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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의 정치학 우리의 삶에서 희망이 사라졌을 때 본문

4차산업혁명 관련/책소개

용기의 정치학 우리의 삶에서 희망이 사라졌을 때

천아1234 2021. 5. 30. 18:29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인문 > 철학 > 교양철학

정치/사회 > 정치/외교 > 정치일반 > 정치철학

이 책의 주제어

#교양철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자본주의 #민주주의 #인류 #미래 #위기 #극복 #통찰

변화의 열망이 점점 커져가는 시대에 왜 세계는 도리어 후퇴하는가?

우리의 힘은 왜 삶의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희망은 점점 사라지는가?

행동하는 지성 슬라보예 지젝은 문제의 원인을 사회에 만연한 ‘거짓 희망’에서 찾아낸다. 해결되지 않고 더욱 심해지는 무수한 위협적 문제들 속에서도 ‘그래도 심하게 나쁘지는 않다, 아직 기존 질서에 희망은 있다’는 안온한 분석을 내놓는 시대. 이러한 시대 의식이 현시대에 대한 판단을 흐리고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고 경고한다.

21세기 정치 지형부터, 경제, 종교, 정치적 올바름 운동까지, 지젝은 세계의 면을 폭넓게 살펴보며 거짓 희망이 어떻게 사회에 퍼져 있으며, 이 문제를 넘어 진정한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탐구한다. 『용기의 정치학』은 정치적 진화의 종착지로 여겨지던 세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뿌리부터 뒤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용기와 지혜를 선사한다.

목차

들어가는 글 | 혁명 이후 당신의 일상은 정말로 달라졌는가?

1부 절망할 수 있는 용기

: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진 절망의 정체는 무엇인가

1장 세계 자본주의가 생성하는 적대감

보호받는 내부와 외면받는 외부 | 유럽 문명과 반유럽주의 | 법의 정치성이라는 함정 |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협정들 | 대혼란 속으로 | 새로운 노예제도 | 변화를 위해 |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적의 이름 | ‘협력적 공유’에 대하여

2장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보여준 투쟁의 한계와 희망

시리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 오늘날 좌파 정부의 상황 | 유럽연합이 시리자를 대하는 태도의 의미 | 이제 막 시작된 싸움 | 그리스 국민투표의 역사적 의의 | 싸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 ‘관료주의’에 대하여

3장 정치적 요소로서의 종교의 부활

중국식 근대화 | 중국, 종교, 그리고 무신론 | 왜 지금 무신론을 생각해야 하는가 | 시온주의의 상황 | 이슬람의 시선으로 본 서구중심주의 | 이슬람 문명과 근대화? | 정치 그 자체로서의 종교

2부 의심할 수 있는 용기

: 우리의 신념은 과연 올바른가

4장 종교 원리주의와 테러 위협의 관계

샤를리 에브도 테러, 그 이후 | 근대화된 형태의 원리주의 | 원리주의와 페미니즘 | 양립과 공존 | 인간의 얼굴을 한 테러리스트 | 보편적 연대를 위한 긴 여정

5장 성의 정치에 관한 논쟁

정치적 올바름의 덫 | 동성애자 연대의 주체성 | 성적 자유의 악용 | 성적 차이, 위계의 문제인가 적대감의 문제인가 | 성전환주의의 현재 상황 | 소환에 관한 정신분석 이론 | 성적 적대감의 근원적 배경

6장 포퓰리즘의 유혹

윤리 규칙이 해체된 정치계 | 포퓰리즘과 소속의 관계 | 동의조작이라는 소름 끼치는 이론 | 브렉시트의 의미 | 악용되는 법체계 | 세계자본주의와 민주적 결핍 | 트럼프 돌풍이 남긴 교훈 | 트럼프의 승리 클린턴의 패배 | 트럼프 시대 이후의 정치

