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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 원 포기

천아1234 2021. 5. 10. 16:58


문재인 정부는 왜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포기했을까

8590원. 내년 최저임금 시급입니다. 올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사용자위원과 노동자위원은 각각 8000원과 10000원을 2020년 최저임금 최초안으로 내놓았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8350원이죠. 사용자위원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들어 350원 삭감(-4.2%), 노동자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공약 이행을 강조하며 1650원 인상(19.8%)을 요구한 것입니다. 양 측이 팽팽하게 맞섰던 만큼 나머지 공익위원의 입장이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두 해와 달리 공익위원이 높은 인상률을 지지할 가능성은 거의 없었습니다. 공익위원은 정부가 추천하고, 이미 정부는 ‘속도 조절’이란 입장을 수차례 밝혀 왔기 때문입니다. 박준식 신임 최저임금위원장,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최저임금 인상이 조급했다는 평가를 정부가 그대로 인정한 셈이죠. 이에 따라 대선 공약이었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은 이행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 속도 조절 환영’ 논평까지 내며 정부 입장에 쐐기를 박았고요.

문재인 정부는 왜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포기한 걸까요. 대부분은 경제 지표가 좋지 않았다거나 영세자영업자 생계 악화를 이유로 제시합니다. 하지만 이런 평가는 정부의 입장과 상반될 뿐더러 일부 부작용은 최저임금 논의 초기부터 검토돼 온 부분입니다. 단순히 ‘생각보다 부작용이 컸다’고 설명하긴 어렵다는 거죠. 더군다나 2010년 이후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과 경제성장률 정도는 반영했던 걸 고려할 때, 2.79% 인상은 사실상 삭감에 가깝습니다. 만약 부작용 때문이라면 의아한 결정이고,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요.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기승전 최저임금’의 비밀

최저임금 1만 원은 ‘최저임금’ 때문에 포기된 게 아니다?


‘최저임금 1만 원’은 지난 19대 대통령 선거 당시 모든 후보가 공약했던 정책입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에게 이 공약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바로 ‘최저임금 인상’을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정책으로 삼았기 때문이죠. 2017년 5월 대통령 취임 직후 발표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도 ‘최저임금 시급 1만 원 달성’은 맨 첫 번째 정책으로 등장합니다. 그해 6월부터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가 본격적으로 재개됐고, 2018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1060원 인상(16.4%)’되었습니다. 1988년 최저임금이 시행된 이래 최대치였죠.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이 시작된 것입니다. 일부 업종의 고용 감소나 자영업자 타격 같은 부작용은 이미 예상된 부분이었지만, 소득 격차가 오히려 증가했다거나 저소득층 소득이 줄었다는 통계 발표가 이어지자 혼란은 더 커졌습니다. 한편 작년 8월 정부 국책연구기관들이 최저임금 인상 영향에 대해 서로 엇갈린 의견을 내놓기도 했죠. 이후 최저임금 논란은 겉잡을 수 없이 불붙기 시작했고, 정부 입장은 ‘속도 조절’ 쪽으로 서서히 기울어 갔습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이른바 “최저임금 공포“를 가중해온 건 바로 언론이었습니다. ‘기승전 최저임금‘이라고 하죠.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부정적 상황을 최저임금 인상 탓으로 해석하는 걸 비판하면서요. 실제로 ‘최저임금’ 관련 보도는 지난 2년간 경제지와 보수 언론을 중심으로 급격히 증가했는데, 근거가 부정확하거나 갈등 자체만 부각한 보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즉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목적보단 정치적 의도가 핵심이었다는 거죠.

요컨대 ‘기승전 최저임금’ 보도는 단순히 최저임금 여론만 악화시키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7월 5일 바른미래당 오신환 원내대표의 국회 연설처럼 불안정한 최저임금 여론을 통해 정부의 주요 경제정책 기조인 ‘소득주도성장’을 흔들려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에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반박하면서, 작년 5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부터 지금까지 최저임금 영향을 줄이는 데 보란 듯이 정책 초점을 맞춰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대처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습니다. 정말 최저임금이 소득주도성장의 일부에 불과하냐는 것입니다. 정책 개수로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닙니다. 가계소득 확대, 생계비 절감,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한 약 46개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이미 집행 중이니까요. 그런데 애초에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을 연동한 건 그저 최저임금 공약이 ‘인기가 좋아서’만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최저임금이 가계소득 향상을 위해 필수적인 정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소득주도성장 이론의 바탕이 된 2013년 ILO의 ‘임금주도성장’ 보고서나 홍장표 전 경제수석의 ‘소득주도성장’ 논문 모두 ‘최저임금의 도입 및 인상’을 핵심정책으로 꼽습니다. 더군다나 최저임금 인상은 정부 조건상 가장 추진하기 쉽고 효과적인 정책 중 하나였습니다. 사회적 합의가 높았다는 점, 별도의 법 개정 없이 조정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지불 부담이 정부가 아니라 기업에 있다는 점 등에서요. 그러니 최저임금이 소득주도성장의 전부는 아닐지언정, 핵심 정책이라는 사실을 정부가 단박에 부정하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라는 거죠.

