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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란 단어를 성노예로 끌려가신분, 성노예로 고쳐야합니다. 한자로 慰安婦 위로할위, 편안할안, 며느리부(아내)입니다. 말그대로 위로와 편안함을 주는 아내란 뜻이죠 이말은 일본이 성노예를 미화하기 위해서 붙이 이름입니다. 우리자신이 위안부, 위안부라고 말하고 쓰는것은 일본이 주장하는 내용(자신해서 선택한것이다)라고 주장하는것을 인정하는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모든 교과서와 문서의 내용에 써있는 위안부란 단어를 성노예 또는 성노예로 끌려가신분이라고 고쳐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안소는 이처럼 당시의 파견군 사령부의 판단에 따라 설치되었습니다. 설치하는데 있어서 많은 경우, 군이 업자를 선정하여 의뢰하고, 일본 본국에서 여성들을 모았던 것 같습니다. 업자가 의뢰를 받고 일본으로 여성을 모집하러 가는데 현지의 영사관 경찰서장은 국내 관계 당국에 편의제공을 직접 요청하였습니다. 상하이영사관 경찰서장이 나가사키(長崎)수상경찰서장에게 보낸 의뢰문 1937(쇼와 12)년 12월 21일 "자료집성(資料集成)"1권36-38쪽 황군 장병 위안부 도래에 관한 편의제공 의뢰 건 이번 사건에 관하여 전선 각지에서 황군이 전진함에 따라 장병의 위안과 관련해서 관계 여러 기관이 검토중인 바, 최근부터 당관 육군 무관실, 헌병대의 합의 결과 시설의 일단으로서 전선 각지에 군 위안소(사실상 창가)를 아래..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세운 동상으로, 2011년 12월 14일 수요 집회 1000회를 맞이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중심이 되어 시민 모금으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세워졌다. 이후 국민 모금 등으로 전국 27곳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있는 글렌데일 시립공원을 비롯해 해외 3곳에도 세워져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널리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소녀상의 모습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군에 끌려갔던 14∼16세 때를 재현한 것이고, 또한 소녀상 옆에 있는 빈 의자는 할머니들의 고통에 공감해 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평화비 표지석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가 직접 쓴 평화비 문구와 함께 “19..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나온 날 慰安斑の問題が世界に出た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12년 12월 8~10일까지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열린 제1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매년 8월 14일을 '세계 위안부 기림일'로 정했다. 8월 14일은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1924~1997) 할머니가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증언한 날로,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생존자 중 최초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김 할머니의 증언 이후 전국의 생존자들이 잇따라 피해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대협 등 세계 여성단체들은 2013년부터 매년 8월 14일에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다양한 캠..
정의 일본군의 성욕 해결, 성병 예방, 치안 유지, 강간 방지 등을 위하여 일본군과 일본정부가 중일전쟁 및 아시아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점령지나 주둔지 등의 위안소에 배치한 여성. 정신대·군위안부·종군위안부·성노예. 용어 일본군이 성욕 해결과 성병 예방 등을 목적으로 여성들을 동원하여 설치한 시설물을 ‘위안소’라고 부른 것은 상해(上海)사변이 있었던 1932년 전후였다. 당시 위안소에 수용된 여성을 ‘예기(藝妓)·작부(酌婦)’라고 하였는데, 이외에도 매음부, 접객부, 종업부, 영업자, 기녀 등 갖가지 명칭으로 부르다가 상당히 다양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 대체로 ‘위안부’라는 말로 수렴되었다. 현재 발굴된 문서상으로는 1939년 6월 중국에 있던 독립 산포병(山砲兵) 제3연대의 『진중일지(陣中日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