나오는 글 | 세상 전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

감수의 글 | 위기의 시대에 필요한 용기의 정치학

미주

책 속으로

이탈리아의 철학자 조르조 아감벤(Giorgio Agamben)은 인터뷰에서 “절망이 만들어 낸 용기를 생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의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그의 말은 특히 뛰어난 통찰력을 갖는다. 요즘은 아무리 비관적인 분석이라도 결국에는 캄캄한 터널의 끝에서 작은 희망을 찾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진정한 용기는 대안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대안이 없다는 현실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대안에서 얻는 꿈과 희망은 곤경 속에서 치열한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집착이며, 이론적인 비겁함의 신호다. 진정한 용기는 터널 끝에서 보이는 빛이 어쩌면 반대 방향에서 다가오는 기차의 헤드라이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들어가는 글 ‘혁명 이후 당신의 일상은 정말로 달라졌는가’ 13쪽

『21세기 자본』의 저자 토마 피케티는 현재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라고는 자본주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실현 가능한 유일한 대안은 경제 체제를 통제하고 재분배를 실행하는 민주적인 권력에 의해 자본주의가 적절한 영역에서만 작동하도록 제한하고 정치적인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해결책이 가장 엄밀한 의미에서의 ‘유토피아’라고 설명한다. 피케티는 자신이 제안한 모델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적으로 시행될 때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국가의 경계로 제한된다면, 자본은 세금이 낮은 국가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와 그것이 암시하는 정치적 메커니즘의 범위 내에서 이 정도로 강력한 세계적 권력은 상상할 수 없다. 만약 그 정도로 강력한 힘이 존재했더라면, 문제는 애초에 해결되었을 것이다. 피케티의 제안대로 전 세계적으로 높은 세율을 부과하려면 또 어떤 것이 필요할까? 물론,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고르디우스의 매듭 (Gordian knot)을 자르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다. 행동을 위한 완벽한 조건은 없다. 굳지 따지자면 행동은 언제나 너무 이르고, 어딘가에서든 시작이 필요하다. 또한, 개입이 더 복잡한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1장 ‘세계 자본주의가 생성하는 적대감’ 66~67쪽

시리자가 가져온 공포는 세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시리자가 민주주의를 중시하고, 유권자들의 의지를 끌어내고,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의 전문성을 거부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두 번째는 기한 연장과 회수에 관한 환상을 거부할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마지막으로 최악의 공포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채무 제공자들과 채무 관리자들은 시리자 정부가 충분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시리자는 결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난받았다. EU의 기득권은 시리자가 부채를 진 것은 인정하지만 잘못은 없다고 하자 혼란스러워했다. 시리자는 초자아의 압력을 제거했다. 시리자가 저항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가 자유로워졌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에게 희망이 생겼다.

2장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보여준 투쟁의 한계와 희망’ 103쪽

오스트리아의 저술가인 보리스 부덴(Boris Buden)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종교로의 귀환을 정치 세력으로 분석하고, 이 현상이 근대화의 실패로 인한 퇴보라는 일반적인 해석을 거부했다. 부덴에게, 정치적힘으로서의 종교는 사회의 정치적인 붕괴와 안정적인 공동체 관계를 보장하는 전통적인 메커니즘의 붕괴로 인한 영향을 받는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정치적인 특성을 가졌을 뿐 아니라, 정치 그 자체다. 즉, 종교는 정치를 위한 공간을 유지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사태가 단순한 사회현상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이기 때문에, 사회 자체가 종교적인 현상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순수한 정신적 측면과 정치적인 면을 구별할 수 없게 된다. 포스트폴리틱(postpolitic) 세계에서, 종교는 적대감이 회복되는 압도적인 공간이다. 최근 원리주의 종교의 미명 하에 일어난 일은 정치에 종교가 복귀한 게 아니라 단순히 정치가 복귀한 것이다.

