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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CT와 미래(ICT and Future) 티스토리 블로그
인류는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현재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로운 변화의 격변기를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변화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급격한 기술 융합과 발전이 변화에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강한 의문이 생긴다. 지금 인류는 제대로 된 방향키를 잡고 있는 것일까? 2030년이면 A.I.(인공지능)가 인간의 지능을 넘어선다는데, 우리는 잘 가고 있는 것일까? ▲ 《유엔미래보고서》 시리즈의 저자인 미래학자 제롬 글렌 회장(Jerome C. Glenn) 《유엔미래보고서》 시리즈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미래학자 제롬 글렌 회장(Jerome C. Glenn, 70, 밀레니엄프로젝트)이 지난 4월 말 한국을 찾았다. 미래 일자리 예측 방법론 특강에 나선 글렌 회장을 4월 30일 서울..
"아직도 200자 원고지에, 그것도 가로가 아닌 세로로 글을 쓰는 낡은 기자는 이제 물러갑니다. 기자로 살아서 행복했습니다. 아부 안 하고 돈 안 밝히고 살아서 좋았습니다. 55년 동안 감사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인이자 당대 최고의 논객으로 살아온 김대중(金大中·81) 조선일보 고문이 54년 10개월간 근무했던 조선일보에서 31일 퇴임했다. 31일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이 조선일보 편집국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읽고 있다. 55년 동안 한국 언론을 대표해 온 김 고문은 후배 기자들에게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기자 정신과 좋은 글 쓰는 데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고문은 1965년 6월 조선일보 수습 8기로 입사해 외신부·사회부·정치부 기자, 주미(駐美) 특파원과 외신부장·사..
코로나, 어디에서 찾아와 어디로 가고 있나에디터의 노트2019년 12월31일. 우리 삶이 바뀐 날이다.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코로나19라는 생소한 바이러스는 1년 남짓한 시간 우리를 힘껏 흔들었다. 사람들은 온 힘을 다해 저항하고 있지만 바이러스라는 파도는 우리가 쌓은 방파제를 계속 위협한다.잠시라고 생각한 파도가 해일로 '열, 권태감, 기침, 호흡곤란 및 폐렴 등 경증에서 중증까지 다양한 호흡기 감염증, 그 외 가래, 인후통, 두통, 객혈과 오심, 설사 등도 나타남.'정부가 설명하는 코로나19 감염 증상이다. 비말, 즉 '침방울'에 의해 감염되는 이 바이러스는 1년 남짓 동안 말 그대로 대유행했다. 평소 같으면 신경 쓰지도 않을 두통이나 기침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는 '큰일'이 됐다.코로나19가 세상에 ..
- '정치부회의' 방송 : 월~금 오후 5시 '복국장'이란 애칭과 함께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JTBC 이상복 앵커가 지난 5월, 본인의 주무대인 '정치부 회의' 진행자로 복귀했다. 2014년 4월 첫 시작을 알린 JTBC '정치부 회의'는 정치부 기자들이 회의 중 발제를 하며 그날의 이슈를 다루는 독특한 포맷을 차용했다. 보도의 기본을 지키면서 예능의 재미까지 가미해 낮 시간대 보도 프로그램으로선 보기 드물게 탄탄한 팬층을 형성했다. 평일 오후 5시에 방송되고 있다. 이상복 앵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진행, 여기에 위트와 재치까지 곁들이며 '정치부 회의'의 인기를 견인했던 인물이다. JTBC의 낮 시간대 보도프로그램 개편에 즈음해 방송 복귀 두 달이 된 이상복 앵커에게 복귀 소감, 그리고 '정치부회의'..
