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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O 핵심협약 비준

천아1234 2021. 5. 10. 17:02


경총과 전경련은 왜 ‘ILO 핵심협약 비준’에 반대할까

지난 7월, 유럽연합EU이 한국 측에 ‘전문가 패널’ 소집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한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2009년 한·EU FTA 체결 당시 양쪽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을 모두 비준한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핵심협약 8개 중 4개의 비준을 여태 미뤄왔습니다. 작년 초 EU가 핵심협약 비준을 촉구하는 공식 서한을 재차 보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죠. 결국 분쟁 해결 절차 마지막 단계까지 오게 됐습니다.

유엔 산하 전문기구인 ILO는 국제적인 노동 기준으로 현재 189개 협약과 205개 권고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중 ‘핵심협약’은 회원국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8개 협약을 말합니다. 한국은 아동노동 금지(138호·182호)와 균등대우(100호·111호) 협약은 비준했지만, 결사의 자유(87호·98호)와 강제노동 금지(29호·105호) 협약은 비준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은 1996년 ILO에 가입한 이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핵심협약을 비준하겠다고 약속해왔습니다. 하지만 매번 국내법과 충돌한다는 이유를 들어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 미뤄둔 일이 지금 터지고 있는 거죠.

정부 입장도 난처해졌습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입니다. 정부는 이 사안을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사노위에 맡겨놨습니다. 하지만 열 달 동안의 논의에도 결국 합의는 이뤄지지 못했죠.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 국내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를 둘러싼 노사 간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못한 겁니다. 특히 ‘결사의 자유’ 협약은 단결권·단체행동권·단체교섭권 등 노동 3권 전반을 폭넓게 옹호하고 있어,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를 중심으로 재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입니다.

EU의 압박은 강해지고 있습니다. 국내 쟁점은 ILO 핵심협약 비준이지만, 외교적 쟁점은 결국 FTA 이행 여부입니다. 사실 FTA 분쟁 조정 결과는 ‘권고’와 ‘점검’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명목상 강제성은 부족합니다. 하지만 무역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실례로 지난 5월 EU는 중국에 대한 반덤핑관세 부과 기간을 연장하면서 중국이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들었습니다.

이처럼 자유무역협정에 노동권 조항을 넣는 근거는 ‘공정 경쟁’입니다. 무역 상대가 임의로 임금 가격을 낮추면 경쟁력이 높아져 불공정 거래가 발생한다는 것이죠. 다른 면에서 보면 무역 상대국의 미비한 노동 기준을 들어 자국 산업을 보호하거나 통상 조건을 변경할 수도 있단 뜻입니다. 특히 EU는 한국과의 FTA에서 노동·환경 조항을 처음 포함시킨 이후, 다른 나라와의 FTA에도 같은 조항을 계속 포함시켜 왔습니다. 단지 EU가 ‘더 정의로워서’ 벌인 일이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통상 관계를 재편하려는 계획인 거죠.

이번 판정 결과가 ‘FTA 위반’으로 확정되면, 한국은 FTA 역사상 ‘노동 조항’을 위반한 첫 번째 국가가 됩니다. 한국의 노동 기준이 아주 낮다는 걸 국제적으로 공인하는 셈입니다. 현 정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죠. 여기서 한·미 FTA, 한·캐나다 FTA 역시 ‘ILO 핵심협약’을 노동 기준으로 정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두 나라가 한·EU FTA 판정 결과에 근거해 한국의 FTA 위반을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죠. 미·중 무역 분쟁에 이어 일본과의 무역 분쟁이 장기화하는 시점에, EU와의 리스크가 더해지는 건 한국에게 확실히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결국 정부가 직접 나섰습니다. 7월 22일에 외교부가 비준안 검토 절차를 시작했고, 30일에는 고용노동부가 관련 국내법 개정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자 오히려 논란이 다시 불붙었습니다. 노동계와 재계 모두 정부안에 동의할 수 없다고 밝힌 것이죠. EU는 여전히 전문가 패널 소집을 서두르고 있고, 정부는 다급해져 갈팡질팡하는 형국입니다. 이렇게 꼬일 대로 꼬여버린 ILO 핵심협약 문제. 도대체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요.

하이라이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예전 이름은 노사정위원회. 1998년 김대중 정부 당시 노동자·사용자·정부 3자 대화를 통해 노동 현안을 풀어가려는 목적으로 설치한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다. 2018년 말 문재인 정부는 여기에 청년·비정규직·여성 등 계층별 대표 등을 추가해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확대 재편했다. 사회적 대화기구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겠단 취지에서였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참가를 거절하고, 설립 직후 탄력근로제 논의가 진행되면서 계층별 대표 3명마저 사퇴해 ‘노사정위’와 다를 게 없는 유명무실한 기구라는 비판을 받았다. 올해 초까지 경사노위가 추진한 탄력근로제, 국민연금 개혁, ILO 핵심협약 비준 등은 잇따라 무산됐다. 결국 7월 위촉직 위원 9명이 전원 사퇴하면서 전면적인 개편을 예고한 상태다.