3장 ‘정치적 요소로서의 종교적 부활’ 203~204쪽

저먼윙스 항공기를 프랑스 알프스로 추락시켜 자신을 포함한 승객 150명 전원을 사망에 이르게 한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AndreasLubitz)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그는 정치적이거나 이념적인 종교 단체 또는 여타 단체와 어떤 연관 관계도 없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심리적 문제나 우울증이 그가 일으킨 테러의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하지만 루비츠는 근면하고, 현대적이며, 이념을 믿지 않는 자유주의자였다. 매일 아침 다섯 시에 일어나 5킬로미터씩 조깅을 했으며,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절제된 생활을 했다. 루비츠의 경우는 이슬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허무주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누군가 테러에 의존할 정도라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 게다가 이때의 증오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2005년 프랑스 교외에서 폭동이 발생하면서 수천 대의 차가 불타고 대규모의 폭력사태가 발생했던 일을 기억해보자. 좌절된 욕망이 정신분석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공격성으로 바뀐 현상이다. 이슬람은 단지 이런 (자기)파괴적인 증오의 기반을 제공할 뿐이다. 분노와 질투는 서방세계에 대한 살인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증오로 바뀌고, 사람들은 폭력 행위를 동반하는 복수에 개입한다. 이러한 폭력은 다른 대안적인 사회에 대한 희망은 없고, 단지 (자기)파괴적인 행위로 정점에 이른다. 원리주의자들의 폭력은 아무리 자본주의를 반대한다고 주장해도 해방의 가능성이 없다. 그저 세계 자본주의 세계에 내재한 현상이다.

4장 ‘종교 원리주의와 테러 위협의 관계’ 251쪽

PC 운동은 삶의 불평등은 인식하면서도, 혁명 없는 혁명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실질적인 변화 없이 사회적 변화를 원하는 셈이다. PC 운동은 두 가지 극단적인 것의 균형을 맞추고, 정치적인 올바름을 위해 올바른 균형을 잡으려 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감정을 상하게 할지 모르는 말을 금지하려고만 한다. PC 운동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논점을 흐리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문제가 있다.

PC 운동의 또 다른 부작용은 비꼬는 표현을 막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옳지 않지만 통렬한 ‘비꼬는 표현’이 용납될 가능성이 줄고 있다. 다음은 2016년 9월 초 언론에 보도된 북한 관련 기사다. 정반대의 상황이지만, 결과는 비슷하다.

북한은 일상적인 대화에서 김정일이나 독재 정권을 비꼬는 발언을 금지했다.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조차도 금지되었다. 당국에서는 “이건 다 미국 때문이야!”라는 말조차 빈정거리는 표현인 동시에 정권에 대한 비판이므로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북한의 정책은 결국 실패할 것이다. 국가의 공식 용어가 ‘비꼬는 표현’으로 사용되는 예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5장 ‘성의 정치에 관한 논쟁’ 275~276쪽

유명 인류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독일에서 이민자와 관련해 계속되는 갈등이 민주주의의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한다. 대다수의 독일인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이민에 대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반이민 포퓰리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이민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될까? 그렇다면 이민자 중 누구에게 투표권을 줘야 할까? 이미 독일에 편입된 사람에게 줘야 할까, 아니면 독일에 오길 바라는 사람에게 줘야 할까? 결국 세계적인 선거의 개념으로 이어지는데, 이는 명백한 이유에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국민은 대부분의 다른 유권자들과 기본적인 유대감을 공유할 때 민주적 투표에 얽매여 있다고 느낀다. 다른 유권자로부터 소외되었고 자신의 감정과 목적을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될 때는, 100대 1로 지더라도 평가를 수용하지 않는다. 민주주의 투표는 주로 종교적 신념과 국가적 사연을 공유하는 것과 같은 공통된 결속을 가진 인구 집단 내에서만 실시되었다. 투표는 기본적으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결정을 확립하는 방법이다.

