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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돌 수입 허가 판결

천아1234 2021. 5. 10. 17:03


조건 하나 없는 ‘리얼돌’ 수입 결정

지난 6월, 대법원이 리얼돌 수입을 사실상 허가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2017년 5월. 한 성인용품 수입업체가 리얼돌을 수입하면서부터입니다. 두 달 뒤, 인천세관은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물품’으로 판단해 수입통관을 보류합니다. 그러자 업체 측은 인천세관을 상대로 ‘수입통관 보류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냅니다. 이후 2년 동안 법적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결과는 1심 패소, 2심 승소. 뒤이은 대법원의 결정은 상고 기각. 리얼돌은 “성기구”일뿐이라는 2심 판결을 대법원이 지지하면서 리얼돌 수입에 문제가 없다는 판결이 내려진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보도되자 곧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7월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청원인은 리얼돌이 다른 성기구와 달리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그대로 떠와” 만들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맞춤 제작도 가능해 ‘지인 합성’ 포르노처럼 타인의 인격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고요. 리얼돌을 통해 성욕을 ‘건전하게’ 해소하면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일부 주장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해당 청원은 한 달도 안 돼 답변 요건인 20만 명의 동의를 얻었습니다. 현재 청와대 답변을 기다리고 있죠.

리얼돌 문제는 해외에서도 이미 논란이 됐던 사안입니다. 다만 리얼돌 자체를 일괄적으로 금지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호주·캐나다·노르웨이·영국·미국 등에서도 아동 형상을 본떠 제작한 리얼돌만 규제합니다. 최근 정인화 민주평화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청법 개정안’ 역시 그렇습니다. 이 법안은 ‘아동 리얼돌’을 제작·수입하면 3년 이하, 판매·광고하면 5년 이하의 징역형, 소지만 해도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동 리얼돌’ 규제에는 이미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걸로 논란이 해결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핵심은 여전히 다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죠.

시간이 문제?

더 ‘리얼’해져야 금지되는 ‘리얼돌’


먼저 1심과 2심이 리얼돌에 대해 전혀 다른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1심은 리얼돌을 풍속을 해치는 음란물로 보았습니다. 리얼돌이 “실제 여성의 신체와 비슷하게 형상화”돼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하였다고 평가할 정도”라는 거죠. 한편 2심은 리얼돌을 개인의 성욕 해소에 이용되는 성기구로 보았습니다. 성기구가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활용되는 만큼, “국가가 되도록 개입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실현한다고 판단한 것이죠.

그런데 두 법원이 이렇게 다른 결정을 한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리얼돌’이 실제 인간과 얼마나 비슷한지에 대해 서로 입장이 달랐던 것이죠. 1심은 리얼돌이 “노골적으로 사람의 특정한 성적 부위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2심은 “전체적인 모습이 상당히 저속하고 문란”하지만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정도”로 노골적이고 적나라하진 않다고 봤습니다. 결국 현재 리얼돌이 음란물인지 성기구인지를 정하는 유일한 법적 근거는 실제 인간과의 ‘유사성’이라는 겁니다.

이처럼 현재 사법부는 성기구 문제를 개별 법원의 판단에 맡기고 있습니다. 성기구에 관한 법령이 따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2003년 대법원은 이미 여성의 성기를 본뜬 자위기구를 음란물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 여성 성기를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표현했다는 이유였죠. 그런데 이번에 문제가 된 건 길이 159cm, 무게 35kg의 리얼돌이었습니다. 훨씬 인간과 유사하지만 전혀 다른 결정이 내려졌죠. 법리적 해석조차 제각각인 현실입니다.

다만 확실한 건 사법부는 성기구가 실제 인간과 유사할수록 ‘음란성’이 강해진다고 본다는 점입니다. 2013년 8월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성기구가 “성기관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성적 만족감 충족”이란 목적을 가지고 있어 음란물과 구분된다고 봤습니다. 즉 성기구는 목적과 기능에 충실하면 될 뿐 굳이 ‘인격’을 모방할 이유가 없다는 거죠. 오히려 인격을 모방할수록 ‘성적 만족감 충족’이라는 성기구로서의 목적은 약화됩니다. 그런데 리얼돌의 정당성은 바로 이 지점에서 애매해집니다. 리얼돌은 오히려 누군가 ‘더 인격적인’ 성기구를 바라 온 결과이기 때문이죠.

지난 8일, 한 남성이 리얼돌과 함께 거리로 나와 화제가 됐습니다. 휠체어에 올려진 리얼돌에는 “누군가에겐 가족입니다”라는 팻말이 놓여있었습니다. 이처럼 리얼돌은 단순한 성기구가 아니라 마치 인간 관계의 상대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리얼돌은 더 리얼해져야 합니다. 리얼돌에게 인격을 부여하는 것이 다름 아닌 ‘리얼함’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리얼돌 업체들은 당장 맞춤 제작은 불가능하다고 강조하지만, 맞춤 제작의 가능성을 줄곧 제품 홍보에 활용해 온 것입니다.

1심과 2심, 두 판결 모두 리얼돌이 실제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지에 따라선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해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리얼돌이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지만 문제가 되는 걸까요. 그것만으로 인격권 보장과 개인의 자유 중 어떤 것이 중요한지를 판단할 수 있을까요. 리얼돌과 ‘인격의 가능성’은 분리해서 사고될 수 없습니다. 성기구가 ‘인격’을 모방하는 순간, 기능과 목적이 아닌 ‘다른 것’이 들어섭니다. 바로 성적 대상으로서 어떤 인격이 모방되고, 또 어떤 방식으로 재현되는지의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리얼돌 논란의 핵심은 리얼돌의 ‘인격’이 여성이라는 특정한 성별로 지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리얼돌의 주요 구매자는 남성인 반면, 리얼돌은 대부분 여성의 몸을 본떠 만들어집니다. 리얼돌은 인격은 있지만 의지는 없는 성기구입니다. 거부하거나 저항하지 않죠. 결국 리얼돌이 모방하는 형태는 분명 여성의 몸이지만, 리얼돌이 재현하는 이미지는 ‘의지가 사라진 여성’입니다. 요컨대 현재 리얼돌이 소비되는 방식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성적 대상화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리얼돌 판매에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이유죠.

