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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인터뷰]"세계 네 번째로 구축한 코로나 영장류 감염 모델, 백신 개발 일등공신될 것"

천아1234 2021. 9. 11. 19:26

홍정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책임연구원

홍정주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책임연구원. 남윤중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는 8월 10일 바이오기업 SK바이오사이언스가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인 GBP510에 대해 국내외 3990명을 대상으로한 임상 3상을 승인했다. 국내에서 개발한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가운데 임상 3상에 돌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백신 후보물질은 국내에서 개발했다는 점 외에도 또 하나 의의가 있다. 바로 국내 기술로 세계 네 번째로 개발한 코로나19 영장류 감염모델을 이용해 전임상시험을 했다는 점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가 구축한 모델이다.

 

치명적 감염병 대비 위한 영장류 모델

8월 4일 오후 충북 청주의 생명연 국가영장류센터를 찾았다. 센터 내 미래형동물자원동 2층에는 생물학적 안전성 3등급(BSL-3) 실험실이 있다. 홍정주 국가영장류센터 면역&감염실험실 책임연구원은 “최근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를 원숭이 몸속에 투여하는 실험이 진행된 곳”이라고 말했다. BSL은 감염위험도가 높은 미생물을 연구·실험할 수 있는 시설의 등급 기준으로, 1등급에서 4등급으로 갈수록 위험한 미생물을 다룬다.

새로 개발된 신약후보물질은 판매되기 전 부작용이나 독성, 효과 등을 알아보는 여러 차례의 검증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동물 모델을 이용한 전임상시험도 그 중 하나다. 가장 많이 사용되는 동물 모델은 쥐다. ‘2020년 식품의약품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9년 국내에서는 쥐를 비롯한 설치류가 보건·의료 관련 실험동물 중 98%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쥐는 사람과 유전적으로 약 90% 일치할뿐더러 임신기간이 3주 내외로 짧고, 새끼를 한 번에 5마리에서 많게는 13마리까지 다수 낳는 장점이 있다. 더군다나 몸집이 작아 작은 공간에서 비교적 수월하게 통제할 수 있어 다른 동물에 비해 운영비가 적게 든다.

 

국가영장류센터의 BSL-3 실험실. 인체 치명적인 미생물을 다루기에 방호복을 입은 관련 연구자만 출입할 수 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제공

하지만 쥐 외의 다른 동물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등 사람에게 치명적인 감염병을 연구할 때다. 홍 책임연구원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기 매우 위험한 질환에 대해서는 쥐보다 유전적으로 사람과 훨씬 유사한 영장류를 대상으로 전임상시험을 해 더 높은 신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2016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은 토끼 및 영장류 실험만으로 효능을 입증한 탄저병 치료제를 승인하기도 했다.

단 영장류는 가장 비싼 동물 모델이다. 독성 시험에 이용되는 비교적 저렴한 원숭이도 한 마리에 300만 원 정도고, 치매 등 노인성 질환에 활용될 수 있는 20살 정도의 노인 원숭이는 마리당 5000만 원을 호가한다. 이런 이유로 미국, 네덜란드 등에서는 치명적 감염병을 연구할 영장류센터를 정부에서 운영하고 있다.

2015년까지 미국에서 영장류 실험을 하다 국내에 들어온 홍 책임연구원은 당시 국내에 이 같은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개별 실험실에서 영장류를 길러 실험할 수는 없기에, 국내 연구자들은 유망한 신약후보물질을 개발해도 영장류 전임상시험은 해외에 의존해야 했다. 홍 책임연구원은 “특히 감염병과 관련된 신약후보물질은 전부 해외에서 영장류 전임상시험을 했다”며 “비용도 비싸지만, 국내 기술이 유출될 우려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홍 책임연구원은 2017년 감염병 연구를 위한 영장류 실험 시스템을 정부에 제안했다. 홍 책임연구원은 “메르스가 퍼졌을 때도,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도 미국과 유럽의 영장류센터에서는 자국에 유행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병원체를 확보하고 전임상 시험에 돌입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감염병 유행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즉시 전임상시험을 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홍 책임연구원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2018년에 감염병에 대비한 영장류 전임상시험 시스템이 갖춰졌다. 6명이 한 팀을 이룬 작은 시작이었다.