투표보다 더 큰 맥락에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절차는 협상이다(물론 전시 상황은 제외다). 중동 분쟁이 선거가 아니라 전쟁이나 협상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6장 ‘포퓰리즘의 유혹’ 364쪽

생태적 재앙의 위협과 세계 전쟁의 위협을 막는 첫 단계는 우리가 가정해야 할 ‘전략적 위험’에 대한 ‘유사 이론적’ 논의를 버리는 것이다. 역사적인 시간의 개념이 서로 다른 선형적 과정이라고 추정하고, 다른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위협은 운명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글로벌 상황에서 위험을 피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이며, 계속 이를 방관한다면 어디에서나 위협이 존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다. 따라서 해결책은 조심하면서 위험한 행동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따르는 끔찍한 결과를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각 위험이 서로 연결되어 전체적인 위험을 더욱 높인다는 사실을 십분 인식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완전한 절망 속에서 용기를 가지면, 전체 상황의 좌표를 바꾸는 길고 어려운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그보다 덜한 노력으로는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나오는 글 ‘세상 전체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할 때’ 410쪽

출판사 서평

세계적인 정치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신작!

‘거짓 희망’에 빠진 세상에 던지는 강력한 경고

정치철학계의 세계적 거장, 사회학에서 철학, 정신분석학, 미학까지 다양한 지식을 정치철학에 접목하는 독특한 사유를 통해 동시대에 일어나는 세계정세의 다양한 현상을 예리하게 파악해온 당대의 지성, 슬라보예 지젝 교수가 신작 『용기의 정치학』을 들고 돌아왔다.

현시대의 국제 질서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다룬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점령하라: 세계를 뒤흔드는 용기의 외침』,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등을 펴내며, 기존 질서가 만들어내는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진정한 혁명에 대한 논쟁에 쉼 없이 불을 붙여온 그는, 이번 신작에서 현 상황에 대해 이전보다 훨씬 더 어두운 전망을 제시한다.

새로운 극우 포퓰리즘, 인종주의, 파시즘의 부상, 기존 강국과 새로운 강국 간의 지정학적 긴장, 테러리즘의 득세, 성의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 발생시키는 시민 간 분열 등. 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비롯된 여러 위협적 문제들이 세계 곳곳에서 폭발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이 암울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걸까? 인류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래도 심하게 나쁘지는 않다. 아직 희망은 있다’는 안온한 분석을 내놓는 시대. 이러한 시대 의식이 조장하는 ‘거짓 희망’이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 대한 판단을 흐리고,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의 힘을 진정한 변화로 이어지지 못하게 막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Courage of Hopelessness(희망을 거부하는 용기)다. 지젝 교수는 우리에게 제시된 ‘거짓 희망’을 거부하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는 『용기의 정치학』을 통해 21세기 정치지형부터, 경제, 종교, 시민운동까지 세계의 면면을 폭넓게 살펴보며 세계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거짓 희망을 넘어 진정한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날카롭게 탐구한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과연 희망은 가능한가?

이번 책을 관통하는 질문은 이것이다.

‘세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시민들의 열망은 점점 커져가는 데 왜 세계는 도리어 후퇴하고 있는가?’

케임브리지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예란 테르보른은 “인류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 가능성이 지금보다 더 컸던 적은 없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가진 잠재력과 인류 전체가 가진 현실적인 조건의 격차가 지금보다 더 컸던 적은 없다”는 말로 현대사회가 직면한 상황을 묘사했다. 이런 격차는 왜 생기는 것일까? 지젝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시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과연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이 만든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그 자체의 모순으로 생성하는 적대감의 폭발적 확대를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가?’ 그리고 ‘좌파는 현 상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가?’ 지젝의 답은 명료하다. 세계 질서의 종착지라고 여겨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세계를 점점 더 회생 불가능한 파괴적 방향으로 끌고 가고 있다. 좌파는 현 상황에 대한 안온한 분석과 거짓 희망을 내놓는 안일한 태도, 이에 비롯된 맹목적 무능으로 인해 사람들이 가진 거대한 변혁의 힘을 제대로 된 방향으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 지젝은 이대로 간다면 변화는 도무지 불가능해 보이며, 좌파는 실패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1장에서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완성되어간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어떻게 세계를 외부와 내부로 나누어 분열시켰는지 살펴보며 전체 내용을 개괄한다. 자본주의는 극단적으로 내부와 외부를 나누고, 계급을 나누며 둘을 철저하게 분리한다. 한 예로 테러 공격을 들 수 있다. 파리 테러는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잔인하게 뒤흔들었다. 이런 형태의 테러 공격은 일시적인 혼란을 일으키는데, 주로 서방세계를 목표로 한다. 폭력이 일상이 되어버린 제3세계의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콩고,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시민들의 생활은 어떤가? 그곳에서 수백 명이 죽어갈 때, 국제 연대를 외치고 선언하던 노력은 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이 시점에서 우리는 자신이 둥근 돔이 씌워진 보호받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지젝은 자본주의가 세계를 문명, 경제, 종교, 법적으로 다양하게 분열시키고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분열이 연대를 어떻게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는지 설명한다.

