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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수출 규제 조치

천아1234 2021. 5. 10. 16:59


일본 정부는 왜 ‘경제 보복’을 감행한 걸까

지난 7월 1일, 일본 정부가 갑자기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습니다. 내용은 딱 두 가지였는데요. 하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포토 레지스트·에칭가스 등 3개 품목을 포괄규제에서 개별규제로 전환하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도록 관련 법령을 개정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앞으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특정 물품을 수출할 땐 건마다 엄격하게 심사하겠다는 건데요. 결국 일본 정부가 통제권을 갖고 한국 수출을 언제든 불허할 수 있다고 경고한 셈입니다.

문제가 된 건 의존도입니다. 일본은 ‘소재 강국’입니다. 특히 첨단 산업에 필요한 주요 소재 중에는 세계시장 점유율 90%가 넘는 일본 소재가 상당수죠. 한국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당장 수출이 규제되는 품목 3가지는 한국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인 소재 중에서도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입니다. 한편 반도체(1위)와 디스플레이(5위)의 한국 수출액 비중은 20% 이상이죠. 소재 부족으로 제품 생산이 어려워지면 그 영향이 한국 경제 전반에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 18일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25%p 낮추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0.3% 하향 조정한 2.2%로 조정했습니다. 규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본 거죠. 더 큰 문제는 피해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재 산업은 정교한 기술력이 중요해 단시간에 국산화하기 힘듭니다. 제품 질에 차이도 커 공급처를 함부로 바꾸기 힘들고요. 내달 초 한국이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되면 수입이 어려워지는 상품이 크게 늘어나는 것도 문제입니다.

그런데 수출 규제로 경제적인 피해를 보는 건 한국만이 아닙니다. 일본은 한국과의 무역에서 흑자를 보는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한국은 일본의 수출 비중 3위를 차지하죠. 수출이 줄어들면 일본 경제도 타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장기적으로 한국이 소재 수입처를 바꾸면 아예 거래가 중단될 위험도 있고요. 한편 D램이나 OLED처럼 한국 점유율이 높은 중간재 가격이 오르면 세계 ICT 시장에도 피해가 이어집니다. 국제 사회의 비판도 피해가기 어렵죠. 요컨대 일본도 잃을 게 제법 많은 상황이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왜 아베 정부는 한국 경제를 압박하고 있을까요. 아베 정부가 수출 규제를 통해 정말 얻고 싶은 건 무엇일까요.

차트

수출 규제 품목의 일본 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하이라이트

화이트리스트

무기 제작이나 군사적 목적으로 쓰일만한 전략물자 중 민감성이 낮은 품목에 대해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일본의 국가 목록. ‘안전보장 무역관리 제도’에 따라 리스트에는 안보상 신뢰할 수 있는 미국 등 27개 국가만 포함된다. 아시아 국가로는 한국이 유일하다. 화이트리스트 국가로 수출할 땐 품목당 3년에 한 번만 허가받으면 되지만(포괄허가), 다른 국가로 수출할 경우 원칙대로 개별 건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사용목적, 목적지, 위험성 등을 까다롭게 심사한다. 심사에는 보통 90일 정도가 소요된다. 화이트리스트 제외로 영향을 받는 품목은 760~110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신조는 보통국가의 꿈을 꾸는가?

일본의 ‘경제 보복’이 ‘과거사 문제’와 연결되는 이유


사실 일본은 이번 수출 규제 이유를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규제 발표 당시 일본 정부는 “한일간의 신뢰관계가 현저히 손상되었”고 “한국 수출관리와 관련해 부적절한 사안이 발생했다”고 말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지는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말도 계속 바뀌고 있고요. 다만 아베 총리가 7일 TV 토론회에서 한국이 “징용공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 등으로 볼 때, 한국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강경해진 데 반발한 ‘경제 보복‘이란 추측이 일반적입니다.

왜 하필 이 시점일까요? 사실 한일 관계에 균열이 생긴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 2018년 말 한국에선 강제징용 배상 판결화해·치유재단 해산이 이어졌죠. 이에 일본은 한국이 국제적인 합의를 무시한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습니다. 올해 초에는 일본 해상초계기가 한국 함정을 대상으로 위협 비행하는 사건이 네 차례나 계속돼 안보 갈등도 불거졌습니다. 지난 6월 일본이 주최한 G20에서도 한·일 정상회담은 끝내 불발되었고요. 요컨대 이번 경제 보복은 일본의 돌발 행동이라기보다 최근 몇 년간 지속해 온 한일 갈등의 연장선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기를 따져보면 일본 ‘참의원 선거’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일본 내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층을 집결하려 했다는 분석이죠. 아베 총리를 비롯한 일본 보수 세력에게 이번 선거 목표는 전체 의석의 2/3를 확보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개헌’ 때문인데요.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려면 참의원, 중의원 모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도 개헌파는 과반을 차지한 정도에 그쳐 헌법 개정안 발의는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왜 아베 총리는 ‘개헌’을 바랬을까요. 개헌의 핵심은 군대 보유 금지와 교전권 불인정을 명시한 ‘평화 헌법 9조’의 개정입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전쟁과 무력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는 조항을 스스로 헌법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일본 우익 세력들은 이 조항을 개정해 일본을 선전 포고와 선제공격이 가능한 “보통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아베 총리가 속한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초기부터 이 개헌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우익 정당이고요. 그런데 개헌을 정당화하려면 일본이 침략 전쟁 책임을 부정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평화 헌법, 그리고 이 헌법에 기반한 일본 정부는 일본이 과거 개전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죠.