 

접종 부위가 중요한 영장류 모델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 연구팀이 붉은털원숭이와 게잡이원숭이 등 두 종의 원숭이 16마리에 사스코로나바이러스-2를 투여한 결과, 감염 초기에 모든 원숭이의 폐에서 혈관내피염을 동반한 급성 간질성 폐렴이 관찰됐으며, 림프구가 감소하고, 상기도와 하기도의 바이러스가 가장 빠르게 증식하는 등 사람과 유사한 증세가 발생함을 확인했다. 동아사이언스DB

연구팀은 첫 번째 과제로 한국에서 유행하는 또는 조만간 유행할 수 있는 감염병 병원체를 물색했다. 그 결과 강한 통증과 열을 발생시키는 뎅기 바이러스와, 일명 살인진드기의 원인이 되는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 바이러스를 선정했다.

한창 연구가 진행 중이던 2019년 말 코로나19사태가 시작됐다. 홍 책임연구원은 감염병 전문가로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그러던 지난해 3월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영장류 전임상시험을 준비할 수 있느냐는 정부 관계자의 물음이었다. 신속한 영장류 실험을 위해서는 수많은 승인 절차를 빠르게 거쳐야 하고 음압시설, 헤파필터와 같은 장비도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부는 지원을 약속했고, 비로소 연구팀은 코로나19 백신 및 치료제 후보물질 평가에 필요한 영장류 실험 모델 구축에 나섰다.

신약 후보물질을 시험하려면 동물에 병원균을 감염시켜야 한다. 이 때 고려할 요건이 많다. 홍 책임연구원은 “병원균과 후보물질을 어느 신체 부위에 투여해야 하는지, 얼마만큼의 양을 투여해야 하는지, 어떤 종의 동물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에 따라 증상과 후보물질의 효과가 크게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홍 책임연구원팀은 영장류 실험 선진국인 미국과 네덜란드의 지난 연구결과부터 유심히 살펴봤다. 과거에는 네덜란드 연구팀이 새로운 감염병에 대한 연구결과를 가장 앞서서 냈지만, 어느 순간부터 미국 연구팀이 이를 따라잡았다. 홍 책임연구원은 “분석해 보니 접종 부위가 임상시험 결과를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를 염두에 두고 코로나19를 위한 최적의 영장류 모델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불과 한 달만인 지난해 4월, 코로나19 영장류 모델을 구축하고 8월에 논문으로 발표했다. 중국, 네덜란드,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였다. 홍 책임연구원은 “미국보다 인력이나 시설 면에서 수십, 수백 배 차이가 나지만 우리의 기술력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빠르게 모델을 구축할 수 있었다”며 “미국에서 친하게 지낸 동료 연구원들도 영장류 실험 볼모지라 생각한 한국에서 이처럼 빠르고 정확한 연구결과를 낸 것을 몹시 놀라워했다”고 말했다.

영장류 모델이 구축됐다는 소식에 한국의 신약 개발 기업들의 문의가 쇄도했다. 전임상시험을 신청한 곳만 133곳이었다. 국가영장류센터는 선정위원회를 통해 그중 10여 곳의 기업을 추렸고, 올해 2월까지 전임상시험을 마쳤다. 여기서 좋은 결과를 얻은 곳이 SK바이오사이언스와 셀리드 등이다. 홍 책임연구원팀은 최근 크게 유행하는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대해서도 병원체를 확보하는 등 준비를 하고 있다.

국산 코로나19 백신이 비록 느리지만 착실히 개발되고 있는 데에는 이같이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임상시험을 책임져 준 국가영장류센터의 공이 크다. 홍 책임연구원은 “처음 제안할 때는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걸 비싼 비용을 들여가며 굳이 해야 하냐는 혹평도 많이 들었다”며 “하지만 코로나19 영장류 모델을 발표하는 현장에서 과거 혹평했던 사람들조차 박수를 보내주는 모습에 큰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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