2장에서는 그리스 시리자 좌파 정부가 금융위기에 대한 EU의 압박에 저항하려 했지만 결국엔 항복했던 일련의 상황을 살펴본다. 시리자 정부는 처음엔 거대 자본으로 국가 주체성을 빼앗으려는 EU에 저항하며 반긴축정책을 실행했지만 이후 EU의 강한 압박에 항복해 결국 긴축정책을 받아들였다. 지젝은 이 항복을 단순히 패배로 치부할 수 없다고 말하며, 시리자 정부의 투쟁은 EU의 비민주적 테크노크라트에 저항해 민주 정치의 전투에서 승리하고 더 나아가 자본의 원활한 재생산을 방해한 영웅적 행위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시리자 정부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지젝은 그리스에 벌어진 국민투표, 긴축정책 발표와 굴욕적 항복 상황에서 좌파 정부가 맞닥뜨린 상황 등을 설명하며 그들이 보여준 한계와 희망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한다.

3장에서는 중국, 유대계, 이슬람 문화권에서 종교가 정치적 요소로 부활하고 있는 상황을 다룬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선택한 유교적 전통은 어떻게 기존 사회주의와 어우러져 정치 체계의 완고함을 더 굳건히 했다. 유대교 지지자들은 팔레스타인 영역 다툼의 문제를 다룰 때 종교를 악용하고 있다. 이슬람교는 혈통의 연결 고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구성원들에게 평등한 혁명주의적 형제애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전통적인 가족 네트워크를 박탈하고 그 자리에 종교를 놓는다. 이들 문화에서 종교는 곧 정치인 상황으로서 민주주의를 능가하는 힘을 발휘하며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다. 이 현상은 단순한 사회현상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이며, 사회 자체가 종교적인 현상이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가 생성하는 적대감이 자체 종교로 흡수되고 그 안에서 회복되며 종교 원리주의를 강화해 가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에서 보편적 연대는 오직 모든 형태의 공동체의 문화를 남긴 보편적인 정치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그 가능성을 탐구한다.

4장에서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중심으로 ISIS를 잘못된 근대화의 사례라는 측면에서 살펴본다. ISIS는 서구문명이 중심이 된 자본주의를 앞세운 세계화에 대한 저항의 형태인데 반해 그들은 세계화로 위협받는 전통을 위해, 역설적으로 근대화된 형태로 의사를 표현한다. 즉 그들은 근대화된 기존 질서가 그들 사이에 생성하는 적대감을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ISIS가 이념적 정치적 목표를 전파하고 실행하는 일, 자금 확보 체계를 형성하는 일 등에 근대화와 자본주의는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최근 서구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슬람 젊은이들이 어떤 삶의 과정을 거쳐 테러리스트가 되는지 설명하기 위해선 자본주의가 사회에 끼친 영향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지젝은 이러한 사안들을 중심으로 이슬람 원리주의가 테러 위협이 되어버린 이유를 분석한다.