‘사적이고 은밀한’ 개인의 성적 행위는 인형에 그칠지 모릅니다. 하지만 리얼돌이 재현하는 ‘의지가 사라진 여성’의 이미지는 가상에 그치지 않고 현실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리얼돌은 이미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있습니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제정된 후 성매매 단속이 강화되자 이른바 ‘인형체험방’이 성행했던 건데요. 당시 불거진 문제는 인형 성매매를 처벌할 수 있느냐라는 점도 있었지만, 인형 성매매가 실제 사람한테 할 수 없는 가학적 행위까지 시도할 수 있다는 점이기도 했습니다. 결국 문제는 유사성이 아니라 가능성 자체입니다. 리얼돌이 인격을 모방하려는 이상 그 인격이 기반하는 현실 문화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겁니다.

‘사실상’의 함정

대법원의 ‘심리 불속행’이 불러오는 문제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심리 불속행’이었습니다. 본안을 별도로 심리하지 않고 상고를 기각한 것이죠. 그래서 리얼돌 논란에 대한 대법원의 의견은 특별히 보도되지 않았습니다. 이 결정은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리얼돌로 소비되는 인격이 특정해 있다는 문제를 다시 불문에 붙였다는 점입니다. 2014년 청주지법은 여성 성기 모양의 남성용 자위기구를 성기구로 인정하면서 “유사성 정도가 음란성의 기준이 돼야 하는지도 의문”이라며 기존 판례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사회적 논란이 가중되는 가운데 판례가 계속 뒤집어지고 있습니다. 한편 리얼돌은 인공지능을 장착한 ‘섹스 로봇’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인격을 최대한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죠. 즉 ‘유사성’이 갖춰지는 것조차도 결국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이 상황에서 법리 해석의 기준을 제시해야 할 상급 법원이 그 판단을 유예해버린 겁니다.

둘째는 규제가 부족한 상황에서 2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대법원 결정이 리얼돌 수입을 사실상 ‘전면 허가’하는 근거가 됐다는 점입니다. 여전히 사법부는 ‘유사성’을 근거로 음란물 여부를 개별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판례에 따른다는 점에선 보수적이지만, 결과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리얼돌이 아동의 인격을 모방하는 문제는 지적되고 규제로 이어지고 있지만, 리얼돌이 여성의 인격을 모방하는 문제는 지적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전자의 문제 역시 성별화되어 있다는 점을 근본적으로 되짚지 않습니다. 리얼돌이 타인의 외모로 맞춤 제작된 경우에도 형사처벌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결국 이 복잡한 문제는 여전히 ‘공백’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대법원 결정 이후 관세청은 리얼돌 수입통관 규정 마련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여성가족부 역시 관련 대책 마련에 착수한 상황입니다. 다만 초점은 여전히 ‘맞춤 제작’과 ‘아동 리얼돌’ 규제에 맞춰져 있습니다. 리얼돌이 어떤 성별의 인격을 재현하고 있는지는 문제 삼지 못하고 있는 거죠. 정부 부처의 입장에 따르면 청와대의 국민청원 답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하이라이트

리얼돌

섹스돌. 인간 형상을 재현한 성기구를 말한다. 보통 고급 실리콘으로 제작되며 특히 성기관을 상세하게 제작한다. ‘리얼돌’은 원래 미국의 ‘어비스 크리에이션즈Abyss Creations’가 제작하는 섹스돌의 제품명이다. 한국에서는 이 제품명이 아니라 섹스돌 자체를 의미하고 있다. 섹스돌 시장은 지금도 성장하고 있으며, 기술 발전에 따라 인공지능을 도입한 섹스 로봇 제작으로까지 나아가고 있다. 때문에 국제적으로는 오히려 섹스 로봇이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타임라인


2003.

대법원, 여성 성기를 모방한 남성용 자위기구를 ‘음란물’로 판결


2004.

성매매특별법 제정. 성매매 단속을 피해 ‘인형체험방’ 등 성행


2013. 8.

헌법재판소, 여성 성기를 모방한 남성용 자위기구 판매 처벌. 합헌으로 판결


2014. 4.

청주지법, 여성 성기를 모방한 남성용 자위기구를 ‘성기구’로 판결


2017. 7.

인천본부세관, 성인용품 수입업체에 대해 리얼돌 수입통관 보류 결정. 해당 업체, 인천세관을 상대로 ‘수입통관 보류처분 취소 청구’ 소송 개시


2018. 9.

인천지방법원(1심), 리얼돌을 ‘음란물’로 판단. 인천세관 수입통관 정당하다고 판결


2019. 1.

서울고등법원(2심), 리얼돌을 ‘성기구’로 판단. 1심 번복. 성인용품 수입업체 취소 청구 인용


2019. 6.

대법원, ‘심리 불속행’으로 인천세관 측의 상고 기각. ‘리얼돌’ 사실상 허가 결정


2019. 7. 8.

‘리얼돌 수입 및 판매 금지’ 청와대 국민청원 시작. 한 달도 안 돼 20만 명 동의


2019. 8. 8.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 등 11인, ‘아동 리얼돌’ 규제 내용을 담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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