여기서 주의해 봐야 할 게 바로 ‘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입니다. 이 조치의 표면적인 내용은 수출 규제지만, 그 근거는 사실 안보 문제입니다. 바로 한국을 일본의 안보 우방국에서 제외한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한미일은 여태껏 동북아 안보 문제에 있어 끈끈한 공조 관계를 유지해왔습니다. 일본이 한국과의 ‘안보상 신뢰관계’를 의심할 이유가 딱히 없다는 거죠. 하지만 일본이 군사력을 높이는 걸 한국이 방해하고 있다고 인식한다면 어떨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왜 일본이 경제 보복을 빌미로 과거사 합의 이행을 압박하는지, 또 왜 안보 이슈까지 끌고 들어왔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과거 일본의 침략 전쟁에 강제 동원되었던 한국 피해자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강력한 전쟁 증거입니다. 한국이 과거사 문제에 강경할수록 일본은 개전 책임을 불식하기 어려워지죠. 따라서 헌법 개정의 정당성을 확보하기도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아베 정권은 개헌을 통해 일본의 군사력을 증강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국제적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죠. 이 때문에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경제 보복을 하면서도, ‘신뢰관계’가 훼손되었다며 화이트리스트 제외라는 안보 카드까지 꺼내 들었던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 경제 갈등이지만 속사정을 살펴보면 오히려 안보 갈등에 가까울 수 있다는 거죠.

결국 아베 정부는 일본이 전쟁 가능 국가로 돌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는 한국과의 과거사 문제를 모두 무력화하고 싶은 것입니다. 2015년 9월 일본은 안보 관련 11개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사실상 ‘집단적 자위권’을 명문화했는데요. 그 직후인 12월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를 맺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종결됐다고 선포했습니다. 안보 법안 이후 일어난 위헌성 논란을 위안부 합의를 통해 불식하려던 것이었죠. 현재 일본이 수출 규제 이후 유일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 강제징용 손해배상 판결에 대한 중재위원회 설치라는 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한국에 대해서 일본은 안보 문제와 과거사 문제를 분리하고 있지 않은 것이죠.

결국 필요한 건 장기적인 방안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가 해결책이 될까


이처럼 아베 정부의 의도가 안보 계획과 연관된 만큼 이번 경제 보복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벌써 12일부터 일본 측은 이르면 8월 15일부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혀왔죠. 한편 한국 정부가 16일 일본의 중재위원회 설치 요구를 끝내 거절하자 일본은 “필요한 조치를 강구”하겠다며 추가 보복을 예고한 상태입니다. 한국 정부는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강경책까지 검토하고 있지만, 절차가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어 당장 실효성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양 측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만큼 빠른 해결은 어려울 전망입니다.

한편 미국의 중재 가능성 또한 중요해졌습니다. 현재 미국은 한일 관계를 중재할 의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미 국무부는 “중재mediate할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고, 트럼프 대통령도 “둘 다 원하면 관여engage하겠다”며 난색을 보였습니다. 사실 미국은 일본이 군사력을 늘리는 것 자체를 반대하지 않습니다. 북·중 견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오바마 전 대통령도 일본에서 안보 법안이 통과되자 “진심으로 축하”한다며 환영했었죠. 하지만 한일 갈등이 격화돼 한미일 동맹에 균열이 보인다면 미국으로서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부에게 남은 카드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라는 주장도 제기됩니다. 지난 18일 대통령-5당 대표 회담에서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된다면 협정 파기를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건데요. 회담 이후 청와대 역시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넌지시 밝힌 상황입니다. 이 협정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유일한 군사 협정으로 한미일 동맹에 있어 상징적인 의미가 큽니다. 또한 미국이 수차례 공들인 사안이었던 만큼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이끌어낼 카드로 유력하죠. 다만 협정 파기가 오히려 미국의 반발을 살 가능성도 있어 실현 가능성이 높지만은 않습니다.

한일 무역 갈등은 너무 많은 것이 한꺼번에 얽혀 있습니다. 과거사 문제와 역사 인식, 동북아 정세를 둘러싼 각국의 안보 계획, 세계 분업으로 얽힌 경제 체제, 국내에서 각 정치 세력의 위상 문제까지. 그래서 일본이 이번 수출 규제를 철회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 거란 보장은 없습니다. 재발 우려도 충분하죠. 결국 원칙을 확인하면서 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게 한국 정치권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정말 잘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타임라인


1965. 6. 22.

박정희 정부, 한·일 청구권 협정(한일기본조약) 조인


2007. 8. 27.

일본 최고재판소, 개인 청구권 존재 명시


2015. 9. 11.

일본 의회, 안보 관련 11개 법안 통과


2015. 12. 28.

박근혜 정부, 한·일 위안부 합의


2018. 11. 21.

문재인 정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결정


2018. 12. 30.

대법원,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 판결


2019. 6. 28.

일본 G20 개최. 한·일 정상회담 무산


2019. 6. 30.

남북미 정상, 판문점에서 회동


2019. 7. 1.

일본 경제산업성, 한국 대상 수출 규제 조치 발표


2019. 7. 16.

한국 정부, 일본의 중재위원회 요구 사실상 거부


2019. 7. 21.

아베 연립 정권,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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