속에 갇힌다.

"육감"이란 말은 예전부터 있어 왔습니다. 다만 그 정확한 뜻에 대해서는 논자마다 입장이 제각각이며, 과연 모든 이에게 고르게 그 "여섯번째(라는) 감각"이 발달해 있는지(다섯 개의 기본 감각은 개체에 따른 편차가 크지는 않고, 작동 기제에 대해서도 비교적 상세히 규명되어 있죠), 아니면 아예 그 존재 자체가 과연 믿음직한 기반을 마련하기나 했는지에 대해서도 다 의견이 갈립니다. 한편으로, 어떤 불가해한 보충적 감각의 총체가 없다면, 고지식하게 다섯 개의 센스(센서)만으로 인간이 살아남기란 매우 어려웠을지도 모릅니다.
문명과 집단 생활, 시스템의 발전이 일종의 FOOLPROOF를 마련함에 따라, 우리 인간은 점점 "육감"이 퇴화하는 중인지도 모르겠고요. 그렇다고, 육감이 혹 야생의 하등동물에게나 발달된 속성이라고 해서 이의 자가장착을 마다할 인간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겁니다. 남의 기분을 잘 읽는 능력, 상황에 맞게 머리를 잘 다듬고 옷을 근사하게 차려 입고 나가는 능력은 우리가 다 "센스"라고 부르는 것들인데, 이게 다 생존을 원활히 꾸려 나가기 위한 소중한 자산이죠. 어쩌면, 머리가 좋다, 돈이 많다, 잘생겼다, 이런 칭찬보다 더 듣기 좋은 게 "센스 좋다"란 말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건 누구한테 배운다고 나아지는 게 아니라, 왠지 타고난(혹은 좋은 환경에서만 체득된) 장점인 것 같아서이지요.
그런데 이 책은 "제7의 감각"으로서, 이른바 "초연결지능"을 거론합니다. 육감이란 말도 분명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거니와 그 자체로 포괄적(보충적)인 개념인데, 그것과는 또 별개로, 전혀 관계 없어 보이는 다른 지점(영역, 지식, 경험, 인간망)을 "연결"시키는 감각을 따로 이렇게 불러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어떤 능력이나 자질, 특성이 따로 이름을 가져야 한다면, 그 이유는 대개 분명합니다. 그게 목표를 이루거나 개체의 생존을 도모함에 있어, 최우선순위를 둘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는 "4차 산업 혁명"이라는 키워드로 대변되는 현재의 트렌드(많은 이들이 그 정체를 몰라 불안해하기만 하는) 속에서, 변화의 바른 방향을 예견하고 성공적인 적응, 나아가 승자로서의 레이스를 이어가기 위해, 개인이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게 이 "연결지능", 아니 그를 넘어선 "초"연결지능이라고 주장합니다.
이 말은 사실 우리에게 전혀 낯선 개념도 아니고, 이미 그 중요성이 (워딩만 달리하여) 큰 인기를 끌어가며 강조된 바 있습니다. 잡스가 타계한지 근 6년이 되어갑니다만, 혁신의 아이콘으로 널리 숭앙되었던 그가 혁신을 정의한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연결"입니다. 애플의 아이폰에 적용된 기술 중 잡스가 실험실에서 직접 머리를 짜 내어 안출(마치 토머스 에디슨처럼)한 건 거의 없습니다. 그는 타 여러 섹터에서 자생적으로 속출하던 여러 기술을, 디바이스 한 대에 집약 연결하여 모든 이의 손에 한 대씩 쥐어 주겠다는 생각을 최초로 했을 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이 최적의 효용과 경제성으로 투입, 조립, 화학적 결합을 이룰지에 대해 남들보다 탁월한 안목을 지녔던 셈인데, 그게 바로 초연결지능이라고 볼 수 있죠. 다른 말로 하면 "혁신의 본체, 본질"이겠고 말입니다.
저자는 우리 인류의 지난 역사에 주목합니다. 큰 사이즈의 함포, 폭발력 좋은 화기, 적은 기름만 먹고도 쌩쌩 달리는, 그러면서도 잘 부서지지 않는 탱크, 이런 걸 가진 집단과 조직이 패권을 차지하는 게 정석이었던 과거. 그러나 현재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한 곳에 엮이기(꼭 물리적 동일 공간을 뜻하는 게 아님은 당연)만 하면, 그 연결만으로도 전에 없던 권력이 생성되는 게 현대의 마력이라는 겁니다. 더 놀라운 건, 우리들 개개인이 특정 배후 권력의 수단으로 쓰이기만 하는 게 아니라(그래선 안 되죠), 우리 자신이 누군가의 사이에서 연결 지점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권력의 창출과 변혁의 주체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는 겁니다.
줄리언 어산지라든가 스노든 같은, 아무 배경이나 자산도 없던 "일개인"이 세계 역사를 바꿔놓을 만한 파장을 일으킨 걸 보십시오. 그들이 그런 사고를 칠 수 있었던 궁극의 동력은, 바로 네트워크의 힘입니다. 거대 권력 집단이 통치와 지배의 편의를 위해 깔아 둔 네트워크가, 이들 영민한 개인에 의해 허점이 발견된 후에는 오히려 권력 균열의 단초를 제공하고 만 것이죠. 이 때문에 네트워크의 마력이 개인과 세계를 빼곡히 감싸고 도는 지금 같은 세상에선, "민주화"의 의미가 전혀 새롭게 다가오기도 하는 겁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이른바 "엠파이어 오브 건파우더"의 시대에도, 그저 물량만 가뜩 쟁여 놓는다고 패권이나 번영이 절로 찾아드는 건 아니었습니다. 자원이나 무기의 소재를 정확히 알고, 이의 유효한, 경제적인 활용을 도모할 줄 아는 어떤 "지혜"야말로 최후의 승자를 결정하는 요인이었다는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 오랜 역사를 통해 참된 생존의 비결을 이미 감지해 왔고, 이를 다만 시대에 따라 각기 다른 말로 표현하는지도 모릅니다. 무관해 보이는 두 개(혹은 그 이상)의 적절한 접합, 화학적 결합을 절묘히 이룰 때 폭발적인 시너지를 내게 하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궁극의 지혜이며, 한 고제 유방 같은 이도 결국 이 능력 하나로 천하를 손에 거머쥐었는지도 모릅니다. 혁신의 시대에 이 결합, 연결의 지혜야말로 우리가 가장 크게 염두에 두어야 할 계발 대상이라 하겠습니다.

미래에는 연결과 네트워크, 인공지능의 지배와 사용이 실제적이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소리 없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된다. 문제는 우리가 바로 연결의 대상이면서도 그 연결이 어떤 것인지 정확하게 알거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연결은 소유하지 않고도 사물을 통제할 수 있게 해 자칫 우리는 거대한 네트워크에 속수무책으로 갇혀버리고 만다. 미래의 싸움은 우리가 네트워크에 얽히느냐 마느냐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얽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시대에는 믿음직했던 것들이 쓸모없어지고 심지어 위태로워질 것이다. 때문에 우리의 직관만이 중요해질 것이다. 그것이 바로 새로운 생존본능, 제7의 감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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