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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란 무엇인가?: 테러에 관한 고찰

천아1234 2021. 5. 4. 09:39

테러란 무엇인가?: 테러에 관한 고찰

 

1) 테러의 기원과 역사

 

 

 지난 3월 22일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국제공항과 한 지하철역에서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하여, 28명 이상이 숨지고 수십 명이 다쳤다. 이번 테러는 지난해 발생한 파리 테러 주범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살라 압데슬람이 브뤼셀 외곽 몰렌베이크에서 체포된 지 채 나흘 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번 벨기에테러는 살라 압데슬람의 체포에 대한 보복으로 파리 테러를 기획,지시했던 이슬람국가 IS가 일으킨 보복 테러라는 견해가 다수이다.

2015년 11월13일 파리 10구에 있는 '르 카리용(Le Carillon)'라는 술집(bar)과 길 건너의 캄보디아 레스토랑 '르 프티 캉보주(Le Petit Cambodge)'에서 12명, 10분 후 프랑스와 독일 축구 국가 대표팀의 친선 경기장에서 자살폭탄테러로 1명,그로부터 20분후 파리 11구에 있는 카페 '르 벨 에키프(Le Belle Equipe)'에서 테러범 두 명이 총기를 난사하였다. 최소 19명이 이곳에서 희생되었다.

22시, 파리 11구에 있는, 미국 밴드인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의 공연이 열리고 있던 바타클랑(Bataclan) 콘서트장에서 복면을 두른 4명의 테러리스트가 난입하여 AK-47을 난사 후 청중들을 무차별 살상, 이곳에서만 100명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러한 프랑스 파리 테러가 발생한지 미처 4개월 만에 유럽연합(EU) 수도 격인 브뤼셀에서 테러가 또다시 일어난 것이다.

 

 

 


 

▲ 프랑스 연쇄테러 지점중한곳

(출처: chosun.com

http://photo.chosun.com/site/data/html_dir/2015/11/14/2015111400728.html)

 

 

이러한 테러는 당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소식을 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견디기힘든 두려움을 줌으로서 그 소기의 목적을 다한다.

앞으로 3회에 거처 테러의 역사적 기원과 배경, 테러의 발생역사와 변천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러를 방지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테러의 어원과 기원

 

테러(영어: terror)는 프랑스어 terreur가 어원이며, 이것은 "거대한 공포"를 의미하는 라틴어 terror에 다시 기원을 두지만 우리에겐 보통 “두려운 일”, “무서운 일” 정도의 의미로 쓰이고있다. 이 라틴어는 또한 라틴어 동사 terrere에서 파생되었으며, 이것은 "겁을 주다"라는 뜻이다.

테러란 원래 정치적 반대파를 진압하기 위해 억압과 폭력을 사용하는 방침을 이른다. 이 용어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자코뱅당의 공포 정치 때 처음 사용되었다한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주권 국가 또는 특정 정치 단체가 정치, 사회, 종교, 민족주의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폭력을 사용하거나 이를 이용해 협박함으로써 특정 개인, 단체, 공동체 사회, 그리고 정부의 인식 변화와 정책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징적, 심리적 폭력 행위의 총칭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테러전문가 브라이언 젠킨스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은 미디어나 국제 언론의 관심을 끌기 위해 주의깊게 연출되는 것이 보통이다. 인질을 잡으면 드라마가 고조된다. 만약 어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인질은 살해될 수도 있다. 인질 그 자체는 테러리스트에게 별 의미가 없을 때가 많다. 테러리즘은 실제 희생자가 아니라 구경하는 사람들을 노린다. 테러리즘은 극장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대혁명기의 정치인, 철학자, 법률가, 혁명가, 작가였던 막시밀리앙 드 로베스피에르가 펼친 공포정치가 '테러'의 기원이라고도 한다.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따라 변호사로도 활동했던 그는 왕정과 신분 중심의 앙시앙레짐(구 체제)을 타파하려 1789년 혁명에 참여하고 이듬해에는 급진 공화파인 자코뱅 파를 옹호하며 활동하다 수장이 된다. 이후 1793년 집권한 로베스피에르는 자신을 위한 소위 무지막지한 공포정치를 펼치게 된다. 자신에게 반대하는 정적들을 예외없이 암살하거나 단두대로 처형했다. 하지만 역으로 반대세력 테르미도르의 쿠데타로 1794년 처형당했다. 이러한 독재와 폭군정치를 테러의 기원으로 본다. 체포된 인원수는 약 300,000명, 단두대에서 처형된수는 16,500명인데 이때 파리인구수는 650,000이었다고 한다.

 

공포를 뜻하는 테러도 여기서 비롯됐다.

 


 

▲ 프랑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

(출처: 인권오름-http://hr-oreum.net/article.php?id=74)

 

 


 

▲ 단두대에서 처형당한 로베스피에르

(출처:유로자전거나라-http://romabike.eurobike.kr/bbs_2013.php?act=view&table=tongsin&gr=1&gcd=1620&page=17&T_CON=FR)

 

현재 테러를 규정하는 명확한 정의는 없지만 대체로 1937년 국제연맹이 정한 조건을 기준으로 삼는다. 국제 연맹은 '테러의 방지 및 처벌을 위한 협약'을 채택하고 '한 국가에 대해 직접적인 범죄행위를 하거나 일반인이나 군중의 마음에 공포심을 일으키는 것'을 테러로 규정했다. 이후에도 테러를 정의하려는 노력은 여러 차례 있었으며 '정치적 동기'와 '일반인에게 공포를 심는 것'이 공통 요소로 꼽혔다.

 

◇ 최초의 테러…1605년 전 일어난 영국 의회 폭파 미수 사건

 

최초의 테러가 언제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우리가 떠올리는 폭탄 테러와 가장 가까운 형태의 사건은 17세기 초에 일어났다.

1605년 11월 5일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상원 의회 폭파 미수 사건이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 혁명 단체 일원이자 행동대장이였던 가이 포크스가 가톨릭을 억압하는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를 암살하고 상원 의회를 폭파하려다가 발각된 이 사건은 역사상 최초의 테러로 꼽힌다.

밀고로 체포될 당시 가이 포크스는 화약통 36개와 성냥, 시계를 소지한 채로 의회 지하에서 발견됐다. 만약 발각되지 않고 몇 시간만 지났더라면 폭탄은 상원 의회에 참석한 제임스 1세가 앉은 자리 발치에서 터질 예정이었다.

포크스는 가혹한 고문을 받은 뒤 형 집행 도중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그는 현대에 들어서 체제 전복과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 The Gunpowder Plot(의회폭파미수사건)

(출처: wikipedia - https://en.wikipedia.org/wiki/Gunpowder_Plot#/media/File:The_Gunpowder_Plot_Conspirators,_1605_from_NPG.jpg)


 

▲ 체포되는 가이 포크스

(출처: 영국 dailyrecord - http://www.dailyrecord.co.uk/news/uk-world-news/gunpowder-plot-how-guy-fawkes-6740007#ZXqHaFTz9mGPJHq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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