결국 최저임금은 ‘최저임금’ 때문에 포기된 게 아니라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정부의 입장 변화로 포기되었다고 봐야합니다. 그 본의가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을 뿐이지만 결과는 비교적 선명한 편입니다. 올해 7월 발표된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선 소득주도성장이 아예 등장하지 않게 됐습니다. 오히려 감세 정책과 함께 ‘혁신성장’에 치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입니다. 이 역시 정부는 ‘프레임’일 뿐이라고 답변하고 있지만요.

하이라이트

소득주도성장

2012년 ILO(국제노동기구)의 보고서에 발표된 경제이론으로 원래 명칭은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이다. 핵심 주장은 ‘임금 인상 → 가처분 소득 증대 → 소비 증가 → 생산·투자 확대’의 선순환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것.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었던 홍장표 교수(현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장)의 주도로 문재인 정부의 주요 경제 정책 기조가 되었다.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한국의 특성을 반영해 ‘임금’을 ‘소득’으로 바꾼 소득주도성장으로 명명되었다.

갈 곳 잃은 소득주도성장

최저임금 1만 원,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상조 정책실장을 통해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불이행에 대해 사과의 말을 전하면서도, 이번 결정이 “소득주도성장의 폐기 내지 포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감세 정책으로 돌아선 정부가 증세가 필수적인 ‘생계비 절감’과 ‘사회안전망 확충’ 정책을 이어갈 수 있다고 보기 어렵고, 노동시간 단축 정책으로 일자리를 나누더라도 줄어든 가계소득을 보전해주려면 최저임금 인상과 ‘공적 이전소득‘ 확대는 필수적입니다. 정부의 주장과 실제 정책 방향이 상반되고 있단 거죠.

‘최저임금 실패가 곧 소득주도성장의 실패’라는 보수 진영의 일관된 주장은 논리적 비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소득주도성장의 실패가 곧 최저임금의 실패’라는 말은 적어도 문재인 정부에 있어서는 뼈 아픈 사실입니다. 소득주도성장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지금, 문재인 정부가 그 핵심 정책인 최저임금 인상을 온갖 정치적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강행할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반대로 소득주도성장을 반드시 지켜야 했다면, 부작용을 다소 감수하더라도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고수했어야 합니다. 오히려 근본적인 보완책 제시가 다음 경제정책 방향의 내용이어야 했던 것이죠. 그런데 올해 최저임금 결과로 정부는 스스로 ‘최저임금의 실패가 소득주도성장의 실패’임을 인정한 꼴이 되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의 정치적 정당성도 상실하게 된 만큼,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 원을 달성할 가능성 또한 희박해 보입니다.

최저임금 논란은 한동안 이어질 전망입니다. 양대 노총이 이번 최저임금 결과에 즉각 반발했고, 업종·규모 차등 적용부터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까지 갈등의 여지가 있는 사안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최저임금 속도 조절로 갈등과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정부의 이번 결정. 이로써 시급한 경제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오히려 실마리를 놓치게 된 건 아닌지 지켜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타임라인


1986.

최저임금법 제정


1988. 1.

최저임금제도 최초 시행. 시급 487.5원


2012. 12.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청소노동자 출신 무소속 김순자 후보 ‘최저임금 1만 원’ 정책 최초 제안


2013. 1.

알바연대, 알바노조 ‘최저임금 1만 원’ 운동 개시


2015. 3.

민주노총 ‘최저임금 1만 원’ 공식 요구안으로 확정. ‘최저임금 1만 원’ 요구 노동운동 전반으로 확산


2017. 4.

19대 대통령 선거에서 5개 원내정당 및 진보정당 후보 모두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2017. 7. 25.

문재인 정부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정책 추진


2018. 1. 1.

2018년 최저임금 시급 7530원. 전년 대비 1060원 인상(16.4%)


2018. 5. 28.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등 최저임금법 일부개정법률안 본회의 통과


2019. 2. 27.

고용노동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 발표


2019. 7. 12.

2020년 최저임금 시급 8590원으로 결정 (월 환산액 1,795,31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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