선비준 후입법? 선입법 후비준!

정부 개정안에 노·사 모두 반대한 이유


먼저 이번 정부 개정안이 정말 ILO 핵심협약을 제대로 담아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한국이 이번에 비준해야 할 핵심협약은 ‘결사의 자유’ 2개 협약과 ‘강제노동 금지’ 2개 협약입니다. 그런데 고용노동부는 ‘강제노동 폐지’를 다룬 105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핵심협약만 비준하기로 정했습니다. “우리나라 형벌체계와 분단국가 상황을 고려했다”는 이유를 들었죠. 한편 이번에 발표한 3개 법률 개정안은 각각 노동조합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개정안입니다. 노사 간 갈등의 핵심인 ‘결사의 자유’ 협약에 관한 국내법 개정을 일단 서두른 것이죠. 개정안에는 실업자·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노조 전임자 급여 금지 규정 삭제, 공무원·교원 등 노조 가입 허용 등이 주요 내용으로 담겼습니다.

노동계는 이번 정부 개정안이 핵심협약이 요구해온 기준에 한참 못 미친다는 입장입니다. 특수고용노동자 등의 노동기본권 보장이 누락됐고, 노조설립신고제나 파업에 대한 민형사 처벌 문제도 다루지 않았다는 거죠. 특히 재계 요청에 따라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과 사업장 점거 금지 내용이 포함된 건 ILO 핵심협약과 전혀 상관없을뿐더러, 오히려 협약 위반 사항이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전교조 법외노조통보 직권 취소 등 정부가 미리 취할 수 있는 조치들도 실행된 게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입법안에 담긴 내용도 단서조항이 많아 불충분하다고 봤습니다. 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걸 포함해 정부의 핵심협약 비준 의지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죠.

한편 재계는 ILO 핵심협약 비준 자체에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간 재계는 ‘한국적 특수성’을 강조하며, 단결권 보장과 함께 사용자의 ‘생산활동 방어 기본권’도 보장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습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한국적 특수성’을 거칠게 요약하면 한국은 유럽에 비해 기업보다 노동조합의 힘이 강해 기업 경쟁력이 낮아진다는 건데요. 재계가 줄곧 주장해온 ‘강성노조론’의 연장입니다. ‘생산활동 방어 기본권’은 핵심협약 위반에 가까운 내용이지만 결국 입법안에도 일부 포함됐습니다. 이마저도 재계는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과 부당노동행위 형사 처벌 폐지도 포함돼야 했다고 불만을 표했지만요.

특히 경총은 EU의 핵심협약 비준 압박에 대해 “비준 문제는 주권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고 강조해왔습니다. 현재 비준 논의가 ‘통상압박’에서 비롯되었고, 이를 강요하는 건 ‘주권침해’라는 논리죠. 하지만 이는 FTA의 전제를 무시하는 주장입니다. FTA가 포함하는 이행 의무, 중재 절차 등은 이미 일부 주권을 유보할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시장개방으로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계산에 따라 이미 예상하고 협상한 내용인 거죠.

2011년 ‘노동 조항’이 포함된 한·EU FTA가 발효됐을 당시, 재계 역시 “세계 최대 시장인 EU를 공략할 좋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며 환영 의사를 밝혔습니다. 몇 년 사이에 말이 전혀 달라진 건데요. 이번에 국제 조약인 ILO 핵심협약 비준을 근거로 노동법이 개정되면, 재계 입장에 맞춰 노동법을 다시 원상 복구하긴 어려워집니다. 재계도 이 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경사노위 때부터 ILO 핵심협약의 불필요함과 비강제성을 강조해온 것이죠.

또 다른 쟁점은 ‘핵심협약 비준’과 ‘개정안 입법’의 우선순위입니다. 재계는 “핵심협약 비준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공감대가 더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비준이나 입법이 진행될수록 노동법 개정은 불가피해지기 때문에 현상 유지가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죠. 한편 노동계는 ‘선비준 후입법’을 주장합니다. 관련법 개정이 완료되려면 비준은 다시 미뤄질 수밖에 없다는 건데요. 사안이 시급한 만큼 오히려 비준을 선행하고, 비준 유예 기간인 1년 동안 탄력 있게 입법 과정을 추진하자는 입장입니다. 지난 4월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방안을 국회 운영위에 전달한 바 있고, 이어 5월 ILO 역시 한국 정부에 ‘선비준 후입법’을 공개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결국 ‘선입법 후비준’을 택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입법 사항에 관한 조약의 경우 “국회 동의는 대통령이 조약을 비준하기 전에 이뤄져야 한다”며 ‘선비준 후입법’은 불가능하다고 못박았습니다. 그런데 이 해석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헌법은 분명 대통령의 비준권과 국회의 비준 동의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대통령이 조약에 비준할 때 국회의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규정은 헌법에 없습니다. 결국 ‘선비준’이 “위헌”이라는 정부의 입장도 확고하지만은 않은 거죠. 정부도 이 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선입법 후비준’ 원칙을 세웠음에도 사실상 비준과 입법을 거의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죠.