5장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보수주의자들과 정치적 올바름(PC)의 세력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성에 관한 논쟁을 다룬다. PC 운동은 언어를 비롯한 표현에서 편견을 제외하자는 의도에서 시작된 운동으로 80년대 이후 서구에서 강하게 대두되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사회, 문화에서 영향력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특히 콘텐츠 분야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논쟁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PC 운동가들은 삶의 불평등을 인식하면서도 혁명 없는 혁명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특정 표현을 배제하려고만 하는 무균실과 같은 안전한 공간에서는 문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없다. 그곳에 나와 위험하고, 간섭하는 세상을 온몸으로 겪어야 한다. 동성애자 연대에서 현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성적 적대감까지 성의 정치를 폭넓게 살펴보며, 우리가 정치적 올바름을 넘어 바라봐야 할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마지막으로 6장에서는 트럼프 미대통령 당선으로 대표되는 포퓰리즘의 부상을 살핀다. 힐러리를 내세운 민주당은 트럼프가 전략적으로 보여준 저속한 행동이 대중에게 끼친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대응으로 인해 선거에서 패배했다. 트럼프가 보인 행동의 본질적 의미는 합리적인 자본주의 담론으로는 설득할 수 없는 다수의 유권자들의 반엘리트 포퓰리즘 성향에 효과적으로 영합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및 진보주의자들은 이런 경향을 낮은 계급의 원시적인 태도라고 경시했지만, 대중들의 삶은 그들 생각 이상으로 추락해 있었다. 트럼프의 당선은 대중적인 삶의 하락 추세를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고, 그들 사이에서 포퓰리즘은 거세게 부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좌파는 온건한 진보주의에 머무르거나, ‘만약 이길 수 없다면 합류하라’ 전략으로 급진적인 우파에게 쏠리기 마련인 민족주의 포퓰리즘을 빼앗아 오기 위해 민족주의를 재발견하려 한다. 이는 과연 올바른 방안이며 성공할 수 있을까? 포퓰리즘이 대중들 사이에서 부상하는 메커니즘, 브렉시트와 트럼프 돌풍이 남긴 교훈을 분석하며, 포퓰리즘 시대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반응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는다.

자본주의, 민주주의에 대한 안온한 분석을 거부하고 새로운 사유를 자극하다

『용기의 정치학』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정치 및 경제 체제라는 좁은 차원에서 다루지 않고, 인간의 삶과 세계 전체를 변형시키는 보다 넓고 근본적인 차원에서 다룬다. 그리하여 오늘날 학계와 정계, 대중 담론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존 질서에 대한 불만의 여러 갈래들을 한데 모으고, 비판의 근본 전제를 제시한다.

명실상부한 국제 질서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안에서 진정한 변화는 불가능하다는 저자의 급진적이고 과감한 주장에 쉽게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 기존 질서가 위기를 맞았다는 데에는 수긍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그 자체를 거부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 성급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오늘날 현대 정치의 종착지로 여겨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대한 지배적 담론을 교란하고, 그 담론의 판에 박힌 이해와 비판 회피에 도전함으로써, 기존 질서를 더욱 근본적으로 사유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슬라보예 지젝은 월가 점령 시위, 쌍용자동차 고공 농성 시위, 최근 조던 피터슨과의 공개 토론 등 현장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시민들과 함께했고 그들의 열망과 생각을 직접 만났다. 지식인의 탁상공론이 아닌, 세상을 바꾸고 있는 자신들이 무조건 옳다는 시민의 맹목적 신념도 아닌, 지금 우리가 마주한 세계의 모습을 진정으로 직시하고 변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신작 『용기의 정치학』은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용기 있게 마주하여 이른 결과물이다. 대혼란 시대, 현대 정치의 근간부터 끈질기게 성찰하여 답을 찾아내려는 지젝의 정치적 작업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뿌리에서부터 흔들리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과 용기를 선사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기존 질서에 대한 이해를 높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져가는 이 시점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위기 신호를 인식하고 위기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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