사회적으로 이름이 있는 대한민국 남성 가운데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만큼 이력서가 짧은 사람이 없다. 1965년 조선일보 입사. 기자, 특파원, 편집국장, 주필을 거쳐 현재 고문. 이 한 줄이 전부다. 맛있는 음식과 술을 무척 좋아 한다는데 나는 한 번도 그와 상을 같이 한 적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글을 써 줄 수 없겠는가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적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냥 넘기기에는 너무 아쉬웠다. 이런 축하의 기회가 또 있을까 해서이다. 김대중 고문과는 대조적으로, 본의 아니게 긴 이력서를 지니게 된 연상의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딱 한 가지 있었다. 존경과 부러움이 섞인 찬사를 보내며 감사를 표시하고, 앞으로도 더 오래 오래 글을 읽을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
내가 당한 명예훼손 사건 수습기자로 출발하여 한 신문사에 반세기를 재직한 사람은 내가 아는 한 우리 언론 역사상 김대중 고문이 유일하다. 일선기자에서 부장, 국장, 주필을 거치는 동안 글 쓰는 부서에만 종사하면서 세운 기록이다. 하지만 김대중을 평가할 부분은 따로 있다. 그는 1990년 대 10년 동안 전국 언론인 가운데 영향력 1위의 자리를 내놓지 않았다. 논객으로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보적인 위상이다. 여기서 나는 김대중 고문이 모르는, 어쩌면 작지만 의미 있는 사건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1999년 6월에 나는 강준만(전북대), 김동민(당시 한일장신대) 두 교수를 상대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이 ‘인물과 사상’이라는 출판물에 나를 비방하는 글을 실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 흔한 말로 신문쟁이가 된다는 것은 그런대로 멋진 일이다. 나같이 사회학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나도 오래 전에 신문쟁이를 희망했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시절, 광주사태가 일어났다. 마침, TV에서 광주 MBC건물이 불타는 장면이 방영되었는데 그 속에 갇힌 기자들의 안부가 먼저 걱정되었다. 그런데 생각은 이상한 대로 흘렀다. 일필휘지로 사건을 분해해야할 기자가 권력에 갇혔다는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 그 돌발적 사건이 나의 희망을 포기하도록 종용했다. 대신 갇힌 기자와 가둔 권력을 통째로 분해하는 그런 직업으로 희망을 전적했다. 지금하고 있는 사회학교수다. 그래도 신문쟁이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못해 칼럼계에 발을 들여놓기도 했다. 저널리스트 50년이라면 아마 대한민국..
언론인 50년을 맞는 김대중 고문님. 정말 '멋진 삶'이었습니다. 달리 표현할 말도 생각나지 않습니다. 수많은 찬사로 담아내기에는 김 고문님의 인생 족적이 너무나 크기 때문입니다. 한국 언론계를 대표하는 김대중 고문님의 글을 제가 어떤 식으로든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과분한 듯합니다. 국민과 언론으로부터 늘 질타를 받는 정치인으로서 큰 언론인을 보고 느낀 소감을 글로 표현하는 게 저에게는 크나큰 정신적 고문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영광으로 알고, 정치인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함께해온 독자로서 느낀 점을 감히 5가지 정도로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저는 학창시절부터 김 고문님의 글을 읽었습니다. 첫 느낌은 참으로 쉽고 평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나 군더더기가 거의 없어 때로는 ‘별로 재미없는데…’라는..
"정치가 이 모양이고 경제가 막막하고 사회 개혁이 제자리걸음인 데는 대통령의 지도력·통치력·친화력 부재도 한몫하고 있다. (…) 앞으로 남은 2년 남짓한 기간이 지난 2년 국정 패턴의 연장이고 반복이라면 박근혜대통령의 치세(治世)는 암울하다. 박대통령을 여기까지 끌고 왔고 여기까지 올려준 것은 어느 부분 아버지 박정희의 후광이다. 박대통령은 그만큼 아버지에게 빚이 있다. 아버지의 절반이라도 닮으라는 것이다." - 김대중 칼럼 '내 무덤에도 침을 뱉어라'(조선일보 5월 12일자) 중에서 현직 대통령을 작심하고 비판한 위 글은 야당 정치인의 글이 아니다. 진보언론에 실린 칼럼도 아니다.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이 최근 쓴 기명 칼럼이다. 김대중 고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칼럼이다. 김대중 고문의 글은 직설적이고 ..
김대중 기자! 어느새 기자생활 50주년을 맞이했다니……. 누구도 흐르는 세월은 막을 수 없다는 이치가 새삼스럽다. 한 인생이 80세를 바라보면서까지 최초에 선택했던 직업을 50년 동안 외길로 살아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권을 비롯한 여러 부문에서 유혹도 적지 않았는데도 묵묵히 가는 길을 고집해온 뚝심에 놀란다. 스스로의 역할에 만족하고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과 책임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많은 애독자와 정치인들의 반응에 보람도 느꼈으리라 믿는다. 자기수련·탐구력·청렴성 있었기에 언제나 당당했던 기자 언론인의 사명은 현상화된 사회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탐색적 방법으로 현상을 판단하여 이를 독자들에게 가치중립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전문적 지식과 풍부한 경험..