퀴즈

다음 중 ILO 핵심협약이 금지하는 ‘강제 노동’ 대상이 아닌 것은?

전쟁 성노예 피해자


강제동원 피해자


양심적 병역 거부에 따른 대체복무자


사회복무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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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어디에

ILO 핵심협약 비준, 국회가 답을 낼 수 있을까


결국 결정권은 모두 국회로 넘어가게 됐습니다. 정부로서는 직접 키를 쥐지 않고 안전한 방법을 택한 거지만, 속도를 내긴 더 어려워졌습니다. 현재 국회 상황 때문인데요. 당장 마주할 문제는 국회 상임위원회입니다. 상임위는 본회의에 부의할 법안을 심사하죠. 비준 동의안은 외교통일위원회, 노동법 개정안은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담당합니다. 그런데 현재 두 상임위원장은 모두 자유한국당 소속입니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에 관해 재계와 완전히 같은 입장입니다. 올해 초 김학용 환노위원장은 “ILO 핵심협약은 시기상조”라며 아예 “당분간 상임위에서 다루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죠. 상임위 구성도 찬반 동수에 가까워 통과 여부도 사실 불투명한 상황입니다.

다음 난관은 9월 정기국회가 마주한 문제들입니다. 현재 20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30% 미만입니다. 다뤄야 할 현안이 산적해있단 거죠. 예컨대 선거제와 사법개혁을 다룬 패스트트랙 법안도 여전히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인사청문회와 민주평화당 분당이 벌어진 것도 변수가 될 수 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현재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어떻게든 막겠단 입장이라, 정국이 교착될 가능성이 높아진 거죠. 그나마 노동 법안에 우호적인 민주평화당은 분당으로 세력이 나뉘었고요. 이렇게 보면 EU가 전문가 패널 소집을 서두른 것이 국회 통과 가능성을 낮게 봤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충분히 타당해 보입니다.

지난 7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3당은 노동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ILO 핵심협약 비준,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등 합의가 어려운 노동 현안을 집중적으로 다루겠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마저도 자유한국당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위원장 자리를 조건으로 걸면서 불투명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징계안을 유리하게 풀어가기 위해서죠.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뭘 해도 불리할 게 없는 상황입니다.

노동 의제는 늘 찬반이 분분합니다. 논란은 이미 예정돼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경사노위로 국회로 책임을 계속 미루고만 있습니다. ‘사회적 논의’를 이유로요. 물론 민주적 의사 결정 과정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논의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 정부가 절차적 정당성만 추구한다면, 결국 의사 결정 자체가 불가능해질 우려가 있습니다. 갈등 없이 해결될 수 없다면 결국 책임 있는 쪽이 결정해야 합니다. 이번처럼 시간이 문제라면 더 그럴 것입니다.

타임라인


1919.

국제노동기구ILO, 파리 강화 회의에서 설립 합의. 초기 참가국 43개국


1946.

ILO, UN의 전문기관으로 편입


1991.

한국, UN 가입과 동시에 ILO 가입. 152번째 회원국


199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김영삼 정부, ILO 핵심협약 비준 약속


2011.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노동 분야 관련 ‘ILO 핵심협약 비준’ 의무 포함


2017.

문재인 정부, ‘ILO 핵심협약 비준’ 공약·100대 국정과제·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


2018. 3.

EU 집행위원회, 한국 정부에 ILO 핵심협약 비준 촉구 서한 발송


2018. 11.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출범


2018. 12.

EU 집행위원회, 한-EU FTA 분쟁 해결 절차 첫 단계인 ‘정부 간 협의’ 공식 요청


2019. 5. 22.

고용노동부, 3개 핵심협약 비준만 우선 추진한다는 입장 발표


2019. 7. 4.

EU 집행위원회, 한-EU FTA 분쟁 해결 절차 두 번째 단계인 ‘전문가 패널 소집’ 공식 요청


2019. 7. 22.

고용노동부, 외교부에 3개 핵심협약 비준 요청. 공식 비준 절차 시작


2019. 7. 30.

고용노동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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